Rephilia Lesode RAW novel - Chapter (38)
레필리아 레소드-38화(38/398)
레필리아 레소드 38화
슬퍼지려 하기 전에(5)
로이의 눈빛에서 불똥이 튄다.
라에룬은 서둘러서 말을 바꿨다.
“자네는 시련을 이겨내는 곰…….”
“곰?”
라에룬은 자신도 모르게 속에 있는 말을 꺼내고 아차 싶었다.
“자네는 모든 시련을 극복해 낸 제국의 영웅이 아닌가? 자네의 아내는 자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강한 여성이네. 곧 산통은 멎고 자네를 꼭 닮은 곰…….”
“곰?”
라에룬은 흥분한 로이를 눈앞에 두고 있어서 그런지 자꾸 실언이 튀어나왔다.
로이는 듣기만 하면 정색하는 단어가 있었다. 그것은 덩치나 곰과 같은 단어였다.
우람한 체격을 가진 로이에게는 그 단어가 콤플렉스를 가리키는 듯 보였다.
로이가 라에룬의 멱살을 붙잡으려 할 때, 집 안에서 외침이 들려왔다.
“아이가 태어났어요! 아르빈트 부인께서도 건강하세요.”
“그게 사실인가!”
로이는 하인의 말을 듣고 허겁지겁 집안으로 뛰어들어갔다.
라에룬은 그의 모습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로브를 털며 로이의 뒤를 따라 집안에 들어섰다. 그 순간 의아함이 찾아왔다.
분명 아이가 태어났다고 했다. 하지만 새 생명을 알리는 우렁찬 울음소리가 들려오지 않는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로이의 집안은 마나의 보호를 받는 장소였다. 하지만 불길한 검은 그림자가 웅웅, 소리 내듯이 지붕을 휘감고 있었다.
라에룬이 가장 먼저 본 것은 산통으로 지친 라일라였다.
그 옆에 있는 것은 친구, 로이였다.
두 사람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라에룬은 안도했다.
‘뭐지?’
그 순간 라에룬은 등골이 오싹함을 느꼈다.
오로지 마나를 깨달은 사람들에게만 느껴지는 감각이었다.
사제 라일라도 마나를 깨우친 사람이지만, 산통으로 인해 기운이 없었다.
그렇기에 집안에서 징조를 느낀 것은 라에룬 한 명뿐이었다.
그는 불길한 기운을 눈으로 좇았다. 그리고 발생지를 찾고서 미간을 찌푸렸다.
로이의 품 안에 안겨 있는 보자기 속의 아기.
그 갓난아기는 보기만 해도 구역질이 나올 것 같은 칠흑의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노쇠한 마녀의 손처럼 느슨하게 움직였다. 보이지 않는 그것이 로이의 몸을 끌어안았다.
라에룬은 반사적으로 마법을 사용할 뻔했다.
“그런데 어째서 아기가 울지를 않소?”
그제야 이상함을 느낀 로이는 산파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산파는 로이의 질문을 받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글쎄요. 저도 이런 아기님은 처음 받아봐서…….”
산파의 말에 로이는 자신을 꼭 닮은 아기의 눈을 바라보았다.
이제 갓 탯줄을 자른 아이가 똑바로 눈을 뜨고 있었다.
로이와 산파는 아기에게서 오싹함을 느꼈다.
아기는 전혀 울지 않았다. 단풍잎 같은 손을 흔들어 보이지도 않았다.
녀석은 검고 탁한 눈동자로 로이의 눈을 직시했다. 마치 꿰뚫어 보는 듯한 눈빛이었다.
이제 갓 태어난 아이다.
제대로 눈을 뜨고 있기조차 힘들 건데, 그렇지가 않았다.
그것은 마치 주변을 관찰하는 듯 살핀다.
“로이, 그 아이를 내려놓게.”
라에룬은 위험함을 감지하고서 로이에게 달려갔다.
그사이 로이는 갑자기 머리가 핑 도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한쪽 무릎을 땅에 대고 있었다.
로이는 현기증이 일어나는 와중에도 정신력으로 아기를 놓치지 않고 있었다.
울지 않는 아기는 크고 순진한 눈동자를 고고하게 열면서 로이를 올려다보았다.
로이는 아기의 눈동자에 투영된 자신의 얼굴을 보았다.
핏줄이 터질 듯이 팽창하고 눈동자는 붉게 충혈되고 있었다.
아기는 표정은 없지만 마치 웃는 듯 보였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아기를 바닥에 내려놓고서 뒤로 주저앉았다.
“허억, 허억……!”
로이는 거친 숨소리를 내뱉으며 자신의 손을 들여다보았다. 힘이 없어 손끝이 덜덜 떨려왔다.
“우리 아가…….”
라일라는 아기를 안으려고 손을 뻗었다. 산파는 그런 그녀의 손을 붙들었다.
로이는 아내가 일어나려는 것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는 다시 무릎을 굽혔다.
‘아아, 어찌 이럴 수가…….’
라에룬은 자신도 모르게 탄식을 내뱉으며 얼굴을 감싸 안았다.
그의 손가락 틈으로 보이는 아기는 검은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착각인가?’
착각이 아니라는 듯이 아기의 조그만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러고는 둥글고 탁한 눈동자가 초승달처럼 웃어 보인다.
라에룬의 두 눈은 긴장감으로 가득 했다.
로브 속에 감춘 손은 언제든 마법을 시전하기 위해 수인을 맺은 상태였다.
함부로 두 사람에게 말을 꺼내기도 힘들었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어느새 기운을 차린 로이는 라에룬을 향해 물었다. 확실히 로이의 체력은 대단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종일 기절해 있었을지도 몰랐다.
“오라버니…… 설마…….”
라일라도 걱정스러운 얼굴로 라에룬을 바라보았다.
산통을 끝낸 지 얼마 안 되는 그녀의 얼굴은 초췌했다.
그런 그녀의 눈빛은 이제 갓 태어난, 자신의 살과 피를 이어받은 아기만을 걱정한다.
라에룬은 어둠의 아기를 경계하듯 시선을 몇 번 주었다. 이내 무겁게 열리지 않았던 입술이 열렸다.
“그 아기가 불길하다는 것은 방금 확인했을 걸세.”
“불길하다니!”
로이가 반발하듯 말했다. 라에룬은 그에게 진정하라는 듯이 손바닥을 보였다.
“자네의 힘을 흡수하는 아기가 불길하다고 말하지 않으면 뭐라고 말해야 하나?”
로이는 라에룬의 말에 대답하지 못했다.
“이 아기는 자네들의 아이이자 내 조카네.”
라에룬은 두 사람에게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강력한 힘을 가진 세 번째 포스네.”
“뭐?”
로이가 황당하다는 듯이 되물었다.
“사실일세.”
“자네!”
“지금 저 아기를 죽여야 하네.”
로이는 라에룬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눈에서 불똥을 튀기며 달려들었다.
라에룬은 우악스러운 그의 손아귀에 잡혀서 헛기침해댔다.
“지, 진정하게.”
“아무리 자네라도 할 소리가 있고 하지 못할 소리가 있네! 이제 갓 태어난 아기를 죽이겠다고?”
로이는 화가 치밀어 올라 라에룬을 패대기치려 했다. 하지만 라일라가 다급하게 만류했다.
“오라버니의 말이 맞아요!”
“맞다니. 뭐가 맞단 말이오!”
로이는 아내마저 이상해지자 화를 버럭 냈다. 한 번도 아내에게 화를 내본 적이 없던 그였다. 하지만 지금은 이성이 나가 있는 상태였다.
“세상이 비웃겠군! 마지막 천재이자 중력의 마도사 라에룬 그라비스틴이 어린 아기 하나 못 죽여서 안달이라니.”
“그런 의미가 아닐세.”
로이는 라에룬의 멱살을 놓았다. 덕분에 라에룬은 다시 바닥에 올라올 수 있었다.
로이에게 몇 대 맞을 줄 알았는데, 이 정도면 양호한 것이었다.
라에룬은 아직 하지 못한 말들을 둘 앞에서 해야만 했다. 설령 흥분한 로이의 검에 죽는 한이 있더라도.
“포스를 지닌 존재에겐 나이 고하가 따로 없네. 저 아기가 가진 불길한 힘은 절대로 이 세상에 이로운 것이 아닐세. 생명체의 힘을 흡수하고 죽음에 이르게 하려는 존재가 어찌 자네들의 자식이라 하겠나?”
“허무맹랑한 소리.”
“아이야 또 낳으면 되지만 포스를 살려두어선 아니 되네. 그 증거 중 하나로…….”
라에룬의 예상대로 머릿속이 뜨거워 질대로 뜨거워진 로이가 당장 덤벼들려 했다.
하지만 곧이어 들려오는 라에룬의 말 때문에 굳어졌다.
“자네의 아내이자, 나의 사제 라일라 아르빈트는 더 이상 축복받은 마나의 세계에 갈 수가 없네.”
라에룬은 냉정한 얼굴로 무덤덤하게 말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라에룬의 눈가는 이미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허공중으로 부유하듯 춤추는 눈물이 바닥을 적신다.
이제 마법의 시대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세상을 가득 덮었던 마나의 농도는 낮아졌고, 마력을 느끼지 못하는 마법사들이 점점 많아진다.
이제 마법사의 명맥은 사실상 끊어져 가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 몇 안 되는 마법사였던 라일라가 마법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것은, 혈육의 죽음을 통보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었다.
침착하게 말하고 있지만 극심한 고통을 씹어 삼키고 있었다.
라에룬이 이러니, 라일라는 더 심각한 충격을 받는 것이 당연했다.
자신이 일생 일궈온 재능과 힘이다. 그것을 한순간에 다 잃었다.
보통의 마법사라면 폐인이 되거나 자결을 한다.
“아기만 무사하면 돼요.”
라일라는 단호했다. 자신의 아이만 무사하다면, 자신은 어떻게 돼도 상관없었다.
라에룬은 입안이 쓴 것을 느꼈다.
그녀는 살아갈 것이다.
자신과는 달리, 그녀에게는 엄마와 아내로서의 길이 있으니까.
로이는 라에룬에게 답을 구하지만, 그는 잠시간은 대답하지 않은 채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있었다.
로이는 어쩔 수 없이 아내인 라일라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라에룬의 말이 전부 사실임을 긍정한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 아이는 모든 생명체에 대하여 흡수할 권리를 가지네. 신이 생명을 지키는 방패를 주었다면 생명을 해하는 창도 주시는 법이지.”
“허무맹랑해.”
“아니, 모든 것이 예정 그대로네. 이미 예언되어 있었고, 이미 결정되어 있던 대로지.”
“자네가 미친 마법사가 되었을지도 모르지.”
로이의 으르렁거리는 말에 라에룬이 힘없이 조소했다.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군.”
라에룬은 아기를 가리키며 계속 말을 이었다.
“균형과 조율을 존중하는 신으로서는 균형을 무너뜨릴, 평화를 무너뜨릴 것을 이 땅에 내려주기도 하지.”
“갓 태어난 생명에게 그런 힘이 존재한다고 믿어지지 않네.”
“그래? 그렇군.”
라에룬은 갑자기 품에서 로드를 꺼내 들었다.
그는 이미 캐스팅을 마쳤는지, 로드의 끝에서는 뱀의 혀와 같은 번개 자장이 꿈틀거렸다.
“안 돼!”
로이의 깜짝 놀란 외침보다 앞서서 번개가 아이를 향해 쏟아졌다.
콰지지직!
산파는 놀라서 벽 구석에 쭈그리고 덜덜 떨었다.
방이 한순간 환하게 빛났다가 어두워졌다.
“보았는가?”
아기는 조금의 그을음조차 없었다.
“재미있지 않은가? 난 대륙 최강의 마법사지. 이미 멸종되어가는 마법 계보라서 자랑스럽진 않지만.”
라에룬은 로드를 빙글빙글 돌리며 아이에게 걸어갔다.
“여기 내 마법을 흡수하는 아이가 있네.”
라에룬은 아기를 내려다보았다.
아기는 치아 하나 없는 입으로 방실방실 웃고 있었다.
그 천진난만해 보이는 웃음이 어째서인지 몰라도 비웃는 듯이 보였다.
“그래, 신에 대한 반역일 수도 있지만 지금 우리는 저 아기를 죽임으로써 이 대륙이 피보라로 뒤덮이는 것만은 막아야 하네.”
“좋은 쪽으로 사용할 수 있지 않은가?”
“좋은 쪽?”
“그래, 자네같이 좋은 스승을 둔.”
로이의 말에 라에룬이 하하하, 웃어 보였다.
“로이여, 내 친구여. 모든 사람의 영웅이자, 축복받은 검제여. 자네는 보이지 않는가? 저 아이의 두 눈빛은 지극히 냉정하다는 것을.”
아기는 웃고만 있다.
“자네에게는 보이지 않는가? 저 아기가 걸음마를 할 때마다 주변의 생명은 피를 뿌리게 될 거란 사실을.”
갓 태어난 아기가 이 정도라면, 앞으로는 감당할 수조차 없다.
그 누구라도.
“자네에게는 보이지 않는가? 저 아기의 가냘프고 작은 등 뒤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 어린 핏빛 날개를.”
라에룬은 흥분 속에서도 또박또박 말했다.
그는 아기를 검지로 가리키며 분명하게 자신의 주장을 내뱉었다.
“가르쳐? 뭘 가르친단 말인가? 토끼에 불과한 내가 호랑이인 이것에게 무엇을 가르칠 수 있다는 말인가? 그 끝은 파멸이네, 로이.”
라에룬은 냉정하게, 또는 표독스럽게 로이를 압박하고 가뒀다.
“아직 모르겠는가? 그럼 이건 어떤가?”
라에룬은 창문의 커튼을 거뒀다. 그와 동시에 어느새 시커메진 하늘이 심상치 않게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왕이 오셨다.
나타나지 말아야 할 것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우리의 왕이 오셨도다.
-종말의 왕이 오셨느니, 경배하도다.
진흙으로 만들어진 것 같은 괴물들이 꿈틀거리면서 집 주변을 에워싸고 있었다.
그것들은 기분 나쁘고 흉흉한 안광을 흩뿌리면서 축제를 벌이고 있었다.
로이는 자신도 모르게 의자에 주저앉았다.
덕분에 낡은 의자는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어 보인다. 주인의 심경과도 비슷한 음성과 모습으로.
“이 아이가 예언서에 나온 괴물일세. 지금 이 자리서 죽여야 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