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hilia Lesode RAW novel - Chapter (382)
레필리아 레소드-382화(382/398)
레필리아 레소드 382화
절망 속으로(5)
핏물로 만들어진 육체에 깃든 영웅들은 죽음에서 잠시 벗어나 생전의 힘을 마음껏 발휘했다.
이번에는 천사들도 데미지를 착실하게 입었다. 리즈의 시야 안으로 천사 둘이 비명을 토하며 사지가 잘려 나가는 것이 보였다.
후우, 하아.
리즈는 다시 손을 들어 올렸다. 기력이 굉장히 소모된 상태였다. 그런데도 움직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이 정도로 적이 멈출 리 없었다.
리즈는 손을 들어 올렸다. 그의 머리 위에서 거대한 구체, 비홀더의 눈이 생성되었다. 그것은 천천히 눈을 열면서 적을 향해 마비 광선을 뿌렸다.
거의 학살과도 같은 풍경이었다.
90마리가 넘는 천사들이 삽시간에 떼죽음을 당하고 있었다. 벌써 그 숫자가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그것도 전과는 달리 레벨 2의 천사였지만 리즈가 준비한 마법들은 위력적이었다.
글러트니도 리즈에게 접근할 때마다 비홀더의 눈에 얻어맞고 바닥을 기어 다니며 울고 있었다.
리즈는 계속 호흡을 가다듬으며 전장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그의 예상과 어긋나는 것이 있었다.
핏물로 이루어진 파에트와 엘빈이 천사들을 상대로 호쾌하게 공격을 퍼붓고 있었다.
네 번째 포스인 아일 하사드도 자신의 날개를 펼치며 천사들을 오히려 먹어 치우고 있었다.
하지만 여기에 리즈가 예상했던 인물이 보이지 않았다.
리에르 아르빈트.
죽은 지 얼마 안 된 그에게는 미안하지만, 사자의 예우를 다할 만큼 한가하지 않았다.
그리고 죽은 지 얼마 안 된 그를 소환해서 싸우면 분명 전투에 도움이 될 터였다.
하지만 소환에 응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고 말하는 것이 맞았다.
“하…….”
리즈는 천천히 미소를 머금었다. 이 기술은 어디까지나 리즈가 눈으로 본 영웅들의 망령을 소환하는 마법이었다.
즉, 바꿔 말하자면 망령이 아니라면 나타날 수가 없었다.
그때 황금빛이 쏘아 올려졌다. 리즈는 반사적으로 손을 들어 붉은 창들을 소환해 냈다. 그것은 마치 장벽처럼 늘어서서 날아드는 무기를 막았다.
하지만 전부 부서져 내렸다. 황금빛 검은 모든 창을 부수고서 리즈에게 날아들었다.
“큭!”
리즈가 신음을 토해냈다. 그의 손바닥은 황금빛 검에 꿰뚫려서 나무에 박혀 들어갔다.
티미는 자신의 검을 그대로 투척용으로 사용해 버렸다. 리즈가 만들어놓은 방벽들은 모두 저주받은 검을 막아내지 못하고 부서져 내렸다.
티미가 비열한 웃음을 지으며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그뿐만이 아니라 다른 포스들도 날개를 펼치며 위협스럽게 몰려들었다.
핏빛 인영들이 밀어붙였던 전세가 다시 역전되기 시작했다. 두 명의 포스가 가세해서 천사들을 지원했고, 핏물들이 하나둘씩 사라졌다.
‘이거, 리엘 군 때문에 손해를 보고 말았네요.’
리즈는 짧게 웃어버렸다.
이 소환에 최강의 영웅이 나타났다면 이렇게 허망하게 전투가 끝나진 않았을 터였다.
‘살아 있군요, 리엘 군.’
어떻게 된 일인지는 알 수 없었다. 분명히 리에르가 목숨이 끊어진 것을 보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이미 죽은 몸에 억지로 사자의 영혼을 붙잡아두고 있었을 뿐이었다.
리즈는 오른손을 뻗어 주문을 읊조렸다. 하지만 프라이드의 거대한 손톱이 갑자기 날아들었다.
우두둑!
뼈와 근육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리즈의 오른손은 그대로 아작이 나서 기하학적으로 비틀어졌다.
포스들은 리즈라는 식사를 눈앞에 두고서 기대감에 젖은 눈동자를 번뜩이고 있었다.
이래서야 시간 끌기밖에 되지 않았다. 리즈는 천천히 눈가를 여미었다.
언제였는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았다.
유트 남매를 데리고 그들의 고향으로 갈 때였다. 리즈는 그들의 보호자 격으로 움직였다.
여행하다 보면 음식을 직접 만들어 먹을 일이 비일비재했다.
유트가 하는 음식은 대충 먹을 만은 했다. 하지만 유이가 음식을 할 때면 맹독을 먹은 듯이 고통스러웠다.
결국엔 붉은 남자가 요리했다. 유트 남매는 무서운 살인마가 한 음식을 조심스럽게 먹었다. 하지만 이내 두 사람 다 동공이 확장되었다.
-마, 맛있어!
유이는 굉장히 놀라워했다. 리즈는 자신의 머리를 쓸어 올리며 콧날을 세워 보였다.
그 이후로 유이는 리즈에게 요리를 배우고 싶다며 그를 스승으로 모셨다. 리즈는 최선을 다했지만, 유이에게 요리를 가르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신만만하게 운영하던 요릿집을 수업료로써.
-절 믿지 마세요.
-무리한 요구를 하시네요.
리즈의 말을 유트는 여유롭게 받았다. 리즈는 미간을 좁혔다. 그래도 천하의 포스 오브 머더러 앞에서 너무나 무방비했다.
자신은 대륙 최고의 괴물 중 하나였다. 죽음을 관장하는 권능으로 마음껏 생명을 짓밟는 존재였다.
리즈는 어느새 자신의 양옆에서 잠드는 유트 남매를 번갈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어느새 자연스럽게 가족이 되었다. 살인마에 불과한 자신이.
어느새 티미는 리즈의 손에 꼽힌 칼라드볼그를 뽑아냈다. 리즈의 왼팔은 힘없이 늘어졌다.
오른팔은 수인을 짚어낼 수 없게끔 망가져 있었다. 이미 기력을 많이 소진한 리즈로서는 저항할 힘이 없었다.
‘참……. 어처구니없는 죽음이에요.’
리즈는 작게 조소했다. 포스 오브 머더러인 자신이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쳐서 희생한다니. 슬픈 농담에 불과했다.
“X신, 차라리 다 같이 덤비지.”
티미는 이를 드러내며 칼라드볼그를 횡으로 그었다. 리즈의 흰 목에 혈선이 그어졌다.
주루룩.
리즈의 쇄골에 진득한 핏물이 고였다.
죽음. 그것이 찾아왔다.
바닥을 나뒹구는 리즈의 머리를 보며 티미는 코웃음을 쳐 보였다.
역시나 별것 아니었다. 같은 포스의 힘을 갖고 있으면서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 주제에 잘난 척을 하다니.
티미는 리즈의 머리통에 침을 뱉었다. 그리고 머리 없이 서 있는 리즈의 몸을 발로 걷어차서 자빠뜨렸다.
핏물이 사방으로 튀고, 흘렀다. 티미는 코웃음 치면서 얼굴에 묻은 리즈의 피를 닦았다.
리즈는 그대로 숨을 거뒀다. 최소한 리에르가 살아 있다는 것을 위안으로 삼으면서.
살아남은 천사들과 포스들은 먹음직스러운 리즈의 시체에 모여들었다. 그것들은 이미 죽은 동료의 시체도 흡입하기 시작했다.
티미는 그 순간 묘한 불안함을 느꼈다. 리즈는 이미 죽었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살기가 주변에 진동하고 있었다.
그것을 느끼는 순간 티미는 시선을 들어 법사 지팡이를 바라보았다. 전투 이전에 리즈가 땅에 꽂아놓은 물건이었다.
티미는 전투 이전부터 리즈가 꽤 많은 기력을 소모한 상태임을 느꼈다. 그 강력한 마력들을 어디다 사용했는지는 알지 못했다.
아니, 굳이 지금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티미의 눈앞에서, 그 궁금증의 답이 펼쳐지기 시작했으니까.
-아이언 메이든(Iron Maiden).
붉은 장미가 흩날렸다.
법사 지팡이에서 핏물을 잔뜩 머금은 혈화가 피어났다. 그와 동시에 하늘에서 강철로 만들어진 도구들이 떨어졌다. 그것들은 지금 지상에 서 있는 생명체의 머릿수만큼 떨어지며 관짝의 문을 열었다.
천사들과 포스들은 소스라치게 놀라서 회피했다. 하지만 발동된 아이언 메이든은 관짝 문을 열어젖히며 적을 끌어당겼다.
안으로 끌려 들어간 천사는 관 안을 가득 메운 송곳들에 찔려서 비명을 토해냈다. 빠져나가기 위해 발버둥 치는 순간 관은 닫혔다. 관뚜껑에도 날카로운 송곳들이 가득했다.
푸쉭!
관이 닫힐 때마다 사방에서 핏물이 뿜어졌다. 금방 대지는 피의 강을 이뤘다.
바로 전에만 해도 전투로 시끄러웠던 이곳은 이제 정적만이 감돌았다. 리즈의 시체를 내려다보던 티미의 칼라드볼그는 땅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아리아력 802년도. 대륙 전쟁이 끝났다. 그리고 종말 전쟁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름 없는 평지에서 리즈 지센라이드가 잠들었다.
* * *
리즈의 희생으로 유트의 군대는 무사히 검은 숲을 통과하고 있었다.
삼자갈나무가 나뭇가지를 찔러 들어가며 기사들을 위협했다. 삼자갈나무 열매들은 달리는 기사들을 향해 날카로운 톱니를 벌려 보였다.
퍽! 타탁!
숲의 괴물들은 유트의 군대를 막아낼 수 없었다. 안 그래도 페리안은 싸움에 이골이 난 존재들이었다. 그중에서 정예만 뽑아왔으니 일개 몬스터로는 상대도 되지 않았다.
더군다나 유트가 얻게 된 아르카는 내비게이션 시스템이 있었다. 최단 거리로, 위험한 경로를 피해가니 기사들은 최소한의 피해로 페이서스에 입성할 수 있었다.
페이서스의 성문은 성문이라고 부르기 어려울 정도로 박살이 나 있었다. 이미 안으로 다수의 몬스터들이 진입한 상태였다.
여기저기 시체가 조각나 있는 광경을 보고 기사들이 분노를 금치 못했다. 유트 역시 7년 전의 그 사건이 재발하는 것을 보고 입술을 깨물었다.
퀴에엑!
창공에서 와이번들이 기괴한 소리로 울부짖었다. 한 녀석이 울어대니 주변에 있던 와이번들도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놈들은 기사단의 머리 위를 선회하며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이 대기했다. 숫자가 하나, 둘 늘어났다.
아로운은 코웃음을 치면서 대궁을 들어 보였다.
“지금은 몬스터 사냥을 할 시간이 아닙니다. 얼른 황금의 샘으로 향하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알아. 하지만 놈들이 자꾸 간만 보고 있잖아.”
아로운은 그렇게 말하며 대궁의 시위를 힘껏 당겼다가 놓았다.
쉬이익!
번뜩이는 섬광처럼 날아간 화살은 정확하게 와이번의 머리를 터뜨렸다. 그냥 화살을 맞히는 정도가 아니라 수박 통처럼 깨부수는 것을 보고 모두는 경악했다.
동료가 화살 한 방에 즉사하여 추락하는 것을 본 와이번들이 다른 곳으로 날아갔다. 그제야 아로운은 활을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어차피 오지도 못할 놈들이 머리 위에서 파리처럼 앵앵거리면 될 일도 안 돼.”
“그렇군요.”
엘은 다소 황당함을 느끼고 멋쩍게 대답했다. 신궁의 아로운. 확실히 인간이 수련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최고위급 무력을 지닌 존재였다.
그가 키운 파천대도 하나같이 신궁에 버금가는 능력들을 지니고 있었다. 아울러 지금 함께하는 기사들도 마찬가지.
‘가능하다.’
엘은 희미하게 희망을 품었다. 아니, 큰 희망을 느꼈다.
유트도 젊은 나이에 비해 상상을 초월하는 인재였다. 이만한 인재들이 있다면 어설픈 몬스터들 따위론 막아낼 수 없었다.
테헤라자드는 수호신장들을 전부 잃었다. 그는 자신이 직접 전투하는 것을 즐기지 않았다. 그러므로 항상 자신을 대체할 전투 인형들을 만들었다.
그 예가 양산형 포스들이었다. 그것마저도 부족해서 백 마리의 천사들을 만들어냈다.
지금 황금의 샘이 열렸다. 그리고 신의 권능, 즉, 시스템을 운영할 수 있는 운영권을 다시 분배하는 시기가 찾아왔다. 말하자면 테헤라자드는 지금 다시 신의 권능을 되찾아야 했다.
하지만 점유율이 낮았다. 코스모스 교의 실패는 사람들이 더는 기존의 유일신을 찾지 않도록 만들었다.
대신에 찾는 것은 유트 페브리안과 같은 살아 있는 영웅들이었다. 실질적으로 그들은 인류를 구원하고, 노력해 왔다. 신은 그저 기도를 들어주는 존재에 불과했을 뿐이었다.
지금의 신은 힘을 사용할 수 없었다. 즉, 이대로 황금의 샘에 도달하기만 한다면 체크메이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