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hilia Lesode RAW novel - Chapter (393)
레필리아 레소드-393화(393/398)
레필리아 레소드 393화
EP5 이상한 나라의 리에르(2)
리에르는 잠시 볼을 긁적거렸다. 정신은 없었지만 그래도 비를 피하고 추위를 피할 곳이 생겼으니 다행인 것이었다.
가게 계산대에 멍하니 서 있던 리에르는 눈만 끔벅거렸다. 사실 지금 시간대에는 손님이 잘 오지 않는 시간대였다.
그렇기에 리즈도 그냥 가게나 비워두지 말란 의미로 리에르를 혼자 둔 것이었다.
혼자 남겨져 멍하니 자리를 지킨 지 30여 분이 지났다. 심심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곧 배에서 꼬르륵거리는 소음이 울렸다.
비록 아까 리즈가 준 삼각 김밥 두어 개를 먹었지만, 배가 찰 리 만무했다.
리에르는 도시락 판매대 앞까지 걸어갔다. 그곳에는 조금 전에 먹었던 세모난 밥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그들은 맑은 눈빛을 빛내면서 자신들과 하나가 되어 달라고 요구하고 있었다.
리에르는 그들의 요구를 거절했다. 하지만 그들은 말해왔다. 자신들은 어차피 누군가에게 희생당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다.
기왕 하루살이 같은 인생이라면 당신과 같은 영웅에게 먹히고 싶다고.
리에르는 그들의 계속된 요구에 결국 손을 뻗었다. 답답하게 그들을 억압하는 비닐 수갑을 뜯어낸다. 자유와 갈망의 숨소리를 담아 그들을 자신의 입을 통해 구원한다.
리에르는 진열되어 있던 삼각 김밥들을 전부 구조하는 데에 성공했다. 적당히 올라오는 포만감은 분명히 정의감을 관철한 것에서 오는 기쁨일지도 몰랐다.
그 순간 리에르의 시야 안으로 다양한 것들이 보였다.
온화하게 생긴 곱슬머리 중년 여성이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네모난 도시락. 그것들 역시 누군가의 억압을 받아 갇히고 밀폐되어 자유를 억압당하고 있었다.
리에르는 그것을 용서치 않았다. 손수 손을 들어 그들을 억압하는 감옥의 창살을 뜯었다. 그리고 구원의 손길, 아니, 입길을 보내주었다.
그들은 리에르와 하나가 되어가며 기뻐하는 목소리를 내는 것만 같았다.
그때였다. 리에르가 묘한 정의감을 관철하는 순간, 오지 않을 것 같았던 손님이 들어왔다.
비록 리에르가 서비스업을 해본 적은 없었으나, 손님을 맞는 자세가 어떤지는 알고 있었다.
“어서 와.”
리에르는 계산대에 서서 볼에 밥알을 묻힌 채로 함박웃음을 지어 보였다. 들어온 중년 손님은 잠시 황당한 표정을 지어 보였으나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입을 열었다.
“필라멘트 라이트 하나, 던힐 멘솔 하나.”
그렇게 말하며 중년인은 지갑에서 만 원짜리 한 장을 꺼냈다. 리에르는 싱글싱글 웃으면서 멍하니 서 있었다. 중년인은 주문했음에도 불구하고 알바가 가만히 있자 눈살을 찌푸렸다.
“담배 달라고.”
리에르가 계속 멍하니 있자 중년인은 짜증스럽게 내뱉었다. 그러자 리에르는 함박웃음으로 대답했다.
“몰라, 피우지 마.”
“뭐?”
이 세계에 온 것도 얼마 안 되었는데 아주 잠깐의 설명을 듣고서 알바를 제대로 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런 사정을 알 리 없는 중년인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야, 알바. 담배 달라고.”
“잠깐 돈 줘봐.”
물건은 주지도 않고서 돈부터 달라는 알바를 보고 중년인은 기가 막힌 얼굴을 해보였다. 그는 기분이 나빴는지 만 원짜리를 던지듯이 계산대에 올려놨다.
리에르는 그것을 받고는 가볍게 쭉쭉 찢어버렸다.
그 꼴을 보고 중년인의 얼굴은 홍당무처럼 시뻘게졌다. 리에르는 그것만으로 그치지 않고 단숨에 상대의 지갑을 빼앗았다.
얼떨결에 지갑마저 빼앗긴 중년인은 미친놈에 대한 메뉴얼을 잔뜩 떠올리고 있었다.
그때 중년인의 귀에 믿지 못할 소리가 들려왔다.
쭉, 쭉!
소가죽으로 만들어진 중년인의 지갑은 그 안의 카드와 지폐들과 함께 종이처럼 찢겨 나가고 있었다.
일반적으론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질기기도 어지간히 질긴 가죽을 맨손으로 찢는 인물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었다.
하지만 더 충격적인 것은 그다음이었다.
“이제 돈 없네? 물건 못 사네?”
“뭐……?”
얼이 빠져 있는 중년인을 상대로 리에르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물건 살 돈 없음 나가라고.”
“…….”
리에르의 흉포한 행동에 중년인은 지금까지의 인생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며 훌쩍거렸다. 그러고는 경찰에 신고하기 위해 휴대폰을 눌러대기 시작했다.
중년인이 그러거나 말거나 리에르는 별생각 없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도 물건을 안 사는 손님을 만나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이제 원래 편의점에서 일한다는 직원만 기다리면 만사형통이었다.
딸랑, 딸랑.
그때 다시 사람이 들어왔다. 이번에 들어온 인물은 20대 중반의 남성이었다.
리에르는 이번엔 편의점 직원인가 싶어서 쳐다보는데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씹듯이 내뱉었다.
“편돌이, 손님보고 인사 안 하냐?”
“안녕. 어서 와.”
리에르는 잠시 당혹감을 느꼈다. 별수 없이 인사를 했지만 불량하게 생긴 20대 청년은 독사 같은 눈을 뜨고서 쏘아봤다.
“뭐? 니 내 아나? 자신 있나? 내는 자신 있는데.”
대번 눈을 부라리는 손님을 보며 리에르는 겸연쩍게 웃어 보였다.
“시비 틀 거면 그냥 나가든가.”
패기 넘치는 리에르의 말에 20대 청년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 표정만으로도 사람을 살해할 것만 같은 포스를 풍겼다.
그러던 그는 계산대에 비치된 껌 한 통을 들고서 리에르 앞에 굴려 보였다.
“이거 사면 손님이지? 손님한테 교육 좀 받아볼까?”
리에르는 물건을 사기 전에 쫓아내려 했는데 물건을 들이미니 내심 당황했다. 어쩔 수 없이 리에르는 한숨을 쉬면서 상대에게 솔직히 말하기로 했다.
“사실 나 여기 처음이라 잘 몰라. 포스기 이딴 것도 뭔 소린지 모르겠고.”
“네가 핏덩어리인 건 안다.”
청년은 아직도 인상을 풀지 않으며 리에르의 얼굴 가까이에서 콧김을 뿜었다.
“그래서 계산하는 법은 잘 모르겠다. 그래도 계산해도 되는 거야?”
“모르겠으면 그냥 넘기면 되는 거고.”
20대 청년은 아주 호구 잡은 표정으로 리에르를 갈굴 준비를 했다. 그때 우두둑 하는 소리가 났다. 청년은 깜짝 놀라서 자신의 목 언저리를 살펴보았다.
목에 걸고 있던 24k 순금 목걸이는 리에르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눈만 끔벅거리고 있는 청년을 향해 리에르는 웃으면서 말했다.
“거스름돈 잘 모르는데 괜찮아?”
“이, 미친 XX가……!”
너무나 화가 나면 말문이 막힌다고 했다. 20대 청년은 리에르의 행동 때문에 눈까지 붉어질 정도로 화가 치밀고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 상대의 눈이 루비색으로 물드는 것이 보였다.
그래도 나름 주먹질을 하고 다녔던 청년이었다. 그 수많은 경험이 말해주고 있었다. 저 청년과 자신은 포식자와 피식자의 관계에 놓여 있다는 것을.
“거스름돈.”
“이…….”
“모른다고.”
“어…….”
“괜찮겠지?”
“그게…….”
“엉?”
“아…….”
“어?”
“어, 응.”
20대 청년은 리에르의 살기에 주눅 들어 뒷걸음질로 편의점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청년은 큰 손해를 본 것은 아니었다. 그깟 금목걸이가 자신의 목숨보다 귀한 것은 아닐 테니까.
리에르는 이번 손님도 무사히(?) 보내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자꾸 들어오는 손님들을 생각하니 아예 문을 닫아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리에르는 단순무식하기에 생각한 것은 바로바로 실행해야만 했다. 편의점 문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가던 그는 손잡이를 붙잡았다. 그러고는 잠시 이곳저곳을 살펴보았다.
이윽고 리에르는 멘탈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편의점 문에는 자물쇠가 보이지 않았다.
그는 생각지도 못한 위기에 봉착해 어찌해야 하는지 심각하게 고민을 시작했다. 지금의 그에게는 도움을 청할 사람도 없는 상태였다.
아무리 봐도 값비싼 유리로 만들어진 문을 닫을 수 있는 구조가 보이지 않았다. 그 순간 딸랑거리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문을 잡아당겼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그때 헐떡거리는 여성이 편의점에 들어섰다. 뒤로 묶은 포니테일 머리에 크고 맑은 눈동자. 마치 백옥처럼 흰 살결은 만지면 녹아들 것처럼 부드러워 보였다.
고등학생 교복을 입고 있는 소녀를 보고 리에르는 눈만 멀뚱거리며 서 있었다. 상황을 보자니 리즈가 말했던 편의점 직원인 것이 틀림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충혈 눈알……?”
“네에……?”
리에르의 눈앞에 있는 소녀는 분명히 유이 페브리안이었다. 비록 그녀와는 다르게 은발이 아닌 검은 머리카락이었지만.
그 이외에 복장을 제외한 모든 것이 유이 본인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저기, 제 눈 역시 충혈되어 있나요?”
교복을 입은 소녀는 안절부절못하며 자신의 눈동자를 만지작거렸다. 유이와 똑같이 생겼지만 하는 행동이나 표정은 정반대였다.
유이는 약간 짜증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데에 비해 눈앞의 소녀는 굉장히 둥글둥글하고 유순해 보이는 성향이었다.
믿을 수는 없지만, 엄연히 다른 사람이었다.
“헤헤, 실은 요새 시험이 껴있어서 잠을 좀 줄였거든요.”
교복을 입은 소녀는 배시시 웃으며 답하고는 편의점 내부를 두리번거렸다. 그러고는 문득 이제야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리에르에게 물었다.
“그런데 오늘 첫 근무예요?”
“아, 아마도.”
리에르는 머쓱하게 뒤통수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그에게 있어 유이는 항상 투덜거리는 존재였다. 그런 모습만 보다, 갑자기 온순한 유이를 보니 왠지 이상했다.
“아, 그래서 사장님이 그런 문자를 보내신 거구나. 금방 옷 갈아입고 올게요.”
유이를 꼭 닮은 소녀는 휴대폰을 몇 번 두드리다가 빙긋 웃어 보였다. 그녀가 탈의실로 들어가자 리에르는 또 할 게 없어져 계산대에 멍하니 있었다.
본래 있었던 세계와는 정반대의 세계. 이곳에서 정말 우연히도 리즈를 만났다.
그리고 이 수없이 많은 사람 중에 유이를 꼭 닮은 소녀를 만났다. 이것은 정말이지 운명이라고 표현할 만큼 신비로운 경험이었다.
조금만 있다 오면 좋을 것을. 또 손님이 들어오고 있었다. 문이 딸랑거리는 소리에 리에르는 반사적으로 인사를 했다.
“어서 와!”
리에르의 이상한 인사에도 불구하고 상대는 가볍게 목 인사를 하며 편의점에 들어섰다.
그 순간 리에르는 눈을 휘둥그래 떠보았다. 놀랍게도 이번에는 유트 페브리안이었다.
다른 세계에서의 유트는 여전히 놀랍도록 잘생긴 얼굴을 하고 있었다. 단 이쪽에선 포마드 스타일로 머리를 올려 이마를 드러낸 검은 머리카락이란 점이 달랐다.
유트는 아메리카노를 손에 들고 결제를 위해 카드를 꺼냈다. 리에르는 그래도 자신과 가장 친한 친구와 닮은 사람이니 내쫓지도 못했다.
“아, 안녕하세요.”
때마침 유이와 닮은 소녀가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조금 전에 입었던 교복은 벗고 달라붙는 청바지에 편의점 유니폼을 입은 그녀는 리에르 옆에 섰다.
“1,200원 결제 도와드릴게요.”
“네.”
유이와 닮은 여성은 능숙하게 카드를 두 손으로 받아 포스기에 결제, 승인을 받은 뒤 손님에게 돌려주었다.
유트를 닮은 남성은 받은 아메리카노를 들고 편의점 구석의 테이블에 앉아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리에르는 굉장히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자신의 원래 세계에선 두 사람은 둘도 없는 남매였다.
하지만 이 세계에선 그저 손님과 직원의 관계. 혈연관계는 없어 보였다.
“포스기 사용법 아직 모르시죠?”
유이를 닮은 소녀는 생글생글 웃으며 리에르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리에르는 그녀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보니 눈이 부신 것처럼 느껴졌다.
“아, 저는 18살이니까 말씀 편히 하세요. 이름은 이유리니까 유리라고 불러주세요.”
“아, 어.”
유이를 닮은 소녀. 아니, 유리는 눈매가 굉장히 선한 소녀였다. 또한, 붙임성도 굉장히 좋아 보였다.
손님으로 와 있는 유트를 닮은 청년은 굉장히 말수가 없어 보였다. 그는 창가 자리에 걸터앉아 다리를 꼬고는 휴대폰으로 무언가를 찾고 있는 듯 보였다.
리에르는 가서 말이라도 붙여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들을 반갑게 여기는 것은 리에르의 일방적인 감상인지라 괜히 이상한 취급을 당할 수 있었다.
“성함이 김덕팔이시라던데 덕팔 오빠라고 부를게요.”
“아, 어.”
어눌하게 대답하던 리에르는 흠칫하면서 유리를 향해 고개를 돌려 보였다.
“뭔 덕팔?”
“이름 특이하셔요.”
유리는 입가를 살짝 가리며 키득거렸다. 리에르는 그 이름의 어감을 듣는 순간 굉장히 불편한 기분이 들었다. 분명 굉장히 촌스러운 이름이리라는 예감만이 찾아들었다.
“저기, 저희 편의점 단골이신 분 이름도 굉장히 특이하세요. 최춘자세요.”
“춘…….”
리에르는 입가가 씰룩거렸다. 분명 자신도 남 말할 처지는 아니었지만. 유트를 닮은 청년. 아니, 춘자는 리에르와 눈이 마주치자 잔을 들어 고고하게 건배 시늉을 하였다.
“잃어버린 여동생분을 얼른 찾으셔야 할 텐데 말이에요.”
“어……?”
리에르는 그 말을 듣고 멈칫했다. 잃어버린 여동생이라는 부분을 들으니 뭔가 황당한 것을 들은 듯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