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hilia Lesode RAW novel - Chapter (394)
레필리아 레소드-394화(394/398)
레필리아 레소드 394화
EP5 이상한 나라의 리에르(3)
“어릴 적에 헤어진 여동생을 항상 찾으러 다니시거든요.”
“아, 어…….”
그때였다. 딸랑거리는 문의 종소리가 들리며 사람이 들어왔다. 리에르의 시야 안으로 굉장히 덩치가 좋은 남성이 보였다.
딱 봐도 고릴라 같은 체형에 전신에 털이 매우 많은 상남자 포스를 풍기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얼굴 한쪽에는 뱀 모양의 타투까지 하고 있었다.
리에르는 그 양아치의 분위기를 보는 순간 직감할 수 있었다. 조금 전에 자신에게 격파(?)된 손님 중 누군가가 지원을 요청한 것이 분명했다.
리에르는 자신의 전문분야가 나오자 자신만만하게 앞으로 나섰다.
“오빠 웬일이야?”
그때 유리가 반갑게 덩치 큰 사내를 맞이했다. 리에르는 상대를 공격하려다 잠시 멈칫했다.
“오빠?”
“넵. 집이 근처라서.”
유리의 말에 리에르는 고개를 갸웃하며 다시 물었다.
“설마 친오빠?”
“네, 하나도 안 닮았죠?”
유리는 대답하면서도 입을 가리며 웃어 보였다.
‘하나도 안 닮은 게 아니라, 인종 자체가 안 닮았는데?’
리에르는 튀어나오려는 말을 삼키기 위해 애썼다.
어디를 봐도 눈앞에 있는 고릴라보다는 구석진 곳에서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있는 유트, 아니, 춘자가 더 친오빠처럼 생겼었다.
유리는 자신의 오빠가 고른 바나나 우유를 결제하고 있었다. 그동안 리에르는 춘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다른 세계에서도 고고하고도 우아한 품격을 갖고 있었다.
그 역시 다리를 꼬고 앉아 편의점 계산대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리에르는 왠지 답답해져서 그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이봐.”
대뜸 리에르는 팔짱을 끼고 서서 춘자를 내려다보았다. 춘자는 계산대의 유리만 미친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다른 이가 보면 춘자가 유리란 사람에게 반했다고 볼 수도 있었다.
“너 잃어버린 동생이 쟤냐?”
리에르의 말에 춘자의 손이 경직되었다. 그가 들고 있던 아메리카노는 그대로 허공에 엎질러지듯이 떨어지며 테이블을 적셨다.
그래도 춘자는 그대로 굳어버린 채 움직이지 않았다.
“비밀을 지켜주세요. 아직 저 아이가 충격을 받지 않았으면 하니까요.”
“아니, 이미 충분히 충격받지 않았을까?”
리에르는 인간의 옷을 입은 고릴라가 바나나 우유를 마시는 모습을 지켜보며 중얼거렸다. 리에르의 중얼거림과 상관없이 춘자는 갑자기 이야기를 시작했다.
“제 동생 유리는 정말 사랑스러운 아이랍니다. 저렇게 어여쁘고 착한 아이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거예요.”
갑자기 동생 자랑을 시작한 춘자에게서 리에르는 불길함을 느꼈다. 한번 시작한 자랑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니, 그런데 방금 처음 본 상대에게 시시콜콜 떠드는 사람이 어디 있어?”
“그건 맞는 말씀입니다만. 왠지 그쪽이 굉장히 낯익고 오랜 친구처럼 느껴지다 보니.”
리에르의 말에 답한 춘자는 다시 동생 자랑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리에르는 귀찮아져서 춘자에게서 조금씩 멀어졌다. 그러자 춘자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리에르를 쫓아오며 계속 말하기 시작했다.
리에르는 대충 상대의 말에 끄덕이며 화장실을 갔다. 춘자는 화장실까지 따라와서 계속 유리에 관한 이야기들을 늘어놓았다.
“자, 이건 제 연락처입니다.”
“이건 왜…….”
리에르는 그사이 핼쑥해져서 춘자에게 말했다. 잘생긴 춘자의 얼굴이 어째서인지 악마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그쪽과는 대화가 굉장히 잘 통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아니, 애초에 대화라는 것은 주고받아야 하는 거 아니야?”
“다음 기회에 또.”
이번에도 춘자는 리에르의 말은 듣지도 않고서 손 인사를 해보이며 편의점을 나섰다.
“우와, 덕팔 오빠! 벌써 손님들이랑 많이 친해지셨네요?”
“덕…….”
리에르는 유리의 말에 뭐라고 항변할까 하다가 이내 입을 닫아버리고 말았다. 어차피 뭐라고 말해봤자 자신의 말이 통용될 여지도 없어 보였다.
“근데 넌 나이도 어려 보이는데 벌써 일하냐?”
리에르는 유리를 향해 질문을 해보였다. 딱 보아도 이 세계에선 학생 신분에 불과한 나이로 보였다.
“저도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나이니, 저금 정도는 해둬야죠.”
“올바르구먼.”
나이 스물셋이 되어서도 반백수 생활을 했던 리에르는 입술을 삐죽였다.
아니, 반백수라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리에르는 강력한 힘의 저주로 인해 망가져 버렸다.
그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누군가가 손을 뻗어주기만 기다렸다.
소중하다는 이들의 뒤에 숨어, 옆에서 체온을 나눠 받으며 위로받고 있을 뿐이었다.
“저금도 어느 정도 모이면 친오빠랑 같이 살고 싶어서요.”
“응?”
리에르는 유리의 말에 의문을 던져 보였다.
“아까 그 고릴……. 아니, 친오빠랑 사는 거 아니야?”
리에르의 말에 유리는 고개를 저어 보였다.
“아니요, 아까 오랫동안 대화 나누시던 제 친오빠요.”
“어?”
리에르는 그녀의 말에 잠시 혼란스러움을 느꼈다. 아까 그 춘자는 분명 비밀을 지켜달라니 뭐니 했는데.
뭐가 어찌 되는 건지 모르는 리에르를 향해 유리는 살포시 웃으며 말했다.
“아니, 사실 제 친오빠가 말이 좀 많아요. 항상 제 이야기를 하는데 제가 몰라보고 싶어도 몰라볼 수가 없잖아요.”
“그거야 그런가?”
유리의 어쩔 수 없다는 말에 리에르는 웃어 보였다. 그렇다면 춘자는 굉장히 엉뚱한 부분에서 혼자 고생하고, 혼자 고민하고 있다는 거였다.
“덕팔 오빠도 제 친오빠처럼 웃는 게 잘 어울리세요.”
“그래?”
리에르는 유리의 낯간지러운 말에 턱을 쓰다듬으며 머쓱해했다.
원래 세계에 있는 유이는 굉장히 틱틱거리는데 이쪽 세계에 있는 유리는 굉장히 철판을 깐 듯 보였다.
“혹시 나 원숭이 같이 생겼어?”
“네, 원숭이처럼 귀여우세요.”
리에르는 어이없음을 최대한 얼굴로 표현했다.
“나름 괜찮은 비주얼이라 생각했었는데…….”
“네, 잘생긴 원숭이 같으세요.”
유리의 해맑은 말에 리에르는 할 말을 잃고 헛웃음을 삼켰다.
어딜 가도 원숭이란 소리를 들을 자신이 아니었다. 원래 세상이든, 이 세상이든 자신을 원숭이라고 말하는 이는 단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청소나 하고 올게. 시재 계산 같은 건 자신 없으니까.”
“넵!”
리에르는 슬슬 편의점 앞에 파라솔들을 청소하러 밖으로 나갔다. 파라솔 아래, 테이블 위에 쌓인 캔과 담배꽁초. 그리고 바닥에 들러붙은 침들이 보였다.
리에르는 그것들을 보며 집게로 천천히 쓰레기봉투에 주워 담기 시작했다. 그때 한쪽 구석에서 연인들의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근데 오빠 정말로 통장에 있는 돈 나 주는 가야?”
“어차피 당신과 한집에 산다면 살림은 맡아주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익숙한 목소리에 리에르는 집게질을 멈추고 소리가 들려온 쪽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매우 익숙한 붉은 머리 남자가 보였다.
자신에게 알지도 못하는 일을 시켜놓고 급하게 나갔던 리즈를 보니 리에르는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 순간 그의 옆에 있는 교태스러운 여성을 보니 누군가가 떠올랐다.
머리카락 색은 달랐지만, 분명히 아르미안의 얼굴이었다. 그것을 보고 리에르는 순간적으로 경직되었다.
리즈가 아르미안의 얼굴을 몰라볼 리 없었다. 그런데도 그는 아르미안과 닮은 여성에게 통장과 도장을 넘겨주며 실실거리고 있었다.
“저건 쟤한테 맨날 당해…….”
리에르는 저절로 한숨이 터져 나왔다. 가서 뭐라도 한마디 해주고 싶었지만, 어차피 말이 통할 것 같지 않아 편의점 안으로 도피했다.
“수고하셨습니다.”
들어오자마자 유리가 반갑게 맞이했다.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리에르에게 커피 한 잔을 넘겨주었다.
커피를 받아들인 리에르는 음료로 목을 축였다. 찬바람을 맞아 내려간 온도가 따뜻함과 희석되어 편안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나저나 일을 배우라고 했는데 배우긴커녕 전부 떠넘긴 것 같은데?”
“아니에요, 덕팔 오빠 덕분에 오늘 즐겁고 편하게 일했어요.”
리에르는 덕팔이란 이름이 굉장히 불편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유리의 입에서 오빠 소리가 나오니 굉장히 낯설면서도 싫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리에르는 유이에게 오빠 소리를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었다. 원숭이가 아닌 다른 호칭으로 불리는 것이 새삼스러워 감격스럽기까지 했다.
“근데 말이야.”
리에르는 그녀에게 하나 묻고 싶은 것이 있었다. 유이와 유리는 말하는 투는 분명 달랐다. 하지만 외모나 생각, 행동들은 전부 흡사했기에 답도 같을지도 몰랐다.
“만약 자신이 엄청 좋아하는 사람이 큰 죄를 지었어. 그래도 좋아할 수 있을까?”
난데없는 리에르의 물음에 유리는 커피잔을 물고서 눈만 끔벅거렸다. 그러고는 흠하는 소리를 내면서 입을 열어 보였다.
“물건이 오래되었다고 좋아하는 물건을 버리진 않잖아요.”
유리의 물음에 리에르는 무덤덤하게 답했다.
“그런 타입들도 있겠지.”
“오빠는 그런 타입?”
유리의 질문에 리에르는 씁쓸하게 웃어 보였다. 그러고는 천천히 고개를 저어 보였다.
“그건 그것. 이건 이것.”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유리는 미간에 힘을 주어 보였다. 리에르는 무슨 말인지 몰라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엄청 좋아하는 사람. 그러니까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통칭할게요. 그런 사람이 있다면 좋아한 이유가 있겠죠? 키가 크다든지, 눈이 맑다든지, 잘생겼다든지, 매너가 좋다든지, 취미가 같다든지 등등. 그 사랑한다란 것은 하나가 아니라 그 단어들이 조합되고 합쳐진 결과물이잖아요? 좋아했으니 물론 좋아하겠죠. 하지만 상대의 행동 하나하나에 좋아하는 것이 가위표가 될지, 동그라미가 될지 알 수 없는 거죠.”
“즉?”
“점점 싫어질 수도 있겠죠?”
유리의 대답을 듣고 리에르는 빙긋 웃어 보였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다만 그 가위표가 너무나 많이 그려져 걷잡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 또한 자신이 원하고 바라던 일이었다.
“그런데 왜요?”
“내가 봤던 만화에 그런 전개가 있길래.”
리에르의 싱거운 대답에 유리는 실망한 듯이 입술을 삐죽였다.
곧 야간 근무 교대를 위해 리즈가 돌아왔고 유리는 퇴근을 준비하게 되었다.
리즈는 한창 호구 짓을 했던지 상대 여성에게 온갖 스킨십을 받고 얼굴이 빤들빤들해진 상태였다. 리에르는 그런 리즈의 모습을 보며 고개를 저어 보였다.
“그럼 오빠, 내일 또 봐요!”
유리는 리에르를 향해 함박웃음을 흘리며 손을 들어 올렸다. 리에르는 자신도 모르게 그녀에게 답인사하면서 머쓱하게 웃어 보였다.
리즈는 두 사람의 분위기를 보면서 잔잔하게 웃음을 머금었다.
“꽤 친해진 것 같군요. 리엘 군.”
“응, 당신이 한창 재미 보고 있을 때.”
리에르는 리즈를 향해 힐난하듯이 중얼거렸다. 리즈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웃어 보였다.
“저는 어른이니까요.”
‘응, 어른이라서 여자 때문에 배때기 뚫리고, 여자 때문에 지갑도 털리지.’
리에르는 그렇게 말하려다가 속으로만 생각하고 말았다. 배에 구멍 난 것은 자신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이었다.
“피곤할 텐데 일단 2층에 제 집이 있으니 거기서 쉬고 계세요. 곧 올라가지요.”
리즈는 그렇게 말하며 리에르에게 키를 넘겨주었다. 리에르는 군말할 것 없이 편의점을 나와 계단을 밟았다.
이상한 세상으로 떨어져서 이렇게 아는 사람들을 만나니 기분이 묘했다.
터벅, 터벅.
리에르는 리즈가 알려준 집 문을 열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넓지 않지만 작고 섬세하게 필요한 것들을 꾸며놓은 방들과 거실이 보였다.
리에르는 대충 안으로 들어가 침대가 있는 곳에 드러누웠다. 왜인지 몰라도 새로운 세상에 새로운 물건들을 보았음에도 그는 아무런 위화감이 없었다.
그 위화감의 정체를 리에르는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굳이 그것에 대해서 파헤치고 생각해 보려 하진 않았다.
‘차라리 이곳에서 평범하게 일을 하고,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도 나쁘진 않을지도.’
리에르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러고는 지그시 눈을 감아 내렸다.
아마 조금이라도 선잠을 자게 된다면 이 평화로운 세상과는 작별하게 될 것이다. 그것을 인지하면서도 그는 잠을 청했다.
* * *
타닥, 타닥.
아궁이에서 장작불이 타는 소리가 방 안에 울리고 있었다. 붉은 화마는 연신 어두운 방을 밝게 물들이려 노력하고 있었다.
차가운 시체 같은 이에게 온기를 나눠주기 위해 꿈틀거리는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리에르는 중얼거렸다.
“역시 다시 돌아온 건가.”
리에르는 돌아오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돌아오리란 것을 알면서도 잠을 청했다.
똑, 똑, 똑.
문을 두들기는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각하. 시간이 되었습니다.”
리에르는 자리에서 일어나 의자에 걸려 있던 제복 코트를 몸에 걸쳤다.
따뜻하게 피워져 있던 모닥불에도 불구하고 제복 코트는 너무나 차가웠다. 아니, 정확히는 리에르의 몸이 차가웠다.
그에게 있어 따뜻함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온화함이란 것 또한 존재하지 않았다.
-좋아했으니 물론 좋아하겠죠.
낯익은 얼굴의 낯선 소녀가 힘 있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던 것이 떠올랐다.
리에르는 피식,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웃음을 그렸다. 얼음과도 같은 마왕의 입에서 온기의 표시가 드러나는 것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의 존재를 본 이들은 하나같이 한쪽 무릎을 땅에 대고서 충성의 표시를 하며 절하고 있었다. 감히 마왕과 눈을 마주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상대의 행동 하나하나에 좋아하는 것이 가위표가 될지, 동그라미가 될지 알 수 없는 거죠.
그녀의 말을 다시 새기며 리에르는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갔다. 피로 잔뜩 칠해진 대지. 거대한 참호에 버려지고 있는 썩은 시체들.
한때 번영을 약속했던 루나레이크 왕국의 수도는 모든 것이 파괴되어 죽음의 도시가 되어 있었다.
대학살을 만들어 낸 장본인은 조용하게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을 만큼 중얼거렸다.
“이미 모든 것은 늦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