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hilia Lesode RAW novel - Chapter (47)
레필리아 레소드-47화(47/398)
레필리아 레소드 47화
태동하는 위험(7)
그 순간 파에트의 동공 안으로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아니, 처음부터 상대의 음산함은 인간이라고 볼 수 없었다.
리즈의 등 뒤로 핏빛을 머금은 두 장의 날개가 펼쳐지고 있다.
리즈의 두 눈동자는 당장에라도 피를 뚝뚝 떨어뜨릴 것처럼 붉은색으로 안광을 뿜어내고 있었다.
“당신은 배우로서 충분합니다. 파에트 아르빈트.”
파에트는 불길한 기운을 감지하고 리즈와 거리를 벌렸다.
벽에서 등을 뗀 리즈도 옷을 툭툭 털고 일어나서, 여유 있는 표정으로 파에트를 노려다 보았다.
“리에르 아르빈트, 당신의 동생이지요.”
파에트 자신을 아는 것만으로도 부족해서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은 동생까지 알고 있다.
파에트는 점점 알 수 없는 상대의 정체에 눈썹을 찌푸리며 재차 공격하기 위해 검을 들었다.
“당신의 동생은 지금 위험합니다.”
다시 공격을 가하려던 파에트는 리즈의 말에 멈칫, 하면서 그를 바라보았다.
계속 알 수 없는 태도의 말을 늘어놓더니 이제는 동생이 위험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무슨 말인가, 내 동생이 위험하다니.”
리즈는 더는 싸울 의도도 없는지 다 부서져 가는 낡은 의자 하나를 테이블에서 꺼내 앉았다.
“당신의 동생뿐만은 아니죠.”
리즈는 다리를 꼰 상태에서 그림 같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페이서스라는 도시는 곧 이 지도상에서 사라질지도 모르죠. 이제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영웅을 만들어낼 배우로서 당신의 연기력이 필요합니다.”
“무슨 해괴망측한…….”
평화롭디평화로운 아레스트 영지, 게다가 활발하고 번화한 페이서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 가능성은 너무도 적었다.
파에트는 리즈에게 물으려는 순간 그는 점차 흐릿흐릿해지더니 분자 형태로 바람에 날아가기 시작한다.
파에트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리즈는 흡족해하고 있었다.
‘이 남자라면 내가 찾던 남자다, 매우 충분하다.’
리즈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식당에서 유유히 떠났다.
파에트의 눈앞에서 핏빛의 날개를 펼치고 있던 미남자가 사라지고, 부하들의 놀란 얼굴들만 보였다.
“대장, 괜찮습니까?”
호들갑을 떨고 있는 부하들도, 반쯤 부서졌던 식당 안도 이전과 같은 멀쩡한 모습이었다.
‘내가 무엇엔가 홀린 것인가?’
파에트가 그런 생각 하고 있을 때 다른 부하들은 왠지 멍하니 있는 그에게 물었다.
“그런데 서로 노려만 보고 있더니 어떻게 된 겁니까?”
두 사람이 서로 겨루고 있던 것조차 모르는 듯한 부하의 말.
보이지 않는 것은 전투의 흔적뿐만이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마치 귀신에게 홀린 듯한 기분을 느끼며 파에트는 앞머리를 쓸어 올렸다.
“성으로 먼저 돌아가겠다. 모두 천천히 식사를 마치고 오게.”
불길한 말과 불길한 기운을 남기고 간 리즈라는 사내.
파에트는 그를 생각하니 식사를 할 마음이 싹 달아났다.
부하들은 갑자기 성으로 향하는 대장을 보며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파에트는 머릿속에 의문이 가득한 상태로 발걸음을 서둘렀다. 그 덕분에 그는 누군가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다.
리즈는 식당의 지붕 위에 서서 파에트를 바라보았다. 군중을 뚫으며 앞으로 향하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제 시작되는 거다. 아르미안……. 네가 바라던 것이, 내가 하려던 것이 말이야.”
그는 광기 어린 피아니스트처럼 손을 앞으로 뻗으며 황홀해했다.
* * *
파에트는 성으로 들어오자마자, 부친, 로이스타를 가장 먼저 찾았다.
심상치 않은 인물과 만났던 이야기, 그리고 페이서스가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말은 로이스타에게도 적지 않은 걱정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지금 시기상으로 좋지 않았다.
거대 제국 오트리아의 황실은 무너지고, 각 영지에서는 독립을 선포하는 와중에 힘만이 정의인 시대. 즉 전국 시대가 시작되었다.
아레스트 영지 역시 아렌 왕국의 선포, 옛 제국을 재통합하겠다는 야망을 이루려 했다.
곧 영지전을 앞둔 이런 시기에 확실하지도 않은 정보만 가지고서 군을 움직일 수 없었다.
그것은 아레스트의 총 군권을 소유한 로이스타라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페이서스는 아레스트 유일의 대항구 도시이자, 타국과의 주요 교류 지점이었다. 전쟁을 앞두고서 안정적인 전쟁 물자의 운송과 구입을 할 수 있는 곳이 사라진다면 국가적 큰 손실이었다.
물론 그뿐만은 아니었다. 오랫동안 만나보지 못한 아내와 아픈 손가락 같은 차남 리에르.
그 두 사람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로이스타는 참아낼 자신이 없었다.
“그래, 네 말은 잘 들었다. 파엘 이만 가서 쉬어라.”
파에트의 이야기를 다 들은 로이스타는 이제 물러가라는 듯이 손을 한 번 저어 보였다.
의외로 담담한 로이스타의 반응에 파에트는 약간 격앙되어 올라간 목소리로 다시 말하였다.
“아버지, 아니, 군단장님. 페이서스에 대한 지원을 생각하지 않으시는 겁니까?”
“파엘, 페이서스의 경비는 충분하다. 어지간한 적으로 그곳이 위험할 일은 없다.”
“하지만 그곳엔 어둠의 숲이 자라나는 지역이기도 하죠.”
로이스타의 답변에 파에트는 힘주어 어둠의 숲에 관해 이야기하였다.
파에트 역시 페이서스를 지키는 가디언들을 믿고 있었다.
항구도시다 보니 해적들을 상대하기 위해 전투에 익숙한 병사가 있다. 하지만 페이서스와 수도 사이에는 어둠의 숲이 자리 잡고 있었다.
아레스트 영주가 이곳에 부임해 오기 전부터, 아니, 거대 제국 오트리아가 생성되던 시절부터 쭉, 존재하던 마의 숲.
이곳은 일반 나무보다 두, 세 배 이상은 거대한 나무들로 인해 숲 안은 빛이 없는 어둠의 공간을 소유한다.
태양이 비치지 않아서인지 이 안에 들어간 보통 사람들은 방향 감각을 잃고 헤매기 일쑤였다.
그러다 이 안에서만 자라나는 독특한 동, 식물들의 먹잇감이 된다고 전해졌다.
아니, 실제로 이 숲에서 종종 몬스터들이 나와서 인근 마을을 공격했던 일도 비일비재하였다.
그래서 아레스트 영주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영지민들을 위해서 어둠의 숲을 공략하기 위해 출정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마의 숲 앞에서도 아레스트가 자랑하는 십일검 기사단들은 무력했다.
그때는 아레스트도, 로이스타도 젊었다.
젊었기 때문에 불꽃처럼 싸웠고 많은 기사가 장렬히 희생하였다.
결국, 피해가 확대되자 두 사람은 어둠의 숲에서 군대를 물리고 후퇴하였다.
1차 정벌에 실패한 뒤에 어둠의 숲을 연구하던 학자들 사이에서 새로운 논문이 발표되었다.
어둠의 숲에서만 자라나는 흑자갈나무는 불에 내열성을 가지고 물 위에서도 뜨기 때문에 건축 자재로는 훌륭하였다.
이 나무를 사용하면 영지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사실과 어둠의 숲은 매년 조금씩 영역이 넓어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말 그대로 숲은 주변의 모든 것을 자신에 영역으로 삼키고 있었다.
이 숲에 대해 전해져 내려오는 소문이 있었다.
70여 년 전 오트리아 제국에 1/3에 달하는 영토를 불태운 폭룡 네버 에이지의 레어가 있다고.
파에트도 리즈라는 사내의 말을 듣고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기에 지금 부친 로이스타의 앞에서 페이서스에 방위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로이스타 역시 1, 2차 어둠의 숲 토벌에 참여하고 지휘했던 사람이기에 잠잠하던 미간을 찌푸리고 말았다.
2차 토벌 전에서 어둠의 숲의 많은 나무를 베어 없애고 몬스터들을 학살한 덕분에 그동안은 잠잠했지만 몇몇 학자들은 3차 토벌전이 필요하다고 공공연히 떠들기는 했었다.
주기적으로 어둠의 숲을 정벌하지 않는다면 숲은 더욱 빠르게 확장되어 간다.
결과적으로 그 안에서 자라는 몬스터는 인구수가 증가해 영지가 위험하게 된다는 이론이 있었다.
한동안 조용했던 어둠의 숲이니 그 위험성에 대해서는 언제든지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하지만 우리 영지는 아스 영지와 전쟁을 앞두고 있다.”
로이스타의 말에 파에트 역시 알고 있다는 듯이 고개를 주억이었다.
아레스트 영지는 국가를 선포하기 위해선 주변 영지들에게 힘을 과시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병합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아스 영지는 아레스트 영지에게 노골적으로 전면전을 이야기했다.
그런 그들에게 아레스트 영지가 자랑하는 십일검 기사단의 위력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주변 영지를 병합할 수 없다.
영지 전쟁을 하기 위해선 토벌을 나가야 하는 기사단의 숫자와 혹시 모를 기습을 대비하기 위한 방위군까지 생각해야 했다.
그런 것을 계산하자면 페이서스로 보낼 병력은 여실히 부족했다.
“아스를 우습게 볼 순 없겠지만 우리 십일검 기사단이라면 충분합니다. 칠검 기사단을 이끌고 페이서스로 가겠습니다.”
로이스타는 파에트의 굳은 얼굴을 바라보았다.
매사에 신중하고 침착한 아들이었다.
로이스타는 이제 세월의 무게가 새겨진 주름 잡힌 두 눈을 지그시 감아보면서 흐음, 하는 숨을 내뱉었다.
로이스타는 지금껏 수많은 전투를 치러 왔다. 언뜻 무패를 자랑하는 듯 보이지만 그것은 일대일의 정당한 결투에서나 그렇지, 패배한 전쟁도 있었다.
그렇기에 로이스타는 설마라는 말이 얼마나 무서운지 잘 알고 있었다.
설마 적군이 쳐들어올까.
설마 상대가 함정을 쳐놓았을까.
설마 상대가 야습해 올까.
설마, 설마. 설마…….
로이스타는 설마 어둠의 숲이 움직일까 하는 질문에 대해서 깊은 신음성을 내뱉었다. 그의 입가가 움직여지는 바람에 이제는 흰 서리가 드문드문 내린 턱수염도 움직인다.
결국, 로이스타는 감았던 눈을 열며 파에트를 바라보았다.
굳은 의지를 보이는 아들의 눈엔 흔들림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네가 없다면 아스와의 전쟁에 어려움이 있을지도 모른다.”
로이스타의 말에 파에트는 그제야 경직되었던 얼굴을 풀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레스트의 흑곰이 이끄는 열 마리의 맹수들을 누가 당할 수 있을까요?”
출정에 대한 걱정을 덜어낸 파에트는 안도하면서 웃어 보였지만, 로이스타는 갑자기 얼굴색을 굳히기 시작했다.
“곰…….”
“네……?”
* * *
리에르는 나름 신기해하고 있었다.
“우와…….”
평소에는 항상 찡그린 얼굴을 하고 있던 유이였다.
“우와……!”
유이는 아르미안을 보고서 신기한 듯이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처음에 리에르가 아르미안이라는 존재에 관해서 설명해 줄 때까지만 해도 미친 원숭이 보듯이 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르미안이 검의 모습으로 나타나자, 상황이 바뀌었다.
“진짜 예쁘다……!”
유이가 놀라고 있을 만했다.
아르미안의 검신은 눈이 아릴 정도로 투명하고 매끄러웠다.
그 보석 같은 투명한 날 위에 새겨진 화려한 룬문자.
검을 허공에 베어 넘길 때마다 그려진 룬에서는 빛이 스며든다.
적당한 무게감은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아서 검술을 쓰기에는 최적화되어 있다.
-역시 여자아이의 손이 매끄럽고 느낌도 좋구나. 어휴, 리엘의 투박한 손안이랑은 영, 다르네.
“기사에게 거친 손은 그만큼 훈련을 나타내는 증표이자 기사들의 지표와도 같소. 난 부끄럽지 않소.”
리에르가 자신의 손을 들어 보이며 자신 있게 외치자 아르미안은 한숨을 내쉬었다.
-말이나 못 하면…….
한쪽 손만으로 보호대를 착용하고 있던 유트는 영 불편한지 매듭을 짓지 못해 결국 유이를 불렀다.
유이는 아르미안을 손에서 놓아야 한다는 사실이 영 아쉬운지 새끼 고양이 같은 눈길로 몇 번 쳐다보았다.
“쳇.”
“뭐.”
“쳇…….”
“말을 해, 말을!”
유이는 자신의 오빠를 돕는 데 신경 쓰기로 했다.
멍청한 원숭이를 상대로는 신경전을 할 가치조차 느끼지 못했기에.
리에르는 시합 준비를 하는 유트를 지켜보았다.
아무리 유트라도 팔을 다친 상태에서 시합에 나가는 것은 힘들어 보였다.
“그냥 쉬는 게 어때?”
리에르의 말에 유트는 입꼬리를 올리며 가볍게 웃는다.
“리엘, 난 챔프야. 겨우 한쪽 팔을 다친 정도로 대기실을 지키는 바보가 되라는 소리인 거냐?”
“아니, 난 뭐…….”
유트는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뭣하면 네가 혼자 올킬해 버려.”
“뭐?”
“그럼 내가 나갈 필요조차 없어지잖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