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hilia Lesode RAW novel - Chapter (5)
레필리아 레소드-5화(5/398)
레필리아 레소드 5화
재회(5)
빡!
리에르는 이마에 느껴지는 타격 때문에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다.
“그러니 검술이 뻣뻣하고 날카로움이 없어.”
퍽!
또 어딘가를 맞았다. 리에르는 화딱지가 나서 마구잡이로 검을 휘둘렀다.
“힘이 넘치는 것은 좋지만 네 검은 너무 느려 보이니 상대가 맞아 줄 리가 없지.”
“알아, 안다고! 결론이 뭐야!”
리에르는 다시 한번 유이에게 얻어맞았다.
벌써 네 번이나 공격을 허용했다.
리에르는 씩씩거리며 목검을 고쳐 잡았다.
보호구를 했기에 망정이지, 안 했으면 제대로 서 있지도 못했다.
“감정에 기복이 심하면 너처럼 금세 읽히고 또 허점투성이가 되지. 검으로 선을 그린다고 생각해.”
“뭔 말이야.”
“점을 찍는 것부터 시작하자.”
유트가 목검을 들었다.
유이는 리에르를 실컷 때렸는지 코웃음을 치며 물러섰다.
“점은 선이 된다.”
유트가 검을 찔러 들어갔다. 빠르지도 느리지 않게.
곧 유트는 검을 옆으로 그으며 걸음을 내디뎠다.
앞으로 걷느냐, 옆으로 움직이느냐에 따라 검이 그리는 선은 달라진다.
그것은 완만한 곡선이 되기도 하고, 절도 있는 직선이 되기도 하였다.
“만들어진 선은 면이 되고, 네가 펼친 식(式)과 형(形)이 그림이 되고 화풍이 된다. 그게 검무(劒舞)야.”
“모르겠는데요.”
“배웠어, 수업 시간에도.”
“내가 수업을 들을 거로 생각하냐?”
리에르의 당당한 말에 유트가 파핫, 웃음을 터트렸다.
“그건 그러네.”
“무시하지 말라고.”
어떤 게 무시하는지 모를 일이었다.
“단순하게 생각해.”
“네가 복잡하게 말하잖아.”
“그냥 가위바위보라고 생각해.”
유트는 리에르의 앞에 섰다. 그리고 천천히 검을 찔러 들어갔다.
“상대가 검을 찔러. 선택 사항이 있지? 상대의 공격을 측면에서 쳐내느냐, 회피하느냐, 카운터를 치느냐.”
리에르는 느리게 날아드는 유트의 찌르기를 가볍게 쳐냈다.
“너는 가위, 즉 쳐내는 것을 선택했어. 나는 이제부터 선택하겠지. 검을 회수하고 다음 수를 생각한다. 혹은 내 공격을 쳐낸 상대의 무기를 회피하든지, 막든지.”
“말은 쉽다만 그게 되겠냐.”
리에르의 투덜거림에 유트가 실소했다.
“당연히 안 되지.”
“장난?”
“하지만 넌 그만큼 검을 휘둘러왔잖아. 혼자서 단련하는 것만이 아니라 수를 만들고, 수를 읽을 수 있어야지. 물론 그만큼 되기 위해선 많이 대련해 보고, 많이 봐야 해.”
“즉?”
“넌 순수 검술로 하는 실전 경험이 별로 없잖아.”
듣고 보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싸워도 대다수 주먹다짐이었다.
검술로는 다른 사람들에게 상대도 되지 않으니, 검술로 대련을 할 일은 없었다.
리에르는 알았는지 몰랐는지 흥, 하는 코웃음을 쳐 보이고 유이를 노려보았다.
유이는 여유만만한 얼굴로 입을 가리며 하품을 하고 있었다.
리에르는 제대로 화가 치밀기 시작했다.
“정말 안 봐준다!”
“아, 네. 어쩜 이리 무서우신지.”
리에르의 검이 다시금 날아들었다.
유이는 재빠르게 피하며 자신의 목검을 짧게 휘둘렀다.
리에르는 뒷걸음으로 공격을 피했다. 하지만 자세가 순식간에 무너졌다.
붕!
바람의 비명을 집어삼키며 다가오는 유이의 목검.
리에르는 그것을 막기 위해 손에 기운을 풀어 몸 안쪽으로 목검을 회수했다.
하지만 유이의 공격을 막아내는 순간 밑에서 위로 목검이 치고 올라왔다.
리에르는 몸을 뒤로 젖혀 아슬아슬하게 유이의 목검을 피해냈다.
덕분에 저절로 휴우 하는 짧은 한숨이 터져 나왔다.
리에르는 유트의 말을 듣고 나선 계속 집중하고 있었다.
그 덕분인지 이제는 유이의 검형이 보이기 시작했다.
리에르는 공격을 몇 번 회피해 내자 자신감이 솟았다.
이제부턴 받아칠 요량을 가지고 그대로 힘을 주어 목검을 길게 뻗는다.
포곡선을 그리며 날아든 리에르의 목검.
이번에도 유이는 경쾌하게 춤을 그리는 듯한 스텝으로 가뿐히 피해냈다.
그와 동시 상대의 빈틈을 향해 정확하게 찌르고 들어가는 것을 잊지 않았다.
리에르는 순간 당한다는 생각과 함께 가슴이 철렁거렸다.
본인도 의아하게 여길 정도로 목검을 회수해서 공격을 막아냈다.
하나, 자세가 흐트러져 허점투성이가 되었다.
유이는 무표정하게 목검의 각도를 바꾸어 리에르의 가슴을 향해 찌르고 들어왔다.
리에르는 공격을 막아야 하겠다는 생각보단 감탄사부터 터트렸다.
자신보다 어린 여자아이가 허공중에 검의 각도를 바꿔 대는 것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탁!
둔탁한 목검의 충돌음이 들려왔다.
리에르는 유이와 목검을 부딪치자 손목에서 저릿함을 느꼈다.
하지만 남자와 여자, 특히 나이 차이로 인한 근육량은 다를 수밖에 없었다.
검술은 어린 유이가 강했지만, 근력의 힘은 리에르가 강했다. 유이는 뒤로 몇 걸음 물러서며 눈썹을 찌푸렸다.
“리엘, 이번 움직임은 아주 좋았어!”
뒤에서 유트의 칭찬이 들려왔다.
리에르는 기세를 몰기로 했다.
유이가 잠시 멈칫하는 사이에 목검을 말아 쥐고서 돌격했다.
유이는 뒤로 물러서면서 목검을 쳐내고는 살짝 인상을 찌푸린다.
밀어붙이기 위해서 리에르가 재차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이미 유이의 모습은 잔상만을 남기고 사라졌다.
재빨리 상체를 숙인 유이가 리에르의 정강이를 목검으로 강하게 가격하였다.
몸의 균형이 무너진 리에르가 쿵, 하고 땅바닥을 나뒹굴었다.
“리엘!”
리에르는 유트의 외침이 들려왔다.
하늘이 팽이처럼 빙글빙글 돌아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지러움에 구토가 물밀듯이 밀려들었다.
리에르는 눈꺼풀에 무거운 추를 달은 듯이 눈가가 여며졌다.
* * *
어두침침한 공간 속에서 리에르는 서 있었다.
‘여기가 어디지…….’
중얼거려 보려 했지만, 입이 움직이질 않았다.
이상한 공간 속이다.
어디인지 확인하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시커먼 어둠만이 반긴다.
아무것도 보이질 않고 아무것도 들리질 않았다.
‘뭐지…….’
이상하고 두려웠다.
리에르는 도망치고 싶은 마음에 한 걸음 앞으로 내디뎠다.
그 순간 눈앞이 환하게 밝아졌다.
갑작스러운 빛에 놀라 리에르는 반사적으로 손을 들어 눈을 가렸다.
리에르는 빛이 사그라지기 시작하자 슬며시 눈을 떠보았다.
조금씩 시야가 밝아지면서 보이는 것은 검 한 자루였다.
그것은 주인을 잃은 채 땅에 박혀 있었다.
어둠이 깔리고 그 어둠이 낮이 되어 빛으로 스멀스멀 사라져 가면 또다시 빛은 밤의 어둠에 잡아먹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비가 내리고 질퍽해진 땅속에서도 녹슨 쇠 검은 고고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눈이 내리고 검신이 하얀 갑주를 걸치고, 그 자리에 있다가 봄의 따뜻함이 세상을 녹이면 그제야 하얀 갑주를 벗고서 그 자리를 지키고 서 있었다.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고 5년이 흘렀다.
10년이 흐르고 또 10년이 흐르고 계속 밤과 낮이 뒤바뀌고 봄과 겨울이 뒤바뀌었다.
리에르는 이 어둠의 공간 속에서 저 검과 함께 수십 년의 세월을 지켜보고 있었다.
갑자기 리에르의 눈시울이 붉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외롭다…….’
어째서 그렇게 느껴지는지 자신도 알지 못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검이라는 무기는 강철로 이루어진 물건에 불과하다.
검은 생각과 생명을 소유하지 않는다.
그것이 정상이다.
하지만 리에르는 홀로 이 땅을 지키는 검이 불쌍하다고 생각되었다.
주르륵.
리에르의 눈가에 물기가 일렁였다.
뺨으로 흘러내리는 눈물. 그것이 턱 끝에 모여 허공으로 퍼지듯 추락했다.
녹슨 검신은 이젠 썩어버린 나무 기둥 안에서 잠들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라나는 풀줄기가 형태를 가리기 시작한다.
-……찾는다면…….
갑자기 이름 모를 여자의 다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낯설지가 않았다.
그녀의 부드럽고 아름다운 목소리를 듣자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만약 네 기억 속의 단편에 나를 찾는다면 찾아와도 좋아.
리에르는 느낄 수 있었다.
‘찾아와도 좋아가 아니야. 찾아줘. 라고 말하는 거야.’
누가 하는 말인지는 몰랐다. 하지만 머릿속에 남은 목소리는 자상하고 부드러웠다.
리에르는 단언할 수 있었다.
지독한 외로움에 떨고 있다. 누구라도 좋으니 그 괴로움에서 꺼내주기를 원하고 있었다.
* * *
“괜찮아, 리엘?”
리에르는 천천히 눈을 떴다.
“정신이 들어?”
유트의 걱정스러운 모습이 보였다.
유이마저도 놀랬는지 기절해 있던 리에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많이 아픈 거야?”
“오빠, 얘는 원래 머리가 아픈 녀석이었어.”
“닥쳐라, 충혈 눈알.”
리에르는 머리가 지끈거림을 느꼈다. 제법 시간이 흐른 상태였다. 해가 저물어져 가는 것을 보니.
“어떻게 된 거야?”
“유이랑 대무하다가 땅에 쓰러져 기절했었어, 의사는 이상이 없다고 했는데 계속 일어나지 않아서 걱정했었어.”
그제야 리에르는 유이에게 당해서 계속 기절해 있었다는 것을 느꼈다.
“나 잠깐만 나갔다 올게.”
“어딜?”
“잠깐이면 돼.”
“아줌마가 오면 그때 가! 안 그래도 지금 걱정을 많이……!”
“괜찮아!”
리에르는 그렇게 두 사람에게 작별을 고하고 기억 속의 언덕을 향했다.
걸었다. 조금 더 빠르게 걸었다.
뛰기 시작했다.
기억의 혼돈이나 착각 따위가 아니었다. 그것은 분명히 거기에 있었다.
리에르는 꿈에서 보았던 장면을 더듬었다.
항상 에레사와 놀았던 그 숲의 언덕.
‘맞아, 거기야.’
리에르는 어느새 숨이 턱 끝까지 올라왔다.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다.
꿈속에서 보았던 공간과 밤의 어둠이 달빛에만 의존하여 모습을 드러낸다.
리에르는 한 걸음씩 걸음을 옮겼다.
-까르륵! 리엘이다, 리엘!
-정말이야? 리엘, 나무뿌리 먹을래?
오랜만에 듣는 듯한 목소리들이었다.
“실피 안녕.”
한동안은 못 봤던 정령들이었다.
-굵은 나무뿌리 먹을래, 아니면 옅은 나무뿌리 먹을래?
“아니, 그거 먹으러 온 거 아니야.”
-그럼?
손바닥만 한 요정들이 각자 뿌리를 들고서 다가왔다가 실망한다.
“아니, 실망하게 한 건 미안한데. 나 그런 거 안 먹거든?”
-웬만하면 예의상 한입 하지 그러는군.
“너나 먹어.”
-난 파리가 아니면 먹지 않는군.
여전히 바위 위에 있는 두꺼비는 헛소리를 지껄이고 있었다.
리에르는 커다란 나무를 바라봤다.
그 나무는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것이었다.
‘아니, 잊어먹고 있었을 뿐.’
왜 잊어먹고 있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리에르는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 나갔다. 이 안에는 그 마법 검이 잠자고 있다.
-리엘, 리엘. 거긴 들어가면 안 돼.
“왜?”
픽시 두 마리는 서로를 껴안고서 걱정되는 듯이 말했다.
-거기는 무서운 자장이 심어져 있어.
-너무 아파서 한동안은 나무뿌리도 못 먹었어.
“네가 나무뿌리를 못 먹을 정도면 심각하겠군.”
리에르는 그렇게 말하며 손을 들었다.
역시나 나무 앞에는 무언가 보이지 않는 장막이 버티고 있었다.
‘굳이 이럴 필요가 있을까?’
어차피 잊어먹고 지냈던 곳이다.
대단한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다음에 안 위험할 때 또 놀러 올게!
과거에 자신은 그렇게 말했었다.
파지직!
리에르가 눈을 지그시 감았다가 떴다.
잿빛으로 물든 세상에서 오로지 자신만이 색을 가지고 있었다.
리에르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공간으로 들어갔다.
투명한 막은 리에르의 앞에서 녹아들 듯이 사라졌다.
무서워해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리에르는 이상하게 무섭지가 않았다.
안으로 걸어 들어간다.
떨어진다.
쿵.
예전처럼 푹신한 바닥의 감각이 느껴졌다.
리에르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 머리가 워낙 나빠서……. 칠 년이 지나서나 기억이 났는데. 너무 화내지 마세요.”
내일이라고 말했는데 7년이 지났다.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리에르는 자신이 뭔가 착각한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머리가 나빠 보여서 걱정은 했었지.
그때 거짓말처럼 목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