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hilia Lesode RAW novel - Chapter (51)
레필리아 레소드-51화(51/398)
레필리아 레소드 51화
흩날리는 검무(4)
경기장 안의 관중들은 티미와 유트의 이름을 연호했다.
무대 위에 선 티미는 이질적인 분위기였다.
‘이렇게 큰 녀석이었던가.’
티미가 거대한 바위처럼 느껴졌다.
아니, 실제로 티미의 키는 185티다. 170티인 리에르보다 큰 것은 사실이었다.
살기 어린 티미의 뒤로 에레사의 모습이 보인다.
문득 리에르는 궁금해졌다.
자신의 연인과 대결하는 소꿉친구를 에레사가 어떻게 생각할지.
분명히 연인을 응원할 거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리에르는 어리석음을 버리지 않았다.
리에르의 흑요석 같은 눈동자 안으로 에레사의 입술이 미소하는 것이 보였다.
티미가 아니라, 자신을 향하고 있었다.
착각 따위가 아니었다.
리에르는 에레사의 미소가 힘내라는 것처럼 느껴져서 혼란스러웠다.
“유트도 아닌 너 같은 버러지나 상대하게 되다니.”
티미가 검을 양손으로 쥐고서 중얼거렸다.
“그 버러지에게 물리지나 마시지.”
리에르는 그렇게 빈정거리면서 롱소드를 머리 위까지 올렸다.
“시합 개시!”
시합이 선언되었다.
티미가 기합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앞으로 한 발.
리에르는 발을 앞으로 한 발 뻗어낸다.
-다시 앞으로 한 발.
리에르는 성난 야수처럼 달려드는 티미 앞에서 주눅 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온 신경을 아르미안의 목소리에 집중하고 있었다.
-옆으로 돌면서 레필리아 2식 체이서.
강하게 내려긋는 티미의 공격이 파공음을 일으킨다.
리에르는 티미의 공격을 피하는 것과 동시에 빠르게 검을 뽑았다.
“읍!”
티미가 헛숨을 들이켜며 머리를 뒤로 젖혔다.
아슬아슬하게 리에르의 검이 티미의 목젖을 스쳐 지나갔다.
-체이서.
리에르는 공격과 동시에 발을 움직였다.
티미가 유연한 상반신으로 리에르의 공격을 회피했다.
그 순간 리에르의 짧은 로우킥이 티미의 정강이에 작열했다.
티미는 큭, 하는 소리를 내뱉으며 뒤로 걸으며 절룩거렸다.
-레소드 제2식.
“섀도우 워드(Shadow Word).”
리에르의 두 눈에 순간 광채가 일었다.
몸이 기울어진 티미가 균형을 되찾기 위해 발을 내뻗었다.
그는 리에르의 검이 날아드는 것을 보고 다급하게 허리를 숙였다.
그 순간 티미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리에르가 휘두르는 검격은 동시에 세 개가 뻗어져 나왔다.
퍽!
티미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땅바닥을 나뒹굴었다.
몸이 기울어진 상태에서 무방비하게 얻어맞은 공격이었다.
충격도 큰 듯 보였고,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 것처럼 보였다.
리에르는 땅바닥을 뒹굴다가 일어나지 못하는 티미를 보면서 천천히 검을 내려 보였다.
‘지금 무슨 일이……!’
티미의 동공이 지진이라도 난 듯이 흔들렸다.
믿을 수가 없었다.
이번 대회를 위해서 맹훈련을 거듭했다. 이번에야말로 유트를 발아래 눕히겠다고 다짐한 것이 수십 번도 넘었다.
‘내가 다운을 당해?’
티미는 고개를 들었다.
리에르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일반적인 다운이 아니었다. 들고 있던 검까지 놓치는 추태를 보였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분명한 패배였다.
에레사는 연인이 손쉽게 다운당한 것을 보고서 자신도 모르게 일어섰다.
“빌어먹을.”
티미가 검을 잡고 일어섰다.
그의 흐려진 시야 안으로 에레사가 놀라는 모습이 보였다.
자신도 모르게 이를 사려 문다.
-그렇게 쉽게 무너지는 건가요?
갑자기 머릿속으로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 느껴졌다.
-그렇게 긍지도, 사랑도 빼앗기는 것에 만족합니까?
티미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갑자기 헛것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도와드릴까요?
부드러운 목소리가 악마의 유혹처럼 속삭여온다.
‘닥쳐!’
티미는 그렇게 헛소리를 거부했다.
티미 아크우드.
카이샤를 졸업만 하면 십일검 기사단이라도 들어갈 수 있는 인재였다.
그의 가문은 대대로 제국에서 총독을 배출한 집안이었다.
모든 것이 준비된 인재.
유일한 오점은 유트에게 밀려서 이인자라는 것이었다.
그런 그가 무명의 리에르를 상대로 시합 시작부터 땅바닥을 뒹구는 수치를 경험했다.
“그냥 누워 있지 그래?”
리에르는 여유만만하게 빈정거렸다.
티미는 이를 사려 물면서 답변했다.
“까불지 마라!”
“지금이라도 소원을 빌어볼까?”
진 사람이 소원을 빌어주기로 했었다.
티미는 리에르의 도발을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달려들었다.
아크우드 가문 특유의 검술이 지금 펼쳐지기 시작했다.
날카로운 찌르기로 상대를 압도한다.
리에르는 달려드는 티미의 검을 옆으로 회피했다.
하지만 진짜 무서운 것은 따로 있었다.
‘박살 낸다!’
티미는 검을 횡으로 크게 그었다.
쉬이익!
날카로운 파공음이 울렸다. 하지만 리에르는 가볍게 공격을 막았다.
티미의 동공이 크게 격앙되었다.
자신의 주특기인 돌격과 베기가 한꺼번에 이어지는 기술이었다.
“끝?”
“주둥이만 산 새끼가!”
티미가 바인딩 상태에서 리에르를 힘으로 밀어붙였다. 상대의 균형을 무너뜨리고서 치명적인 일격을 가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리에르는 밀려나지 않았다.
마치 벽을 민 것처럼 단단한 압박이 느껴지자 티미는 이를 사려 물었다.
“이제 소원 빌어도 되는 거 맞지?”
“까불지 마라!”
티미는 팔꿈치로 리에르의 안면을 가격했다.
열등한 쓰레기에게 이런 짓을 당하는 것 자체가 악몽이었다.
탓!
리에르는 가볍게 고개를 옆으로 움직였다. 티미의 반격은 허무하게 끝났다.
“으랏차!”
리에르는 그대로 힘으로 티미를 밀어붙였다.
티미는 교차한 리에르의 검에 밀리면서 뒷걸음질했다.
버티려고 하지만 점점 자신의 검이 뒤로 밀려났다.
‘무슨 힘이 이렇게……!’
티미는 지금 악몽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닐지 의심했다.
“으아아!”
티미가 거의 비명에 가까운 고함을 지르면서 어깨로 리에르를 밀쳤다.
이번에는 리에르도 밀려났다.
티미는 양손으로 검을 말아쥐었다. 그러고는 그대로 리에르를 향해 크게 내리찍었다.
쉬익!
수직으로 내려꽂히는 티미의 공격은 다시 한번 허무하게 공기만 갈랐다.
퍼억!
티미는 복부에서 느껴지는 타격에 뒷걸음질했다.
“우엑!”
티미는 그대로 바닥에 먹은 것을 게워냈다.
리에르는 티미의 움직임이 전부 보였다.
겨우 호흡법만 익혔을 뿐인데 육체 능력이 엄청나게 향상됐다.
‘아르미안 여사님. 능력 인정합니다. 대단해요!’
-그렇다면 다행이구나.
아르미안은 실소했다. 호흡법을 익히면 물론 크게 도움이 된다. 하지만 절대적이진 않다.
리에르가 육체 능력이 크게 성장한 것이 아닌, 봉인이 해제되었을 뿐이다.
티미는 시작부터 얻은 데미지 때문에 섣불리 공격에 나서지 못하고, 시간을 벌기 위해 거리를 벌렸다.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이 리에르는 발을 움직여 검을 흔들며 달려들었다.
-레소드 1식, 위스퍼링 레인이군요. 그냥 막으면 그 반동을 이용해서 허리를 노리고 올 겁니다. 막는 것과 동시에 어깨로 상대를 공격하세요.
부드럽지만 어딘가 모르게 음산함이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티미는 리에르의 검과 마주 휘둘렀다.
탓!
막아내기 어렵지 않은 가벼운 검이었다.
리에르의 검은 공처럼 튕기면서 방향이 크게 틀어졌다.
상단에서 하단으로 자연스럽게 바뀌는 검격이었다.
티미는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가 시키는 대로 숄더 어택을 가했다.
“큽!”
리에르는 가슴을 강타당하며 뒤로 물러섰다.
-공격하면 레필리아 2식 체이서로 옵니다. 카운터를 당하지 않도록 상대의 하단을 공략합니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티미는 검을 들어 리에르의 허리 밑을 향하여 검을 휘둘렀다.
리에르는 급하게 검을 돌려 공격을 막았다.
챙!
철의 굉음이 두 사람의 검에서 공명한다.
-그대로 돌격하세요.
티미는 자신이 정말로 이상해진 것은 아닌지 의심되었다.
-하단 찌르기.
챙!
-숄더 어택.
퍽!
-하단 찌르기.
챙!
티미의 변칙적인 공격에 리에르가 처음으로 밀렸다.
리에르는 뒤로 몇 걸음 물러섰다. 그러고는 호흡을 정리하면서 천천히 검을 옆으로 들어 어깨와 수평을 이루게 하였다.
-레소드 1식 제로가 옵니다.
‘그게 뭔 말이야.’
-그냥 찌르기로 가세요. 상대에게 검의 흐름을 빼앗길 겁니다. 그때부터는 육탄전으로 제압하세요.
티미는 그대로 돌격하면서 빠르게 찌르기를 넣었다.
리에르의 검이 마치 정지된 것처럼 움직이며 허공에 원을 그렸다.
티미의 동공이 크게 확장되었다. 느릿해 보이는 그의 검에 자신의 찌르기가 빨려 들어갔다.
티미도 바보는 아니었다. 목소리가 시키는 대로 검을 놓았다. 그러고는 순간적으로 당황한 리에르의 복부에 무릎 차기를 먹였다.
“컥!”
리에르가 이번엔 제대로 데미지를 받았다.
‘정말로 그 남자의 말대로…….’
티미는 그대로 리에르의 안면에 박치기했다.
“큽!”
리에르가 신음을 내뱉으며 얼굴을 움켜잡았다.
티미는 주먹을 크게 당겼다가 뻗었다.
뻐억!
리에르는 티미의 스트레이트에 안면을 허용하고 뒷걸음질했다.
예상치 못한 티미의 반격이었다.
“으아아아!”
티미는 지금까지의 분노를 쏟아내듯이 사정없이 리에르를 때렸다.
리에르는 연달아 피해를 본 덕분에 머리가 흔들렸다. 제대로 시야가 밝혀지지 않고, 약간이지만 어지러움이 일어났다.
‘자, 이젠 어떻게 할 텐가?’
경기장 한쪽 구석에 긴 붉은 머리카락의 미남자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무리 레필리아 레소드를 배우고, 봉인이 풀렸어도 실전 경험이 부족하다.
즉, 리에르에게는 한계가 분명히 존재했다.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리즈가 매혹적으로 웃으면서 속삭였다.
“포스가 되어야지……. 그렇지 않나, 리에르군?”
* * *
‘좋아해.’
에레사는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 보지 못했다.
리에르가 평소에 엉뚱한 행동을 자주 하긴 했었다. 하지만 이번만은 달랐다.
진지한 리에르의 얼굴이 에레사의 머릿속에 아른거렸다.
에레사는 생각했다.
정말로 리에르가 자신을 좋아하고 있다면 근래 까칠했던 그의 모습이 이해가 간다.
질투라는 것이다.
에레사 자신이 생각해 본다.
리에르와 입장이 뒤바뀌어, 항상 함께했던 그가 다른 여자와 연인이 되어 있다면.
싫었다.
그 상대가 정말로 좋은 사람이고, 리에르가 기뻐한대도.
에레사는 자신의 이기적인 판단에 깜짝 놀랐다. 스스로 그렇게 나쁜 여자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떠오른 생각은 단 한 번도 상상해 본 적 없는 미래였다.
에레사는 리에르의 마음이 정말로 그렇다면 자신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혼란스러웠다.
리에르를 처음 만났던 그 날의 기억부터, 자신의 앞을 지키며 싸움을 하던 모습들이 스쳐 지나간다.
그래도 항상 자신의 곁에서 함께 쭉 자라왔다. 너무나 가까우므로 미처 느낄 수 없는 숨겨진 감정들이 꿈틀거린다.
“나는…….”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입술이 달싹였다. 숙이고 있던 얼굴을 들자, 부드러운 금발 머리카락이 눈을 어지럽히고 뺨을 간질였다.
에레사는 고개를 들어 올렸다. 저절로 자신을 고민하게 만드는 남자를 시선으로 쫓기 시작했다.
머리카락에 의해 가려졌던 시야가 트였다. 그러면서 경기장에 서 있는 두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건장한 체구를 가지고 남자다운 잘생긴 얼굴을 가진 연인과 허약하고 바보 같았지만, 누구보다 친숙한 소꿉친구가 검을 마주하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 자신은 누구를 응원하고 있는가?
스스로 내려진 질문에 스스로 답하지 못하는 아이러니함. 그것은 에레사의 마음속에 잔잔한 파동처럼 울려 퍼졌다.
시작과 동시에 티미는 리에르에게 맹렬하게 달려들고, 곧 이어지는 반격에 넘어지기까지 한다.
에레사의 가녀린 어깨가 움찔댔다. 2년 전에 성인식을 치렀던 에레사는 이제 자신처럼 성인식을 거행할 리에르의 얼굴을 바라다보았다.
너무나 달라져 보이는 리에르의 강해진 모습. 그와 동시에 떠올려지는 모습은 쑥스럽게 얼굴을 붉히며 좋아한다는 중얼거림.
갑자기 리에르가 밀리기 시작했다. 리에르의 입술이 찢어지고, 코피가 쏟아졌다.
그의 얼굴에서 핏물이 흐르는 것을 보자, 에레사의 마음이 찢어질 듯이 아팠다.
“리엘…….”
에레사는 자신의 모순을 인정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