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hilia Lesode RAW novel - Chapter (58)
레필리아 레소드-58화(58/398)
레필리아 레소드 58화
검은 날개의 숙명(3)
엘빈은 제이미의 방에 급하게 들어섰다.
리에르는 시키는 대로 모친의 방으로 후다닥 달려들어 갔다.
마침 라일라는 머리를 묶고서 침대에 일어나 있었다. 그녀는 멀쩡하게 일어나 있는 리에르를 보고서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매일 같이 결승전을 했으면 좋겠구나.”
“엄마가 더 나이를 먹고 싶지 않다는 의미로 들어도 되겠죠?”
리에르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모친 라일라의 아들 훈육 펀치가 날아들었다.
아름다운 아침 인사를 나누는 모자의 모습은 평화로워 보였다.
아르미안은 뭔가 석연치 않은 기분이 들어 리에르에게 속삭였다.
-리엘, 뭔가 예감이 좋지 않아. 그 늑대 같은 남자는 전쟁 이야길 했잖니.
그뿐만은 아니었다.
이곳에는 전 대륙을 공포에 떨게 했던 포스 오브 머더러, 리즈 지센라이드도 존재했다.
아르미안은 뒤의 말은 씹어 삼켰다.
리즈와 자신의 인연은 끊어진 지 오래였다. 스스로 그를 베었을 때부터.
괜한 말로 리에르에게 불필요한 걱정을 끼치게 하고 싶진 않았다.
“음, 엄마 엘빈이…….”
“전쟁이라니?”
리에르가 말을 하기도 전에 라일라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물어왔다.
리에르는 아직 입도 벙긋하지 않았는데 이미 전쟁 이야기를 알고 있는 라일라에게 의아함을 느꼈다.
“부인,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라일라의 대답이 떨어지기도 전에 엘빈이 방문을 벌컥 열었다.
성인 남성이, 그것도 주인으로 모시는 남자의 아내가 있는 침실에 들어온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무례였다.
엘빈 본인이 존경하는 로이스타를 모욕하는 일이며, 그의 아내 라일라를 능욕하는 일이란 것을 스스로 모를 리 없었다.
아무리 성격이 온화한 라일라여도, 잠옷 차림으로 엘빈을 맞이하게 된 이상 당혹감에 눈썹이 일그러졌다.
엘빈은 고개를 숙이며 한시의 망설임도 없이 입을 열었다.
“어둠의 숲이 이곳을 침공하고 있습니다.”
‘어둠의 숲?’
리에르는 처음 듣는 단어에 무슨 말인가 싶어 엘빈을 바라보았다.
지금 엘빈의 얼굴에 그려진 표정은 사람이 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눈앞에 보이는 적을 이빨로 물어뜯을 만큼 긴장과 흥분 상태에 놓여 있었다.
“어둠의 숲이 무리하게 이곳까지 올 리가 없어요. 그런데 엘빈 경, 그이는…….”
라일라는 수도에 있어야 할 엘빈이 이곳에 있다는 것이 당황스러웠다.
엘빈은 라일라에게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부인. 수도에는 가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일단 여기서 빠져나가야 합니다. 모두 같이 수도로 이동하시죠.”
라일라의 손은 부르르 떨려왔다. 확장된 동공은 크게 벌어진다.
입술은 원래 지퍼라도 달았던 양, 굳게 다물어졌다.
그녀는 당장에라도 절규할 듯이 불안정해 보였다.
“엄마?”
리에르는 심상치 않은 라일라의 모습에 당황했다.
“부인, 시간이 없습니다.”
엘빈은 그녀가 어둠의 숲 때문에 충격을 받았다고 지레짐작했다.
그는 그녀에게 안심하라는 듯이 말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영애와 부인, 그리고 리에르 군을 먼저 이곳에서 탈출시킨 뒤…….”
“그이는 그럼 오지 못하겠군요…….”
남편만 찾는 라일라가 이상해 보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로서는 더 위급한 것이 있었다.
리에르의 힘이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언제 그 흉포한 힘이 아들을 잡아먹을지 알 수 없었다.
‘그이가, 아니, 성검 발락시아가 있어야만…….’
성검의 힘이 있어야지만 저 사악한 힘을 끊어낼 수 있다.
물론 세월이 흐르면 다시 자라겠지만, 힘의 근원을 계속 잘라줌으로써 폭주하는 것을 멈출 수가 있다.
로이스타의 힘을 빌릴 수 없다면 이제는 방법은 단 하나밖에 없었다. 스스로 이겨내는 것.
하지만 포스라는 광기의 저주를. 자기 아들이, 아직 성년식도 치르지 않은 리에르가 이겨낼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마약과도 같다.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그 힘에 도취하며, 흥분 상태에 놓이게 된다면 무너진 댐에서 흘러넘치는 홍수와도 같다.
“가셔야 합니다!”
어서 이곳에서 떠날 것을 독촉하는 엘빈의 목소리가 반복되었다.
라일라는 자리에서 좀처럼 일어나지 못했다.
“난 에렌을 불러올게!”
“시간이 없다, 리에르 군.”
엘빈의 말을 귓등으로 듣고서 리에르는 움직였다.
바로 옆집이라는 것이 이때는 다행이었다.
리에르는 에레사의 집에 가서 문을 두들겼다.
“에렌!”
몇 번 더 문을 두들겼다.
“에렌! 아저씨! 아줌마!”
레이나드 식구는 하필 아무도 집에 없었다.
‘어디 간 거야, 대체.’
리에르는 입술을 씹었다. 갑자기 불안감이 쿵쾅거리며 심장을 두들겼다.
리에르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엘빈의 말과는 다르게 마을은 평화로워 보였다. 아세튼 아줌마는 반짝이는 과실을 진열하고 있었다. 개점을 앞둔 가게는 앞마당을 쓸면서 하루를 시작했다.
‘전쟁?’
일하는 게 귀찮아서 구걸을 주업으로 삼는 거리의 시인들도 동냥하기 좋은 자리를 선점하기 위해 어슬렁거린다.
‘이런 곳이?’
카에르의 제복을 입고 있는 소년, 소녀들은 수업이 늦었는지 입에는 빵 한 조각을 물고서 바삐 뛰어다녔다.
‘전쟁은 무슨 전쟁.’
리에르는 너무나 평화로운 도시의 풍경을 보고서 그렇게 뇌까렸다.
엘빈은 라일라와 제이미를 데리고 움직였다.
“진짜 전쟁이 나는 것이 맞아요?”
리에르의 말에 엘빈이 냉소적으로 중얼거렸다.
“그럼 내가 자네와 농담 따먹기를 하는 거로 보이나.”
냉소적인 엘빈의 반응에 리에르가 입술을 삐죽였다.
“근데 어디로 가는 건가, 엘빈?”
제이미도 엘빈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당황하기는 매한가지였다.
엘빈은 주변을 경계하는 듯, 빠르고 조심히 걸으며 말했다.
“도시의 외곽은 전부 포위당했을 테니, 배를 타고 가야 합니다.”
안전한 도피에도 불구하고 제이미는 마음이 어두운 듯이 입을 열었다.
“하지만, 도시 사람들이 죽을지도 모른다는데 대영주의 딸인 내가 먼저 도망을 친다는 것은…….”
“싸우는 것은 기사가 할 일이지 레이디가 할 일이 아닙니다.”
엘빈은 생김에 어울리지도 않는 설득력 있는 말을 내세웠다. 덕분에 제이미는 자신도 맞서 싸우겠다는 말을 내뱉지 못하였다.
“그리고 이미 성주와 경비병에게는 상황을 전달했습니다.”
어차피 그들만으로 지킬 수는 없다. 엘빈 역시 마찬가지였다.
라일라는 계속 안색이 좋지 못했다.
리에르는 현실성 없는 엘빈의 말을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난감한 표정을 지어 올렸다.
무엇보다 자신의 친구들이 눈에 밟혔다. 에레사와 유트 남매. 최소한 그들에게 위험을 알리고, 함께 도망쳐야 하는 것이 옳았다.
“저기…….”
리에르가 조심스럽게 입술을 열었을 때 그들의 저만치 앞에 부두가 보였다. 배를 정착시키는 부두에서는 사람들이 잔뜩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다. 덕분에 말할 타이밍을 잃은 리에르는 입을 닫았다.
엘빈은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꼈다.
그는 라일라와 제이미를 두고서 앞으로 달려 나갔다.
사람들의 웅성거림. 엘빈은 그 속에서 참담한 상황을 목격했다.
“뭐야, 어떤 놈이 배에 불을!”
“갑자기 불이 붙었소!”
“여기 좀 도와주시오! 사람이 있소!”
페이서스 부두에 놓인 수많은 배는 활활, 시뻘건 불꽃의 혀를 허공에 날름거리며 사방을 태워냈다.
말 그대로 지금 난리가 난 상황이었다.
‘이 상황에서 배가 전부 부서진다고? 누가? 목적이 있는 것인가?’
엘빈은 등골에 오싹함을 느꼈다.
마치 누군가가 이 도시를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막는 것 같이 느껴졌다.
천하의 엘빈도 유일한 타개책이었던 배가 봉쇄되어 있는 것을 보고 잠시 멍한 표정으로 분노를 삼켰다.
“말을 구해오겠으니 다들 여기서 기다리십시오.”
엘빈은 그리 말하면서 급하게 몸을 움직였다.
리에르는 왠지 마음이 조급해졌다.
‘에렌…….’
정말로 도시가 위험하다면 에렌도 위험하다.
‘유트……. 유이…….’
최고의 친구인 유트와 밉상이지만 익숙한 유이를 다시는 보지 못할 수도 있었다.
리에르는 왠지 모를 두려움이 느껴졌다. 도시는 너무나 평화로워 보였지만, 엘빈의 반응이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전쟁이 나면 죄 없는 사람들도 죽어 나간다. 항상 당연한 내일을 살아갔던 이는 더 이상 내일을 상상하지 못한다.
다정하게 손을 잡고 거리를 노니는 젊은 커플들이 보인다.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서 굽어진 허리를 가진 노파가 벤치에서 쉬고 있다.
지팡이를 짚고 느린 걸음을 보여주는 노년의 신사도. 폭리를 일삼는 망할 식당 집도, 항상 물건을 강매하려는 노점상의 상인들도.
친분이 두텁진 않을지라도 다들 이 도시에서 같은 거리에서 몇 번씩이고 마주친 사람들이다.
전쟁이라는 것에 관해서 이야기만 들었지 실제로는 겪어본 적도 없고, 겪어보고 싶지도 않았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리에르는 손끝이 떨려오기 시작했다.
“엘빈의 말이 사실일까……?”
자신도 모르게 리에르는 혼이 빠진 듯이 중얼거렸다.
리에르의 어두운 안색을 보면서 라일라는 부드러운 얼굴로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제이미는 흠, 하는 숨을 내쉬어 보인다. 그러고는 담담한 표정으로 부드러운 입술을 열어 보였다.
“아마도 그는 나를 걱정해서 저렇게 호들갑을 하는 거겠지. 내 입으로 말하긴 뭣하지만 나와 관련된 일이라면 엘빈 경은 과도한 경우가 많지. 몬스터가 무리를 짓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니지만, 이 정도 규모의 항구 도시에서 막지 못할 정도는 아닐 테니 걱정하지 말게.”
제이미 또한 학시엘에게 쫓기다가 파에트를 만난 적이 있었다.
파에트는 적은 숫자로도 단 한 사람의 사상자 없이 몬스터를 전멸시켰었다.
그 든든한 기억이 떠오른 제이미는 리에르를 그렇게 안심시켰다.
“그런가?”
제이미의 말에 리에르는 어색하게 머리를 긁적여 보였다. 그런 그의 모습에 제이미는 고개를 한 번 끄덕여 보여주었다.
제이미의 말에 리에르는 조금이나마 안도감이 들었다.
아르미안은 몸서리치고 있었다.
‘어째서 지금까지 느끼지 못하고 있었을까?’
그녀는 끈적이고 불쾌한 감정들이 느껴졌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답을 내리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어둠으로 가득 찬 몬스터들이 이 도시로 침공해 오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아니, 이미 너무나 가깝게 근접해 있었다.
아르미안은 최대한 주변을 살펴보았다. 다들 한적하고, 한가로이 움직이고 있었다.
갑자기 거대한 그림자가 사람들을 가리기 전까진 그 누구도 비극을 생각하지 못했다.
“뭐지?”
사람들은 갑자기 머리 위로 거대한 그림자가 생겨나자 하늘을 올려보았다.
하늘에는 거대한 피막을 펼친 괴물들이 보였다.
“뭐, 뭐야!”
“꺄아아아아!”
갑자기 등장한 비행 몬스터를 보고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리에르의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마치 꿈같았다. 저런 괴물이 눈앞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거대한 피막의 날개는 집을 가리고도 남았고, 기다란 꼬리를 펄럭이면 두꺼운 나무도 부러질 듯 보였다.
놈들의 세로줄 눈은 무언가를 찾는 듯이 쉴 새 없이 움직였다.
그것은 생김만으로도 사람들을 공포로 마비 시켰다.
“드, 드래곤!”
사람들은 드래곤이 나타났다고 착각했다.
갑자기 몬스터가 도시 한복판에 튀어나왔으니, 정상적인 사고 판단이 가능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다행인 것은 있었다.
지상 최강의 몬스터라 불리는 드래곤은 아니었다.
와이번.
드래곤과 유사하게 생겼지만 작고, 지능이 낮다.
그렇다고 상황이 좋지는 않았다.
와이번은 상위 몬스터는 아니지만, 충분히 강력함을 지닌 포식자였다.
더군다나 이런 놈들이 셋이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