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hilia Lesode RAW novel - Chapter (62)
레필리아 레소드-62화(62/398)
레필리아 레소드 62화
검은 날개의 숙명(7)
“이럇, 하앗!”
엘빈이 마차의 속력을 올렸다. 상처를 입은 와이번은 오로지 리에르를 바라보며 질주했다.
리에르는 엄마를 찾아서 울음을 토해내는 꼬마 소녀를 보았다.
“피해!”
꼬마 소녀를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꼬마의 엄마는 보이지 않았고, 모두 자신의 목숨을 챙기기에 급급했다.
리에르의 눈동자가 격앙되었다. 당장에라도 마차에서 뛰어내리려 했다. 그 찰나의 망설임이 보여준 것은 비극이었다.
푸직!
와이번의 발에 깔린 꼬마 소녀는 토마토가 터지듯이 내장과 육즙을 바닥에 굴렸다.
리에르는 그 광경을 보고서 구역질을 내뱉었다.
제이미는 심하게 떨면서 엘빈을 향해 소리쳤다.
“에, 엘빈. 아이가……! 사람들이……!”
“부인, 영애! 꽉 잡아야 합니다!”
엘빈이 마차의 방향을 틀어 좁은 골목에 진입했다. 이미 모두 도망친 골목은 한산했다. 좁은 골목에 마차가 들어서니 진열해 놓은 과일과 채소가 말굽 아래 짓밟혔다.
그때 한 남자가 가게에서 나왔다. 그는 가게의 주인이나 손님 같은 것이 아니었다.
그는 주인이 비어 있는 틈을 타서 돈 될 만한 것을 쓸어 담던 중이었다. 그는 그 순간 헛숨을 들이켜며 옆으로 넘어지다시피 해서 마차를 피했다.
조금만 늦었더라도 마차에 목이 걸려, 질질 끌려갈 판국이었다.
“야 이, X발 X끼야! 말을 발가락으로 모냐, 이 버러지 같은 놈!”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는 생각 때문에 사내는 바닥에 가래침을 뱉으며 주먹 감자를 먹였다. 그 순간 그는 서늘함을 느꼈다. 뭔가 거대한 그림자를 느끼고 뒤를 돌아보았다.
생전 처음 보는 거대한 생명체가 부리를 벌렸다. 앵무새를 연상시키는 놈의 단단한 부리 안으로 톱니 같은 이빨이 수북하게 돋아나 있었다.
“어?”
우두둑!
와이번의 부리가 남자를 집어삼켰다. 뛰어난 치악력을 지닌 와이번이 사내의 뼈를 물렁뼈라도 되는 것처럼 씹어 삼켰다.
리에르는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었다.
마차가 골목을 빠져나갔다. 와이번도 마차를 따라 골목으로 나왔다. 와이번이 점차 멀어지기 시작했다. 조금씩 속력에서 뒤떨어지는 것을 보니 리에르는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그 순간 와이번의 목이 꿀렁거리며 부풀었다. 마치 풍선 주머니처럼 부풀어 오르던 목에서 입을 통해 무언가가 흩날렸다.
녹색의 파편이 쐐기 형태로 주변을 적셨다. 도망치던 사람들은 비산하는 독액에 맞아 비명을 지르며 땅바닥을 나뒹굴었다.
“오, 오빠…….”
고통으로 바닥을 기는 여자가 자신의 연인을 향해 손을 뻗었다. 남자의 동공이 흔들렸다. 그의 시선은 연인의 얼굴에서 점액에 녹아든 연인의 다리를 보았다. 그가 선택한 것은 그녀를 혼자 두는 것이었다.
“어, 어디가!”
그녀의 외침을 무시하고서 달리던 남자는 사과조차 하지 않았다.
그때였다.
남자의 머리 위로 무언가가 내려왔다.
쿵!
둔탁한 소음과 함께 남자는 하늘에서 낙하한 와이번에게 짓뭉개졌다.
“웁…….”
제이미의 눈동자가 구겨졌다. 그녀는 더 이상 엘빈을 부르지 않았다. 아무리 엘빈이 뛰어난 기사라 해도,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었다.
리에르의 손이 떨려왔다. 눈앞에서 사람들이 죽어 나가고 있다.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지만, 좁은 도시에서 한 번씩은 마주친 사람들이다.
아니, 그렇지 않다고 해도 하나같이 자신의 삶이 있고, 소중한 것이 있다. 그런 사람들이 마치 벌레처럼 짓밟히고 짓뭉개진다.
두 마리의 와이번은 아까 리에르가 포스를 사용해서 낙하시킨 녀석들이었다. 역시나 살아 있었다.
리에르는 녀석들을 끝내지 못한 것이 안타까웠다. 큰 덩치만큼이나 목숨줄이 질긴 녀석들이었다.
계속 마차를 추격했던 와이번도 점점 멀어졌다. 녀석은 추격을 포기했다. 대신에 주변에 널리고 널린 먹이를 골라잡기로 했다.
누구 하나 와이번을 상대로 싸울 수 있을 리 없었다.
“혹시……. 우리 어디로 가나요?”
“안전한 곳으로 간다.”
리에르의 질문에 엘빈이 대답했다. 리에르는 마른침을 삼켰다. 시야에 어린 꼬마 아이가 보였다. 아이는 도망치지도 못하고 엉엉 울고 있었다.
리에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어린아이는 단풍잎 같은 손을 들어 무너진 건물 잔해를 치우고 있었다. 그리고 아이의 엄마는 다행히도 죽지는 않았다. 그러나 와이번은 두 모자를 발견했다.
“엄마.”
리에르의 말에 라일라가 아들을 바라봤다. 그 순간 라일라가 불안한 느낌이 찾아 들었다.
“다녀올게요.”
“다녀온다니? 리엘? 리엘!”
제이미는 갑자기 라일라가 소리를 지르자 깜짝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시야에 리에르가 마차에서 뛰어내리는 것이 보였다.
“엘빈 경, 잠시. 잠시 마차를 세워요!”
라일라가 다급하게 고개를 돌려 엘빈에게 소리쳤다. 리에르는 땅바닥을 한 바퀴 뒹굴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냥 세워달라고 할 걸 그랬나.’
바닥을 뒹굴었더니 몸이 따갑다. 하지만 더 아픈 것은 참혹한 죽음의 현장이었다.
“그만두게! 아무리 자네가 강해도!”
제이미가 소리친다. 리에르는 고개를 돌려 일행을 향해 말했다.
“조금만 놀다가 성으로 갈게요. 친구들을 두고 갈 수는 없잖아요.”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아라!”
라일라가 당연히 화를 냈다. 마차는 속도를 줄였지만, 리에르는 다시 타지 않았다.
“리에르!”
리에르는 그대로 앞으로 달려 나갔다.
엘빈이라면 엄마를 무사히 빠져나가게 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유트, 유이. 그리고 사랑하는 에렌. 이들을 두고 갈 수는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무모해.
“무서워요.”
-그럼 뒤돌아 가.
“죽어도 못 이길 것 같은 놈이 나타나면 도망칠게요.”
불과 잠시 전만 해도 리에르는 와이번이 두려워서 움직이지도 못했다. 아니, 지금도 무섭다. 고블린 같은 저급 몬스터는 본 적이 있지만, 이런 중급 몬스터는 볼 일이 없었다.
그것은 재앙과도 같았다. 그 재앙이 지금 힘없는 사람들을 덮쳤다. 유일하게 그것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자신뿐이었다.
리에르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호흡이 정리되어 간다. 뺨에 스치는 바람이 느껴진다. 코끝에 전달되는 비릿한 혈향이 불쾌감과 분노를 들끓게 만든다.
리에르는 두 눈을 떴다. 그의 시야에 마나의 공간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사방이 온통 시뻘겋다. 이미 죽은 이들의 시커먼 재가 괴로운 듯이, 울 듯이 꿈틀거리며 공기 중으로 퍼져 나갔다.
리에르는 그것을 보면서 입술을 깨물었다.
“모, 모두 대, 대피하세요!”
페이서스의 경비병이 사람들을 독려했다. 이미 주변에 경비병이었던 고깃덩어리가 몇 구 있었다.
혼자 남은 경비병은 창을 들고 와이번을 겨눴다. 하지만 제대로 겨냥하지 못하고 손이 떨려왔다.
“키이이이잇!”
와이번이 마치 비웃기라도 하듯이 경비병을 노려보았다.
그는 당장 뒤돌아서서 도망가고 싶었다. 하지만 도망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상황이 좋은 건 없었다. 먹성이 좋은 와이번과 경험 없는 경비병, 그리고 아이 하나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으아아아!”
경비병은 창을 쥔 손을 떨면서 고함만 질렀다. 하지만 그의 용기에도 불구하고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 순간 와이번이 부리를 벌리며 경비병을 덮쳤다.
푸쉭!
핏물이 경비병의 하반신을 적셨다. 그는 경련을 일으키며 창을 놓고서 힘없는 뒷걸음질을 했다.
“어, 어?”
경비병의 눈동자가 지진이라도 난 듯이 흔들렸다. 와이번의 머리통이 피를 뿌리며 공중제비를 돌았다.
머리가 잘려 나간 와이번의 몸이 운동에너지 때문에 계속 달려 나갔다.
경비병은 비명을 지르려 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빨리 움직이는 사람이 있었다.
‘대지의 마력을 한점으로.’
‘결빙의 연소점을 폭발시킨다.’
리에르의 눈동자에서 희미한 마력의 기운이 서린다. 그의 손에 두 개의 조합식이 꿈틀거렸다.
콰아앙!
리에르가 손을 가로저었다. 땅에서 균열이 일어나며 바위벽이 솟아올랐다. 그것은 머리 잃은 와이번의 몸과 부딪히며 둔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제 아이의 엄마를!
아르미안의 목소리에 리에르가 바로 움직였다. 아직도 꼬마 아이는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되어 잔해를 밀고 있었다.
“나와, 내가 할 테니.”
리에르는 꼬마 아이에게 퉁명스럽게 말했다.
“어? 아르빈트 가문 맞지?”
경비병은 리에르를 알아보았다.
“일단 이거나 치워요!”
“어, 아! 그래!”
경비병은 죽다 살았다는 안도감에 정신이 없는 상태였다. 이제 막 정신이 깨기 시작한 여성은 혼미한 상태에서도 아이를 찾았다.
리에르와 경비병이 같이 작업하니 파편은 금방 치워낼 수 있었다. 이제야 아이가 울음을 다시 토해내며 엄마에게 안겼다.
아이의 엄마도 오열하며 아이를 안았다. 엄마를 안은 고사리 같은 손은 찢겨 나가 핏물이 베어져 나왔다.
-리엘, 조합.
“네.”
-빛의 연소점과 생명의 연소점. 그리고 불꽃의 연소점을 모아.
리에르는 눈이 핑핑 돌아가는 기분이었다. 사방에 어지럽게 날거나 바닥에 깔린 것 중에 골라내야 한다.
하지만 이미 수련은 해왔다. 연소점을 손에 하나씩 쥔 리에르는 양손으로 그것들을 구겨 넣었다.
-더.
리에르의 손안에서 그것들이 빙글빙글 회전하는 것이 느껴졌다.
-아직.
“근데 이건 뭐 하는…….”
-됐어.
리에르는 아르미안의 오더에 따라 그대로 손을 펼쳤다. 조합이 완성된 마력 덩어리가 구체가 되어 둥둥 떠 있었다.
-아이랑 아이 엄마 상처에 발라.
“에……?”
경비병은 리에르가 아까부터 혼잣말하는 것을 보고 이상하게 생각했다. 그에게 당장 묻고 싶은 것이 많은데도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자신이 미치지 않았다면, 방금 와이번의 목을 벤 것은 리에르였다. 그 증거로 그의 손에는 화려한 외형을 가진 검이 쥐어져 있었다. 그러던 리에르가 갑자기 아이와 아이 엄마의 다리를 매만졌다.
아이 엄마는 잠시 당황하는 기색이었다. 그녀는 잔해에 다친 다리 때문에 제대로 서지 못해서 경비병에게 부축을 받고 있었다.
“저기, 아르빈트 씨. 지금 뭐…….”
그 순간 두 사람은 리에르의 손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는 것을 보았다. 아이의 엄마는 화들짝 놀라서 뒤로 물러섰다. 곧 그녀는 통증이 굉장히 완화된 것을 느끼고 놀란 눈을 하고 있었다.
“어때요?”
“조, 조금 편해졌어요.”
리에르에게 아이의 엄마는 대답했다. 꼬마 아이는 엄마에게 매달려서 리에르를 바라봤다. 리에르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쿵!
그때 와이번 두 마리가 리에르를 발견하고 착륙했다. 한 마리는 확실하게 죽였다. 이제 두 마리만 죽이면 이 비극은 끝난다.
“도망치세요.”
“네?”
리에르의 말에 경비병이 당황했다. 하지만 거스를 수 없는 분위기가 있었다.
“자네도 같이 성으로……!”
“저거만 해치우고요.”
“뭐?”
리에르가 검을 들었다. 쿵쿵쿵, 지축을 울리면서 와이번이 리에르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심장이 쿵쾅거린다. 지금 자신에게 있는 일이 그저 꿈이라고 생각되었다.
평범한 자신이 이런 괴물과 싸운다는 것부터가 현실적이지 않았다.
‘도망치고 싶다.’
방금 와이번 하나는 기습으로 죽였다. 하지만 이 녀석들은 방심 따위는 하지 않고 있다.
-조심해.
아르미안이 걱정스러운 듯이 속삭였다. 리에르가 와이번을 막고 있는 덕분에 사람들이 도망치고 있었다. 그들 중 몇몇은 검을 들고 있는 리에르를 알아봤다.
-레소드 5식.
“임페리얼 소드.”
리에르의 몸 전신으로 마나 덩어리가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것들은 마치 갑주처럼 몸 전신을 꼼꼼하게 막아섰다.
불꽃이 서린 검을 허공에 한 번 휘둘렀다. 저음으로 타들어 가는 불꽃이 산소를 잡아먹는다.
리에르는 달려드는 와이번을 향해 걸어갔다. 그러고는 속도를 올려서 달려들었다.
와이번이 갑자기 한 바퀴 회전했다. 놈의 꼬리가 날카로운 채찍처럼 날아들었다.
-숙여!
리에르는 아르미안의 외침에 따라 몸을 낮췄다. 속도는 줄이지 않은 채, 와이번의 품을 파고들었다.
불꽃과 똑같은 색으로 물든 눈동자가 와이번의 연약한 배를 바라보았다.
“하압!”
리에르는 기합과 동시에 검을 꽂아 넣었다. 장기를 담고 있는 놈의 뱃가죽이 찢겼다. 그는 양손으로 검을 다시 잡았다. 그러고는 멈추지 않고서 길게 찢어 버렸다.
놈의 몸에 불꽃이 달라붙는다. 고통스러워하는 비명과 동시에 리에르는 다른 한 놈도 베어버리기 위해 움직였다.
-피해!
그 순간 리에르는 자신의 옆으로 날아드는 꼬리를 보았다. 다른 한 녀석이 자신의 동료는 생각하지도 않고 꼬리를 휘두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