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hilia Lesode RAW novel - Chapter (65)
레필리아 레소드-65화(65/398)
레필리아 레소드 65화
각성(2)
‘이 녀석이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닐까? 아니, 거짓말이라고 하더라도 나를 유인해서 무엇이 이득이지?’
리즈가 리에르를 죽이려고 한다면 주머니에서 손을 빼내는 것만큼 쉬운 일이었다.
리에르의 머릿속은 갖가지 생각들로 어지러워지기 시작하였다.
리즈의 속내를 알 수 없는 것은 아르미안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고 해서 리즈가 리에르를 상대로 큰 피해를 준 적은 없었다.
노골적으로 수상한 냄새를 뿌리며 다니긴 했지만. 그것만으로 이를 갈면서 적대하기엔 설득력이 없다.
리에르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리즈의 뒤를 따라가는 수밖에 없었다.
-리즈를 믿을 수는 없어.
아르미안이 리에르에게 속삭였다.
-하지만 유치한 수작을 부리진 않아.
리에르는 에레사의 안위만이 걱정되었다. 어릴 적부터 짓궂은 녀석들이 에레사를 괴롭힐 때, 그녀의 유일한 기사는 리에르였다. 자신이 지켜야 한다. 구해야 했다.
리에르는 와이번 몇 마리만 해치우면 될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페이서스의 암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시커먼 나무들이 하늘을 가릴 듯 무성한 나뭇가지를 뻗어내기 시작했다.
어둠이 자리 잡은 곳에서 괴물들이 둥지를 만들기 시작한다.
검은 나무들은 원래부터 이 도시에 존재했던 것처럼 건물에 등을 기대고 무럭무럭 자라나 있었다.
녀석들은 사람들의 둥지 속에서 자라나는 것으로도 모자라 날카롭고 긴 가지를 쭉 뻗어내 주변의 사람들을 하나씩 낚아챘다.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축제의 열기에 사로잡혔던 페이서스는 비명과 피비린내만 진동하였다.
“오래 걸리지 않을 겁니다?”
리즈는 다소 무덤덤한 말투로 말을 건넸다.
무심해 보이는 듯한 리즈의 말투에 리에르는 기가 막혔다.
리즈의 등 뒤로 핏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붉은 촉수가 계속 펼쳐졌다. 이들의 앞을 가로막는 몬스터와 검은 식물은 전부 박살이 나버렸다.
그런 리즈를 보면서 리에르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잠깐이지만 이런 괴물이랑 싸우려고 했던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은지를 깨달았다.
‘이런 놈이랑 내가 같은 포스라고?’
아르미안은 그렇게 단정했다.
리에르는 그녀가 크게 잘못 생각하고 있다고 자신할 수 있었다.
“혹시 무섭나요?”
리즈의 말에 리에르가 되물었다.
“당신이? 아니면 저것들이?”
리에르의 대답에 리즈가 말갛게 웃어 보였다.
“너무하군요, 전 리에르 군을 돕고 있습니다.”
“정말 도와주고 싶다면 지금 이것들이 무엇인지,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설명 듣고 싶은데?”
리에르의 말에 리즈의 붉은 눈동자가 돌아보았다. 리에르는 자신도 모르게 움찔했다.
마치 뱀 앞에 놓인 개구리가 된 기분이었다.
엘빈과는 또 다른, 아니, 그와 비교도 안 되는 스산함이 느껴졌다. 곧 그 살기는 입가에 그려진 화사한 미소 속에 녹아 사라졌다.
“가이드를 원하는 줄은 몰랐군요.”
‘너 같은 가이드가 어딨냐.’
리에르의 속마음과는 상관없이 리즈가 입술을 열기 시작했다.
“이것들은 네버 에이지의 검은 숲이라 불리는 것들입니다. 천재 대마법사이자 붉은 달의 지배자, 헤임달에 폭룡은 봉인당했습니다.”
의외로 리즈의 입에서 순순히 이야기가 나왔다.
“봉인은 대를 이은 천재들의 손에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봉인은 대륙의 마지막 대마법사. 라에룬 비 그라비스틴에게 봉인이 이어졌죠.”
“라에룬…….”
왠지 리에르는 낯설지 않은 이름처럼 느껴졌다.
“움직일 수 없게 된 폭룡은 자신의 마력으로 저것을 만들었습니다. 검은 숲은 살아 있는 생명을 포획하여 양분으로 삼고서 성장하며, 다 성장한 나무는 열매를 맺습니다. 검은 숲이 열매를 맺기 시작하면 이 도시에는 길거리에서 개도 만나보기 어려울 겁니다.”
“대체 왜 그런 괴물들을…….”
“왜겠습니까? 자신을 봉인한 자의 영혼만 소멸하면 결계는 풀립니다. 가만히 앉아 기다리는 것이 폭룡에게는 맞지 않았겠죠. 말 그대로 네버 에이지. 인간이 살아 있기를 원하지 않는 놈이거든요.”
잠시간의 대화가 오고 갔을 때도 리즈의 앞에서는 검은 나무가 열 그루 이상은 부서졌다.
부서진 나무들보다 더 많은 숫자의 나무들은 사람들을 잡아먹고 있었다. 그러한 사람들을 구하고 싶지만, 리에르 자신에게는 리즈와 같은 힘이 없었다.
아무리 강력한 재능을 소유하고 있어도 부족한 경험으로는 와이번과의 전투처럼 목숨을 걸어야 할 것이다.
리에르는 분했다.
어설프게 강해졌다고. 검술 대회에서 우승했다고. 세상과 자신은 달라졌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정작 싸워야 할 때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분명 형 파에트나, 부친 로이스타라면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해서 검을 들 것이다.
아무리 예전과 힘이 달라졌다고는 하나, 아버지나 형과는 달랐다.
리에르는 처참하게 죽어가는 사람들을 애써 회피하듯이 고개를 돌렸다. 계속 보다가는 눈물 때문에 앞을 걸을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괜찮아, 리엘. 넌 아직 어려. 훗날에 힘이 생기면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을 거야. 정작 힘이 있어도 시선도 주지 않는 리즈와는 달라.
잔인한 현실을 보고 괴로워하는 리에르를 보고 그녀는 위로하였다.
정작 힘없는 생명이 사라지는 것을 가장 싫어하는 그녀로서도 파트너가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의미가 없었다.
“걱정하지 마, 아르미. 나는 영웅이 되지 못하지만, 너희 귀여운 주인은 다를 테니까.”
앞을 가로막는 나무들을 몇 차례 조각조각 내버리던 리즈는 슬쩍 고개를 돌리며 속삭였다.
-무슨 의미지?
“글쎄, 슬슬 도착이로군.”
리즈는 턱 끝으로 눈앞의 건물을 가리켰다.
유난히도 검은 나무들이 덩굴처럼 둘러싸인 건물이었다. 예전과 너무나도 달라진 모습을 보고 리에르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페이서스……. 카이샤.”
에레사를 위해서, 아니, 자신을 위해서. 그녀와 함께하고 싶어서, 그녀와 같은 클래스에 가고 싶어서 안 되는 성적에도 무리하게 진학하고 싶었던 그곳.
검술 대회의 우승 덕분에 내년부턴 카이샤 진학을 할 수 있게 된 리에르가 이런 식으로 이곳에 들어서게 될 줄은 예상도 못 했다.
-리즈, 무슨 생각이야.
“무슨 말인가, 아르미?”
태연자약한 리즈의 얼굴을 보고서 아르미안은 화가 난 목소리로 항의하듯 외쳤다.
-지금 저 안에서 지독하고 더러운 마나 덩어리가 꿈틀거리고 있어. 뭐 때문에 리엘을 저 안으로 들어가게 하려는 건데?
“아까 말하지 않았던가?”
아르미안의 항의에 리즈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러고는 귀까지 닿을 만큼 이죽거리면서 광기 어린 미소를 머금어 보였다.
“리에르 군이 원하는 장소까지 안내해 주겠다고.”
처음부터 리즈가 우호적인 일을 할 리가 없다고 생각은 했었지만, 그 정도가 지나쳤다.
경험이 없는 리에르가 갖가지 사악한 기운이 꿈틀거리는 곳에 들어가서 무사할 리가 없었다.
무엇보다 저런 곳에 에레사가 있어도 살아 있을 리 없었다. 몸의 통증 때문에 임페리얼 소드 상태를 유지하고 있던 리에르의 눈에도 어지러운 기운이 카이샤에 감도는 것이 느껴졌다.
그로서도 이런 지독해 보이는 장소에 에레사가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진 않았다.
“이것 참, 나도 참 신용 없는 사람이군요. 그렇다면 저 사람은 믿을 수 있나요?”
리즈가 고개를 저어 보이더니 리에르의 뒤편을 가리켜 보였다. 무슨 말인가 싶어 고개를 돌렸을 때 리에르에게는 구면인 남성이 당황한 얼굴로 어정쩡한 자세로 서 있었다.
“네가 어째서 여기에…….”
“너…….”
당황한 두 사람, 리에르와 티미는 서로를 잠시 멍하니 바라보았다.
“당신도 에레사 양을 구하러 왔겠군요.”
티미는 리에르를 보다 리즈의 목소리를 듣고서 움찔하였다.
에레사와의 일을 처음부터 지켜보고 있던 목격자와 연적이 함께 있으리라 생각 못 했다.
티미는 미남자가 불미스러운 일을 들추기는커녕, 오히려 덮어주는 듯한 말을 하자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아닌가요?”
“맞습니다…….”
리즈는 초승달처럼 눈을 구부리며 요염하게 미소 지었고, 티미는 얼떨결에 대답하였다.
아까 전 리즈에 의해, 그리고 갑작스러운 몬스터들의 등장에 겁을 먹고 도망간 티미였다.
그는 안전을 확보하고 냉정하게 머리를 굴렸다.
순간의 화를 참지 못하고 여자에게 손을 댄 한심함,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을 버리고 줄행랑을 친 일은 대회에서 패배한 만큼의 수치였다.
에레사가 몬스터에게 죽는다면 자신의 수치는 바깥으로 알려질 일이 없다. 하지만 수수께끼의 남성이 있었으니 죽지는 않을 거란 예감이 들었다.
티미는 사람들에게 와이번이 나타나서 학살이 벌어졌단 이야길 들었다.
그 덕분에 도시를 지키는 가디언들이 완전 무장을 한 채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고민하던 그는 결국 에레사의 안위를 확인하기 위해 다시 돌아왔다.
티미는 카이샤로 돌아오고서 깜짝 놀랐다. 잠깐 사이에 너무나 많은 것이 바뀌어 있었다. 심상치 않은 나무 덩굴이 카이샤의 건물을 감싸고 있었다.
그는 들어가는 것을 망설이고 있었다. 혹시나 아까 봤던 그 몬스터가 또 있을지도 몰랐다.
‘설마 살아 있진 않겠지?’
티미는 안타깝지만, 에레사가 이미 죽었다고 생각했다.
때마침 리에르와 붉은 남자가 같이 걸어왔다. 티미는 자신도 모르게 움찔했다.
‘만약 에레사가 살아 있다면…….’
에레사가 살아 있을 수도 있다.
‘만약 저 녀석이 에레사를 만난다면…….’
티미는 자신보다 먼저 리에르가 에레사를 만난다면 자신이 만들어놓은 커리어가 무너질 것을 염려했다.
자신은 엘리트였다. 그런 자신이 겨우 여자 문제 때문에 손가락질을 당할 수는 없었다.
“잘되었군요, 도와줄 사람이 생겼으니.”
“도와줄 사람?”
“네, 전 들어가지 않을 겁니다.”
“왜?”
“설마 엄마 손을 잡고 가야만 화장실을 갈 수 있는 타입인가요?”
리에르는 리즈의 생각을 알 수 없어 눈을 깜박거렸다.
티미는 리즈의 말에 당혹감을 품었다. 혹시 아까 봤던 남자와 다른 사람인가 생각도 되었다.
하나, 저렇게 독특한 외모를 가진 남자가 또 있을 리도 없었다.
무엇보다 붉은색 일색이었다. 잊으려 해도 잊을 수가 없었다.
‘모르는 척한다면 오히려 좋지.’
이유는 모른다. 하지만 상대가 밝힐 생각이 없다면 티미에게도 좋은 일이었다.
“이런 녀석 없어도 되는데.”
카이샤가 자랑하는 엘리트이자, 에레사의 연인인 티미를 보고서 리에르가 투덜거렸다.
혼자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무섭다. 하지만 연적과 같이 들어가는 것은 더 싫었다.
‘혼자 들어갈 생각인가?’
리에르 혼자 안으로 들어가게 되면 안 된다. 가장 좋지 않은 전개는 막아야 했다.
‘혼자 들어간다고?’
붉은 미남자는 들어가지 않고 리에르 혼자만 들어간다. 그 말을 듣고 티미는 무서운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저 남자가 없다면……. 몬스터가 있는 곳에서 사람 한, 둘 죽어도 이상할 것이 없잖아.’
그 말인즉슨, 리에르가 죽어 나오고 자신은 살아 나와도 의심받지 않는단 소리였다.
티미에게 있어 리에르는 자신의 여자를 빼앗고, 자존감을 박탈시킨 상대였다.
죽여도 시원찮을 상대였다.
또한, 리에르만 없으면 에레사를 갖는 데 아무런 장애물이 없다. 그것을 떠올린 티미의 입가에 잠시나마 비릿한 미소가 흘러들었다.
“부탁한다, 함께 가고 싶다.”
절대로 머리를 숙일 수 없는 얄미운 녀석이지만, 후일을 생각해서는 믿게끔 만들어야 했다.
티미가 고개를 숙이면서 부탁을 해오자 리에르는 내심 당황하며 거절할 수도 없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자신이 에레사를 좋아한다지만, 그녀의 애인은 어디까지나 티미였다.
그가 함께 가겠다는 것을 거절할 방법도, 거절할 이유도 없었다.
무엇보다 시간을 끌면 끌수록 안에 있는 에레사에게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없었다.
리즈는 티미의 말을 듣고선 만족스러운 듯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