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hilia Lesode RAW novel - Chapter (73)
레필리아 레소드-73화(73/398)
레필리아 레소드 73화
운명의 수레바퀴(3)
대량의 마나가 아르미안에게 전달 되었다.
시뻘건 마력이 전달될 때마다 아르미안이 웅웅, 진동음을 사방에 퍼뜨렸다.
“방패막이가 있다 해서 검으로 싸우겠다는 건가? 나를 과소평가하는 건가, 아니면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건가?”
라에룬은 그렇게 빈정거렸다. 하지만 리즈는 반응하지 않았다.
‘됐다.’
그때 라에룬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복잡한 수식 속에서 포스의 시동어를 깨달았다.
깨달음을 얻기 시작하자 골자와 구조를 한눈에 깨우치기 시작했다.
이제는 리즈와 싸울 만해졌다.
기뻐하던 라에룬은 리즈가 수상한 행동을 반복하자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리에르가 소유하던 검, 분명 에고 소드라는 무기였다.
자아가 있는 검은 사용자인 리에르에게 검술까지 사사했다.
굉장히 재미있는 무기임은 사실이지만, 이 상황에서 도움이 될 것은 없었다.
“설마 검에게 위로라도 받고 있는 건가?”
“이제 포스 분석은 끝났나요?”
“글쎄, 직접 확인해 보는 게 어떨까 싶네.”
라에룬은 그렇게 여유를 부렸다.
포스의 등 뒤에 펼쳐지는 빛의 날개는 강함의 상징이다. 몸 안에 마력을 더 이상 두르지 못해서, 몸 밖으로 분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라에룬은 리즈의 날개가 점차 줄어드는 것이 보였다.
‘지금 이런 상황에서 검에 마나를 주입할 일이 무엇이 있다는 말인가? 아니, 그 이전에 아무리 에고 소드라지만 포스의 마력을 저만큼이나 흡수할 수 있다고?’
컵의 크기보다 더 많은 물을 따르면 흘러넘친다.
하지만 에고 소드는 리즈의 강력한 마력을 꾸역꾸역 잡아먹고 있었다.
의아함은 의심을 불렀고, 의심은 경각심으로, 또다시 경각심은 경계심으로 바뀐다.
리즈는 붉은 입술을 열어 미소 지었다. 같은 남자가 보아도 요염하고 매력적인 미소였다. 라에룬은 자신도 모르게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몸이 근질거리기라도 하는가? 쓸데없는 곳에 마나를 소모하고.”
“이제 슬슬 당신을 죽일 시간이군요.”
“이 아이도 같이 죽여야 할 걸세.”
“네, 그럴 생각입니다.”
라에룬은 천연덕스러울 만큼 부드럽게 눈웃음까지 치는 리즈를 보고 코웃음을 쳐 보였다.
“무슨 생각인지 모르나, 허세는 통하지 않네.”
“허세는 당신의 주특기가 아니던가요?”
“그런가? 그럼 이건 어떤가.”
라에룬은 손안에 흑색의 구체를 생성해 내었다. 그리고 그것을 자신의 뒤편에 있던 에레사의 머리를 겨누어 보였다. 자극하면 에레사를 제거하겠다는 무언의 의미였다.
에레사는 리에르가 이상한 소용돌이를 만들어내자 두려움에 어깨가 떨려왔다.
“리엘…….”
역시나 대답하지 않는다. 에레사는 입술을 깨물었다.
분명 조금 전에는 부드럽게 웃어 보이며 말도 걸고 뺨도 쓰다듬었었다. 하지만 그것은 행동으로만 자상해 보였지, 눈빛은 타인을 대하듯이 했다.
“당신은 포스를 뭐라고 생각합니까?”
라에룬의 협박에 리즈는 눈을 감았다.
“포스를, 이 리즈를 상대로 겨우 그딴 협박을 하는 겁니까? 제 프라이드 때문에 잠자코 있었지만 치졸한 당신의 모습을 더는 참을 수가 없군요. 폭주한다면 별수 없습니다. 하지만 당신에게도 이득이 되진 못할 터.”
그 말과 동시에 리즈는 손에 들고 있던 검을 들었다.
‘설마……. 너무 자극해서 화를 돋웠는가?’
라에룬이 당황할 때, 리즈는 루비 빛 눈동자를 열었다. 그러고는 그대로 투검 했다.
강력한 마력을 잔뜩 머금은 검이 날아들었다.
무시할 수 없었다.
라에룬은 깜짝 놀라서 방어막을 준비했다.
탱!
라에룬은 겨우 투검을 막아냈다. 방어막을 여러 겹이나 쳤는데 전부 부서졌다.
‘혹시 몰라서 여러 겹을 쳐서 다행이군.’
라에룬은 한순간 오싹했다. 리즈가 진심으로 공격해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더군다나 이번 공격은 자신이 아닌, 에레사를 노렸었다.
즉, 더는 인질이 의미가 없었다.
“자네 성질 한번 뭐 같구먼.”
“내 눈 안에 감도는 진자여…….”
아예 끝장을 볼 생각인지 리즈는 시동어를 내뱉으며 허공중에 룬문자를 그려내었다.
조금 전의 공격이 무위로 돌아갔으니 라에룬에게 너무나도 유리했다.
검에는 리즈의 마나가 대량으로 들어가 있었다. 그의 찬란한 붉은 날개는 보잘것없이 쪼그라들어 있었다.
‘그에 비해 내 쪽은 멀쩡하다.’
라에룬의 날개는 아직 팽팽하게 마력을 폭발시키고 있었다.
이긴다.
라에룬의 머릿속에 확실한 단어가 떠올랐다.
그는 비웃음을 흘리며 한쪽 발로 땅에 진법을 밟았다. 그가 포스의 초월기를 시작하려 했다.
“나 부르짖노라. 파열의 열매…….”
시동어를 내뱉자 진법을 밟은 땅에서 룬문자가 그려졌다.
허공으로 솟아오르는 아름다운 빛이 서서히 모든 것을 잠식한다.
라에룬은 순간적으로 도취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때, 그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어째서 자신도 아닌 일반 여자아이 하나를 공격하는 데 막대한 마나를 소모했는가?’
상대는 리즈다.
아무 의미 없는 행동은 하지 않는다.
‘조금 전에 쳐냈던 검이 떨어지는 소리가 났었나?’
라에룬의 생각이 교차한다.
그는 리즈가 차갑게 냉소하면서 캐스팅하는 것이 보였다.
라에룬은 등 뒤로 오싹함을 느끼고 뒤를 돌아보았다.
전투 중에 뒤를 돌아다보는 것은 정말로 바보짓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그렇게 했다. 확실한 감각이 전달되었기 때문이었다.
라에룬의 등 뒤로 녹색의 긴 머리카락을 가진 여성이 에고 소드를 들고 있었다.
‘뭐?’
뒤에 있다는 것은 느끼지도 못했다.
진녹색 머리카락의 여성이 날렵한 몸놀림으로 검을 휘둘렀다.
라에룬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혼란스러웠다.
지금 환상이라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의 긴 머리카락은 녹색 에메랄드를 머금었다. 그에 어울리는 투명한 검날은 머리카락의 색을 흡수한 듯, 녹색을 은은하게 뿜어내었다.
검날은 라에룬 자신에게 찔러 들어왔다. 다급한 상황에서도 라에룬은 기적처럼 공격을 회피했다.
‘운이 좋았다.’
정말로 운이 좋았을 뿐이었다.
리에르의 몸이 운동신경이 좋았기 때문에 반사적으로 회피한 것에 불과했다.
라에룬은 무브 캐스팅을 운용하여 수인을 아슬아슬하게 맺었다. 생각지도 못한 기습은 간담이 서늘했으나, 그것을 고민할 겨를은 없었다.
녹색 머리카락의 여성, 아르미안은 다시 2차로 검을 찌르고 들어왔다. 그녀의 검은 찌르고 회수하는 동작이 마치 춤사위처럼 매끄러웠다.
빛의 잔상을 허공에 수놓으며 다가오는 검의 선은 아름답지만, 맹수의 이빨과도 같았다.
라에룬은 자신의 턱을 찌르고 들어오는 매서운 공격에 다급하게 주문을 마무리했다.
“나 외치노라, 칠흑의 안개.”
라에룬은 저절로 욕지기가 튀어나왔다. 모든 상황을 역전하기 위한 주문은 완성하지 못한 채로 출수하였다.
리즈의 주문과 맞붙기 위해 마력을 끌어모았지만, 그 이전에 아르미안에게 치명상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라에룬과 아르미안 사이에 거대한 마법진이 세로로 솟아올랐다.
검은색의 기류는 살아 있는 듯 꿈틀거리며 아르미안을 부수기 위해 날아들었다.
라에룬의 마법이 심상치 않음을 느낀 아르미안은 그대로 깃털처럼 아크로바틱으로 물러났다.
마치 곡예나 다름없이 피해낸 그녀는 자신의 매개체인 검을 땅을 박더니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았다.
녹색의 긴 머리카락과 치맛자락은 보이지 않는 기류에 펄럭이기 시작한다. 이윽고 푸른색의 섬광이 그녀를 보호하듯이 에워싸기 시작했다. 반원 형태의 에너지 방어막이 생성됨과 동시에 아르미안은 에메랄드빛 두 눈을 떴다.
라에룬은 뛰어난 검술로 자신을 위협하던 여성이 고위급 마법을 사용하는 것을 보고 당황하였다.
리즈라는 존재에 대해서만 신경을 쓰고 있었지, 검술과 마법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실력자가 등장할 것은 예상치도 못했다.
라에룬은 순간 아차, 하면서 뒤를 돌아보았다. 적은 저 미모의 여성뿐이 아니었다. 그와 동시에 라에룬의 귓가에는 리즈의 낭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 눈앞의 존재, 내 전장의 적을, 내 생각에 반하는 존재를 앗아주소서.”
리즈는 마치 지휘하듯이 허공에 수인을 그려 넣었다. 완성된 주문은 리즈의 등 뒤에서 핏빛의 커튼을 그려 넣었다.
사방은 칠흑 같은 핏물이 흐른다. 붉은색의 창들은 어지럽게 붉은 하늘을 수 놓이고, 목표를 향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붉은 창들은 라에룬을 향하여 꽂혔다.
셀 수 없이 많은 수량이 쏟아져 내리지만 단 한 발도 라에룬의 몸에 닿는 것은 없었다.
비록 완벽하진 않지만, 라에룬은 흡수할 권리를 소유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권리는 아까와는 달리, 영향력을 보이며 핏빛의 창들을 흡수해냈다.
포스의 힘이 자신을 지키는 것을 보고 라에룬은 안도했다. 그리고 드디어 차지한 포스의 힘에 광소를 터트렸다.
두 가지의 생각들이 교차하며 라에룬은 드디어 귀찮은 전투를 끝낼 시간이 왔음을 느꼈다.
“머더러의 힘도 석셔너에겐!”
안심한 라에룬이 이를 드러내며 비아냥거리는 순간, 붉은색의 거대한 채찍이 날아들었다.
라에룬은 움찔하며 뒤로 물러섰다. 그 순간 다시 한번 포스의 힘은 사용자를 지키기 위해 생성되었다.
시커먼 암흑 장막은 리즈가 만들어낸 채찍을 먹성 좋게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리즈의 마법 주문이 아직도 영향력이 있는지 핏빛의 창들은 라에룬에게 엄습해 왔다. 하지만 모든 공격은 이상 없이 흡수되고 있었다.
완벽한 방어력, 게다가 상대의 공격을 흡수함으로써 오히려 몸 안의 기운이 충실하게 느껴졌다.
‘상대의 힘을 흡수하는 것도 모자라, 오히려 힘을 증가시킨다?’
라에룬은 설마 이 정도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제3대 포스의 능력이나, 특성에 대해서 알려진 적도, 알려질 일도 없었기에 라에룬은 자신의 지식만으로 가늠했었다.
저절로 입가가 벌어지고 뭐라 말할 수 없는 희열이 벅차올랐다.
처음 강력한 마법을 습득했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기쁨. 세상을 뒤엎을 수 있을 힘이 몸 안에 끓어 넘치고 있었다.
‘무적이다.’
오랫동안 포스의 힘을 차지하기 위해 스스로를 봉인했던 세월이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이 힘이라면, 이 육체라면 능히 대륙은 물론이고 새로운 역사를 쓸 수도 있었다.
“크, 크하하하!”
라에룬의 입가가 몇 차례 씰룩이더니 이내 크게 벌어졌다.
다른 사람도 아닌 라에룬 본인이 이런 강력한 힘을 소유하게 된다면 천하에 두려울 것이 없었다.
2대 포스 리즈도, 또한 오랜 연적인 신검 로이스타까지도.
광소를 터트리는 라에룬을 향해 아르미안은 다시 검을 찌르고 들어왔다.
천하의 리즈가 하는 공격도 안 먹히는데 호리호리한 여자가 공격해 들어오는 것에 긴장할 필요도 없었다.
라에룬은 손을 들어 방어막을 쳤다. 그는 상대의 검격을 무위로 돌린 뒤에, 인간도 흡수가 통할지 시험해 보고 싶어졌다. 마법을 흡수해도 기운이 솟으니, 생명을 흡수하면 얼마나 기분이 좋을지 궁금했다.
“레소드.”
라에룬은 녹색 머리카락의 여성이 조그맣게 혼자 중얼거리는 것을 보았다.
“영식 팬텀(Phantom)!”
라에룬은 상대를 가볍게 튕기려 했던 방어막이 유리처럼 금이 가는 것을 보았다. 구멍은 균열로 이어졌고, 균열은 방어막 전체에 선을 그려 넣었다.
라에룬이 만든 방어막은 파편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것을 본 라에룬의 동공이 크게 확장되는 순간, 아르미안은 검을 잡았던 두 손을 놓았다. 그녀의 손을 떠난 검이 라에룬의 어깨를 향해 날아들자, 흡수를 권장하는 검은 홀이 그려졌다.
파지지직!
검은 기류가 번개를 뿌리면서 검과 마찰하였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라에룬은 리즈보다 더 위협적으로 덤벼드는 여성을 죽이기 위해 손을 움직였다. 이대로 이 세상에 없는 존재로 만드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라에룬이 아르미안을 겨냥하고 있을 때 이미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라에룬의 눈동자가 그녀의 형체를 찾고 있을 때, 검은 기류의 틈바구니에서 진녹색의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라에룬이 시선으로 아르미안을 뒤쫓았을 땐 이미 늦었다.
그녀는 손바닥을 뻗어 자신의 검을 밀어 넣었다.
‘위험하다.’
라에룬은 몸을 뒤로 빼면서 두 장의 날개를 움직였다.
순수한 마나로 이루어질 날개에 맞으면 보통의 사람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포스에게 있어서 가장 강력한 무기이기도 한, 두 장의 날개. 그것이 아르미안을 감싸려고 한때 리즈가 채찍을 양손으로 움켜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