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hilia Lesode RAW novel - Chapter (77)
레필리아 레소드-77화(77/398)
레필리아 레소드 77화
폭주(1)
유트는 처음 도시가 난장판이 되었을 때 다급하게 대피소로 이동했다. 대피소에 도착한 유트와 유이는 리에르의 모습을 찾았다. 하지만 리에르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 보이는 것은 갑자기 찾아온 재앙에 두려워하는 사람들이었다.
시간이 지나도 상황은 좋아지지 않았다.
리에르 모자도, 에레사도 보이지 않았다.
결국, 유트는 유이를 잠시 내성에서 기다리게 했다. 그리고 자신은 임시 가디언이 되었다.
유트는 가디언과 함께 몬스터와 맞서 싸웠다.
도망치는 사람을 상대로 트리글로다이트는 일방적인 사냥을 즐겼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정비한 페이서스 가디언이 반격에 나섰다.
티미는 가디언이 익숙하게 삼자갈나무를 공략하는 것을 보고 있었다.
기름병을 던지고 불을 붙인다. 불이 붙은 삼자갈나무가 괴롭게 울어갈 때, 일부러 거리를 벌리고 대치한다.
자신들의 모체를 지키기 위해 덤벼드는 나무 열매는 가디언에게 베어 죽었다.
티미는 유트를 슬쩍 보았다.
그의 가죽 갑옷에 괴물의 체액이 묻어 있었다. 그가 지닌 검도 벌써 여러 차례 몬스터를 벤 것으로 보였다.
‘유트는 나와 다르다고……?’
티미의 동공이 흔들렸다.
유트만 아니라면 자신은 학원 최강으로 군림할 수 있었다.
카이샤 졸업과 동시에 기사 칭호를 부여받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 자신이 어린 유트만도 못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대피소로 가면 안전할 거예요.”
“안전?”
티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자신이 모자란 것이 아니었다. 그는 이미 상상할 수 없는 괴물을 눈앞에서 보았다.
리에르. 그 악마가 온다면 이런 가디언들은 종이 쪼가리처럼 썰려 나갈 것이 분명했다.
“여기에 안전한 곳 따위는 없어……!”
티미는 반쯤 정신이 나가서 낄낄 웃어 보였다.
유트는 평소에 당당해 보였던 티미가 유약한 말을 하는 것을 보고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아무리 갑작스러운 재앙이 닥쳤다지만, 평소의 티미와는 정 반대 모습이었다.
“지금 대피소 쪽에는 칠검 기사단이 지키고 있으니 문제없어요.”
대피소에는 칠검 기사단이 도착해 있었다.
사실 페이서스 가디언이 정신을 차린 것도 칠검 기사 덕분이었다.
혼란에 빠져 있던 가디언은 속수무책으로 목숨을 잃고 있었다.
대피소에 모인 사람들도 자신들을 잡아먹기 위해 모여 있는 몬스터를 보고 겁에 질렸다.
일촉즉발의 상황.
그때 거짓말처럼 칠검의 기사들이 지원을 왔다. 이들은 내성을 공격해 오던 트리글로다이트를 싹 박살 내 버렸다.
생각지도 못한 구원자 덕분에 페이서스 가디언을 비롯하여 도시 사람들도 희망을 품게 되었다.
“칠검 기사단? 그래도 소용없어. 괴물 놈의 형이 단장인 곳을 믿을까 봐?”
“과하군요.”
유트는 티미의 말을 듣고 살짝 짜증이 밀려왔다.
아무리 머릿속이 혼란스럽다 해도 할 말과 안 할 말이 있는 법이었다.
“넌 모른다, 유트.”
“이해하고 싶지는 않네요.”
“네 친구가 날 죽이려 한다고! 네 친구는 사람이 아니야, 괴물이다……. 괴물!”
유트는 혼이 나간 듯이 중얼거리는 티미를 보며 한마디 하려다가 억지로 꾹 참았다.
지금 화를 내기보다 더 중요한 내용을 듣고 싶었다.
“리엘을 만났나요?”
유트는 티미가 정신 나가 있다 해도 상관없었다.
안 그래도 리에르의 행방이 궁금했던 차였다.
“만났지, 그래 네 친구. 그 괴물을 만났다!”
유트는 다시 한번 억지로 화를 눌러 참았다.
티미가 부상자만 아니었다면 한 대 때렸을지도 몰랐다.
“리엘을 어디에서 봤습니까? 지금 무사한가요?”
유트는 티미를 최대한 자극하지 않으며 물었다.
티미는 갑자기 흐흐, 웃으면서 유트를 보고 대답했다.
“무사? 칠검 기사단이라 해도 그것을 어떻게 상대할지 몰라. 내 애인인 에레사도 이미 녀석에게 죽었으니까.”
티미는 흐흐, 혼자 웃어젖혔다.
‘그래, 에레사를 죽인 것은 내가 아니다. 애초에 리에르라는 녀석만 아니었다면, 모든 것은 다 그 괴물 때문이다.’
퍽!
결국, 유트는 티미의 안면을 가격하고 말았다.
티미는 윽, 하는 신음을 내면서 땅바닥에 나동그라졌다. 그는 얻어맞은 덕분에 입술이 터져 피가 새어 나왔다. 그래도 입꼬리는 여전히 올라가 있었다.
“다시 한번 그딴 소릴 하면 가만두지 않습니다.”
티미는 싸늘한 표정의 유트를 보고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마치 잘 갈아진 칼날처럼 번뜩이는 모습이었다.
유트는 다시 티미를 일으켜 세웠다.
지금 당장에라도 리에르를 찾으러 가고 싶었다. 한편으론 아르미안과 함께 있으니 위험한 상황만은 피할 거라고 믿고 싶었다.
유트와 티미가 멀어지는 사이. 삼자갈나무를 태워 없애 버린 가디언은 주변에 남은 사람들이 없는지 수색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갑작스러운 몬스터의 공격에 우왕좌왕하며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런 대규모 몬스터 공격은 초유의 사태였다.
기껏해야 가디언의 일은 양아치를 잡든지, 강도와 살인자에 대한 억제력을 발휘하는 것이 전부였다.
덕분에 상당수의 가디언이 죽었다. 시민들의 피해는 상상을 초월하였다.
“하지만 저 두 사람 너무나 다르군.”
“뭐? 무슨 말이야.”
멀어지는 유트와 티미를 보면서 가디언 한 명이 중얼거렸다.
“몰라서 묻는 거야? 유트와 라이벌이던 티미 아냐.”
“방금 그 얼빠진 녀석이 아크우드 가문이라고?”
아크우드 가문은 원수를 많이 배출한 집안이었다.
군사력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곳이니만큼, 기사로서의 능력도 남 못지않았다.
티미 역시 가문의 명예를 위해 페이서스 카이샤에서 실력을 키우고 있었다. 하지만 가문의 기대와 그의 행적들은 어긋나기 시작했다.
티미 아크우드 자체의 재능과 명망이 나쁘진 않았다. 하지만 가문 대대로 맞수인 아르빈트 가문의 장남에게 형편없이 패배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괜찮았다.
이후에는 가문도 없는 고아에게 빈번히 패배했으니까.
이제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 티미는 바보라고 소문났던 리에르에게도 무참히 패배했다.
티미의 주가는 땅바닥을 나뒹굴었다.
지금 그의 모습도 형편없었다. 지저분한 것은 둘째치고, 사타구니에 자리 잡은 자국은 누가 봐도 소변 자국이었다.
“뭐, 어차피 도련님 가문이니 별수 있겠어.”
“하기야, 아크우드 가문은 기사 가문이라도 그저 겉치레에 불과하니 말이야.”
“이제 유트랑 어깨를 마주하는 것은 아르빈트 가문의 차남이니 저 친구도 끝났지.”
아크우드 가문의 기사들은 검술보다는 나라의 대, 소사 행사에 참여하는 일들이 더 많았다.
전쟁보다 행사에 많이 보이는 기사.
혹자는 장식용 기사라는 의미에서 장미의 기사라고 비꼬는 사람도 있었다.
“모두 정렬! 다음으로 이동한다!”
가디언의 조장이 부하들을 모아 다음 수색지점으로 향하기 위해 준비하였다.
몬스터의 썩은 내에 코를 막고 있던 사람들은 다행이다 싶어 안도하였다. 하지만 이제 도시는 그 어디에서도 안전한 곳 따윈 없었다.
“조장님, 그런데 저건…….”
모여 있던 부하 중의 하나가 조장의 뒤편을 가리켰다.
갑자기 일어나는 흙먼지들. 그것은 저녁노을에 부스스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조장도 잘 보이지 않는 물체 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적어도 삼자갈나무나 트리글로다이트의 형체는 아니었다.
검은 인영의 모습은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당연했다. 인간의 등 뒤에 거대한 날개가 펼쳐져 있을 리가 없다.
정확히 자신들을 향해 걸어오고 있다.
조장은 손을 들어 대원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가디언들은 활시위를 당겼다.
점점 가디언과 검은 인영의 거리가 좁혀져 들어왔다. 지척까지 다가오자 알 수 없는 불안감과 음산함이 전해져 왔다.
가디언들은 무기를 쥔 손에서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인간이 아니야.’
조장은 들었던 손을 힘차게 내렸다. 그와 동시에 숙련된 가디언들이 화살을 발사했다.
쉬리릭!
화살이 공기를 갈랐다.
퉁!
가벼운 쇠의 마찰음이 정적을 깨뜨렸다. 검은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놈의 몸에는 화살 하나 박혀 들어가지 않았다.
검은 머리카락에 앳된 청년. 온몸은 피로 칠이 되어 있어 붉은 옷을 입고 있는 게 아닐지 헷갈리기까지 하였다.
칠흑의 날개는 공포의 대마왕처럼 끝까지 펼쳐졌다.
가디언들은 그 모습을 보고 짙은 공포를 느꼈다.
검은 머리카락의 청년이 두 눈을 열자 핏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안광이 가디언들을 향했다.
“어? 리엘 아냐?”
공격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머뭇거리던 가디언 중의 하나가 소년을 알아보고 소리쳤다.
그는 검을 검집에 집어넣고서 소년에게 다가갔다.
“너도 무사했구나, 다행이다.”
사람 좋아 보이는 가디언은 검은 머리카락의 청년, 리에르의 어깨를 잡고서 흔들어 보였다.
말썽꾸러기인 청년이 이상하게 무표정했다.
가디언은 고개를 갸웃했다. 이쯤이면 반응을 보여야 하는데 말이 없었다. 그는 긴장하고 있는 대원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고개를 돌리고서 입을 벌렸다.
“이 친구 몰라요? 아르빈트 가문의 차남이잖아요. 하하. 선배가 말했던 그 번개 거북이.”
“피터!”
동료들에게 주지시켜주며 웃던 남자는 대원들의 경악한 얼굴을 보았다.
그는 대답하고 싶었지만, 입술이 잘 벌려지지 않았다. 게다가 대원들을 바라보던 시선이 이상할 정도로 낮아지고 있었다.
갑자기 몸이 붕 뜨는 부유감이 느껴졌다.
피터라고 불린 남자는 자신의 몸을 마주 보게 되었다.
‘내가 나의 몸을 마주 봐?’
피터는 지금껏 한 번도 해본 적도 없고, 할 수도 없는 일을 경험하였다.
그는 자신의 몸을 보았다. 머리가 달려 있었던 목 위로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는 핏물이 보였다.
“에렌이……. 아니야.”
“이 자식!”
가디언들은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피터의 머리가 땅바닥을 나뒹굴고, 주인 없는 몸이 비척거렸다.
가디언들이 쏜 화살이 청년을 향해 날아들었다.
청년은 피할 생각도 없이 화살을 바라만 보았다. 그 순간 날아오던 화살이 거짓말처럼 허공에서 증발했다.
가디언들은 창과 칼을 들고는 청년을 포위하듯이 에워쌌다.
“이 지역사람 같은데 뭐 하는 짓이냐!”
조장은 청년에게 소리쳤다. 역시나 묵묵부답이었다.
조장은 공포감을 느꼈다. 청년은 칼을 겨눠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있었다.
뭐 하는 짓이냐가 아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냐고 물었어야 정상이었다.
검은 청년이 가진 칠흑의 날개가 크게 부풀어 올랐다. 그는 곧 무미건조하게 중얼거렸다.
“전부…….”
가디언들은 순간적으로 검은 깃털이 눈앞에서 흩날리는 것을 느꼈다.
“……아냐.”
푹, 퍼억, 부욱!
뒤에서 보고 있던 궁수들은 경악한 눈동자를 감지 않았다. 마치 나무에서 다 익은 열매들이 떨어지듯, 동료들의 머리가 몸을 타고 핏물에 미끄러지며 땅바닥을 뒹굴었다.
검은 청년의 등 뒤로 뻗어진 칠흑의 날개는 장식용이 아니라는 듯, 한 바퀴를 훑었을 뿐이었다.
순식간에 조장과 궁수 몇 명, 그리고 운이 좋아 날개에 닿지 않은 가디언 소수만 어처구니없는 광경에 뒷걸음질을 쳤다.
조금 전만 해도 곁에서 거친 숨을 헐떡이던 동료들이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했다.
“이 괴물!”
가디언 셋이 창을 든 채로 검은 청년에게 달려들었다.
반드시 해치울 수 있다는 생각에서 뻗은 창이 아니었다. 함께했던 동료의 개죽음으로 인한 분노로 이성을 잃은 것뿐이었다.
순간 가디언 셋은 바닥에 고꾸라졌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것인가 생각했는데 상반신이 무언가에 미끄러져 바닥으로 떨어졌다.
상반신을 잃은 하반신만 몇 걸음을 앞으로 내딛다가 풀썩 쓰러져 버렸다.
“으아아아악!”
가디언들은 표현할 수 없는 공포에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상대할 수 없는 괴물.
인간의 얼굴과 몸을 갖고 있지만, 사람을 죽이면서 눈 하나 깜박하지 않았다.
검은 청년은 도망치는 사람들을 추격하는 대신에 힘없이 손을 들어 올렸다. 그것과 동시에 검은 청년을 중심으로 바닥에서 마법진이 그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