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hilia Lesode RAW novel - Chapter (79)
레필리아 레소드-79화(79/398)
레필리아 레소드 79화
폭주(3)
“말을 빌릴 수 있겠습니까?”
“말을?”
검푸른 청년은 성곽에서 사태를 지켜보다 입을 열었다. 그의 말을 들은 성의 주인, 즉 펠켄은 당황스러운 기색을 보였다.
검푸른 청년은 다시금 펠켄 영주에게 입을 열었다.
“영주님도 아시다시피 이 성은 훌륭합니다.”
“고맙소.”
“하지만 몬스터들을 상대하기엔 너무나 힘듭니다. 인간 형태의 적과 싸우기는 최적일지 모르나, 삼자갈나무가 성과 근접하게 된다면 뿌리를 박게 됩니다.”
“알고 있소. 하지만…….”
트리글로다이트 같은 인간형 몬스터는 상관이 없다. 하지만 삼자갈나무는 뿌리를 박으면 주변을 전부 오염시키는 생명체다.
“우리가 먼저 공격해야 합니다.”
“흠.”
펠켄 영주는 청년의 말을 듣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피해가 클게요.”
펠켄 영주는 무가의 자손이었지만 검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뿐만 아니라 병사들을 다루는 용병술도 부족했다. 대신에 그는 자신에게 부족한 것을 다른 사람을 등용하여 해결하는 일에 능했다.
그 자신이 전혀 검과 전쟁에는 소질이 없었기에 검을 잘 다루는 사람들을 고용했으며, 견고한 내성은 자신의 목숨을 잃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펠켄 영주는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차라리 겁이 많은 신중함이 낫다.
무훈을 세우겠다고 병사를 개죽음으로 내모는 것보단.
“검 자루는 얼마든지 있소.”
펠켄 영주의 즉답.
그것은 페이서스 가디언들을 얼마든지 데려가도 좋다는 의미였다.
“내일의 태양이 따사롭지 않기도 합니다.”
전투에는 달인이지만 전쟁은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일이었다. 더더군다나 같은 인간과 인간끼리가 아닌 몬스터와 인간의 전쟁이 아니던가?
“일곱 번째 검에 대한 위용은 음유시인의 입을 가볍게, 그리고 주머니를 무겁게 한다더군요.”
음유시인에게는 영웅의 이야기가 인기 있는 소재였다.
검푸른 청년, 파에트 아르빈트는 좋은 이야기거리가 될 수 있는 남자였다.
펠켄 영주가 전적으로 부탁한다는 의미를 파에트가 거절할 리 없었다.
물론 그 자신이 원한 일이었다.
파에트는 펠켄 영주에게 목례를 하여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는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기사단을 향해 말했다.
“칠검 기사단 전원 출정!”
정예 중의 정예.
단장의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50인의 기사단이 검을 뽑아 들었다.
칠검 기사단이 하늘을 향해 검을 찔렀다.
그와 동시에 그들이 내뱉는 함성은 듣는 이로 하여금 몸을 찌릿찌릿하게 만들었다.
삼자갈나무가 성벽에 달라붙게 된다면 보호하고 있는 시민들에게 위험이 끼치게 된다.
삼자갈나무 40그루, 트리글로다이트 200기가 전진한다.
칠검 기사단의 50인에 100여 명의 가디언이 무기를 들었다.
도시 곳곳에 아직도 몬스터가 많이 남았다.
이 전투로 향방이 좌우될 것이란 것은 누구나 알 수가 있었다.
내성의 문이 끼이익, 소리 내어 열리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가장 선두에 선 것은 파에트 아르빈트였다.
항상 전쟁의 향방을 좌우하는 독립 기사단.
험난한 전투, 지독한 길이라도 뒤따르는 50인의 기사단들은 누가 더 많이 죽일지를 내기하면서 여유로운 분위기를 풍겼다.
“어이 대장, 오늘도 내기 안 하쇼?”
칠검 기사는 위계질서 따윈 신경 쓰지 않는 말을 내뱉었다.
파에트의 부하들은 전쟁터에 서면 끓어오르는 피를 주체하지 못하는 종자였다.
왜냐하면 그들은 전쟁에서 태어났고, 전쟁에서 자랐기 때문이다.
“또 그 이상한 술집을 말하는 건가?”
파에트는 지겨울 정도로 내기를 걸어대는 부하들의 모습을 보며 미소했다.
어쩌면 내일 볼 수 없을 수도 있었다.
그들을 보며 파에트는 다시 한번 각오를 다지고 있었다.
마침 삼자갈나무들이 가지에 매달려진 열매들을 털어내기 시작하였다.
나무에서 떨어진 열매들이 앙칼진 경고음을 내뱉으며 변태를 시작했다. 순식간에 거대한 거미처럼 팔과 다리를 뽑아낸 열매들은 대지 위를 질주했다.
“이키, 익!”
트리글로다이트들도 무언가를 지시하기 시작하였다. 다른 트리글로다이트와는 다르게 거대한 핼버드를 든 녀석은 동료들을 지휘하고 있었다.
그 순간 검은 숲의 안개 속에서 숨어 있던 트리글로다이트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윽고 그 숫자는 400여 마리 이상이 되었다.
삼자갈나무 한 그루당 열매 다섯 개가 열린다.
640대 150.
그나마 다행인 것은 몬스터들이 있는 곳이 내리막길이고, 파에트가 있는 지역은 오르막길이었다.
“자네들이 한 명도 죽지 않는다에 내기를 걸도록 하지.”
수적으로 너무나 불리한 전쟁이었다.
단 한 명의 부하도 죽게 하고 싶지 않은 파에트의 심정을 대변하는 듯한 내기였다.
대장의 말에 기사들은 호쾌하게 웃어젖혔다.
“대장, 겨우 그 정도요?”
“우릴 뭐로 보는 거요. 십일검 기사대 중에 최고의 유격대를 뭐로 생각하우?”
“그런가? 오늘의 내기는 자네들에게 양보해야 갰군.”
부하들은 오늘에야말로 대장을 이기겠다며 폭소하고 있었다.
파에트는 그런 부하들의 모습을 보며 억지로 웃어 보였다.
십일검 기사단은 부대별로 특징이 있었는데 엘빈 트위아의 팔검은 돌격을, 파에트 아르빈트의 칠검은 적의 배후를 기습하여 괴멸시키는 전법을 자주 사용하였다.
자신들이 애용하던 전법을 사용하지 못한다. 그것은 칠검 부대에게 있어 크나큰 불안 요소였다.
“끄워어어어!”
포효하는 몬스터들이 전진을 해오기 시작했다. 기사들은 자신이 타고 있는 말을 진정시키기 위해 갈기를 쓰다듬었다.
‘할 수밖에 없다.’
파에트는 입술을 사리물며 절망스러운 전황을 바라봤다.
불안에 지쳐 버린 시민들은 더 도망을 치기도 어려웠다.
이번 교전에서 반드시 막아내야만 다음이 있었다.
“다치지 않은 분 중에 지원해 주실 분 계십니까!”
“화살을 더 가져와!”
“기름과 불을 더 가져와, 시간이 없다!”
내성은 곧 시작될 전투의 준비로 정신이 없었다.
어린아이와 아녀자는 전쟁을 위한 물자를 운반했다.
남성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활과 화살을 장비하고 쏘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아니, 그딴 식으로 쥐면 코앞에까지 밖에 안 나가요. 제대로 쥐고. 시위 당길 땐 아군 보지 말고!”
“새, 생각보다 시위 당기는 게 무거운데요.”
“그래야 탄력받아 잘나가죠. 마구잡이로 쏴선 안 됩니다.”
자신만 죽는 것이 아니었다. 주 전투는 가디언이 하지만, 앉아서 기다릴 수는 없었다.
저들이 죽으면 다음은 자신과 가족의 차례였다.
카에르와 카이샤에서 교육을 받은 학생들은 처음으로 겪는 실전을 위해 만전의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두려움에 떠는 이들도 있었으나, 지금은 도망칠 곳마저 없었다.
“카에르 학생이지?”
“카, 카이샤입니다.”
“그딴 건 상관없어. 너희는 이제부터 임시 가디언이다.”
“우, 우리가요?”
학생들은 당혹스러운 얼굴이었다.
“앉아서 죽겠다면 상관없다. 하지만 적어도 검 한번 쥐어보지 못한 약자들을 구하고 죽어라.”
어차피 검의 길을 가려던 사람들이었다. 학생들도 두려운 기색으로 무기를 장착했다.
“서둘러라! 갑옷 이음새를 같이 벗겨줘라.”
가디언들의 명령은 정확했다.
강철 갑옷은 방어력이 좋은 대신에 무게가 무거워 이동이 불편했다. 아울러 화살을 정확하게, 신속하게 쏘기 위해선 갑옷은 불편하기만 하였다.
갑옷의 이음새 부분을 전부 채워 넣는 것을 혼자 하기엔 곤혹스러운 일이었다. 생존율의 차이는 분명하지만, 가죽 갑옷은 이럴 때 알맞은 방어구였다.
마치 티셔츠처럼 뒤집어 입는 것이 가능한 가죽 갑옷은 시간도, 활동성도 유연했다.
먼저 가죽 갑옷을 입은 가디언은 칠검 기사를 지원하기 위하여 무기를 들었다. 그들의 주변으로 시민 지원대는 화살을 가득 채운 통과 기름통을 뒤에서 준비하였다.
그나마 강단이 있는 시민 지원단들은 무리 없이 일하지만, 대다수의 지원단은 공포에 젖어 있었다.
수없이 펼쳐진 눈앞의 몬스터들. 그것은 후들거리는 다리를 진정시키지 못하였다. 나약한 인간은 살면서 평생토록 볼 수 없을 대규모 몬스터들. 그것 앞에서 공포에 질리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칠검 기사단은 결사대처럼 내성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페이서스 가디언의 앞에 서서 검을 뽑아 들었다.
꿀꺽.
마른침을 삼키지 않는 사람이 어디에 있으랴.
파에트는 누구보다 가장 앞에 서서 말을 타고 몬스터 군단을 굽어보고 있었다.
그의 검푸른 머리카락이 묶이지 않아 서늘한 저녁노을 바람에 춤추듯이 펄럭이고 있었다. 아마 처음이자 마지막의 대전이 될 터였다.
‘이 싸움에서 승리한다면 어머니와 동생을 구하러 갈 수 있다.’
파에트는 가족에 대한 생사를 위해서라도 질 생각은 없었다.
그는 검푸른 머리카락과 망토를 펄럭이면서 검을 뽑아내어 들었다.
파에트의 검이 하늘을 찌른 채로 멈췄다. 그대로 움직이지 않을 것 같던 파에트의 검이 수직으로 낙하한다.
페이서스 가디언들의 활시위가 힘차게 당겨졌다.
내성 안에선 캐터펄트(Catapult)가 힘껏 당겨진 뒤에 쏘아 올려졌다. 덕분에 바람을 찢어놓는 파공음과 함께 불붙은 돌덩이가 유성우를 그렸다.
콰앙!
캐터펄트가 쏜 투창을 맞은 삼자갈나무 하나가 뭉개졌다.
녀석은 뭉개진 뒤에도 꿈틀거려 보였다. 하지만 사방에서 날아드는 불화살 덕분에 삼자갈나무는 고통스러운 듯 비음을 내뱉었다.
그것이 전장의 신호가 되었다. 트리글로다이트들이 창을 잡고서 앞으로 달려들기 시작하였다.
적과의 거리는 90미터.
파에트는 몬스터들의 기괴한 함성을 듣고도 반응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냉정한 눈동자로 적을 내려다보았다.
덩치 큰 몬스터들의 함성이 폭풍우처럼 몰아치자, 성안에 있는 사람들까지 귀를 틀어막고 주저앉았다.
‘조금 더 품 안에 끌어들여야 한다.’
적과의 거리 70여 미터.
파에트는 바로 근처에 대기하고 있는 모리스에게 눈짓하였다. 모리스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 보인 뒤, 40인의 칠검 기사들에게 명령하였다.
“레기온(Legion) 행대!”
유격 기사단은 숙련된 몸짓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창과 방패를 들었다.
카이트 실드라 불리는 방패는 그 이름처럼 자신의 몸을 가리며, 바로 옆의 동료까지 방어해 줄 수 있었다.
이때 가장 좋은 진형은 밀집 대형이었다.
가디언들은 카이트 쉴드에 팔을 고정하고, 2m가 넘는 스피어를 쥔 채로 대열을 갖추었다. 모리스가 손을 들어 각 부대에 명령을 하달했다.
“사수 앞으로!”
가디언들이 활을 높이 들었다.
적과의 거리 50m. 모리스의 굳게 닫혀 열리지 않을 것 같았던 입안이 벌어졌다.
“쏴라!”
당겨질 대로 당겨진 불꽃의 화살. 그것이 휘리릭, 허공을 가르며 포물선을 그렸다.
불똥을 흩날리며 날아드는 화살은 선두에 있던 트리글로다이트들에게 쏟아졌다.
“장전!”
시민 지원대들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활시위를 당겼다.
겨우 두 대밖에 없는 캐터펄트가 장전되고 있을 때, 최대한 몬스터의 공세를 막아내야만 했다.
쏟아지는 화살 비에 트리글로다이트들이 비명을 지르며 땅바닥을 나뒹굴었다.
미리 불붙여놓은 화살을 받은 궁수대는 다시 활시위를 힘껏 당겼다. 투석차가 재장전을 준비하는 동안 다시 한번 화살 비가 몬스터들에게 내려졌다.
휘릭, 투두둑!
다시 한번 트리글로다이트들이 한 줄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녀석들은 시체를 밟고서라도 달려들었다. 기세는 전혀 죽지 않았다.
적과의 거리 10m.
투석기에서 불붙은 돌덩어리가 허공을 가르자 바람 소리가 찢어질 듯 울렸다. 그리고 다시 삼자갈나무 몇 그루가 불덩어리를 얻어맞고서 나자빠졌다.
“모리스, 남은 기사들을 부탁한다.”
“서방이 밤일을 나가면 마누라는 문단속을 잘해야 하죠.”
평소 하찮은 농담을 즐기지 않던 모리스였다.
파에트는 그런 그의 말에 놀라워서 뒤를 돌아다보았다.
“내가 서방인가?”
“제가 마누라 역할을 하는 건 사실입니다.”
파에트는 실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