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hilia Lesode RAW novel - Chapter (8)
레필리아 레소드-8화(8/398)
레필리아 레소드 8화
축제(2)
페이서스 카이샤에 깊게 내리 누운 시커먼 어둠의 하늘.
그 속에서 매서운 형태를 한 반달 두 개가 떠올랐다.
아니, 그것은 반달이 아니었다.
오트리아 제국 전역을 공포로 물들게 하였고,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었던 폭룡 네버 에이지의 눈이었다.
창공에서 인간을 내려다보는 그의 두 눈은 어스름한 어둠에서 빛이 나는 반달과도 같았다.
창공에 펼쳐진 날개는 한번 저어질 때마다 페이서스의 성벽을 부서뜨릴 만큼 강력했다.
거대한 그림자를 만들어내는 공포의 상징이 인간들을 향하여 죽음을 부르는 숨결을 내뱉는다.
-파이어 브레스.
집이 무너져 내렸다.
불꽃에 휩싸인 인간은 부질없는 발버둥을 친다.
페이서스의 경비병들은 저 거대한 재난에 절망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이들에게 있는 자유는 오로지 떨리는 몸을 가누는 것이 전부였다.
그때였다.
검붉은 하늘에서 번개가 내리친다.
폭룡 네버 에이지의 날갯죽지가 찢겨 나갔다.
폭룡은 갑작스러운 타격에 방향을 잃고서 땅에 처박혔다.
그 순간 사람들의 눈에는 희망의 빛이 고이기 시작했다.
“마도사 리에르 님이 오셨다!”
리에르는 사람들의 희망과 존경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의기양양하게 망토를 펄럭였다.
폭룡은 자존심이 극도로 상했는지, 코에서 불의 숨결을 내뱉었다.
“어리석은 도마뱀이여. 페이서스의 영웅 리에르 아르빈트가 여기 도래했다. 이제 네 녀석의 사악한 행보를 마감 지을 내 이름을 듣고 두려워하라!”
마도사 리에르의 엄포에 도시의 사람들은 환호했다.
눈부신 인간들의 빛을 보면서 폭룡 네버 에이지는 겁에 질렸다.
녀석이 곧 나지막하게 중얼거린다.
-설마 그대와 같은 영웅을 만날 줄이야……. 내 목숨을 도모해야겠다.
그렇게 드래곤은 꽁지 빠지게 도망을 쳤다.
리에르는 위풍당당하게 팔짱을 끼고 호탕하게 웃어 보였다.
에레사는 자랑스러운 자신의 영웅을 향해 볼에 입 맞춘다.
“나의 영웅 리에르. 사랑해요. 쪽.”
그녀의 입맞춤을 받으며 영웅은 거만하게 턱을 추어올렸다.
* * *
-틀려.
“네?”
리에르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갸우뚱하였다.
곧이어 그녀가 한심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네가 생각하는 그 우스꽝스러운 상상력과는 많이 달라.
“…….”
‘설마 사람 마음속까지 읽는 것인가 이 검은?’
리에르는 당황스러워졌다.
하기야, 주파수를 조종해서 사람의 몸도 움직이는데, 마음을 읽는 것은 문제도 안 될 것 같았다.
리에르는 치욕감을 느끼며 목까지 시뻘게졌다.
-마나 연산법칙을 계산하고 그에 따른 자연환경의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이 쉽게 느껴지니?
“노력만 한다면야…….”
-마나의 흐름을 형상화하는 능력은 마나 연소 원칙법을 열심히 공부한 마법 학자들이나 가능하지.
“마법에 재능이 있다면서요?”
-재능이 있어도 노력을 해야지!
리에르는 그녀의 말에 실망감을 느꼈다.
-너는 딱 보기에도 머리가 나빠 보이므로 네가 상상하는 그런 우스꽝스러운 마법사는 될 수가 없어. 그런데 대체……. 드래곤을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녀의 우스워 죽겠다는 말투를 듣고 리에르는 얼굴을 숙였다.
특히 뒷말에서 언급된 드래곤이라는 단어는 수치심을 불러일으켰다.
“뭐예요! 검술에 재능은 없지만, 마법에 재능있다면서!”
-너는 마법을 공부하지도 않았잖니. 어려운 연산 능력을 해낼 수 있을 정도로 두뇌 회전이 좋지도 않고.
“그래서요?”
-손으로 만지고, 느낄 수 있는 것도 큰 재능이거든. 즉, 감각의 달인.
“그러니까……. 그게 무슨 말이냐고요!”
-쉽게 설명해 줄게. 너 정말 동물적이구나?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서 깔깔깔 웃어젖혔다.
덕분에 리에르는 자연스레 눈썹을 찌푸렸다.
결국에는 가지고 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웃음을 그친 그녀는 리에르의 삐친 모습을 보고 좀 머쓱해졌는지 온화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한번 정식으로 검술을 익혀보지 않을래?
리에르는 온화하게 빛나는 펜던트를 바라보았다.
아직 레필리아 레소드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아니, 사실 자신이 없었다.
카에르에서 배우는 기본 검술 하나도 제대로 사용 못 하는 그였다.
마검술 같은 것을 익힐 수 있을 리 만무하다.
스스로의 가능성에 대해서 의문을 가진다. 그리고 아무 이유 없이 검술을 알려주려는 호의는 의문만을 갖게 했다.
“왜 가르쳐 주시는 거예요?”
물어볼 줄 알았다는 듯이 피식, 작게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펜던트는 그녀의 음성이 울릴 때마다 윙윙거리는 잡음을 내면서 진동하였다.
-나와 함께할 파트너가 검술도 제대로 익히지 못하면 나까지 위험해지잖아.
“보통은 사용자가 위험하지 않나요?”
-가슴에 털 난 근육쟁이 대장장이들이 나를 보면서 군침을 흘리겠지.
“제가 더 위험하지 않을까요? 보통 검이 위험해요?”
-생각해 보렴. 내 몸을 뜨거운 용광로에 넣겠지. 그러고는 모루 위에 나를 눕혀놓고서……. 그 단단하고 거대한 망치로 나를…….
이미 그녀는 다른 세계로 빠져버렸다.
“말하는 검을 누가 벼리겠어요. 차라리 그것을 팔아서 호의호식하는 것이 낫지.”
리에르치고는 제법 현실적인 답안이었다.
-어쨌거나 파트너가 검도 쓸 줄 모르는 멍청이라면 내 체면이 말이 아니잖니.
리에르는 그녀의 엉망진창인 말에 실소를 머금었다.
사실 그녀가 리에르에게 검술을 가르치려는 이유가 따로 존재했다.
‘적합자.’
대자연의 흐름을 느끼는 존재.
마나와 교감하며, 정령의 숨소리를 들을 수 있는 존재.
레필리아 레소드를 익히기에는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
‘근육량은 좋아.’
리에르는 둔재라고 불리기는 하지만, 어릴 적부터 기초 훈련을 해왔기에 튼튼했다.
무엇보다 가장 적합한 것은 주파수 파장이다.
그녀와 리에르는 같은 자장과 영역 대를 지니고 있었다.
주파수 파장이 맞아야 한단 것은 매우 중요한 사실이었다.
레필리아 레소드를 가르치기 위해선 직접 육체를 조종하는 것이 간단했다.
백번 설명 듣는 것보단 한 번 보는 것이 이해하기 더 쉬운 법.
구두로 검술을 알려준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하지만 보여주는 것보다, 직접 몸에다 알려준단 것은 효과가 매우 컸다.
머리로 이해가 잘 안 된다 하더라도 훈련을 한 육체는 기억한다.
-무엇보다, 너 이외에 다른 사람은 이 검술을 배울 수 없어.
“왜요?”
-간단해. 마나를 느끼는 것은 천부적인 재능이야. 물론 마법사는 마나를 느끼지. 하지만 육체 단련이 너처럼 되어 있지는 않아.
“단련이 되어 있으면 뭐 해요. 약한데.”
리에르의 시무룩한 말에 그녀가 달콤하게 속삭였다.
-그건 나를 만나기 이전의 너겠지.
그녀는 잔잔한 목소리로 리에르에게 속삭였다.
-눈을 감아봐. 마나와 친화력을 높여 보는 게 좋을 것 같아.
리에르는 그녀의 말을 따라서 눈을 감았다.
그녀는 리에르의 주파수를 조종하여 마력을 끌어모았다.
보면 볼수록 신비한 청년이었다.
마법사가 없는 시대에 태어난 천재적인 자질.
화려한 마법 시대에도 이렇게 마나와 친화력이 높은 아이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제 눈을 떠봐.
리에르의 시야에 보이는 것은 전부 색을 띤 아지랑이처럼 변했다.
“뭐, 별다를 거 없네요.”
리에르는 갈색의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바위를 꾹 눌러보았다.
마치 호수에 돌을 던진 것처럼 파문이 일었다.
리에르는 사방에서 뭔가가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따뜻한 온기를 품은 빛이 마치 함박눈처럼 하늘에서 떨어진다.
가지각색의 마나의 덩어리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거린다.
그녀는 리에르의 손을 움직여서 마나 덩어리를 쥐었다.
탁, 풍선 터지듯이 터져나간 덩어리에서 붉은 물감이 허공에 펼쳐졌다.
-뜨거울 거야.
“네?”
화르륵!
붉은 도료 같은 것은 갑자기 불이 붙더니 공기 중에 혼자 타들어 갔다.
깜짝 놀란 리에르가 손을 떼고서 털었다.
그녀는 이번에 두 개의 마나 덩어리를 쥐게 했다.
이번엔 파란색과 갈색이다.
리에르의 손이 두 색깔을 허공을 도화지 삼아 뭔가를 그려 넣었다.
차가운 냉기가 서려지기 시작한다.
딱딱한 고체가 허공에 달라붙었다.
두 개의 물질이 혼합되자 그것은 삽시간에 얼어붙고 굳어지더니 얼음송곳으로 바뀌었다.
-쉽지?
“이게 조합이에요?”
-각 마나 덩어리는 연소점이 달라. 이 연소점을 혼합하면 네가 원하는 마법을 만들어낼 수 있지.
“그러니까…….”
-조합식이나 비율은 수십 개, 많게는 수천 개인 것도 있고. 장소에 따라 구현되는 연소점도 틀리니 사용 못 하는 마법도 있고.
수천 개나 된다는 말에 리에르는 땀이 삐질삐질 흘러나오는 기분이었다.
“사실 고백할 게 있어요.”
-응? 뭐니?
“저 공부 못해요.”
갑작스러운 그의 말에 그녀가 다시금 깔깔 웃음보를 터트렸다.
-머리 좋아 보이진 않았어.
“칭찬 감사하네요.”
-물론 술식을 외우는 사람도 있지. 그걸 흔히 마법 주문이라고도 하고, 캐스팅이라고도 하지.
“아, 그거 알아요. 황혼보다 더 어두운 자여 내 몸에 흐르는 피보다 더 붉은 자여?”
-쓸데없는 짓 안 하는 게 좋을걸. 네가 배울 것은 어디까지나 검술이니까.
그녀의 말에 리에르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주문을 외우는 것이 멋있어 보이긴 하지만, 그걸 외우는 것조차 고역일 것 같았다.
-오늘은 적응만 하고 내일부턴 제대로 된 검술을 알려줄게.
그녀의 말에 리에르는 고개를 한번 끄덕였다.
“아, 맞다. 이름이 뭐예요?”
-응?
“공주병 걸린 검이라도 이름은 있을 거 아니에요.”
-실례야.
그녀가 공주병이란 소리에 삐친 듯이 새침하게 중얼거렸다.
리에르는 하하, 웃음을 터트려 보였다.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각양각색으로 바뀌는 목소리가, 지금 그녀가 어떠한 기분인지 알게 해주었다.
어떨 때는 온화한 어머니의 목소리처럼, 어떨 때는 발랄한 친구 같은 목소리로 어떨 때는 심술이 가득한 마귀할멈 같은 말투를 사용하였다.
같이 지낸 지 이제 겨우 며칠 안 되었지만 그러한 그녀의 목소리에는 사람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마법과도 같은 것이 있었다.
이제부터 가르침을 줄 스승의 이름도 모른다는 것은 예의가 아니었다.
그녀는 미소를 짓는 듯이 대답하였다.
-아르미안. 그게 내 이름이야.
* * *
페이서스는 항구도시였다.
이곳에는 백여 년 전에 디타라는 악랄한 해적이 자주 출몰했다.
왕국의 해군도 해적 소탕에 실패했고, 번번이 당했다.
페이서스는 디타 해적단에게 온갖 약탈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때, 낡은 선단을 이끌고 온 자유 기사가 도착했다.
말이 자유 기사지, 주인 없이 떠돌아다니는 부랑배나 다름없었다.
사람들은 새롭게 나타난 부랑배에 경계했고, 두려워했다.
이때 마침 디타 해적단이 해구를 습격했다.
사람들은 비명을 질렀고, 살육을 당했다.
이때 부랑배 같은 자유 기사가 나섰다.
그는 단신으로 해구를 습격한 해적들을 해치웠다.
사람들은 예상치 못한 영웅에 환호했다.
그 사건이 있고 난 뒤, 디타 해적단이 다시 약탈이 들어왔다.
자신의 형제가 이름 모를 기사에게 도륙당한 것을 복수하기 위함이었다.
하나, 그 자유 기사는 혼자서 해적 본대를 깨부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겨우 검 한 자루로, 혼자의 몸으로 기적을 행사한 기사는 페이서스의 영웅이 되었다.
그는 환대받았다. 해적이 출몰하지 않게 되었을 때 즈음, 그는 도시를 떠났다.
사람들은 이름도 밝히지 않고, 보상도 받지 않은 붉은 영웅을 바람의 기사라고 칭하며 영웅을 기렸다.
그것이 50년 전의 이야기. 그리고 페이서스 축제 역시 바람을 일으키고 간 영웅을 그리워하는 날이었다.
“영웅을 기리긴 개뿔.”
리에르는 그렇게 내뱉었다.
“상술이잖아, 상술!”
리에르는 이 시기에 몰려오는 수많은 상인을 보면서 그렇게 중얼거렸다.
“뭐 어느 지방에나 있는 도시 전설 같은 거잖아.”
은발 머리카락의 잘생긴 청년이 빙긋 웃으면서 말했다.
두 사람은 지금 검술대회 예선전을 위해서 가고 있었다.
“긴장하지 마, 리엘.”
“긴장? 나 리에르 아르빈트야. 내가 긴장해서 그러는 것 같아?”
-심장이 왜 이렇게 쿵쾅거려? 시끄러워서 잠을 못 자겠네.
리에르는 목걸이 형태의 그녀를 보면서 눈살을 찌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