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hilia Lesode RAW novel - Chapter (81)
레필리아 레소드-81화(81/398)
레필리아 레소드 81화
폭주(5)
핼버드의 횡 공격을 막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파에트는 피하는 것을 선택했다.
부웅!
호쾌한 바람 가르는 소리가 울렸다.
파에트의 검푸른 머리카락이 검풍에 휘말려서 허공에 부유했다.
파에트는 피하는 것과 동시에 앞으로 나갔다.
핼버드를 크게 휘두른 트리글로다이트의 품 안은 빈틈투성이였다. 이 허점을 파에트가 놓칠 리 없었다.
당황한 트리글로다이트는 급하게 핼버드를 회수하였다.
녀석도 숙련된 투사였는지 방어와 공격을 절묘하게 섞은 한 수를 펼쳤다.
하나 파에트의 반응속도가 더 빨랐다.
파에트는 발을 뻗어 핼버드를 쥔 트리글로다이트의 손목을 걷어찼다. 덕분에 파에트를 노리던 핼버드가 바깥으로 튕겨 나갔다.
거의 동시에 파에트의 연계기가 펼쳐졌다.
트리글로다이트의 대장은 등골의 오싹함을 느꼈다.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한 조그만 인간의 푸른 눈동자. 그리고 번개처럼 빠른 검영이 한순간 번뜩이는 것이 보였다.
푸쉭!
녹색의 진득한 피가 덩치 큰 트리글로다이트에게서 뿜어져 나왔다.
덩치가 큰 만큼 넘어지는 데에도 시간이 오래 걸렸다.
놈은 몇 차례 비틀거리더니 뒤로 넘어갔다. 가슴팍에서 핏물이 쏟아져 나왔다.
“키익, 키잇!”
자신들의 보스가 쓰러지자 트리글로다이트들 사이에서 적지 않은 혼란이 온 듯 보였다.
녀석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눈앞에는 말도 못 할 위압감을 뿜어내는 인간이 있었다.
놈들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누구보다 강하고, 누구보다 빠르던 존재가 순식간에 제압당했다. 이들에게 있어서는 믿어지지 않는 일이었다.
일반적으로 몬스터는 그들만의 무기가 있었으며, 육체적으로 우월한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육체의 축복을 타고난 그들은 대신 문명의 이기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특성이 있었다.
자신이 강한데 굳이 무기를 만드는 데 열중할 필요가 없었다. 손가락 하나만 놀려도 적을 죽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몬스터처럼 강력한 발톱이 없어 사냥할 무기를 만들었다. 그것은 진리이며 이치였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은 그 진리가 거부당하는 순간을 목격하고 말았다.
피해는 컸지만 적어도 300기의 몬스터들이 있었다. 하지만 개체적으로 독단이 강한 습성이 있었다.
이족보행 하는 개체 중에서 인간 이상의 협동력을 지닌 존재는 없었다.
트리글로다이트들이 네버 에이지의 충실한 종이 된 이유는 강력함에 굴복했기 때문이다.
지금 이들은 검푸른 머리칼의 미청년에게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도저히 상대할 수 없는 존재는 신으로서 숭배하는 것이 원시의 법칙. 트리글로다이트들이 더 이상 덤비지 못하고 뒤로 물러서기만 했다.
파에트는 한숨을 내쉬었다.
큰 치명상은 없었다. 하지만 계속된 전투 속에서 피로가 쌓이고, 데미지가 축적되었다.
조금 전의 덩치 큰 트리글로다이트도 언뜻 보면 쉽게 쓰러뜨린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파에트는 자신의 목숨을 걸고서 도박한 것에 불과했다.
상대가 조금만 더 빨리, 조금만 더 강하게 내려쳤더라면 목이 떨어진 것은 자신이었을지도 몰랐다.
어쨌든 적이 공격해 오지 않으니 파에트로선 숨을 가다듬을 시간이 주어졌다.
하지만 그 천금 같은 시간도 그리 오래 유지되지는 않았다. 감정을 느끼지 않는 나무의 열매가 거미 같은 다리를 움직이며 파에트를 에워싸고 있었다.
움직임이 어찌나 잽싼지 도망갈 새도 없이 포위진이 완성되었다.
파에트는 헛웃음을 흘렸다. 위험한 상황에서 웃음이 터진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얼마 전에 자신을 퇴폐업소로 끌고 가기 위해 부하들이 벌인 작전이 떠올랐다.
‘쓸데없는 작전을 짜서……. 실전에서 써먹게 되겠군.’
나지막한 파에트의 중얼거림을 유언이라고 생각했을까?
나무 열매들이 커다란 톱니를 들이대며 파에트에게 달려들었다.
파에트는 가장 먼저 달려든 나무 열매를 뛰어넘었다.
나무 열매를 딛고서 파에트는 유유히 포위망에서 빠져나왔다.
우르르 몰려 있는 나무 열매들을 향하여 파에트가 검을 가로로 휘둘렀다.
툭, 타악!
마치 공기가 찬 봉지가 터지듯이 소음을 뿌리면서 나무 열매들이 체액을 뿌렸다.
목표를 한순간 놓친 녀석들이 다시 파에트를 향해 달려들 때 그의 뒤편에서 화살들이 날아들었다.
정비를 다 끝낸 기사단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몬스터들의 눈으로 보았을 때 인간은 특징 없이 생겨서 전부 똑같아 보였다.
파에트 한 사람에게도 눌린 트리글로다이트들이었다.
파에트와 똑같이 생긴 인간들이 늘어났다. 당연히 기가 질릴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가디언은 파에트의 위용을 보고서 사기가 잔뜩 올라가 있는 상태였다.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여 대피하는 시민들. 그중에는 카에르, 카이샤의 학생들이 남아서 무기를 들고 있었다. 그 숫자는 자그마치 이 백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파에트 하나에도 수없이 죽었는데 그 숫자가 자신들과 비슷해지자, 트리글로다이트들은 뒷걸음을 시작하였다.
게다가 자신들을 호령할 우두머리도 이미 차가운 시체로 변한 상태였다. 이제는 감정 없이 움직이는 삼자갈나무 40그루만이 계속 내성을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모리스!”
“전부 불화살을 준비하라.”
모리스는 기다렸다는 듯, 뒤편에 대기하고 있던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겁에 질린 트리글로다이트들은 이제 적수가 아니었다. 정말 무서운 것은 삼자갈나무였는데, 이 녀석들은 불에 약할 수밖에 없는 몸을 타고났다.
거대한 뿌리를 발처럼 땅을 딛고서 걸어오는 삼자갈나무를 향해 기사와 가디언들은 기름을 먹인 불화살을 겨눴다.
“사수 앞으로!”
삼자갈나무는 불꽃이 일렁이는 것을 보고 급하게 열매를 털어내었다.
“키잇, 키잇!”
아까보다 더 많은 숫자의 열매들이 꿈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리스는 하늘 높이 올렸던 깃발을 땅바닥을 향해 내려치며 외쳤다.
“쏴라!”
이제 전쟁터도 완전한 어둠 속으로 잠식되어 갔다. 불꼬리를 길게 늘어뜨리는 화살이 허공을 갈랐다.
툭, 타닥.
바닥에 쑤셔 박힌 화살들이 땅에 불꽃을 일으켰다. 나무 열매들은 깜짝 놀라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툭, 툭.
나무의 몸통에 화살이 쑤셔 박혔다.
나무는 화살 그 자체의 데미지는 받지 않는다. 하지만 불꽃이 만들어낸 뜨거운 혓바닥이 전신을 핥아대자 고통스러워했다.
우두머리를 잃고, 상대의 저항에 밀리자, 트리글로다이트들이 전장에서 이탈하기 시작하였다.
처음부터 통솔력이란 것은 찾아볼 수 없는 녀석들이었다. 통솔력의 중심이었던 대장이 죽은 이상 각기 판단에 따라 도망치는 것을 선택하였다. 하지만 아직 끝난 것은 아니었다.
“멍청한 놈들!”
목 없는 기사, 듀라한이 도망치는 트리글로다이트를 친히 베었다. 그 광경을 본 트리글로다이트는 도망치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굳은 듯이 섰다.
“네놈들의 앞에 있는 것이 누구냐!”
듀라한이 고함을 질렀다.
“내가 누구냐!”
트리글로다이트가 자신감을 얻은 듯이 목 풍선을 부풀리며 환호했다.
“왕께서 인간의 목숨을 원하신다! 왕께서 자신의 사슬을 끊으라 명하신다!”
삼자갈나무가 잎사귀를 흔들면서 사기를 북돋는다.
으스스한 기운이 주변에 가득 메워지기 시작했다.
“내 새로운 머리통은 저 인간의 것이 좋겠군!”
듀라한은 파에트를 가리켰다. 그가 타고 있는 유령마가 투레질을 하자 기사들의 말이 겁에 질려 울부짖었다.
갑자기 도망가려는 말을 진정시키기 위해 기사들이 진땀을 빼기 시작했다.
“온다!”
다시 몬스터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기껏 만들어놓은 역전의 발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쏴라! 세금 도둑 소리 듣기 싫으면 밥값을 해라!”
성주도 가디언을 호령하며 불화살을 쏘았다.
불붙은 삼자갈나무가 평지에 몸을 뒹군다.
을씨년스러운 저녁의 밤하늘 아래, 자신의 몸을 태워 만드는 불꽃의 춤사위가 사방팔방으로 번진다.
“재장전!”
모리스의 외침에 이제는 제법 익숙한 손놀림으로 가디언이 활시위를 당겼다.
“쏴라!”
두 번째로 불화살이 밤하늘을 유성우처럼 수놓았다.
압도적으로 많은 수의 적들을 상대로 승리했다고 생각했을 때 이변이 일어났다.
불붙은 삼자갈나무가 허우적거렸다.
자신이 만들어낸 열매도 짓밟고, 동료끼리 몸을 부딪쳤다.
불붙은 삼자갈나무는 제자리에 뿌리를 박았다. 그러고는 마치 땅에 엎드리는 것처럼 고개를 꺾었다.
타악!
그때 둔탁한 소리와 함께 놈들의 몸에서 시커먼 것이 쏘아졌다.
수십 그루의 나무들이 차례대로 뭔가를 대포처럼 쏘았다.
탄알은 포곡선을 그리면서 기사들의 머리를 지나 내성 안으로 떨어졌다.
쿵! 쿠구궁!
요란한 소리와 함께 내벽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비명이 울려 퍼지자 파에트가 다급하게 명령했다.
“각 조장은 가디언과 안으로, 남은 기사들은 나와 함께 성문을 지킨다!”
가디언 조장급은 내성을 돕기 위해 움직였다. 조금 전 삼자갈나무가 투하한 물체가 보였다.
물체는 나무 열매처럼 몸을 부르르 떨어 보였다.
거미처럼 긴 팔, 다리가 놈의 몸에서 튀어나왔다. 녀석의 등 쪽에서 촉수가 뿜어지기 시작했다.
촉수는 땅에 단단히 박혀 들어갔다. 그것은 곧 뿌리처럼 주변을 잠식했다.
불화살이 만들어낸 긴 궤적선.
그것을 본 은색 머리칼의 청년이 조급함을 느꼈다.
“유이……!”
날이 어두워져 정확히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검은 나무들이 꿈틀거리고, 병장기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내성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는 의미였다.
대피소에는 여동생 유이가 있었다.
“티미 선배, 달리죠.”
“나, 나는…….”
다급해진 유트의 말에 티미는 몸을 부르르 떨어 보였다.
리에르에게서 느꼈던 공포의 기억들이 몸 곳곳에 각인되어 있었다. 아직은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유트는 난색을 표했다. 그렇다고 그가 용기를 낼 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었다.
“급해서 먼저 가겠습니다. 뒤따라 오세요.”
“나, 난……!”
유트는 티미를 두고서 혼자 움직였다.
어쩌면 자신도 저렇게 한심한 모습으로 살아갈 수도 있었다.
십 년 전 그날.
그들에 의해 유트의 세상이 전부 무너졌다.
원수를 보고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자신과 동생을 위해 희생되었던 사람을 떠올린다.
겨우 이런 곳에서 죽을 거라면, 그 지옥에서 빠져나오지도 않았다.
그 악몽은 마치 어제 꾸었던 것처럼 생생했다.
만약 유트에게 유이가 없었다면 그 공포에 무력감을 느끼고 무릎을 꿇었을지도 몰랐다.
유트가 과거의 각인을 떠올릴 때, 또 다른 곳에서도 각인을 새기게 될 청년이 걸어오고 있었다.
하늘에 수 놓인 불똥을 보고 칠흑의 청년이 텅 빈 눈동자를 열었다.
검은 청년이 걸어오는 뒤쪽은 온통 피보라였다. 그가 걸어오는 길에 살아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죽음을 부르는 사신.
마치 그런 단어가 어울릴 것 같은 몰골이었다.
아름다운 금발 머리카락으로 미소를 짓는 에레사가 보였다.
한시라도 빨리 그녀를 구해야 했다.
자신의 소꿉친구. 첫사랑.
여러 가지로 점철되는 단어를 떠올린다.
검은 청년은 서서히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사랑스러운 그녀가 위험했다. 하마터면 그녀가 죽을 뻔했다.
그녀를 구하기 위해서는 이 도시를 침범한 괴물들을 몰아내야만 했다.
검은 청년의 시야에는 두 그룹의 괴물들이 보였다.
내성을 차지하기 위해서 움직이는 더러운 도마뱀 무리와 썩은 나무가 있다.
또 한쪽에는 내성을 지키는 악마 같은 괴물이 핏빛 나는 창칼을 휘둘러댔다.
검은 청년의 눈동자가 서서히 이채가 서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