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hilia Lesode RAW novel - Chapter (89)
레필리아 레소드-89화(89/398)
레필리아 레소드 89화
흑막(5)
지이이잉!
거대한 굉음이 공기를 비틀며 사방을 난타했다. 아르미안은 급하게 수인을 다시 맺으며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안티 실드(Anti Shield).”
검에서부터 녹색의 물결이 치솟으며 네모난 장막을 세웠다. 이내 찢어진 보호막을 녹색의 물결이 감싸 안았다. 하지만 멈추지 않는 카르샤의 전격은 고열을 내면서 밀고 들어왔다.
‘무슨 놈의 공격이.’
아르미안은 브레스 어택의 강력함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상대가 본체가 아닌 인간 형태였기에 과소평가했다.
과소평가의 대가는 두 번의 보호막을 꿰뚫고 있었다.
결국, 아르미안은 땅에 박아두었던 검을 갖고 몸을 피했다. 굉음과 함께 아르미안이 있던 자리부터 뒤쪽까지 나선형의 전격이 모든 것을 분해했다.
압도적인 마력을 보고 아르미안은 미간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미리 몸을 피한 아르미안에게 피해는 없었으나, 카르샤는 자신만만하게 팔짱을 낀 채로 코웃음을 쳤다.
“겨우 그 정도로 나와 맞서?”
“어머, 저도 아직 제힘을 되찾은 건 아니거든요?”
“나도 본체의 힘을 반도 안 썼어.”
카르샤는 벼르던 상대가 나타나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엘 파실드를 배신한 아르미안.
카르샤는 인간이자 초월자인 엘과 지기이며 연인이었다. 그런 그를 거듭 배신하고, 나락으로 빠뜨린 상대를 좋아하려야 좋아할 수가 없었다.
카르샤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그녀의 뒤로 마력이 드래곤의 형태를 갖춰가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고 아르미안은 풉, 웃음을 터트리며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엘은 잘 있어요?”
“더러운 것이 무슨 낯짝으로 엘을 찾아?”
“어머, 한때는 함께했던 사람인걸요.”
“엘이 너 따위를 기억이나 할까? 어비스의 창부님.”
“창부라니, 명예훼손 아니에요?”
두 사람은 갑자기 말싸움으로 변질되기 시작했다. 그런 두 사람의 뒤편에서 리에르는 비척거리며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카르샤와 아르미안, 두 여자의 기운이 충돌하고 있는 그 순간 리에르의 시야 안으로 무언가가 보였다.
짧은 머리에 건장한 체격. 호남의 얼굴을 한 남성이 부서진 건물 잔해 속에서 기어 나오고 있었다.
‘티미.’
금발의 아리따운 여성 에레사, 자신의 첫사랑을 죽여 버린 남자.
리에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카르샤의 공격으로 몸은 만신창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도 리에르는 다시 붉은 눈동자를 열어 보였다.
죽이고, 죽이고, 죽여 버리고 싶은 그 얼굴. 그 모습을 발견하는 순간 리에르는 환희마저 느꼈다.
“그런데 왜 말로 이러실까, 좋은 주먹 내버려 두고?”
카르샤는 주먹을 불끈 쥐고서 앞으로 내밀어 보였다. 겉보기엔 가녀린 팔이지만, 실체는 드래곤이었다.
일반 격투로 붙어도 아르미안 정도의 상대는 몇이나 찢어 죽일 만한 힘이 있었다.
아르미안은 카르샤의 도발에 생긋, 미소로 답했다.
“도망갈 시간을 벌려고요.”
“뭐?”
아르미안의 말에 카르샤는 짐짓 당황하였다. 분노로 이성이 멀었고, 복수 할 생각에 설레어 앞을 보지 못했었다.
아르미안이 서 있는 바닥에는 어느새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다.
공간이동 마법진.
아르미안은 카르샤와 힘 싸움을 하면서 언제든 도망칠 수 있도록 마법진을 그려 넣고 있었다.
워낙에 단순무식한 카르샤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기에 가능한 행동이었다.
“너!”
카르샤가 당황하여 아르미안에게 훌쩍 뛰어들었다. 하지만 그보다 아르미안의 시동어가 더 빨리 시전되었다.
“공간이동.”
카르샤가 달려오기도 전에 아르미안과 리에르의 몸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갈라진 틈으로 그 두 사람의 인영은 분자형태로 나뉘면서 사라져 버렸다.
“안 돼!”
“안돼에에!”
카르샤와 리에르 두 사람이 동시에 비명을 질렀다.
카르샤는 서드 포스를 붙잡을 기회를, 리에르는 에레사의 원수를 눈앞에서 놓쳤다.
티미는 리에르의 붉은 눈동자와 마주쳤다. 살의로만 번뜩거리는 리에르의 붉은 안광에 과거 한심했던 얼굴은 없었다.
티미는 숨을 쉬는 것조차 잊어버렸다. 그가 다시금 사타구니에 축축하고 뜨거운 기분을 느꼈다.
리에르의 모습은 분자가 되어 사라졌다. 떨면서 주저앉아 있던 티미는 경직되었던 입가가 천천히 벌어지기 시작했다.
‘살았다. 난 살았어!’
티미는 죽을 뻔했던 순간에 리에르가 사라지자 안도의 숨을 내쉬며 기뻐했다. 이제 모든 것을 잊고서 어제와 같은 자신이 되어 살아가면 되었다.
이 모든 것은 하룻밤 악몽에 불과하다며 티미는 스스로 설득했다.
기뻐하는 티미와는 달리 카르샤는 아아, 하는 탄식을 내뱉었다.
신중하게 결계를 치고, 도망칠 수 있는 경우의 수를 전부 생각했어야 했다. 하지만 카르샤는 증오스러운 아르미안이 눈앞에 나타나자 감정 조절에 실패했다.
괜한 욕심 덕분에 아르미안과 세 번째 포스마저 놓쳐 버렸다.
카르샤는 엘이 이 사실을 알면 얼마나 실망할 것인지 떠올리곤 자책했다.
* * *
모래바람과 함께 분자가 되어 사라졌던 아르미안은 다시 원래의 모습이 투영되었다. 카르샤에게서 안전하게 도망온 아르미안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카르샤는 지혜롭기로 소문난 블루 드래곤 종족이었다. 하지만 사랑에 빠져 눈이 어두워진 암컷은 한심하게 퇴화하게 마련이었다.
아르미안은 조소를 품었다. 자신이라면 그런 감정을 더 영리하게 사용할 터였다.
‘그래, 나는 우스운 감정 따위에 빠지지 않지.’
아르미안은 그렇게 되뇌며 눈앞에 아른거리는 리즈를 떠올렸다. 이윽고 그녀는 그의 모습을 지워내기 위해 머리를 저어 보였다.
오로지 자신 하나만 바라보던 붉은 머리카락의 미남자. 한 번 자신에게 봉인을 당한 남자.
사랑을 잊지 못하고 불나방처럼 달려오던 그 한심한 남자의 최후가 머릿속에 그려졌다.
아무리 포스라고 하여도 봉마 주문에 당한 이상 살 가망이 없었다.
온전히 자신만 바라보는 꼭두각시가 되었다면 계속 함께할 수 있었을 터였다.
강력한 힘과 아름다운 얼굴을 가진 붉은 미남자가 아깝다.
하나, 자신의 소유로 하기에는 그 남자는 너무 강했고, 너무나 머리가 좋았다.
“티……미이……!”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리에르가 포효했다.
눈앞에서 원수를 놓친 리에르는 끊어진 체력에도 불구하고, 몸 안에 마나를 한 점 남김없이 폭발시키고 있었다.
리에르의 루비색 눈동자는 아르미안을 직시하였다. 그는 표출되는 분노와 원망을 감추려 하지 않았다. 그런 리에르의 눈동자를 보면서 아르미안은 흔들리는 눈동자를 굴렸다.
“미안, 리엘을 지키기 위해선 어쩔 수가 없었어…….”
활화산처럼 타오르는 리에르의 검은 화염. 그 화염의 앞에 선 아르미안은 리에르의 뺨을 양손으로 감싸 안았다.
그녀의 애절하고도 서글픈 눈동자가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촉촉한 눈물이 흘러내렸다.
“리엘은 내 곁에 있어 줘야 하잖니?”
흔들리는 아르미안의 눈동자를 보면서 리에르의 붉은 눈동자가 천천히 진정되기 시작하였다. 그와 더불어 몸을 태우는 검은 화염도 바람과 함께 허공에서 사그라졌다.
“에……렌…….”
리에르의 눈동자 속에 아름다운 금발 여성이 웃음을 짓고 있었다. 너무나도 그립고 따뜻한 그녀의 잔영에 리에르의 붉은 눈동자가 천천히 젖어 들었다.
“그래…….”
아르미안은 젖은 눈동자로 천천히 리에르의 얼굴로 다가갔다. 리에르의 말라붙은 입술에 그녀의 촉촉한 입술이 포개지기 시작하였다. 감미로운 혀는 리에르를 열기 위해 부드럽게 움직이고, 그의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너에겐 이제 나밖에 없어.”
아르미안의 눈동자는 언제 눈물을 보였냐는 듯이 냉혹하게 웃음을 짓기 시작했다.
* * *
Epilogue
그들이 눈을 떴을 땐 이미 모든 것이 끝나 있었다.
파에트는 살아남은 부하들을 바라보았다. 지치고 상처 입은 기사들은 동료의 무덤을 만들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함께 웃고 떠들던 사람들. 그들이 사용하던 검은 묘비요, 그들의 피는 남은 이들의 눈물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들이…….’
파에트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움켜쥐면서 고개를 떨어뜨렸다.
순수하기만 했던 동생이었다.
그런 그에게 이런 학살이 가능하다는 현실이 이해가 가질 않았다. 더군다나 친형인 자신도 알아보지 못했었다.
파에트는 리에르가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란 것은 알고 있으나, 원인은 알 수 없었다.
“파엘 형.”
유트는 파에트가 걱정스러운지 옆으로 다가왔다.
천만다행으로 유이는 무사했다.
리에르가 내성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유이는 사람들을 따라 대피해 있었다. 덕분에 유이는 몸도 마음도 상처 입지 않았다.
누구보다 리에르와 친했던 유트는 마을에서 벌어진 학살을 보고 정신이 무너질 것만 같았다.
파에트 역시 반쯤 넋이 나간 상태였다. 그는 이번 전투로 인해 아끼는 부하들을 거의 잃어버렸다.
사실상 파에트가 이끄는 칠검 기사단은 이제 존재하지 않게 되어버렸다. 무엇보다 파에트는 친동생을 지키지도, 붙잡지도 못한 것을 괴로워하고 있었다.
“너에게 듣고 싶은 이야기들이 많을 것 같다. 들려줄 수 있겠니, 유트?”
착 가라앉은 파에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누군가의 소중한 사람이었을 고깃덩어리들이 보였다.
피비린내 속에서 대지를 가득 메운 사람들의 통곡이 끊이질 않았다.
한낮의 비극.
세 번째 포스의 탄생을 알리는 피의 향연. 그것들을 뒤로한 채, 유트는 가슴에서 밀려드는 슬픔을 애써 가라앉혔다.
유트 역시 이런 참변이 이해가 가질 않았다. 갑자기 실력이 급성장한 리에르. 그리고 그의 곁을 지키던 마법검 아르미안.
아울러 갑자기 악마처럼 돌변하여 사람들을 학살하며 즐거워하는 친구.
유트는 자신할 수 없었다.
리에르는 정말 좋은 친구였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그가 좋은 사람이었는지, 자신이 아는 그 리에르가 맞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리에르뿐만 아니라 그 무엇도 믿을 수가 없었다.
유트가 파에트와 대화를 나누는 중에도 도시가 입은 피해와 생존자에 대한 보고가 계속 들려왔다.
몬스터 군대에 대한 피해도 만만치 않았지만, 칠흑의 날개를 펼친 악마에 대한 보고가 계속 들려왔다.
유트의 꽉 쥔 손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들었나? 이건 이미 나의 손에서 벗어난 문제다. 동생과 친구이기 이전에 그 녀석은 악마가 되었다. 내가 모르는 그동안의 리엘에 대해서 자세히 알려다오.”
파에트는 당장에라도 소중한 동생을 이렇게 만들어버린 존재를 찢어버리고 싶었다. 바로 눈앞에서 학살을 벌인 동생을 보았다. 그 흉수를 멈추지 않은 채, 자신의 목을 노린 동생을 전혀 의심하질 않았다
유트는 천천히 무거운 표정으로 입을 열기 시작했다.
“녀석은…….”
“리에르 그 녀석에게 내 애인이 죽었다. 난 녀석과 치열하게 싸웠지만 이미 괴물이 된 녀석에게 역부족이었지. 빌어먹을, 난 내 여자 하나 지키지 못한 한심한 놈이야.”
유트는 흐느끼는 목소리를 듣고서 시선을 돌렸다.
티미는 한쪽에서 되는대로 지껄이고 있었다.
유트는 지금 이 지경이 되었어도 친구에게 우정이 남는 자신이 신기하기만 했다. 마치 희극배우라도 된 듯이 호소하는 티미를 두들겨 패고 싶었다. 하지만 그에 앞서서 유트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유트는 파에트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내용을 하나하나 털어놓기 시작했다.
파에트는 놀라지도, 당황하지도 않고 모든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단 한 톨의 이야기라도 동생을 구할 단서가 있을지 몰랐다.
파에트는 세세히 듣고, 간간이 질문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유트의 자세한 이야기로도 모든 상황을 추리하기엔 부족했다.
“나머진 내가 조사해 보겠다. 고맙다, 유트.”
“…….”
이후 파에트는 칠검 기사단장직에서 내려오게 되었다. 애초에 갈 곳 없는 이들을 위해 만들었던 유격기사단이었다.
그 의미를 잃은 단체는 더 이상 파에트가 있을 이유가 존재하지 않았다.
파에트는 직위에서 내려온 후, 동생에 대한 소문들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리에르는 온갖 괴소문만 무성했지만 단 한 가지 정확한 것은 있었다.
동생은 이제 평범하게 살아갈 수 없는 중범죄자였다. 그리고 적혈의 악마라는 호칭으로 공포의 대상이 되어 있었다.
유명세를 탄 리에르 덕분에 대륙의 신검이자, 십일검 기사 대장이었던 로이스타는 해임이 되었다. 아무리 로이스타의 업적이 크지만, 중죄인의 아버지라는 호칭은 매섭고 따갑기만 했다.
무엇보다 무소불위의 권력자였던 로이스타. 그런 인물을 끌어내릴 수 있는 유일한 약점을 간신들이 놓칠 리 없었다.
로이스타의 실각 이후에도 아레스트 영지는 크고 작은 영지전에서 승리하며 약진하였다.
몸뚱이를 부풀린 아레스트는 결국 아렌으로 이름을 바꾸어 국가 선포에 성공하였다. 하지만 아렌 왕국의 시작은 순조롭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국왕의 죽음.
무력과 정치력을 동시에 가진 강력한 지도자를 잃은 아렌은 혼란이 가중되었다.
겨우 열일곱에 불과한 제이미는 야욕이 가득한 왕정에 혼자 남게 되었다.
오트리아 제국은 분열되고, 분열되어 대륙은 전국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각 영지에서 왕국을 선포하며 크고 작은 나라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혼란의 시대를 맞아 각 나라는 변화의 물결을 맞아들이고 있었다.
대륙은 큰 전쟁을 예고하듯, 검은 그림자가 밀려들고 있었다.
봉인이 풀려 활동기에 접어든 폭룡 네버 에이지. 그리고 적혈의 악마라고 불리는 학살자 리에르.
또 다른 곳에선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 * *
“당신에겐 평화로운 일상을 소유할 권리가 있습니다. 정말로 이대로 우리를 따라오는 건가요?”
백발의 남성은 온화한 얼굴로 미소하듯 중얼거렸다. 그의 뒤를 따르는 금발의 여성은 재차 확인할 필요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가는 길에는 어떤 위험이, 어떤 불행이 닥칠지 알 수 없었다.
그것을 알면서도 이미 큰 불행을 경험한 금발 여성은 험난한 길을 택했다.
“함께한 지도 일 년 이상 되었는데 아직도 묻는 건가요?”
탐스러운 긴 금발이 단발로 바뀐 여성.
에레사는 스무 살이 되자 예전의 앳된 얼굴 대신 성숙한 아름다움을 소유했다. 이제는 제법 처녀티가 나는 얼굴로 웃는 에레사를 누군가가 뒤에서 껴안았다.
“같은 여자가 일행에 있으니 난 좋은걸.”
푸른 머리칼의 여성. 카르샤의 말에 백발 남성은 겸연쩍게 웃어 보였다.
“리엘을 만나기 전까진, 절대 안 돌아가요.”
굳은 의지가 담긴 눈동자.
백 마디 말보다 더 많은 의미를 담겨둔 것 같은 그녀의 모습에 엘은 한숨을 쉬어 보였다.
“정말 저와 다니는 여성들은 기가 세군요.”
“지금 나 들으라고 한 소리야, 엘?”
두 사람의 투덜거림에 에레사는 입가를 가리고 살포시 웃어 보였다. 비극이 있던 그 날.
일 년 전 되살아 난 그녀가 듣게 된 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
에레사는 평범한 여성에 불과했다. 하지만 갑자기 생긴 동료들이 하나같이 비범했다.
남성은 비극의 영웅, 백색 위정자 엘 파실드였다.
여성은 맹약의 드래곤, 카르샤였고.
전부 하나같이 역사서에 나오는 영웅들이었다. 그런 이들의 입을 통해 들은 리에르의 이야기는 에레사를 놀라게 했다.
세 번째로 등장한 포스. 그것도 다시 돌아오기 어려운 선을 넘어서 악마가 되어 버린 리에르는 세상의 적이 되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피의 향연으로 불리는 페이서스의 비극은 에레사를 세상에 혼자 남게 했다. 집에 있던 부모님은 에레사를 기다리다가 사고에 휘말려 죽음을 맞이했다.
에레사는 가족도, 소중한 사람도 자신의 곁을 떠나 절망스럽기만 하였다. 하지만 엘과 카르샤의 입에서 들은 정보들을 조합했을 때, 미쳐 버린 리에르를 다시 되돌릴 수 있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었다.
에레사의 죽음이 키워드가 되어 폭주한 리에르. 그의 시작을 만든 것이 에레사였다면, 그것을 되돌리는 존재 역시 에레사였다.
‘리엘…….’
그가 너무 많이 보고 싶었다.
하고 싶은 말들도 많았다.
바로 옆집에 살았기에, 항상 같이 지냈기에 할 수 없었던 생각과 말들. 지금이라면 왠지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제 곧 만날 수 있을 거란 기대. 에레사는 성인이 된 리에르를 하루라도 빨리 만나고 싶었다. 그리고 하루라도 빨리 그를 안고 싶었다.
‘꼭 찾으러 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