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hilia Lesode RAW novel - Chapter (91)
레필리아 레소드-91화(91/398)
레필리아 레소드 91화
외전 베리타스의 혼(2)
“살인마라도 친구는 친구라는 건가. 부럽네, 나도 그런 친구가 있었으면.”
티미는 자못 대단하다는 듯이 감탄하는 시늉을 했다. 그의 패거리들은 이죽거리며 입꼬리를 추켜올려 보였다.
“하기야 꼴에 친구라고 너만 안 죽였다지? 도와주러 온 기사들은 전멸했다던데. 좋겠어, 친구 덕에 목도 붙어 있고.”
유트는 티미의 비아냥을 듣고 눈빛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런 살기를 느끼지도 못한 티미와 친구들만 낄낄거리며 비아냥을 토해냈다.
“오, 오빠.”
유이가 유트의 표정을 보고 당혹했다.
유트는 짐을 내려놓고 티미 패거리들에게 달려들었다.
퍽!
유트의 발차기가 티미의 얼굴을 정확하게 걷어찼다.
티미는 의자와 함께 뒤로 넘어갔다. 갑작스러운 사태에 티미 패거리들은 제대로 반응하지 못했다.
유트는 뒤로 넘어간 티미의 가슴을 발로 짓눌렀다.
“컥!”
티미는 생각지 못하게 연타로 얻어맞자 신음만 토해냈다. 그제야 옆에 있던 멧돼지는 유트를 향해 양손을 벌리며 달려들었다.
“이 미친 새끼가!”
유트는 재빨리 발을 거둬들였다. 그러고는 달려드는 상대의 양팔을 붙잡고 제자리에서 뛰어올랐다. 유트의 무릎이 상대의 턱을 올려쳤다.
퍽!
유트의 무릎에 맞은 녀석은 입에서 피를 토하며 나동그라졌다.
“이 자식, 미쳤냐!”
그것이 신호가 되어 티미와 함께 있던 남자들이 유트를 향해 달려들었다.
주변에 있던 여학생들은 꺄악, 하는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섰다. 다대일의 일방적인 공격 속에서도 유트의 발차기에 몇 놈이 땅바닥을 나뒹굴게 되었다.
퍽!
유트의 등 뒤를 누군가가 걷어찼다. 자세가 잠시 허물어졌던 유트는 상대를 확인하지도 않고 뒤돌려 차기로 상대를 날려 버렸다.
다른 한 녀석이 유트의 안면을 주먹으로 강타하였다.
유트는 비릿한 피 맛이 느껴지는 입술을 훑지도 않고서 상대의 콧등을 가격했다.
코를 움켜쥔 상대의 손 틈 사이로 붉은 피가 흘러나왔다.
유트는 멈추지 않고 상대의 복부를 가격했다. 덕분에 또 한 명의 상대가 숨도 못 쉬고 나자빠졌다.
“죽어, 이 자식아!”
어느새 일어난 티미는 자신이 앉아 있던 의자 다리를 붙잡고서 유트를 강타했다. 나무로 만들어진 의자 다리가 파편이 되어 주변에 날아갔다. 그와 동시에 유트의 은발이 붉은 물감처럼 물들기 시작했다.
잠시 몸이 흔들리는 유트를 보고, 티미 패거리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한꺼번에 달려드는 상대 덕분에 유트는 쓰러졌다. 쓰러진 그는 곧 밟히기 시작했다.
“감히 네가 선배를 쳐?”
“예전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개자식아!”
욕설과 구타가 난무했다.
“그, 그만둬!”
유이의 외침에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오빠의 위기를 본 그녀가 무기가 될 만한 것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그녀는 긴 나무막대기를 보고 덥석 집었다. 눈에서 불을 켜고 달려들려고 할 때, 누군가가 어깨를 잡았다.
깜짝 놀란 유이가 상대의 손을 잡고 엎어치기를 시도했다. 하지만 불행히도 상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유이는 무안함과 당혹감에 큰 눈망울을 굴리며 고개를 들었다. 그때 긴 검지가 유이의 미간을 꾹 눌러 보였다.
“인상을 쓰고 있으면 귀여운 얼굴이 망가지잖아요.”
유이는 상대의 느끼한 말투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상대는 붉은색 후드를 눌러쓰고 있어서 얼굴이 자세히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갸름한 턱과 여성스러운 붉은 입술은 고혹적으로 보였다.
붉은 로브를 둘러쓴 남성은 유이의 앞을 지나 유트를 둘러싼 패거리에게 걸어갔다. 이방인이 가까이 다가오는 것도 모르고 유트를 공격하는 녀석들은 흥분된 채로 있었다.
티미는 거만하게 턱을 올린 채 이를 드러내 보였다. 그는 코피를 훑다가 얼굴색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자신들에게 가까이 다가오는 붉은 로브의 남자. 그 사내에게서 풍겨오는 기운은 범상치가 않았다. 그것은 티미에게 익숙한 공포를 머금게 했다.
‘서, 설마……!’
붉은 후드 안으로 타는 듯한 붉은 머리카락이 보였다. 그리고 매혹적인 붉은 입술을 보는 순간, 티미는 심장이 얼어붙는 듯하였다.
붉은 남성은 별로 힘들이는 것도 없이 앞을 가로막은 남성들을 툭툭, 떠밀었다. 분명 겉으로 보기엔 상대의 어깨에 먼지라도 털어주는 듯한 가벼운 손짓이었다.
그런데도 붉은 남자의 손길에 닿은 남성들은 그대로 졸도했다.
유트를 공격하던 패거리도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혹했다.
유트는 눈꺼풀을 적시는 핏빛 장막 속에서 수수께끼의 남성을 올려보았다.
퍽, 탁.
붉은 남성의 가벼운 손짓에 패거리들이 순식간에 나자빠졌다. 쓰러진 채 부르르 경련을 일으키는 동료들을 두고 티미는 뒷걸음질을 시작했다.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나타나는 악몽. 그것은 살아 움직인 채로 긴 검지를 들어 보였다.
“우리는 인연인 것 같군요.”
티미는 자신에게 말을 거는 상대를 보고 침을 꿀꺽 삼켰다. 후드를 눌러쓴 붉은 남성의 눈동자가 야생동물처럼 안광을 흩뿌렸다. 이미 티미의 패거리들은 대다수 거품을 물고 혼절했다.
구경하던 여학생들도 자신들에게 피해가 있을까 봐 슬그머니 빠지기 시작했다.
웬만한 상대라면 한번 싸워보기라도 했다. 하지만 티미의 골수까지 각인되어 있는 붉은 공포는 사람을 무력하게 만들었다.
티미는 자존심이고 체면이고 다 집어던지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전력 질주로 두 팔을 흔들면서 뛰는 뒷모습은 우스꽝스럽기 그지없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여학생들은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다행히도 괴한은 여성들에게 관심이 없었다. 그리고 줄행랑치는 티미에게도 관심이 없었다.
붉은 남자는 긴 다리를 굽혀 유트를 바라보았다. 유트는 자신과 얼굴을 마주한 남자의 눈을 보았다. 루비를 박아 넣은 것 같은 붉은 눈동자는 온기 따위는 없었다.
붉은 남자. 리즈는 유트를 보면서 손을 내밀어 보였다. 유트는 그의 성향을 잘 느끼고 있었다.
상대에게 친절이란 것을 기대할 수 없었다. 하지만 유트는 무슨 생각에선지 그의 손을 받아 자리에서 일어났다.
“누구인지 묻지 않나요?”
리즈는 붉은 입술을 열어 미소를 흉내 냈다. 유트는 그의 말을 듣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누구신지 알아야 하나요?”
“그렇군요. 당신은 도망가지 않나요?”
이상한 문답이었다.
“도망가야 하나요?”
“아니요, 당신은 그럴 필요가 없겠지요.”
리즈는 후드를 벗으며 작게 웃었다. 피처럼 붉은 머리카락이 자유롭게 바람을 맞아 넘실거렸다.
여성처럼 매끄럽고 단아한 흰 피부에 어울리지 않는 루비 빛 눈동자.
유트와 유이가 가진 눈동자와는 전혀 달랐다. 입은 웃어도 눈은 웃지 않았다.
그냥 미친 사람이라고 하기엔 눈빛이 너무나 진지하고 섬뜩했다.
그냥 농담이라고 하기엔 비소를 머금은 입술은 흔들리지 않는다.
“당신이 가진 힘이 말해주지 않나요? 저와 함께하라고.”
리즈의 말에 유트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상한 문답과 이상한 말투를 사용하는 사람과 길게 봐야 의미가 없었다.
유트는 가볍게 목례를 하고 그를 지나쳤다.
“오빠!”
유이는 유트에게 다가와 부축했다. 그와 동시에 자신의 오빠를 공격한 남자들의 머리를 꾹꾹 밟는 것도 잊지 않았다.
유이의 조그만 발에 차이는 녀석들은 아직 정신이 남았던 모양이었다. 밟힐 때마다 꿈틀거리며 숨넘어가는 신음을 내뱉었다.
“베리타스의 힘은 동생에게 더 강력하게 깃들었군요.”
리즈의 말 한마디에 유트의 발걸음이 멈췄다. 햇볕을 반사하는 아름다운 은색 머리카락.
그것은 검붉은 피와 먼지로 뒤섞여 있었다. 잘생긴 유트의 얼굴도 약간의 붓기가 있었다.
하지만 눈빛만은 죽지 않았다. 유트는 리즈를 바라보며 잔잔한 살기를 뿜어냈다.
“오빠…….”
유이도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끼고 유트의 허리를 꼭 붙들었다. 유이의 크고 둥근 눈동자는 공포로 인해 젖어 있었다.
한동안 잊고 지냈던 단어였다. 그 단어를 굳이 떠올리려 하지 않았다. 그것 때문에 자신이 겪은 비극은 되돌릴 수 없었다.
“안심하세요. 퍼뜨릴 생각은 없으니깐요.”
리즈는 입술에 검지를 갖다 대며 중얼거렸다. 음산한 분위기를 가진 정체불명의 사내. 유트는 자신의 뒤로 숨은 유이를 감싸며 긴장감을 드러냈다.
유트는 식은땀이 흘렀다.
상대에게 조그만 틈이라도 보인다면 기습을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상대에게는 단 하나의 허점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강력한 살기와 위압감은 유트의 등을 오싹하게 했다.
유트 남매는 상대의 의도를 알지 못하므로 섣불리 반응하지 못했다.
무엇이라고 정확하게 말하기는 어려운 존재감. 주변의 모든 것들이 회색으로 칠해져 있다면, 유일하게 붉고 화려하게 칠해진 존재감을 가진 남자였다.
“역시 리에르 군의 친구군요.”
리즈는 유트를 보고 만족스럽게 미소했다. 리즈는 자신을 앞에 두고도 도주와 전투를 준비하는 존재는 처음이었다.
유트는 상대의 입에서 갑자기 친구의 이름이 나오자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유트를 부축하고 있던 유이마저 어깨가 흠칫하였다.
유이는 리에르가 폭주한 모습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지겹도록 들었다.
살아 있는 사신. 광기를 부르는 칠흑의 날개.
유이가 알고 있는 리에르는 바보 원숭이였다. 바보같이 호들갑스럽고, 바보같이 한심하고 바보같이 솔직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오빠의 처음이자 유일한 친구였다.
그 바보 같은 리에르가 학살자가 되었다는 말은 믿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겪은 유트의 파리한 얼굴은 거짓이 아니란 것을 증명하는 거로 보였다.
그렇기에 유이는 애써 리에르의 생각을 하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그의 이름이 나오자 눈가가 핑 도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리엘을……. 압니까?”
유트는 조심스럽게 피가 말라붙은 입술을 열었다.
리즈는 유트의 물음에 만족스럽게 웃으며 부드럽게 속삭였다.
“아주 잘 알지요. 당신이 모르는 그에 대해서도.”
리즈는 대륙에 나타난 세컨드 포스였다. 살인하지 않으면 지독한 목마름으로 고통을 겪었다. 그런 그가 자신에게 있어 여명과도 같았던 존재를 위해 영웅을 만들려 했다. 하지만 그는 아르미안의 존재를 잘못 알고 있었다. 또한, 리에르 역시 잘못 알고 있었다.
계획은 생각지 못한 변수로 인해 무참하게 무너졌다. 유일한 안식처였던 곳은 더 이상 없었다.
복수. 리즈에게 남은 것은 단 하나뿐이었다.
자신을 배신한 아르미안의 몰락.
리즈는 그녀가 계획하고 원하는 것을 철저하게 부술 생각이었다.
“새로운 무대 속의 주인공이 되어 주셔야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리에르가 살아야만 했었다. 대륙의 역사가 만들어지고 뒤바뀌는 것은 영웅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인간이 해낼 수 없는 일을 해내는 인간. 영웅이라는 거북한 단어에 대해서 형태를 이루어내고, 떠올리게 할 만한 그릇이 필요했다.
왕의 힘을 가진 아이가 있어요.
리즈는 엘 파실드를 수호하는 맹약의 드래곤을 떠올렸다. 카르샤의 푸른 눈동자는 리즈에게 새로운 인물을 추천하였다.
유트 로사리오. 아니, 사실 그 아이의 성은 페브리안입니다.
페브리안 가(家).
진실을 꿰뚫는 힘을 가졌다는 일족이었다. 리즈도 그들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상대의 거짓을 알아본다.
그들은 상대의 생각을 깨닫는다. 그들은 거짓을 굴복시키는 왕의 힘을 지녔다.
하지만 세월의 흐름에 따라 그 피도 옅어졌다.
“하지만 오히려 진해지는 사람도 있군요.”
리즈의 눈앞에 있는 남매는 일족 전성기 시절의 잠재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어디로 갈 겁니까?”
“그걸 왜 궁금해하지?”
유트가 유이를 감싸며 물었다.
리즈는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저와 함께 가시죠.”
리즈는 그렇게 말하며 친절하게 손을 내밀었다.
“당신이 본래 있어야 하는 자리로 돌아갈 수 있게 돕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