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set Life of Regression Police RAW novel - Chapter (1038)
띵동! 띵동!
집 안을 울리는 초인종 소리.
2층 테라스에 선 전도광 전 대통령이 저택 대문을 무심히 응시한다.
-전화를 받을 수 없어…….
귓가에 댄 핸드폰이 뜨거워짐에도 전화를 받지 않는 사장, 민영수를 비롯한 자신의 수족들.
끝난 것일까. 정말 이대로 끝나버린 것일까.
쾅쾅쾅!
“아, 아버님! 지, 지금 밖에 경찰이…….”
손을 들어 며느리의 입을 막은 전도광의 눈빛이 서늘히 가라앉는다.
“그럴 순 없지.”
이대로 끝낼 순 없다. 그럴 수 없다.
이 나라를 위해 얼마나, 어떻게 노력해 왔는데 저 불충한 무리들 때문에 다 포기해야 한단 말인가.
“이 모두 너희가 자초한 일이다.”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진 전도광이 누군가에게로 전화를 건다.
-오! 이게 얼마 만입네까!
“오랜만이오, 이상벽 원수.”
전도광이 대통령이었던 시절, 북한의 육군 중장이었던 인물.
그리고 자신과의 밀약을 통해 원수까지 올라간 인물.
“내 부탁할 것이 있어 전화를 했소.”
-전 통령 동무가 말입네까? 호, 은혜를 갚으란 말이디요? 뭡네까?
“연평도와 철원을 초토화시켜 주시오.”
쿵!
큰며느리가 경악하지만 전도광의 눈빛은 흔들리지 않는다.
더 큰 추악함으로 번들거린다.
이것만이 자신이 살길이다. 대한민국이 전쟁의 화마에 휩싸여야 자신이 살 수 있다.
전도광은 상대의 대답을 가만히 기다렸다.
-……이자가 참 많이 불었습네다.
“대답은?”
-남조선엔 파산 면책 제도란 게 있디요?
쿵!
“이보시오, 이 원수!”
-미안하디만 내래 파산을 해야갔시오.
얼마 전 러시아에서 공문이 내려왔다. 앞으로 1년간 한국을 향해 포대를 겨눈다면, 지원은 모두 끊길 것이라고.
또한 로마노프에서 연락을 해 왔다. 만약 한국을 도발할 시 앞으로 러시아산 기름과 가스, 식료품 등을 받을 생각을 접으라고.
“러, 러시아? 로, 로마노프?”
-이 한목숨이야 내일 당장 눈을 뜨지 않아도 이상치 않다 해도 가족들 목숨은 지켜야 하디 않갔소. 그럼 전화 끊갔소.
“이 원수! 이 원수!”
애타게 외쳐 봤지만 되돌아오지 않는 답.
전도광이 다급히 다른 곳에 전화를 건다.
“큼. 시마타마 막료장. 잘 지냈소?”
전 해상자위대 해상막료장, 대한민국으로 치면 해군참모총장에 해당하는 인물.
-……전 통령 때문이었구려.
쿵!
“무, 무슨……?”
-얼마 전 미국이 강력하게 경고해 왔소. 당분간 한국을 도발한다면 재미없을 거라고.
너무도 갑작스럽고 뜬금없으며 이해할 수도 없는 경고에 내각 총리뿐만 아니라 전 자위대가 뒤집어졌다.
그런데 이제야 알겠다.
전도광이 미국에 밉보인 것이다.
-거기다 지금 클린턴 국무장관이 한국에 있다지요?
“…….”
-다케시마 도발은커녕 해양 경계선조차 넘을 수 없으니 그런 줄 아시오. 끊겠소.
전도광이 멍하니 핸드폰을 바라본다.
‘정말 끝이라고? 정말……?’
아직 한 곳이 남아 있긴 하다.
중국.
그런데 중국도 의미 없을 것 같다는 위기감이 든다.
그 순간이었다.
콰직!
귓가를 울리는 미세한 파열음.
“아, 아버님! 저, 저기……!”
경고를 마친 경찰들이, 종혁이 문을 강제로 열며 저택 안으로 들어오고 있다.
흙먼지가 가득한 구둣발로 정원을 뭉개며 저택을 향해 다가오며 눈을 마주친다.
‘뭘까.’
저놈은 뭔데 저렇게 철천지원수에게나 지을 법한 눈빛을 보내는 것일까.
왜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하나는 확실했다.
“끝났구나…….”
헛웃음을 터트린 전도광이 담배를 찾아 불을 붙였다.
* * *
한편 저택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테라스에 선 전도광과 눈을 마주친 종혁이 이를 악문다.
“자, 잠깐. 함부로 들어오시면…….”
“최재수. 강현석. 임세라.”
왼손을 앞으로 내밀고, 오른손을 허리춤으로 돌린 채 다가오는 전도광의 경호원들, 아니 피 냄새를 진하게 풍기는 살귀들.
“회사와 같은 부류다. 그냥 죽여.”
“충성-!”
타닥!
“이런 씨발!”
꽈아앙!
기겁하며 칼과 권총을 꺼내 드는 경호원들의 모습에 선제공격을 하는 그들.
종혁은 느릿하게 쓰러지는 그들을 지나쳐 저택 안으로 들어간다.
“자, 잠시만! 여기가 어딘 줄 알고…….”
콱! 콰아앙!
앞을 막아서는 웬 남정네의 머리를 잡아 벽에 처박아 버린 종혁은 거침없이 2층으로 올라간다.
그러자 테라스에 서서 등을 보이던 전도광이 느릿하게 몸을 돌려 이쪽을 응시하려 한다.
“개새끼.”
쾅!
바닥을 박찬 종혁이 전도광의 배에 주먹을 욱여넣는다.
뻐어어억!
“커허어어억?!”
일그러지는 전도광의 얼굴처럼 종혁의 얼굴도 일그러진다.
이대로 척추를 부러뜨려 죽여 버리고 싶다.
심장을 터트리고, 대갈통을 부숴 버리고 싶다.
하지만 그럴 순 없다. 그래선 안 된다.
이놈은 살아야 한다. 살아서 무조건 법정에 서야 한다.
그동안 이놈의 탐욕 때문에 살해당한, 피해를 입은 모든 이들의 울분과 한을 받아 내야 한다.
그러나 폭력의 공포를, 이놈에게 당한 이들의 고통을 영혼엔 새겨 주리.
종혁의 주먹이 전도광의 양 발등을 향해 내리찍어진다.
꽈앙! 꽈아앙!
“끄아아아악!”
발등이 박살 났으니 무릎을, 무릎을 박살 냈으니 허벅지를.
갈비뼈를, 양 손목을, 팔꿈치를.
종혁의 주먹과 발이 잘근잘근 세심하게 짓밟는다.
“끄어어어어.”
종혁이 오징어가 된 전도광의 얼마 없는 머리채를 잡아 들어 올린다.
“으아아아악!”
“어디 범죄자 새끼가 가오를 잡으려고 해?”
“네, 네놈……!”
영혼이 비명을 지르는데도 한 줄기 반항심이 남아 노려보는 전도광.
종혁의 눈빛이 한없이 차가워진다.
“전도광, 당신을 범죄단체 조직 및 살인, 살인 교사, 사기 교사 등의 혐의로 체포한다. 당신을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고, 법정에서 불리한 진술을 거부할 수 있다. 또한 이번 체포가 부당하다 생각될 시 체포구속적부심을 신청할 수 있다. 이의 있냐?”
“네, 네놈이 이걸 증명할 수 있을 것 같으냐-!”
자신은 대한민국의 대통령이었던 인물이다.
또한 이미 회사와의 관계를 끊어 놓은 이상 감히 경찰 따위가 이럴 순 없었다.
“아, 그래?”
피식 웃은 종혁이 그의 머리채를 잡은 채 몸을 돌려 1층으로 내려간다.
쿵! 쿵! 쿵!
“으아아악! 아아아아악!”
몸부림조차 칠 수 없어 더 끔찍한 고통.
그 고통이 잠시 멎은 건 1층 끝 방에, 그의 서재에 도착했을 때였다.
쿵!
‘여, 여길 왜?’
종혁이 고통조차 잊을 만큼 놀라는 그를 비릿한 눈으로 쳐다본다.
“재산이 82만 원이 전부라고?”
쿠웅!
아니다. 경찰이, 저놈이 여기를 알 리가 없다.
“최재수, 방금 전 며느리를 데리고 와.”
“예!”
후다닥 달려 나간 최재수와 현석이 전도광의 큰며느리를 포박해 데려온다.
“꺄악! 왜, 왜 이러세요! 겨, 경찰이면…….”
쩍!
종혁이 뺨을 맞고 놀라 굳는 그녀의 머리채를 잡아끌고 온다.
“지금 당신에겐 두 가지 선택권이 있어. 하나, 이곳에 있는 당신 시아버지 전도광의 비밀 금고를 직접 열어서 양형의 선처를 바란다. 둘,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범죄자 전도광과 한패로 엮여 청송여자교도소에서 40년, 시베리아에 있는 러시아 교도소에서 100년, 미국 최악의 교도소에서 200년을 산다.”
죽고 죽어 백골이 진토 된다 해도 340년은 바깥의 공기를 맡지 못할 그녀.
“나, 난……!”
“큰아가! 안 된…….”
빠아악!
“끄아악!”
“아가리 싸물어.”
종혁은 잠시 놓았던 그녀의 머리채를 다시 잡았고, 파랗게 질린 그녀의 눈이 피투성이가 된 시아버지에게로 향한다.
눈물, 콧물 다 흘리면서도 간절히 고개를 젓는 그.
이 집안의 왕이자 황제이며 폭군이었던 시아버지.
그가 왕좌에서 떨어져 거지꼴로 구르고 있다.
“……이, 이거예요.”
“큰아가-!”
쿠르릉!
큰며느리가 서재에 꽂힌 책 중 하나를 잡아당기자 책장이 앞으로 밀려난다.
그와 동시에 안에서 뿜어져 나온 끔찍한 냄새.
“우욱?!”
“웩?!”
헛구역질을 한 사람들이 비밀 공간 안쪽을 보며 눈을 동그랗게 뜬다.
사람 시체가 썩는 냄새보다 더 지독한 냄새의 주인공이 바로 돈이었기 때문이다.
“이, 이게 뭐야……. 이, 이게 어, 얼마야…….”
책장 너머로 드러난 거대한 공간.
그 안을 원화는 물론이고, 달러, 위안, 엔, 유로, 루피, 루블 등 세계 각국의 화폐가 탑처럼 쌓여 가득 채우고 있다.
이건 그동안 전도광에게 당한 국민들과 피해자들이 흘린 피눈물이 썩는 냄새며, 추악하다 못해 끔찍한 탐욕의 냄새다.
결코 인세의 것이 아닌 냄새.
종혁은 이제 낯빛이 검게 죽은 그를 보며 입술을 비틀었다.
전도광의 사후 가족들을 통해 알려지게 된 연희동 자택의 비밀 금고.
“이것만 해도 탈세에 국민 우롱이지.”
그동안 그가 저지른 비리에 대한 증거기도 하다.
“어디 이것도 변명해 봐.”
이번에도 변명을 한다면 이빨을 모두 뽑아 버리리.
이빨을 잡는 종혁의 행동에 전도광은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대한민국과 전 세계를 우롱했던 거악이 잡히게 됐다.
* * *
웅성웅성!
“나, 나온다!”
“헉?! 저, 저게 뭐야!”
대기하고 있다 놀라는 기자들의 외침에 종혁이 화창한 봄 하늘을 바라보며 담배를 문다.
찰칵! 치이익!
“후우우.”
담배 연기를 길게 뿜은 종혁이 미간을 좁히며 주먹을 쥔다.
마치 오랜만에 담배를 피우는 것처럼 몽롱해지는 정신과 몸.
또각또각!
“이제 끝났네요.”
“수고했습니다, 최.”
정말 수고했다.
그동안 종혁을 곁에서 지켜봤던 그들이기에 입에 담을 수 있는 진심이었다.
“앞으로 할 일은 생각해 보셨습니까?”
모든 게 끝났으니 이젠 전보다 더 건설적인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터.
종혁은 일단 쉬고 이야기하자는 듯 걱정부터 눈에 담는 그들의 모습에 고개를 젓는다.
“아니요.”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
이 끝없는 분노와 살의가 계속 타오를 수 있게 만든 원료, 원수가 아직 남아 있다.
최성현이 아직도 살아 숨 쉬고 있다.
“아.”
“가시죠.”
진짜 마무리를 하러.
종혁의 전신에서 살의가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 * *
콰과광! 콰과광!
‘대장, 도망가!’
‘그동안 고마웠어, 대장.’
“허억!”
기겁하며 눈을 뜬 최성현이 사방을 향해 권총을 겨눈다.
어둠에 잠겨 있는 작은 여관방.
퀴퀴한 냄새가 몽롱한 정신을 다시 현실로 끄집어낸다. 어젯밤의 일을 더 생생하게 기억나게 만든다.
“끄윽!”
다 살 수 있을 거라곤 언감생심 꿈도 꾸지 않았다.
그러나 이렇게 다 죽어 버릴 거라고도 생각지 않았다.
등을 떠밀던 뜨거운 손길이, 귀를 떠밀던 후회 없는 음성이 그의 눈시울을 태워 버릴 듯 달군다.
삐비빅! 삐비빅!
놀라 핸드폰을 본 최성현의 눈이 서글퍼진다.
“후우우…….”
‘그래, 가자.’
세상에 버림받았던, 회사에게도 버림받았던 동료들이 이어 준 삶이다.
애도는 해외에 나가서 해도 충분했다.
짐을 챙겨 일어선 그는 여관방을 나섰다.
“일어났어, 대장?”
코끝을 스치는 알싸한 담배 연기.
최성현은 여관 앞에 서 있는 네 명을 보며 씁쓸히 웃었다.
“미안. 아무래도 다 잡혔나 봐.”
아니면 죽었거나.
“……가자.”
입술을 깨문 최성현들은 발을 내디뎠다.
그들이 준비한 탈출 수단을 향해.
이 새벽에도 배가 떠나고 들어오는 인천항을 향해.
뿌우우웅!
“어으! 들어가면 잠부터 좀 자야지.”
“술 마실 사람?”
“나.”
곧 있으면 해가 떠오를 늦은 새벽, 모자를 눌러쓴 채 거대한 화물선 앞에 선 최성현이 동료들의 대화에 피식 웃다 잠시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본다.
이제 앞에 있는 계단을 밟으면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대한민국.
참 많은 것을 주고 빼앗은 대한민국.
그 마지막 풍경을, 마지막 공기를 한껏 들이마신다.
‘안녕.’
안녕이다.
이젠 다시 올 일이 없을 한국을 마지막으로 바라본 최성현은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그때였다.
펑! 펑펑펑!
투두두두두두두!
순간 대낮처럼 밝아진 주변과 멀리서 날아오고 있는 헬기 소리.
그리고…….
“수고했어요, 종 회장님.”
“흐헤헤. 이거야 기본 아닙니까!”
“가 봐요. 다칩니다.”
“옙!”
툭!
가방을 내려놓은 최성현이 몸을 돌린다.
그런 그의 눈에 화물선 위와 사방을 점거한 채 이쪽을 향해 총을 겨누는 FBI, CIA, SVR 요원들이 스쳐 지나가다 결국 종혁에게 멈춰 선다.
“대, 대장.”
아무래도 여기까지인 것 같다.
최성현은 총과 칼을 꺼내 들며 종혁을 향해 걸음을 옮겼고, 종혁은 이쪽으로 다가오는 최성현을 고요히 바라본다.
그 순간 바람이 바뀌며 최성현의 뒤에서 바람이 불어온다.
쿵!
“……큭큭.”
맞다. 이 냄새다.
수백 번 죽는다 하여도 결코 잊을 수 없는 독특한 냄새.
절간의 향냄새 같기도 하고, 비에 젖은 나무 냄새인 것 같기도 한 냄새.
“원래 등잔 밑이 어두운 법이라고, 다른 항구를 뒤지고 있을 줄 알았는데 말이야.”
수천 번 죽는다고 해도 결코 잊을 수 없는 목소리다.
-그러게 덮으라고 할 때 덮었어야지. 그러면 제 어미도 죽지 않았을 텐데.
그 증오스럽고도, 증오스러운 목소리다.
감히 해 준 것 하나 없이 고생만 시킨 어머니를 죽이고, 자신마저 죽인 그 목소리의 주인이다.
“정말…… 너 맞구나?”
종혁의 얼굴에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이 번진다.
혹여나 애꿎은 사람을 죽일까 억누르고 억눌러 놓았던 살의를 완전히 해방시킨다.
콰우우우우!
마치 액체처럼 진득하게 넘실거리다 못해 뚝뚝 떨어지는 살의의 공간에서 종혁이 발을 내딛는다.
핏발 선 눈에서 터져 나온 피눈물이 최성현을 응시한다.
“단 한 번도 잊지 않았어.”
아침에 눈을 뜰 때도, 씻는 와중에도, 밥을 먹는 와중에도, 다른 범죄자를 때려잡는 와중에도, 축배를 마시는 와중에도, 잠을 청하는 그 순간까지. 꿈에서조차도.
장장 16년 동안 이렇게 만나기를 기다리고 기다렸던 놈이다.
“넌 모를 거다.”
혹여 착각한 건 아닌지, 자신이 실수로 죽이진 않았을지.
그동안 얼마나 마음을 졸이고 졸였는지.
이렇게 만날 날을 고대하며 같잖은 수작에 어울려 주느라 얼마나 괴로웠는지.
아무것도 모를 거다.
“뭔 소리를 하는 거지?”
“몰라도 돼.”
아니, 몰라야 한다.
‘그래야 더 억울할 테니까.’
종혁이 권총을 빼 옆으로 던진다.
외투를 벗어 옆으로 던지고, 셔츠도 찢는다.
“내가 지금부터 네게 기회를 줄 거야. 너를 비롯해 너희들이 살 수 있는 기회를.”
지금부터 사력을 다해야 할 거다.
젖 먹던 힘까지 뽑아내 발버둥 쳐야 할 거다.
그럼 살 수 있다. 여태까지 힘들게 이어 온 목숨을 후에 자연사하는 그날까지 이어 나갈 수 있다.
“하! 장난해?”
최성현이 얼굴을 구기며 주위 요원들과 경찰들을 가리킨다.
그에 종혁의 눈이 곱게 휜다.
“원래 인생은 불공평한 거야, 좆만아.”
억울하면 더 열심히 살았어야지.
매일 쓸개를 씹어 먹으며 매일 몸과 머릿속이 하얗게 물들도록 살았어야지.
“네 실수는 하나야.”
어머니 고정숙을 죽인 것.
“그러니…… 어디 재롱 한번 부려 봐!”
쾅!
극한으로 느려진 시간 속, 살의와 함께 억눌러 놓았던 모든 힘이 해방된다.
포식자의 압도적인 폭력이 번개보다 빠르게 최성현을 향해 짓쳐들어온다.
“빌어먹을!”
꽝! 꽝꽝!
불을 뿜는 총구.
그러나 물속 세상보다 더 느린 세상 속에서, 아니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이 멈춰 버린 세계에 도달해 버린 종혁에겐 도달하지 못한다.
한 발자국, 반 발자국 뒤를 꿰뚫을 뿐 종혁에게 닿지 못한다.
티이이이이익! 티이이이이익!
소리마저 정지되듯 느려진 시계 속, 당황으로 일그러져 가는 최성현이 총을 옆으로 던지며 칼을 꺼내 든다.
느리다. 너무 느리다.
종혁은 이를 드러내며 주먹을 들어 올렸다.
“죽어.”
콰지지지지지지지직!
모든 원한을 한 점으로 응축한 주먹이 최성현의 얼굴에 틀어박혔다.
* * *
콰직!
이건 비명에 죽어 갔던 어머니의 몫.
콰직!
이건 어머니를 지키지 못한 불효자의 몫.
콰직!
이건 그런 와중에도 아들을 걱정하셨을 어머니의 몫.
콰직!
이것도, 이것도, 이것도 어머니의 몫!
“크륵……. 크르륵…….”
종혁이 멱살을 잡은 최성현을, 얼굴의 뼈가 모두 박살 난 최성현을 가만히 바라본다.
그리고 깨닫는다.
죽었구나. 겨우 이 몸뚱이에 작은 스크래치 몇 번 내고 죽었구나. 그게 너의 반항이었구나.
털썩!
종혁이 쓰러지는 것조차 느린 고깃덩이를 가만히 바라본다.
끝. 끝이다. 정말 모든 게 끝이 난 거다.
지난 십수 년간 쫓고 쫓았던 수사가 드디어 마무리된 거다.
‘그런데…… 왜일까.’
너무 고대해 왔던 순간이라서 그럴까.
그냥 아무 생각이 들지 않는다.
‘분명 복수는 달콤한데 말이야…….’
누가 복수는 허망하다 했던가.
그렇지 않다.
복수보다 달콤한 열매는 없다. 그저 목표가 사라져 아주 잠시 공허할 뿐.
“아.”
그건가 보다.
공허함.
그렇게 인식하자 몸에서 힘이 풀려 버린다.
이대로 누워 자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잠식한다.
또각또각. 뚜벅뚜벅.
종혁이 힘겹게 눈을 돌려 다가오는 나탈리아와 헨리를 바라본다.
흐뭇하게 웃고 있지만, 왜인지 얼굴 한쪽이 딱딱하게 굳은 그들.
“국장님!”
“행님!”
“종혁아!”
정신을 흔들어 깨우는 외침에, 이쪽을 향해 달려오는 지인들에 애써 끊어지려는 이성의 끈을 붙잡은 종혁이 나탈리아와 헨리를 와락 끌어안는다.
“어머?!”
“……허헛!”
“고마워요. 나탈리아, 헨리.”
둘 덕분이다. 덕분에 이 복수를 무사히 끝마칠 수 있었다.
만약 이 둘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생각하기만 해도 아찔하다.
그 말에 둘의 입가에 미소가 맺힌다.
인간의 것을 벗어난 압도적인 폭력에 굳었던 마음이 스르르 녹아내린다.
“이거 버락 대통령께서 서운해하시겠군요.”
“저흰 메드베제프 총리도 그럴걸요?”
“알게 뭡니까.”
지금은 알고 싶지 않은 이야기다.
그저 이 고마움을 두 사람에 전하고 싶을 뿐이다.
하지만…….
“으악! 뭐예요! 왜 셋이서만 끌어안으세요! 나는요!”
‘아오씨, 최재수!’
눈치는 정말 드럽게 없는 최재수.
“넌 꼭 이럴 때마다 아가리를 함부로 놀리더라. 뭣들 해요! 우리도 갑시다! 자, 다들 돌격-!”
예상외로 질투가 많은 오택수.
“행님-!”
누구보다 앞장설 줄 아는 강현석.
“으악!”
“아악! 잠깐! 나 허리!”
“몰라요!”
이젠 몸이 많이 상한 김종두 과장.
일부러 눈치 없이 행동하는 임세라와 동기들.
슬그머니 가장 좋은 자리를 파고들며 아닌 척하는 순철.
“푸하하하하핫!”
웃음이 터져 나온다.
그냥 보기만 해도 공허해지던 가슴이 뜨겁게 채워진다.
‘그래, 이 사람들도 마찬가지지.’
이들이 있었기에 일망타진할 수 있었다.
복수를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한 명이라도 없었더라면 지금보다 오래 걸렸을, 어쩌면 실패했을지 모를 복수.
“행님! 행님! 회식 어떻습니꺼! 이런 날 회식 한번 해야지예!”
“아, 그건 내일 하자.”
“예? 와예?!”
“지금 만나야 할 사람이 있거든.”
“지금쯤 집에 도착했을 거예요, 최.”
“……고맙습니다.”
“응? 응?”
나탈리아와 헨리를 향해 고개를 숙인 종혁은 의아해하는 최재수와 현석의 머리를 쓰다듬곤 땅을 박찼다.
* * *
타다닥!
엘리베이터는 느리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기엔 답답해 심장이 터져 버릴 것 같다.
그래서 계단을 뛰어오른 종혁이 문을 거칠게 열며 들어간다.
“엄마-!”
집안을 쩌렁쩌렁 울리는 외침에 고정숙이 안방에서 걸어 나온다.
방금 도착한 듯 미약한 땀 냄새가 나는 어머니.
언제나처럼 뚱한 얼굴로 맞이해 주는 어머니.
언제나와 같은 모습으로 이곳에 계셔 주시는 어머니.
종혁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뜨거운 눈물이 차오른다.
“다 끝났니?”
“응…….”
다 끝났다. 그래서 가장 먼저 알려 드리고 싶었다.
“밥은 아직 안 먹었지?”
“응…….”
끝나 버린 복수. 성공한 복수. 어머니의 복수.
그래서 가장 먼저 입에 넣는 건 어머니가 차려 준 음식이어야 했다.
“술 마실래?”
“응…….”
술도 좋다. 어머니와 함께라면 무엇이든 좋다.
“그래, 먹자. 씻고 나와.”
종혁은 돌아서는 어머니를 꽉 끌어안았다.
“엄마.”
사랑합니다, 어머니.
앞으로도 계속 사랑하겠습니다. 어머니.
“악몽을 꿨어요.”
참 길고 지독한 악몽이었다.
이젠 말할 수 있었다.
모든 것이 끝났기에 다 말할 수 있었다.
“나 때문에 엄마가 죽고, 나도 죽는 그런 악몽이었어.”
“그랬어?”
“아마 그래서였을 거야.”
하지만 약간은 각색해서.
영원히 사랑받는 아들이고 싶기에.
종혁은 한 품에 안기다 못해 너무도 남는, 작고 왜소한 어머니를 꼭 끌어안으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을 이 시간이 영원토록 이어지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