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10th Circle mage RAW novel - Chapter 10
10
5.내가 호구로 보이니?(2)
“당장 거기 서지 못해?”
백석파를 이끄는 두목 양진철은 두 명의 남녀를 발견하고 전력질주를 했다.
1mm로 빡빡 깎은 머리 위로, 정수리에 길게 스크레치를 해놓았다.
과시용이었다.
‘나 이런 사람이다. 알아서 기어라.’라는 표식이었다.
헌데, 저 앞에 달려가는 두 연놈들은 태연했다. 불러도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오히려 으슥한 매화공원으로 이동 중이었다.
그곳은 주말에나 사람이 있지, 오늘 같은 평일 대낮에는 사람이 드물었다.
‘저놈들이 금괴를 지니고 있다 이거지?’
원래 그는 지금 잘 시간이었다. 하지만 직접 나서야 할 중요한 수금 때문에 시내에 나왔다가 주한보석방 사장의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양 사장. 나 주한보석방 사장인데. 방금 어떤 두 연놈들이 금괴를 들고 왔단 말이야. 그래, 10kg짜리 99.9% 순금이야. 24k. 내가 직접 확인해봤어. 진짜라니까. 옷도 후줄근해 보이는 연놈들이야. 그런데 금괴에 스탬프가 없더라고. 딱 봐도 장물(贓物)이야. 어디서 운 좋게 훔쳤겠지. 아무튼 나간지 얼마 안 됐으니까 빨리 얘들 불러서 노을사거리로 가. 지금 당장!
주한 사장과는 평소 이런 식으로 좋은 정보를 공유받고, 탈취한 이득의 10% 정도를 정보료로 떼주곤 했다.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라고나 할까.
양진철이 순진무구한 초식동물들을 사냥하는 악어라면, 주한 금은방 사장은 초식동물이 사냥당할 수 있도록 정보와 위치를 일러바치는 악어새였다.
남들이 보기엔 아주 더럽고, 역겨운 관계였지만 그들은 의외로 돈독했다. 정산만큼은 칼같이 했고, 그래서 이런 쏠쏠한 정보들이 양진철의 귀로 자주 들어왔다.
‘요놈들, 아주 잘 걸렸다······.’
백석파는 군포시에서 통제가 불가능한, 막강한 조폭세력이었다. 경찰서장과도 긴밀히 관계가 엮여 있으며, 알음알음 세력다툼이 일어나도 경찰들이 늘 눈감아줬다.
현재 베스트호텔을 끼고 활동하는 그레이트파와 라이벌 관계지만, 최근엔 백석파가 더 압도하고 있었다.
아무튼, 양진철은 사업 관련한 세력다툼뿐만 아니라, 이런 소소한 약탈도 발 벗고 나서는 스타일이다.
물론 이번에 한탕 하면 5억에 가까운 돈을 쥘 수 있어서, 소소하다고만 할 수도 없었다.
*
“오··· 오빠!”
방금 전까지 나를 몰아세우던 혜은이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나는 피식 웃음이 났다.
“무섭냐?”
“···저기 조폭들이 쫓아 오는 데 오빠는 안 무서워?”
입술이 덜덜 떨리는 걸 보니, 내 동생 무섭긴 많이 무섭나 보네. 바지에 오줌 지리기 전에 이만 재워줘야겠다.
-슬립(sleep)
“아······.”
혜은이의 몸 주변으로 하얀 빛무리가 터지더니, 곧.
털썩.
혜은이의 몸이 쓰러졌다. 다행히 대비하고 있던 내가 팔로 받아서 잠시 바닥에 뉘었다.
“후······.”
나는 후드 주머니에서 말보르 레드를 하나 꺼내 입에 물었다.
치직.
라이터는 필요 없었다. 내가 인간 라이터니까.
아직은 한국 돈이 없어서, 혜은이한테 빌려서 아침에 산 담배였다.
‘이계에서는 하라도르 지역에서 나는 연초가 최고였는데······.’
거기선 연초 가격이 같은 무게의 황금보다 더 비쌌다. 아무래도 수작업으로 재료를 구해서 일일이 하나하나씩 만들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
물론 나는 돈 걱정 없이 질리도록 피웠지만.
‘그래도 역시나 현대의 이기는 못 따라가네······.’
붉은색 담뱃갑을 주머니에 다시 넣으며, 나는 한 모금 연기를 빨아 당겼다.
“후······.”
그러자, 저 멀리서 부리나케 달려온 조폭들이 헐떡거리며 다가왔다.
“헉, 헉, 헉······.”
20명 남짓으로 보이는 녀석들은 하나 같이 돼지였다.
‘이놈들, 식용유만 처먹었나······.’
옛날에 TV에서 본 적이 있었다.
조폭들이 떡대를 키우기 위해, 식용유랑 기타 살찌는 유제품들을 엄청 챙겨 먹는다는 것을.
체계적으로 중량을 늘린 웨이트와는 다른, 걍 무식하고 비효율적이고 흉물스러운 방법이었다.
“너, 이새끼. 담배나 뻑뻑 펴대고 존나게 여유롭다?”
대장으로 보이는, 정수리에 스크레치가 난 빡빡이가 나를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초면에 욕설은 좀 그런데······.”
나는 다시 한번 담배를 한 모금 빨아당긴 후, 그렇게 중얼거렸다. 이놈이 언제 날 봤다고, 아랫사람 보듯이 막 대하나?
“네놈이 금괴를 훔쳐 달아난 도둑놈이냐?”
“뭐?”
조폭의 말에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 반문했다. 훔치긴 누가 훔쳐? 그리고 내가 도망을 쳤다고?
“내가 금괴를 가지고 있는 건 맞는데, 누가 훔쳤대? 이건 엄연히 내 물건이야.”
내가 버럭하자, 스크레치는 입가가 씰룩거리며 침을 탁 내뱉었다.
“오냐, 금괴를 쥐고 있긴 하단 말이구나. 헌데, 너 같은 그지 새끼가 그런 건 어디서 훔쳤니?”
“아니, 자꾸 허위사실 유포하는데 너 진짜 고소당하고 싶냐?”
저쪽에서 자꾸 반말하는데, 내가 존대할 필요가 뭐 있나? 존중할 게 있어야 존대를 하지.
어차피 인간쓰레기 부류 중에서도, 제일 핫바지인 조폭이 아닌가?
“너 지금 우리가 장난하는 줄 아나 본데······.”
스르릉.
스크레치는 쥐고 온 쇠파이프를 번쩍 치켜들더니 부하들에게 외쳤다.
“저 새끼 도망치지 못하게 둘러쳐!”
“예, 형님.”
20명에 가까운 부하들이 우르르 달려와서 내 주위를 감쌌다.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눈썹을 꿈틀거렸다.
“도망치긴 누가 도망쳐?”
“흐흐흐. 좋은 말로 할 때 금괴를 내놔라. 어디 부러지고 난 후, 뺏기면 너만 손해야.”
“후······.”
저 새끼들이랑 대화하니까 담배가 더 땡기네. 보통 여유롭게 피면 1-2분은 피는데, 이 기세대로라면 30초 안에 줄담배 서너 개는 피겠다.
‘마음 같아선 말로 잘 타일러서 보내고 싶은데···. 어쩔 수 없나?’
20명의 조폭들을 일일이 상대하기도 귀찮고.
그렇다면 마법으로 조져야 하는데, 어떤 마법을 쓸지도 고민된다. 이럴 땐 마법이 너무 많아도 문제다.
다 괜찮은데, 제일 괜찮은 거 하나 고르기가 세상에서 제일 힘든 법.
“음······.”
하늘을 올려다보자, 청명한 날씨 속에 찬란한 햇살이 내리비쳤다.
“오늘은 날씨가 좀 흐릴 수도 있겠네······.”
내 중얼거림에 쇠파이프를 들고 다가오던 스크레치가 피식 웃었다.
“미친 새끼. 처음부터 제정신이 아닌 건 알고 있었는데 몇 급이냐? 한 3급 되냐?”
녀석은 내 장애 등급을 묻는 듯했다. 아마 100% 정신장애가 있는 거로 확신하는 말투였다.
“내가 흐리다면 흐린 거지, 무슨 잔말이 그렇게나 많아?”
억지면 억지라고 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난 그 억지를 현실로 만들 힘이 있었다.
꾸르르르. 꾸르르······.
내 말이 끝나자마자, 맑았던 하늘이 거짓말처럼 흐려지기 시작했다. 마치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것처럼, 내가 서 있는 반경 위로 검은색 구름이 퍼져나가고 있었다.
“어······?”
그제서야 스크레치와 부하들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오늘 군포 날씨는··· 평일처럼 맑겠고, 중간에 먹구름이 낄 수도 있으니······.”
“······.”
꿀꺽.
녀석들의 침 삼키는 소리가 내 귓가로 또렷이 들려왔다.
“번개 조심!”
쩌저저저정ㅡ!
*
덜컹덜컹, 덜컹덜컹.
흔들리는 지하철 안.
나는 혜은이를 업고 무사히 4호선에 탑승할 수 있었다. 금괴도 당연히 무사했다.
‘참나, 그 쫌팽이 같은 녀석. 이런 식으로 복수를 하네······.’
첫인상부터 마음에 안 들었는데, 사기 치던 거로 모자랐던지 조폭까지 불러서 보복을 했다. 생각할수록 아주 괘씸한 심보였다.
‘그동안 모은 재산도 다 저런 식으로 쌓은 거겠지?’
군포 내에서 가장 큰 금은방이라더니. 그런데 사장이 저런 쓰레기니, 어떤 식으로 재산을 쌓았을지 안 봐도 비디오였다.
‘당연히 아까처럼 후려치고, 사기치고, 협박해서 번 돈이겠지······.’
더럽게 번 돈.
물론 돈만 많으면 장땡인 세상이라지만, 그래도 남 등쳐서 돈 벌면 그 돈은 오래가지 못한다. 남의 눈에 눈물 나오게 하면, 본인은 결국 피눈물을 흘리게 된다.
만약 그럴 일이 안 생기면······.
‘내가 직접 피눈물 흘리게 만들어 줘야지······.’
절대 그냥 넘어갈 생각이 없었다.
아까 경찰에 신고해서 콩밥 먹인다고 했는데, 생각을 바꿨다. 저런 놈들은 콩밥 가지고 안 된다.
‘아무튼 혜은이 말이 맞았어.’
역시나 사람들이 괜히 서울, 서울 하는 게 아니었다. 무슨 일이든 제대로 하려면 서울로 가야 했다.
진짜 귀환해서 백 년 만에 진리를 체득했다. 이런 건 귀로 들어선 이해가 안 가고, 한 번 당해봐야 머릿속에 새겨진다.
“으응······.”
내 어깨에 기대어 잠들어 있던 혜은이가 깨어났다. 아까 혜은이를 업고 지하철을 탔을 때 사람들이 좀 쌔했었다.
웬 남자가, 다 큰 처자를 업고 있으니 이상하게 보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혜은이가 그리 이쁜 얼굴인 아니라서 남자들이 관심이 주전자 식듯, 금방 식었다.
“오빠······?”
혜은이는 졸린 듯한 눈을 끔뻑끔뻑하며, 내 얼굴을 요리조리 뜯어보았다.
그리고, 손까지 들어 어디 상처는 없나 내 몸을 훑었다.
“오빠 괜찮아?”
“그럼 괜찮지.”
“아까 전에 조···.”
조폭이라는 얘기를 하려니 두려웠던지 금세 입을 다문다. 녀석, 나한테는 깡다구 있게 대들면서, 조폭 따위에겐 기가 죽네 죽어.
“걔네들? 갔어.”
“어딜 가? 금···. 암튼, 내놓으라고 막 쫓아 왔었잖아.”
혜은이는 금괴라는 얘기를 하려다가 아차 하곤, 작은 목소리로 추궁했다. 사실 지하철 안에 사람들은 전부 이어폰 꼽고,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느라 우리 말에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어, 그거? 내가 없다 하니까 그냥 가던데?”
“치. 거짓말.”
혜은이는 내 말을 신뢰하지 않기로 작정을 했나 보다. 뭔 말만 하면 다 거짓말이래?
사실 거짓말이긴 하지.
하지만 뭐 어쩔 거야?
내가 그렇다는데.
“아무튼 안 다치고, 이것도 잘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나는 품속에서 금괴를 살짝 보여준 후, 다시 집어넣었다. 혜은이는 금괴를 보며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우리 지금 어디로 가는 거야?”
“서울.”
“서울은 왜?”
“군포에서 못 팔았으니까 서울에 가서라도 팔아야지.”
“아.”
잠깐 재워놨더니, 정신이 아주 딴 세상에 갔다 왔나 보네.
“그럼 청담동 쪽으로 가자.”
“거기 잘 아는 데 있어?”
“응.”
혜은이는 곧바로 스마트폰을 꺼내 검색을 시작했다. 나한테 뭘 보여줄 게 있나 보다.
이럴 땐 참 스마트폰이 편하긴 하네. 예전 같았으면, 미리 프린터물 같은 걸 준비하거나 했을 텐데.
미비한 자료는 어쩔 수 없이 다음날 확인하고.
하지만 요즘엔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컴퓨터를 들고 다니는 거나 다름이 없었다.
‘이계에선 하나부터 열까지가 모두 아날로그였지.’
아직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미 현대적 지식이 있어서 금세 바뀐 문명을 이해하고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30분이 지나, 나는 여동생과 함께 압구정 로데오역에서 하차했다.
여기서부턴 혜은이가 앞장서기로 했다.
나는 물론이고, 혜은이도 이런 방면에선 문외한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혜은이가 이런데 관심이 많은 모양이지······.’
조금은 놀랐다.
맨날 보세 옷만 입고, 만 원짜리 신발만 사 신고 다녀서 몰랐다.
혜은이도 이런 명품이나, 보석 같은 것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구경 그만하고 이쪽으로 따라와.”
혜은이는 쇼윈도우에 넋이 나간 나를 질질 끌고 명품 가게들이 즐비한 거리로 나아갔다.
“여기가 바로 청담동 명품 1번지야. 하이 엔드 주얼리 가게들이 밀집된 곳이지.”
“우와. 넌 언제 이런 곳을 자세히 알아뒀냐?”
“헤헤.”
혜은이는 내게 팔짱을 끼곤 눈을 찡긋했다.
“내 언젠간 이런 날이 올 줄 알고 미리 대비를 해놨지. 엣헴~”
대비라고는 어디에 명품관이 많고 뭐 이런 정보뿐이었지만, 아무튼 뭐 도움만 되면 되는 거지.
“내가 알아봐 둔 가게가 있어. 이곳 명품 거리에서도 3손가락 안에 드는 주얼리 샵이야.”
“말해도 나는 잘 몰라.”
하이엔드니 뭐니, 솔직히 관심 없다.
내가 가지고 있는 금괴만 제값 받고 팔면 그걸로 족하다.
아니, 인터넷에 떡하니 나와 있는 금 시세 대로만 달라는 건데 진짜 이거 하나 팔려고 오늘 별의별 일을 다 겪는다.
“저기야!”
혜은이 ‘아리 주얼리’라는 분홍색 간판을 가리키며 손가락질 했다.
‘100평은 넘어 보이네.’
이곳 명품 거리에서 3손 가락 안에 드는 샵이라고 하니, 규모가 엄청나 보였다.
그런데.
“헉.”
나는 유리문 너머로 보이는 한 여자 때문에 발걸음을 뚝, 멈추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