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10th Circle mage RAW novel - Chapter 115
115
58.실리(2)
“비즈니스 관계예요.”
아버지의 의미심장한 질문에, 아리는 예상했다는 듯 바로 맞받아쳤다.
하지만.
“연인 관계는 아니고?”
“아직 그런 관계는 아니에요.”
“아직? 그럼 나중에는 그렇게 발전할 수도 있다는 거냐?”
“아이참, 말꼬리 붙잡고 늘어지지 말고요.”
아리가 눈을 흘기며 최종환을 힐난하자, 최종환은 잠시 헛기침을 한 후 다시 진지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래서 네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도대체 뭐냐? 이준혁이 정말 이계에서 귀환한 10서클 마법사라고 치자. 그런 그가 이번 연평도 도발 때문에 북한으로 넘어갔다고?”
“네. 저도 그가 북한에서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지는 잘 몰라요. 하지만, 북한 문제가 완전히 해결될 때까진 돌아오지 않겠다고 했거든요······.”
“설마 너네 둘이 싸웠냐?”
“그런 거 아니라니까요.”
“커흠, 뭐 아무튼 그럼 그 이준혁이란 초월자가 북한으로 넘어가서 연평도 도발에 대한 응징을 준비 중이란 말이지?”
“네, 그래요.”
아리는 그동안 이준혁이 터뜨린 사이다 퍼레이드를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랑하며 떠벌려놓았다.
처음 금괴 사기에 대한 보복은 아까 설명했고, 자신의 아버지의 병세를 악화시킨 의사에 대해 벌레를 심어서 수족으로 만들고, 대동그룹 회장 부자들에게 벌레 삽입과 함께 그룹 몰수, 그리고 마탑 제약에 불을 질렀던 안비 제약 회장 응징 후 그룹 몰수, 대통령의 마탑 영양제 건보 지원 법안 반대했던 국회의원들에 대한 역관광까지.
국회의원들에 대한 건 이준혁이 직접 손을 썼다기보단, 시민들이 들고난 것이었다. 하지만, 결국 이준혁이 만든 약을 원하는 국민들의 염원으로 이루어진 혁명이었다.
이제 국회의원들은 국민들의 눈치 때문에 법안도 날치기로 마음대로 통과시키지 못하고 전전긍긍해 하고 있었다.
“그동안 이준혁이란 사람이 정말 많은 일들을 해왔구나······.”
최종환 대통령은, 여태 얼굴도 몰랐던 이준혁에게 호감이 무럭무럭 자라나는 것을 느꼈다.
자신의 딸과 의미심장한 관계라는 것을 처음 알았을 때는 많이 놀랐었는데, 딸이 진심으로 그를 좋아하고 그의 능력이 전지전능한 신에 버금가는 능력자라면 딸을 줘도 아깝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 이상한 양아치 같은 수컷에게 불장난을 당해 낙태나 하고 다니는 것보다는 백배는 더 나았다.
‘아무튼 내가 모르는 물밑에서 그동안 많은 활약을 해줬었구나······.’
마탑 팬시와 마탑 제약으로 대한민국에 활기를 불어넣고, 자신의 입지를 위협하던 국회의원들을 단숨에 찌그러지게 만들었다.
게다가, 마탑에서 생산한 물건들을 구매하기 위해 전 세계에서 무수히 많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물밀 듯이 밀고 들어오고 있었다.
그로 인해 파생되는 경제적 효과만 해도 수십조 원이 넘었다. 이제 마탑은 그저 신기한 물건을 만드는 일개 기업이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를 이끄는 견인차였다.
그런 마탑을 설계한 주인이, 자신의 딸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었다니.
최종환은 아버지로서 좋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그리고 그가 앞으로 추진할 북한 관련 계획도 매우 궁금해졌다.
“그럼 나는 그의 지시가 있을 때까지 그저 조용히 지켜보고만 있으라는 거냐?”
“네. 이준혁 씨에게 연락이 올 때까지는요. 일단 북한의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가 다 되면 연락이 올 거예요.”
“그 이후 나는 뭘 하면 되는 거냐?”
“그저 준혁 씨가 원하는 대로 따르면 되는 거죠. 준혁 씨가 일처리 방식이 좀 과격하긴 해도, 아무 생각 없이 막 행동하는 사람은 아니에요.”
“글쎄다······.”
이준혁의 행보를 직접 보지 못하고, 딸로부터 ‘카더라’소리만 들으니 조금 답답한 가슴이 없진 않았지만······.
‘결국 믿고 맡겨보는 수밖에 없는 건가······.’
무기력한 한국이 아쉬운 일이긴 하지만, 만약 그런 존재가 먼저 나서서 북한 문제에 개입한다면 최종환으로서는 말로만 외치는 평화가 아닌 진짜 평화, 진짜 평화통일을 자신의 임기 내에 이루어 낼 수도 있었다.
“만약 진짜로 급변 사태가 일어난다면, 일단 미국과 합의를 봐야겠군······.”
최종환 대통령은 결국 아리의 말을 철썩같이 믿기로 결심하고 그에 맞춘 새로운 플랜을 구성해나갔다.
그는 젊은 시절 장교로 일했던 경험과 노하우로 현재의 시세를 명확히 판단할 눈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 전 세계에서 슈퍼 갑은 미국 대통령이 아니라 이준혁이었다. 미 대통령도 김정은을 어떻게 하지 못하는데, 만약 이준혁이 북한 내부에 깊숙이 침투해서 김정은과 북한 수뇌부를 궤멸시킨다면?
‘아니면 남들이 전혀 생각하지 못하는 다른 방향으로 일을 저지를 수도 있겠군······.’
이준혁은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사람들의 예상과 사회적 규칙을 깨끗이 박살내며 이변을 일으킬 것이다.
최종환은 자신도 모르게 그런 확신이 들었다. 그가 지금껏 해왔던 일들, 그리고 그가 걸어왔던 과정들을 쭈욱 훑어보면 누구나 그 정도 예상은 할 수 있었다.
사람들의 평범한 예상을 모두 깨뜨리니, 오히려 더 비범한 예상을 해야 그의 행보를 조금이나마 맞춰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러면 작전 성공인가······.’
아리는 90%이상 넘어온 아버지를 쳐다보며, 입가에 흐뭇한 미소를 머금었다.
사실 이준혁에 대해 모든 것을 털어놓았을 때, 아버지가 전혀 믿지 않거나 겉으로만 믿는 척을 했다면 아주 곤란했을 것이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이준혁이 걸어가려는 길과 반(反)하는 방향으로 가면 안 됐다.
그렇게 됐을 시, 북한 문제가 어느 방향으로 튈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준혁이 한국인으로서,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지만 그것도 상황에 따라 다르다.
만약 대한민국이 이준혁의 뜻을 거스른다면, 이준혁은 아예 북한을 기반으로 새로운 독립 국가를 세워 버릴지도 몰랐다.
과거엔 다른 곳으로 이민 가는 선택지밖에 없었다면, 이제는 북한을 정당하게 먹어치울 명분도 생겼으니 누가 감히 이준혁이 하고자 하는 일을 막겠는가?
“아버지. 대신 오늘 들은 이야기는 혼자만 알고 계셔야 해요. 앞으로 아버지가 국정 운영을 해 나가시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판도라의 상자를 조금 열어드린 것뿐이에요. 준혁 씨는 자신의 힘이 외부에 드러나는 것과, 유명세가 생기는 걸 극도로 꺼려해요.”
“아니, 도대체 왜?”
최종환은 아리의 설명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벌렸다. 만약 다른 사람 같았다면, 자랑하고 싶어서 미칠지도 모르는데, 이준혁은 완전 정 반대라니?
“그는 이미 이계에서 그런 것들을 다 누려보고 넘어온 사람이에요. 돈과 여자, 명예까지요.”
“······.”
사실 그 셋 중에 여자는 빼야 했지만, 아리는 은근슬쩍 삼색을 맞추기 위해 그렇게 설명했다.
다행히 최종한도 거기에 대해 토를 달진 않았다. 아리의 말이 거의 사실이기도 했다.
이준혁은 이계인 데모스 행성에서 여자 빼고 모든 걸 다 가진 남자였다.
그러니, 돈이나 명예 따위에 집착하거나 유명세를 좋아할 리가 없었다.
“그럼 그가 활약하는 걸 옆에서 손가락만 빨면서 지켜봐야 한단 말이냐? 그가 원한다면 대통령 표창장이라도 줄 수 있는데.”
“에헤이, 그런 건 이준혁 씨가 제일 극혐하는 행위라구욧!”
“······!”
아리는 대통령 표창장이란 소릴 듣는 순간, 이준혁을 다시는 못 볼 것처럼 과장되게 소리쳤다.
“알았다. 알았어. 나만 알고 있는 비밀로 하지.”
“꼭이예요. 술자리에서도 이준혁의 ‘이’자도 뻥긋하면 안 돼요.”
“얘가 이제 아버지를 가르치려고 드는구나.”
“식사도 다 끝났으니, 저는 이만 일어나 볼게요. 가자, 실프.”
“응!”
아리의 부름에 실프가 최종환의 무릎 맡에서 쪼르르 내려와 아리에게 폭 안겼다.
“실프는 며칠만 놔두고 가는 게 어떻겠니?”
최종환의 간절한 부탁에 아리는.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세요. 실프는 제가 알아서 할 거니까 너무 집착하지 마시고요.”
“···마치 네 딸처럼 말하는구나······.”
“저는 진짜 가볼게요. 안녕히 계세요. 그럼 나중에 또 봐요, 아버지.”
“······.”
아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휑하니 떠나 버렸다.
오늘 갓 태어난 실프를 품 안에 안고.
*
“동철이가 사라졌다고?”
“예, 회장님. 최아리가 사는 아파트 주변에서 피가쏟긴 흔적만 남고 동철이 일행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납치에 동원되었던 조직원들 전원이요.”
“흐음······.”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에 위치한 k-black 빌딩의 맨 꼭대기 층.
그곳의 회장실에서 50대 중년인이 창가에 선 채, 보고하러 들어온 부하의 말을 듣고 있었다.
“동철이는 죽었어······.”
“······.”
대한민국의 음지를 다스리는 K-Black, 즉 흑천회. 그 흑천회에서도 권력의 최정상에 있는 장천수는 그동안 이루지 못한 일이 없었다.
가지고 싶은 여자가 있으면 다 취했고, 돈도 수조 원 이상 벌었다. 그가 가진 현금과 자산 등을 매각하면 충분히 대한민국에서 수위를 다투는 재벌이 되리라.
그는 명예 빼고 다 가진 남자였다.
예전엔 한국의 어두운 면에서 온갖 더러운 짓을 하는 쓰레기 중에 쓰레기 취급을 받았다면,
지금은 어두운 흑막을 지배하는 절대자로, 이제는 부와 명예까지 모두 틀어쥔 승리자가 되었다.
하지만, 최근 장천수의 심기를 마구 어지럽히는 세력이 있었다.
바로 마탑.
마탑이라는 그룹이 자기가 다스리던 제약 업체를 침도 안 바르고 꿀꺽 삼켜버렸다.
고작 몇 달 사이에 급성장해 눈 깜짝할 사이에 대한민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의 유명해졌다.
‘유명해지기 전에 싹을 잘랐어야 했는데······.’
장천수는 오른 쪽 뺨에 난 긴 상처를 꿈틀거리며 이맛살을 찌푸렸다. 밭고랑처럼 깊게 패인 이마의 주름살이 그가 걸어온 삶의 족적을 이야기해 주는 듯했다.
‘이준혁은 고사하고, 그 여자친구를 납치하는 것도 실패하다니······.’
너무 어처구니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것도 그냥 실패한 게 아니다. 자신이 평소 옆에 두고 총애하던 아까운 부하 녀석들이 모조리 사라졌다.
아마 전원이 죽었을 것이라 예상할 수밖에 없었다.
‘마석호가 함부러 나댈 때부터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했어······.’
불을 지른 것까진 좋았다. 그런데, 불을 질렀으면 뒤처리를 확실하게 해야 되지 않은가?
도대체 어디서 전화통화를 했길래, 공장에 불을 지르라는 사주하는 모습이 전국 방방곡곡에 알려지고 말았다.
‘분명 뭔가가 있어······.’
장천수는 이준혁이나 아니면, 녀석의 배후에 엄청난 조직이 숨어있다고 생각했다.
이준혁이 흑막의 배후라기엔, 너무나도 평범하고 별 볼 일이 없었다. 이상하게 접근할 기회가 없어서 그렇지 한 번 기회만 오면 바로 담궈버릴 수 있을 정도로 평범한 멸치 녀석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최아리를 납치하는 것에 대해 실패한 건 정말 이해할 수 없어······.’
평소 일처리 능력과 뒤처리 능력이 깔끔해 자신이 자주 예뻐하던 조동철.
평소 자신의 칼 노릇을 하며, 온갖 더러운 일을 완벽하게 수행해내었던 녀석이었는데.
‘설마 아리를 납치하다 다른 조직들에게 패배한 것인가······?’
이준혁··· 또는 그 녀석의 배후에 있는 조직에 의해 자신의 조직이 조금씩 조금씩 금이 가고 있었다.
‘도대체 어떤 녀석들이지······?’
하루에도 수십 번, 신성처럼 뜨고 지는 이 바닥에서 싸움 잘하는 녀석들은 널리고 널렸다.
지금도 물밑에서 새로운 조직들이 태어나고, 통폐합하는 작업들이 쉴새없이 계속되고 있었다.
흑천회라는 이름으로 전국구 조직이 통일되었다지만, 그러면 럴수록 2인자 싸움은 더욱더 치열해졌다.
‘설마 우리 내부 녀석들의 소행은 아니겠지······?’
장천수는 별의별 생각이 다 드는 자신을 통제하지 못했다. 외부의 적이라면 흑천회의 모든 힘을 동원해서 전면전으로 지워버리면 됐다.
하지만, 흑천회 내부에서 아직도 이합집산을 벌이고 있는 2인자 녀석들은 달랐다.
녀석들은 자신에게 머리를 숙이는 척하면서, 언제나 그의 뒤를 노렸다.
장천수는 현재 최고의 위치에 올라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지만, 언제 그들에게 뒤에서 칼 맞아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만큼 이 세계는 위계질서가 불분명했다. 힘이 곧 최고의 권력이었고, 힘이 사라지면 늙은 사자처럼 여러 하이에나에게 물어뜯겨 죽을 뿐이었다.
‘내부의 적만 아니면 돼···.’
장천수는 일단 까다로운 경우의 수를 먼저 제외하고, 가장 먼저 알아볼 수 있는 문제부터 차근차근 짚어 나가기로 결심했다.
‘일단 최근 갑자기 자취를 감춘 이준혁. 그 녀석을 당장 찾아내는 것부터가 시급한 일이다. 회사로 처들어가든 뭐든 해서 그 녀석을 찾아내거나, 아니면··· 흐흐흐······.’
사나운 열기로 이글거리던 장천수의 눈이 순간 욕정이 가득한 눈으로 번들거렸다.
그는 사진과 영상으로만 봤던 아리의 달콤한 몸매와 아리따운 얼굴을 떠올리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이준혁을 잡지 못한다면, 차선으로 그년이라도 납치해서 내것으로 만들어야겠다.’
일단 이준혁의 배후를 파기 위해선 곁다리부터 짚어 나가야 했다. 그리고 최아리는 그 곁다리 중에서도 최중심부에 가까운 곁다리였다.
아리를 납치한다면, 어딘가 실종되어 있는 이준혁도 금세 튀어나올 게 분명했다.
‘이번엔 절대 실패하지 않는다······.’
장천수는 이 일을 여기서 손을 뗄 건지, 아니면 전면적으로 움직일 건지 하는 고민에서 드디어 확실한 방향을 정했다.
‘그 녀석의 여친을 붙잡아서 인질로 삼으면 결국 자연스럽게 이 판이 내게 유리하게 돌아갈 것이다. 으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