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10th Circle mage RAW novel - Chapter 117
117
59.마왕 강림(2)
파지지지직ㅡ!
“흐으으으ㅡㅡㅡ.”
북한 상공에 열린 흑색의 초대형 게이트.
블랙홀처럼 생긴 그곳에서 지구의 생명체와는 전혀 다른, 이질적이고 초월적인 존재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첸니르, 그리고 가룬바······.’
나는 게이트를 통해 넘어오는 두 명의 마왕을 쳐다보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이었다.
“흐ㅡㅡㅡ. 부르셨습니까, 마스터(Master)ㅡㅡ.”
회색 머리칼에 검정색 피부.
어깨에 둘러친, 얼굴의 하관까지 가리는 붉은색 스카프.
재질을 알 수 없는 검정색 상갑과 완갑.
그리고 거대한 손톱처럼 손에 착용하고 있는 날카로운 크로우(crow)가 그의 성향을 말해주는 듯했다.
“오랜만이군, 첸니르.”
내 대답에 첸니르가 깊게 머리를 숙였다. 과거 마신 아르고스의 7대 수하들 중 하나인 마왕 첸니르.
오랜 시간 나와 적대 관계에 있으면서 많은 악연을 만들어 냈던 주인공이기도 했다.
“옛날에 내가 너한테 쫓겨 다니던 것만 생각하면, 지금도 참. 하하하······.”
“······.”
내 농담에 첸니르가 어쩔 줄 몰라 하며, 표정을 굳혔다. 사실 가벼운 농담이라기보단, 뼈 있는 농담이기도 했다.
첸니르는 정말 나를 죽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던 녀석이었으니까.
녀석과의 악연 중에 대표적인 것이 바로 ‘첸니르의 아르젠 암살 사건’이었다.
그때 첸니르는 하이엘프들 중에서도 가장 고결한 핏줄을 이어받은 세인트 엘프, 아르젠을 암살하려고 했다.
아르젠이 성장하면 성장할수록, 세계수의 영역과 영향력이 더욱더 강대해졌기 때문이다.
세인트 엘프는 몇천 년에 걸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정말 고귀한 혈통이었다.
일반 엘프들과는 전혀 이질적인 힘을 지닌 그 존재는, 태어남과 동시에 행성 내 모든 엘프들의 보호를 받았다.
아르젠은 그런 엘프들의 보호 속에서 온실 속 화초처럼 자라났다.
그러다가, 우연히 나와 인연을 맺게 되었고 나도 그녀의 성인식을 축하하는 하객으로 참가했다.
한데, 그런 축복스러운 자리에서 첸니르가 난입해 아주 깽판을 쳐놓고 만다.
“그때 너 때문에 하이 엘프들이 만든 음식들을 맛도 보지 못했다고. 하하하······.”
“······.”
뭐 다 지난 일이니까 웃으면서 얘기하는 거지, 그때는 정말 화나고 위급한 상황이었다.
고작 4서클 밖에 안 된 나의 힘으론 녀석의 암살을 물리적으로 막아낼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첸니르의 힘을 역이용하는 임기응변을 사용했고, 다행히 아르젠은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그 후로 첸니르는 나를 ‘제거대상 1호’로 점찍고 미친 듯이 추적해왔다.
거의 이계에서의 인생 절반은 첸니르와 함께 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부딪혔고 지금 이렇게 마주하게 되었다.
“마스터(Master)······.”
나와 첸니르가 오랜만에 반갑게 해후하자,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해골이 턱뼈를 달그락거리며 내게 인사를 건네왔다.
“가룬바······.”
“부르셨습니까······.”
“그래.”
다 찢어져 너덜너덜한 검정색 로브.
그리고 어두침침한 해골바가지 위에 빛바랜 왕관을 쓴 아크 리치 가룬바가 내게 고개를 숙였다.
“정말 오랜만이군. 데모스의 재앙이여.”
“부끄러운 아명이옵니다.”
“네가 한 행동을 생각하면, 충분히 그렇게 불릴 만도 하지.”
“······.”
아크리치 가룬바가 내가 말한 호칭에 부끄러워하며 고개를 더욱 깊이 숙였다.
가룬바.
그는 데모스 행성을 파멸로 몰아갔던 7대 마왕 중 하나였다. 흑마법을 마스터한 그는, ‘패러사이트’라는 전대미문의 흑마법으로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정말 역대 데모스 행성의 역사를 통틀어, ‘패러사이트 강점기’만큼 최악의 상황은 없었다.
심지어 역사 이전에, 마신 ‘아르고스’가 봉인되기 전에도 행성이 그 정도로 파탄으로 치닫진 않았으니까.
얼마나 더럽고 좃같은 마법이면, 내가 개조해서 아직도 써먹겠는가.
선한 사람들에게는 써서는 안 되는 마법이지만, 악인들에게는 그것만큼 또 좋은 마법이 없었다.
필요 ‘악’이랄까?
아무튼, 그만큼 행성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재앙급 존재가 바로 저 아크리치 가룬바였다.
가룬바는 내가 라이프 포스 배슬을 부순 후, 흩어지던 그의 마력을 권속에 넣은 최초의 마왕 부하였다.
나에 의해 새롭게 태어난 후, 최후의 전쟁 때까지 나를 위해 마신의 스파이 노릇을 한 녀석이기도 했다.
“너희들의 얼굴을 오랜만에 보니 정말 반갑기 그지없구나.”
“황송합니다.”
“명령만 내려주십시오, 마스터.”
나와 녀석들은 현재 마신 아르고스가 만든 어둠의 언어로 대화 중이었다.
아무튼 내가 지구로 귀환하기 전, 아르고스의 영역을 모두 점령하면서 대부분의 마왕들이 전부 내 권속으로 들어왔다.
개중 2명의 마왕이 바로 다크엘프 킹 ‘첸니르’와, 아크리치 ‘가룬바’였다.
“내가 마신을 제거하고 원래 살던 세상으로 귀환한 건 너희들도 알고 있을 것이다.”
“······.”
모를 수가 없었다.
내가 지구로 넘어올 때, 마신의 부하였던 마왕들을 전부 내 아공간에 봉인하고 같이 넘어왔으니까.
솔직히 무슨 의도를 가지고 그렇게 한 것은 아니었다. 그냥 살려둬도 이계의 밸런스를 해칠 정도의 녀석들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무참히 죽여버릴 정도로 악감정도 없었다.
아니, 있었는데 많이 희석되었다.
원래 미운 정, 고운정 다 들다 보면··· 뭐 이런 말도 있고. 아무튼, 나는 미운정 고운정이 다 들어버린 마왕들을 그냥 죽여버릴까 하다가 내 권속에 집어넣었다.
녀석들은 죽음이라는 형벌 대신, 평생 살지도 죽지도 못하는 처지에 놓여버렸다.
하지만, 나는 마신처럼 녀석들을 악행에 이용하지 않고, 그저 내가 만들어 놓은 무릉도원 안에서 마음껏 편하게 살아가도록 했다.
가상의 공간이자, 또 다른 실존 공간이었다.
마왕들은 그곳에서 새로운 정신교육을 받고, 평화와 행복의 찬가를 불렀다.
물론 하기 싫었겠지만, 내가 주기적으로 계속해서 세뇌 교육을 시켰기 때문에 녀석들도 점차 동화되고 있었다.
그렇게 교화해서 어디다 써먹으려는 건 아니고, 그냥 내가 그렇게 하고 싶어서 했다.
녀석들도 물론 잘 따라왔고.
하지만, 역시나 근본이 마의 왕, 마왕이다 보니 박태진처럼 본성이 어디 가는 건 아니었다.
특히나 첸니르 같은 경우엔 제거 대상을 집요하게 추적해서, 암살할 때의 그 손맛을 아직 잊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가룬바는 자신의 흑마법을 통해, 적을 마음껏 요리하며 쾌감을 느끼던 그 시절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녀석들의 소원풀이도 해줄 겸, 오랜만에 얼굴도 볼 겸해서 겸사겸사 녀석들을 소환했다.
“아무튼 귀환해서 조용히, 옆에 있어도 없는 사람처럼 살고 싶었는데 세상이 나를 가만두지 않더라.”
“······.”
“누굴 제거해야 합니까?”
가룬바는 내 말이 다 끝날 때까지 침묵했고, 첸니르는 자꾸만 암살 대상을 가르쳐달라고 졸랐다.
그의 손에 끼워진 크로우가 움찔움찔하는 걸 보면, 오랜만에 피륙을 가르는 손맛을 느껴보고 싶어 미쳐하는 거 같았다.
“일단 내 얘기를 먼저 다 들어봐.”
“예.”
나는 첸니르를 진정시키고,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나의 심기를 거스르는 녀석들은 많았지. 하지만, 대부분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다 해결했고. 하지만.”
“······.”
“나도 슬슬 귀찮더라고. 할 일이 많아 죽겠는데 자꾸만 개미 새끼들이 내 발가락을 물어대면 귀찮겠어, 안 귀찮겠어?”
“···귀찮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되겠냐?”
“제가 다 쓸어버리겠습니다.”
“그렇지.”
역시나 피의 대화에 있어선 나와 제일 말이 잘 통하는 녀석이 바로 첸니르였다.
“흑천회라는 조직이 있다.”
“어떤 녀석들이 만든 조직입니까?”
첸니르는 아마 자신을 소환했으니, 최소한 그랜드마스터(GrandMaster)급 강자와 맞붙게 해줄 줄 알고 있는 거 같았다.
“이곳의 인간들이 만든 조직이다.”
“······.”
허공에 떠서 나와 대화중이던 첸니르가 잠시 눈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마치 지상의 생명체들에 대해 탐색이라도 하듯, 한참을 그렇게 내려다보던 첸니르가 다시 입을 열었다.
“혹시 이곳에 그랜드마스터급 강자가 있습니까?”
“없다.”
“그럼 소드 마스터는······.”
“아직 없다.”
“그럼 제가 상대해야 되는······.”
“각성하지 못한 인간들이다.”
“······.”
잠시 어처구니없던 표정을 짓던 첸니르.
“왜? 불만 있나?”
“···아닙니다. 맡겨만 주신다면, 오늘 내로 놈들의 조직을 쓸어버리겠습니다.”
잠시 실망한 말투였으나, 나는 이해할 수 있었다. 싸움이라는 것도 체급이 맞아야 의욕이 생기는 건데, 첸니르 입장에서 보면 각성하지 못한 인간들이란 정말 ‘개미’보다 못한 수준이라고 봐야 했다.
첸니르 뿐만 아니라, 일반 다크엘프만 가도 흑천회란 조직은 공중분해 되겠지만······.
나는 이곳으로 넘어올 때 꼭 필요한 인재들만 권속에 넣어왔기 때문에, 그렇게 약한 녀석들은 데리고 오지 않았다.
‘비록 소잡는 칼로······ 아니, 왕 잡는 칼로 개미 잡는 꼴이긴 하지만 뭐 어쩔 수 없지.’
어차피 지구로 넘어온 이상, 나를 포함한 이계의 존재들은 본 실력을 다 드러내면서 살 수가 없었다. 그런 순간, 이 세계는 그대로 파멸해버릴 테니까.
지구라는 행성은 마왕의 힘을 견뎌낼 수 있는 등급의 행성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규격 외’의 존재들이 튀어나온 셈이었지만, 나도 다 생각이 있었다.
“첸니르. 이곳에선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오러’이상의 힘의 사용을 자제해라.”
“어째서······.”
“이 세계가 버틸 수 있는 한도까지만 힘의 사용을 허락하겠다.”
“···알겠습니다.”
나는 두 마왕에게 사용할 수 있는 힘의 권한을 제한했다. 본래 오러가 아니라, 사이오닉의 힘까지 개방할 수 있는 마왕들이었기에 이 금제는 생각보다 심각한 금제였다
‘아마 하위의 마력으로 일처리를 하려면 꽤나 고생하겠지만······ 가룬바가 옆에서 보조해 준다면 나름 괜찮겠지.’
어차피 가룬바도 흑마법사이긴 해도, 어찌 됐든 마법사였기 때문에 웬만한 마법사들 만큼의 일반 마법도 사용할 줄 알았다.
두 마왕들이 힘을 합친다면 못해낼 일도 없었고.
‘그리고 마나까지만 사용해도 마왕들은 이 세계에서 밸붕급이야······.’
마력의 사용 방법을 극한까지 체득한 마왕들이다. 비록 고위 마력을 통제받는다 해도, 또 어찌어찌 적응해서 하위 마력단계에서 말도 안 되는 미친 효율을 낼 게 분명했다.
“아직 내 주변엔 나의 힘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녀석들이 대부분이다.”
“그런 말도 안 되는······.”
“내가 일부러 숨기고 있기 때문이지.”
“······.”
“내가 공개적으로 내 힘을 모두 사용하면, 이 세계가 어찌될 것인지는 너희들이 제일 잘 알겠지.”
“······예.”
내가 전력을 뿜어냈을 떄, 우주 최강급인 마신조차도 버텨내지 못했다.
그러니 마력이 가장 낮은 단계의 지구는 말할 것도 없었다. 오히려 그 적당선을 지키기가 어려워서, 아예 없는 것처럼 통제하는 것도 없잖아 있었다.
그냥 마법 사용을 최대한으로 절제하면, 내가 바라는 대로 이 세상의 균형이 무너지지는 않을 테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죽을 때까지 조용히 참고 있겠다는 뜻은 절대 아니었다.
“그러니 이제부터 너희가 나서 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