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10th Circle mage RAW novel - Chapter 16
16
8.변화(2)
“아버지. 잠깐 누워주시겠어요?”
“무얼 하려는 게냐?”
준혁이 자신의 암을 완치시켜준다고 했을 때, 아버지 이강수는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그리곤, 이내 화가 난 표정으로 변했다.
“잠깐 주무시고 나면, 씻은 듯이······.”
“오자마자 이게 대체 무슨 소리냐?”
이강수는 진심으로 성이 난 모습이었다. 15년 만에 돌아온 아들. 이제 마지막을 준비하며, 잃어버린 아들을 다시 보지도 못한 채 허무하게 갈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들이 돌아왔다.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었다.
헌데, 아들이 갑작스럽게 이상한 얘기를 했다. 말도 안 되는 얘기를······.
드르륵.
이강수는 병실 서랍으로 손을 뻗어, 프린터물이 담긴 서류철을 준혁에게 내밀었다.
“이거 사망보험 증권이다.”
“아버지······.”
“헛소리 그만하고 내 말 들어. 내가 죽으면 여기서 사망보험금 2천만 원이 나온다. 그거 네 엄마 이름으로 받지 말고 네 이름으로 받아.”
준혁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본인들 이름으로 수억 원이 빚이 있었다. 모두 사업 실패로 인해 떠안은 빚과, 생활고 때문에 냈던 빚들이었다.
그래서 이강수는 갈 때 가더라도, 본인의 짐은 본인이 모두 떠안고 가겠다고 결심했다.
속에서 아들에 대한 반가움과 함께 기쁨의 눈물을 쏟아내고 싶었지만 참았다.
뜨거운 속내를 감추며 이강수는 조용히 말했다.
이준혁은 그런 아버지를 향해 그동안 있었던 일을 간략히 설명했다. 솔직히 말할 수 없었기 때문에, 조금 마음이 안 좋았지만 지금으로선 이게 최선이었다.
이강수는 그런 아들의 말을 묵묵히 다 듣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얼굴도 봤고, 사정도 들었으니 됐다. 이만 가봐라. 너무 자주 찾아오지 말고,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거든 뭐든 해보고.”
“아버지···.”
“난 괜찮다.”
이강수는 곧 이불에 누워, 몸을 돌린 채 준혁을 외면했다. 아들이 아버지를 위로하기 위해, 이상한 말을 했던 게 오히려 더 마음에 상처가 됐다.
그의 병세는 더이상 돌이킬 수 없는 병이었다.
직장암(直腸癌) 말기.
이강수가 얻은 직장암은 신체 내부에 있는 직장에 생긴 악성종양이었다.
대장은 크게 결장과 직장으로 구분하는데, 암이 발생하는 위치에 따라 결장에 생기는 암을 결장암, 직장에 생기는 암을 직장암이라고 했다.
이를 통칭하여 대장암 또는 결장 직장암이라고 불렀는데 이강수는 직장의 암이 전신으로 퍼진 상태였다.
저벅저벅.
이준혁은 누운 채로 몸을 돌린 아버지를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스윽.
이불을 덮은 아버지의 몸 위로 조용히 손을 얹었다.
*
‘슬립(sleep)’
손을 올리자 몸을 움찔하는 아버지를 얼른 잠재웠다.
‘이제 시작해볼까?’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고 했다(知彼知己百戰不殆).
나는 지피지기의 마음가짐으로 아버지의 병을 고치기 위해 철저히 준비했다.
어젯밤 동생 혜은이를 잠재우고, 밤늦게까지 컴퓨터를 했다. 그리고 아버지가 걸리신 직장암에 대해 철저히 조사했다.
어떤 식으로 치료할지도 머릿속으로 수없이 구상했다. 세포를 통해 아버지와 똑같은 형태의 모조품들을 만들어 수없이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시행착오도 많았다.
하지만, 이젠 만약이라는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만큼 이젠 완벽해졌다.
쏴아아악.
아버지의 손끝으로 막대한 양의 마력(魔力)이 마나로드(ManaRoad)를 통해 타고 들어갔다. 마나로드는 동양에서 말하는 기혈(氣穴)이었다.
일반인들 또한 마력을 따로 수련하지 않아도, 체내에 항시 마력이 순환한다. 그것은 혈관(Vascular)과 신경관(nerve trunk), 림프관(lymphatic vessel)과 함께 4대 순환계통으로 일컬어지는 마력관(Mana cular)이었다.
인체를 타고 도는 선천적인 에너지를 선천마력(先天魔力)이라고 한다.
‘직장은 대장의 마지막 부분으로 길이는 15cm. 파이프 모양의 관으로 안쪽에서부터 점막층, 점막하층, 근육층, 장막층으로 나뉘어져 있다. 대부분의 직장암은 장의 점막에서 발생하는 선암이며, 치료 방법은 방사선 치료와 함께 수술적 치료법이 있다.’
나는 전날 인터넷으로 습득한 정보들을 토대로, 생각을 정리해나갔다. 모두 한 번 보고 스쳐 지나간 정보들이었지만, 나는 모두 기억해냈다.
컴퓨터의 디스크처럼 내 뇌는 일반인들과 다른 방식으로 정보를 저장해, 언제든지 원하는 때에 바로바로 꺼내 쓸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용량에는 한계가 없었다.
‘엄청 광범위하게 퍼져있군······.’
나는 마력을 통해, 아버지의 몸 내부를 관조하면서 혈관과 림프관, 골수에 골고루 퍼진 암세포들을 발견했다.
암세포는 이미 커질대로 커져 종양의 형태로 수십 개가 넘었다.
화아아악!
아버지의 마나로드로 침투한 내 마력이 급작스럽게 성질을 바꿨다.
사이오닉(Psionic).
마력의 종류 중에서도, 매우 사납고 강렬한 힘이 바로 사이오닉이었다.
마력은 에센스(Essence), 마나(Mana), 오러(Aura), 사이오닉(Psionic) 순으로 성질이 바뀌고 가벼워지고, 강렬해진다.
사이오닉의 힘을 사용할 수 있는 자는 이계 데모스 행성에서도 손가락 안에 꼽는 강자들이었다.
아무나 함부로 사용을 허락할 만큼 사이오닉의 힘은 온순하지 못했다.
파지지지직!
처음 아버지의 마나회로를 침투할 땐, 암세포들에게 익숙한 에센스 마력을 주입했다.
하지만, 나는 내 몸에서 빠져나간 마력을 순식간에 상위 마력으로 바꿀 수 있었다.
바로 10서클의 위엄이었다.
“으으윽······.”
이미 암세포에 의해 순환계가 모두 망가진 아버지는 암세포 앞에서 방어체계가 무너져내린 상태였다.
당연히 나의 강대하고 무한한 마력을 막아내는 건 애초에 불가능했다.
아무리 암 부위를 도려낸다고 해도, 아버지를 치료할 순 없었다. 온몸을 조각조각 내도, 암세포는 조각난 곳곳마다 들어차 있었으니까.
그러니 아버지를 치료할 방법은 단 한 가지뿐이었다.
“으어어어억······!”
바로 마력(魔力)으로 전신에 퍼진 암세포들을 태워버리는 것.
아버지의 입에서 끊임없이 신음이 터져 나왔다.
나는 아버지와 처음 대화를 나누던 순간부터 마력의 장막을 주위에 쳐둔 덕분에, 소리가 새어나갈 염려는 없었다.
현재는 소리뿐만이 아니라, 나와 아버지의 존재 자체가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았다.
고도의 광왜곡(光歪曲) 마법을 통해, 빛의 굴절을 마력으로 세밀하게 굴절시켰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지금 우리 부자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장기에 손상이 가지 않게 해야 한다.’
마력의 성질 중에서도, 매우 빠르고 강력한 사이오닉이기에 굼뱅이처럼 기어 다니는 암세포들을 잡아먹는 건 일도 아니었다.
“크으으······.”
찰나의 순간.
아버지의 암치료가 모두 끝이 났다.
“아버지. 이제 편히 쉬세요. 자고 일어나면 다 나아 있을 거예요.”
나는 깊은 잠에 빠진 아버지에게 이불을 목 끝까지 덮어준 후, 밖으로 나왔다.
*
“으흐흑, 엉엉······.”
“괜찮으세요, 아가씨?”
아리 주얼리샵에서 매장관리를 맡고 있던 주아영. 그녀는 사장님인 아리의 명령을 받고, 준혁 남매를 태워 병원까지 태워다줬다.
그리고 병동 복도의 벤치에 앉아,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는 중이었다.
헌데, 갑자기 준혁의 여동생인 이혜은이 달려 나와서 울음을 터트렸다.
“아버지가 곧 돌아가실 것 같아요. 엉엉······.”
“네? 그게 갑자기 무슨 소리예요?”
“아버지의 얼굴이 전보다 더 안 좋아지셨어요. 오빠를 보려고 이제까지 버텨왔었는데······. 이제 한계에요. 흑흑흑······.”
혜은은 눈물이 범벅된 얼굴로 바닥에 쭈그려 앉았다.
오빠가 귀환한 후, 여지껏 기쁜 일만 계속되었는데 그것도 이제 끝이었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아무리 보고 싶던 오빠가 돌아와도.
아버지의 병세는 되돌릴 수 없었다.
그랬기에 아버지는 더 냉랭한 표정으로 자식들을 대하는 것이다. 아버지에게 미련을 갖지 말라고.
아버지가 죽거든, 깨끗이 잊어버리라고.
아버지의 모습에서 그것을 읽은 혜은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아버지가 암이신가요?”
주아영은 와인색 머리를 귀 뒤로 쓸어넘기며 측은한 표정으로 물었다. 병원으로 올 때까지만 해도, 아무렇지 않았던 남매였다. 헌데 이런 속사정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암 말기래요. 의사님은 포기하래요. 빨리 병원비나 내놓으래요. 그동안 밀린 병원비 때문에 항암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했어요. 다 저 때문이에요. 엉엉······.”
“그게 왜 혜은씨 때문이에요?”
주아영 또한 괜스레 눈시울이 시큰해져서 이혜은의 어깨를 다독여줬다.
“아버지가 저 때문에 잠도 자지 않고 매일매일 일을 했어요. 잠도 차에서 자고, 밥도 차에서 먹고······. 그래서 암이 걸리신 거에요.”
“······.”
“제가 정신을 차렸어야 했는데······ 돈을 벌어서 부모님을 도왔어야 했는데··· 이젠 늦어버렸어요. 흑흑흑······.”
“아직··· 안 늦었을 거예요······.”
주아영은 무슨 말이든 해서 혜은의 마음을 위로하고 싶었다. 그래서 순간 말실수를 하고 말았다.
‘아차. 잘못 말했구나······.’
오히려 위로한답시고 희망 고문을 하는 게 더 나쁜 거였다.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방법은 오직 ‘시간’뿐이었다.
주아영 또한 짧은 세월 동안 그러한 것을 절절히 느끼고 있었다. 그녀 또한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셨다.
“안 늦었다고요?”
“어, 음···. 그게······.”
주아영은 뒤늦게 사태수습을 위해 두뇌를 풀가동 했다.
“어···. 제가 아까 전에 오빠 분께, 오늘 아버님이 퇴원하시는 날이냐고 물어봤거든요. 그랬더니, 뭐 비슷하다고. 아무렇지 않게 말씀하셨어요. 오빠 분께서 혹시······.”
주아영은 뒷수습을 하다 수습이 안 돼서, 입을 다물었다. 아, 대참사가 일어났다. 주아영의 표정엔 딱 그렇게 쓰여져 있었다.
“오빠가 그렇게 말했다고요?”
“네······. 아, 혜은씨. 방금 말은 그냥 잊어버리세요. 아무튼······.”
“아니에요.”
혜은은 눈물을 벅벅 닦으며, 주아영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리곤, 곧 밝은 표정으로 외쳤다.
“오빠라면 가능할지도 몰라요.”
“네?”
주아영은 그 말을 듣고 멍하니 입을 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