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10th Circle mage RAW novel - Chapter 161
161
77.34살 새내기
“오빠! 준혁 오빠!”
“어, 너?”
한국대 입학식이 끝나자마자, 나를 향해 한 여자가 후다닥 달려왔다.
“오빠 저 기억하세요??”
“당연히 기억하지.”
나는 160센치 정도 돼 보이는 여자애를 내려다보며, 반가운 미소를 머금었다.
“수능 아이템 끼고 인생 역전한 이지수 아니야?”
“호호호. 다 마탑 아이템 덕분이죠 뭐.”
이지수는 내 곁에 와서 이러쿵저러쿵 신이 나서 마구마구 떠들어댔다.
“오빠 근데 밥 먹으러 안 가요?”
“가야지.”
사실 아는 사람도 없고, 또 같은 또래의 친구들도 없었던지라 나는 아웃사이더처럼 혼자 밥을 먹으려고 했다.
“그럼 저랑 같이 먹어요. 이번엔 제가 쏠게요.”
“오, 정말?”
나는 이지수가 쏜다는 말에 기특한 생각이 들어 녀석을 돌아보았다.
한데.
“네. 한국대학교 학식으로 근사하게 제가 쏠게요.”
“······.”
“히히히.”
이지수는 황당한 내 표정에 재밌다는 듯 입을 가리고 쿡쿡 웃었다.
“농담이에요. 저번에 제가 얻어먹었으니 이번엔 근사한 곳에서 제가 쏠게요.”
“네가 돈이 어디 있다고 근사한 곳을 데려가? 그냥 네 말 따라 학식이나 먹으러 가자.”
우리는 그렇게 대운동장을 지나쳐 식당으로 이동했다.
“어머, 지수야.”
“어? 차수연!”
나와 나란히 걸어가던 이지수가 멀리서 친구를 발견하고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오빠, 제 중학교 동창 차수연이에요. 수연아, 인사해. 이쪽은 나와 아는 오빠인 이준혁 오빠야.”
“아, 준혁 오빠 안녕하세요? 지수 친구 차수연이라고 합니다.”
“어, 그래. 반갑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긴 생머리에, 하얗고 귀여운 얼굴을 가진 풋풋한 소녀가 나를 향해 꾸벅 고개를 숙였다.
‘아리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는 거 같은 여자애네······.’
사실 지수 친구라고 해서, 별로 여자라고 느껴지진 않았지만 그래도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애라 그런지 모든 행동이 풋풋하고 귀여웠다.
“오빠가 이번에 이과 전국 수석하신 분 맞죠? 문·이과 통틀어서 이번 수능에서 만점받은 사람이 오빠밖에 없다던데······.”
“운이 좋았지.”
사실 마탑에서 출시한 수능 아이템 때문에 작년에 치러진 수능의 난이도가 대폭 올라갔다.
거의 헬, 지옥급 난이도라 일컬어질 정도로 역대급 난이도였다. 그래서 만점은커녕, 과목별로 90%이상 문제를 맞춘 학생들도 드물었다.
“운이 좋긴요. 운으로 만점을 맞을 수 있나요? 그것도 수능인데······.”
차수연은 약간 얼빠진 표정으로 그렇게 물으며 이준혁을 주시했다.
*
‘이 사람이 바로 아버지가 말한 이준혁이란 사람이구나···.’
차수연은 입학 면접 때 우연히 스쳐 지나가듯 봤던 이준혁의 모습을 떠올리곤 달라진 지금의 시선과 비교해보았다.
‘배후에서 마탑을 움직이는 실질적인 인물.’
아버지 차대훈은 요즘 깊은 고심에 빠진 채, 회사 일도 도외시하고 집에서 기자들과 정치인들과 만나며 마탑에 대한 얘기에만 열을 올렸다.
-마탑이 이대로 브레이크 없이 계속 성장해나간다면, 결국 당신들 또한 이준혁이란 사람 앞에 무릎 꿇고 빌빌 길 수밖에 없을 겁니다.
-마탑이 전자업계에 진출하는 날, 수백만 명의 실업자들이 생겨날 겁니다. 마탑은 쥬얼리·제약뿐만 아니라, 전자업계··· 나아가 다른 전 산업까지 모두 먹어치울 겁니다.
-국가보다 더 강한 기업 국가가 탄생할 겁니다. 그럼 대한민국은 마탑의 발바닥이나 핥으면서 생명을 구걸할 수밖에 없습니다.
차대훈은 기자들과 정치인들에게 그렇게 호소하며, 마탑그룹을 응징할 비장의 한 수를 준비했다.
‘아버지가 이러는 모습은 정말 처음이야···.’
그동안 언론 플레이나, 정치권과의 정경유착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번엔 경쟁업체를 꺾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진성그룹 자체가 공멸해버리는 것마냥 조급하게 행동하고 있었다.
-수연아, 네게 부탁이 있다.
아버지는 결국 자신에게까지 도움의 손길을 바라는 부탁을 해왔다.
-이번에 너와 같이 입학하는 이준혁··· 그놈을 어떻게든 네 사람으로 만들어 줄 수 없겠니? 이건 우리 그룹의 사명이 달린 일이다.
아버지의 요구에 차수연은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미 그룹 승계권은 다른 오빠나 언니들이 받기로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차수연은 다른 남매들보다 터치를 덜 받았다.
결혼 상대도 스스로 원하는 상대와 하라고, 늘 말씀하시던 아버지였다.
한데, 결국 이런 정략 관계까지 요구하다니···.
-알겠습니다.
하지만, 결국 차수연은 승낙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에게 아버지는 이 세상 모든 것과 맞바꿀 수 없는 소중한 사람이었다.
그랬기에, 차수연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버지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결심했다.
냠냠, 쩝쩝.
“음, 맛있네.”
“그렇죠? 1700원짜리 학식치곤, 가성비가 괜찮아요.”
이준혁과 이지수는 나란히 마주 앉아, 처음 먹어보는 한국대 학식을 열심히 퍼먹으며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고 있었다.
‘이게 맛있다고······?’
하지만, 매일매일 최고급 7성 호텔의 요리를 매 끼니 먹는 차수연으로선 이런 밥이 거의 애완동물 사료나 다를 게 없었다.
‘제육불고기에 상추, 쑥갓무침, 열무된장국, 김치와 백반···.’
1700원짜리 학식답게, 있을 것만 딱딱 갖춰진 단출한 식단이었다.
“너 왜 그렇게 깨작깨작 먹니?”
“···응? 아, 먹고 있어. 너 벌써 다 먹었구나···.”
차수연은 자기 집 개 사료를 내려다보듯, 멍하니 식판을 내려다보다가 이지수의 핀잔에 퍼뜩 숟가락을 놀리기 시작했다.
“큭큭큭···.”
“흐흐···.”
이미 식판을 깨끗이 비운 이지수와 이준혁은 그런 자신을 재밌다는 듯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아으, 창피해.······.’
차수연은 괜히 남들 앞에서 요조숙녀처럼 굴다가, 인간관계가 파탄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에, 최대한 조심하고 또 조심하려고 했다.
“기다리게 해서 죄송해요, 오빠. 콜록콜록!”
“야, 괜찮아. 천천히 먹어.”
“그래, 수연아. 천천히 먹어라.”
먹다가 체해서 울상이 된 자신을 이지수와 이준혁이 걱정해주었다. 차수연은 입학 첫날부터 이준혁에게 점수를 깎이게 되어 마음속으로 매우 속상해 했다.
*
“실프야. 오늘 잘할 수 있지?”
“응!”
실프는 아리의 손을 잡고 아장아장 걸으며 서울의 한 사립 유치원에 도착했다.
굳이 비싼 데를 찾아서 가기보단, 집에서 최대한 가까운 곳에 있는 유치원을 잡았다.
드르륵.
아리는 아침 6시부터 일어나서 실프를 씻기고, 아침을 먹이고, 준비물 등을 잘 챙겨서 7시 30분에 유치원에 도착했다.
“어서 오세요.”
“안녕하세요, 선생님.”
“안냐세요, 샌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정면에서 신입생들을 맞이하는 유치원 선생님이 아리 일행을 반갑게 맞이했다.
아리와 실프 또한 순서대로 마주 인사를 하며, 나뭇결무늬 장판이 깔린 40평 남짓의 바닥에 조심스럽게 앉았다.
아리 일행이 너무 빨리 왔기 때문에 내부는 한산했다.
“아직 다른 유치원생들이 오려면 좀 기다려야 할 거예요.”
약간 동그란 얼굴의 여자 선생님이 그렇게 말하며, 간단한 다과상을 모녀에게 내왔다.
“감사합니다.”
“감다합니다, 선샌님.”
실프는 간식이 나오자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행복한 표정으로 그것을 집어먹었다.
“얘가 되게 귀엽게 생겼네요. 이름이 뭔가요?”
“아, 네. 이름이요?”
아리는 남들 앞에서 실프의 이름을 말할 때마다, 늘 어색한 느낌이 들었다.
“이실프입니다.”
“이실··· 뭐라고요?”
“성은 이 씨에 이름은 실프에요.”
“아아. 영어 이름이구나.”
유치원 선생은 실프의 이름을 별로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고 당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요즘은 자식 이름을 영어로 짓는 사람도 많으니까.’
미국으로 원정 출산까지 하는 마당에, 이름을 영어로 짓는 것 정도는 예삿일도 아니었다.
게다가.
‘모녀가 다 혼혈인가보네······.’
금발에 벽안.
얼굴은 약간 동양적인 면이 살짝 보였지만, 그래도 눈매와 콧대가 동양인과는 확연히 달랐다.
‘우월해···.’
특히나 같은 여자로서 자기는 조물주가 대충 만들다 손 놓은 것처럼 생겼고, 저 모녀는 조물주가 정말 세심하게 천지창조를 하는 느낌으로 다듬고 또 다듬은 듯한 이목구비였다.
드르륵.
그렇게, 아리 모녀 이후로 추가로 한 쌍의 모녀가 또 들어왔다.
“안녕?”
다리를 약간 저는 엄마와 함께 들어온 단발머리의 소녀가 실프에게 먼저 인사를 건넸다.
“어. 안녕?”
실프 또한 자신의 또래가 먼저 인사를 건네오자, 보조개가 핀 얼굴로 활짝 웃으며 마주 인사를 했다.
“나도 이거 먹어도 되지?”
“응.”
실프는 친구가 다가와서 과자를 가리키며 묻자 얼른 고개를 끄덕이며 들고 있던 과자를 건넸다.
두 소녀가 그렇게 사이좋게 과자를 나눠 먹는 모습을 보며, 아리와 새로 들어온 학부모는 흡족한 얼굴로 마주 웃었다.
“이번에 여기 유치원에 입원하셨나 봐요?”
“네. 그렇게 됐네요.”
아리는 다리를 약간 저는 아주머니를 속으로 안쓰럽게 생각하며 그렇게 대답했다.
“제가 다리가 불편해서 조금 일찍 출발했었는데, 벌써 다른 학부모님이 와 계실 줄은 몰랐네요.”
절름발이 여자는 다 헤진 분홍색 티셔츠와 시장바닥에서 산 검정색 스판 바지를 입고 있었다.
“옆에 앉아도 되죠?”
그렇게 말하며, 어이쿠··· 하는 신음을 내며 절름발이 여자는 아리의 옆에 앉았다.
“다리가 많이 불편하신가 봐요.”
“네···. 작년에 다쳤는데 치료 시기를 놓쳐서 계속 욱신거리네요······.”
절름발이 여자는 약간 어두워진 기색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이제 슬슬 가지고 있는 돈도 다 떨어져 가서, 딸 아이를 위해 일도 해야 하는데 발목이 이래서 참 막막하네요···.”
“그렇군요.”
아리는 발목이 욱신거린다는 게 정확히 어떤 느낌인지 잘 몰라서, 그저 그녀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는 수밖에는 도울 방법이 없었다.
“휴···. 그래도 작년에 우리 모녀를 딱하게 여기시고 도와주신 분이 계셔서 지금까지 버텼는데, 그것도 이제 한계네요.”
그녀는 계속해서 푸념을 이어나갔다.
사실 그녀는 작년에 판자촌에 살며, 다리를 절던 여자였다. 그녀의 딸이 하느님에게 소원을 빌다가, 이준혁이 뿌린 돈벼락을 맞아 지금껏 겨우 생계를 유지해 온 것이다.
하지만, 이미 발목 치료를 하기엔 늦어버렸고, 그동안 의료보험비도 안 내서 이미 자격이 박탈당한 상태였다.
그래서 거의 반 자포자기 하는 심정으로 딸래미만 바라보며 겨우겨우 하루하루를 연명해나가고 있었다.
“오늘 처음 보는 사이인데, 이런 이야기 해서 미안해요. 괜히 주책맞게끔, 사는 게 너무 힘이 드니까 자꾸만 하소연을 하게 되네요.”
“괜찮아요, 힘들면 누구나 다 그렇죠.”
아리는 그렇게 대답하면서, 다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음······. 혹시 일자리가 필요하시면요.”
오지랖이라는 걸 알면서, 아리는 자신도 모르게 절름발이 여자에게 입을 열었다.
“혹시 마탑에 취직할 생각은 없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