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10th Circle mage RAW novel - Chapter 163
163
77.34살 새내기(3)
“다들 표정이 왜 그러죠? 어차피 H코스는 여러분과는 별로 상관없는 코스 아닌가요?”
“······.”
“참고로 H코스를 선택해서 졸업한 학생은 여태껏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H. 헬 난이도 코스.
한국대학교가 야심차게 내놓은, ‘최고 엘리트 양성’을 위해 특별히 신설한 코스가 바로 H코스였다.
“물론 장난을 치려고 이런 코스를 만든 건 절대 아닙니다.”
유하은 교수는 그렇게 말하며, 들고 있던 보드마카를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현재 4차 산업혁명의 바람이 우리 산업 곳곳에 미치고 있죠?”
“네.”
“그런데 우리들의 교육 시스템은 지금 어떤가요?”
“······.”
그녀의 말은, 지금까지 해왔던 교육 방식이 미래에 있을 4차 산업혁명에 과연 알맞은 방식인가를 학생에게 묻고 있는 것이었다.
“IT업종뿐만 아니라, 산업 전반이 인공지능을 도입해서 낭비되는 인적·물적 자원 없이 돌아가는 제로 효율의 공정을 노리고 있습니다. 그것이 기존의 일자리를 대체하든 뭐가 됐든 간에요.”
“······”
유하은 교수의 말대로, 인공지능(AI) 기술은 4차 산업혁명의 5대 기술 중 하나로, IT업계뿐만 아니라 농업과 일반 수공업 계열까지 전방위적으로 확산되고 있었다.
“예전엔 무조건 사람이 해야 되는 일들이, 이제는 사람의 손을 거치지 않고 인공지능으로 해야 더 효율적인 시대가 오고 있다 이 말입니다.”
“······.”
“그런데도, 여러분들은 아직까지 학교가 배부하는 전공서나 붙잡고 달달 외우고 있으며, 80·90년도의 부모님 세대와 전혀 다를 게 없는 공부방식으로 강의를 듣고 있습니다. 그런 여러분들이 과연 4차 산업혁명의 뉴 웨이브에서 도태되지 않고 살아남을 자신이 있습니까?”
“······.”
유하은 교수의 말에 모든 학생들은 꿀먹은 벙어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당장 개론 강의가 끝나고 빨리 신입생 환영식이나 하자며, 오늘 하루 질펀하게 취하며 놀아야겠다고 생각한 학생들.
이준혁을 제외하고, 99%의 학생들이 모두 그런 생각에 빠져 있었다.
‘미래를 준비하고 대비하는 것.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새로운 물결에서 살아남기 위한 현재의 모험···.’
나는 잠이 활짝 깨는 것을 느끼며 유하은 교수의 말을 경청했다.
‘역시 지성의 장소라 그런가, 예상외로 깨어 있는 사람이 있네······.’
그냥 경험 삼아 입학한 대학교에서, 이런 인연을 만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유하은은 찔끔해 하는 학생들을 한 명, 한 명 뚫어지라 쳐다보더니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그런 반복적인 암기 학습은 컴퓨터가 더 잘하고, 인공지능이 더 잘합니다. 만약 인공지능이 여러분이 보고 있는 전공과목을 다 외우는 데 과연 얼마나 걸릴 것이라고 예상하십니까?”
“······.”
“어이 거기 떠들고 있는 학생. 학생이 일어나서 말해보세요.”
아까 전부터 옆자리 학생과 시시덕거리며 떠들던 한 학생이 유하은의 지적에 뭉그적거리며 일어났다.
“네? 교수님? 방금 뭐라고 하셨죠?”
“학생 이름이 뭔가요?”
“김한석입니다.”
“김한석 학생. 지금 보고 있는 ‘전기·전자기술의 산업응용’을 외우는데 본인은 얼마 정도 시간이 필요하십니까?”
“저요? 음···. 글쎄요······?”
김한석은 질문이 바뀌었는지 모르고 곰곰이 생각하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한 1년? 아니, 한 3~4년은 걸릴 것 같아요. 어차피 졸업할 때까지 숙달하면 되는 거 아닙니까?”
“네, 그러면 되겠네요. 일단 앉으세요.”
“큭큭큭······.”
여기저기서 김한석을 비웃는 웃음이 흘러나왔다. 김한석은 영문도 모른 채 개망신을 당했다고 생각했던지 얼굴을 붉으락푸르락하며 이하은 교수를 노려보았다.
“1년 아니면 3~4년이라······.”
“······”
꿀꺽.
강의실 안은 학생들의 침 삼키는 소리 외에는 침묵만이 흘렀다.
“그럼 아까 말한 대로, 인공지능은 과연 얼마나 걸릴지 말해볼 사람?”
“······”
“저기, 저 뒤에 전국 1등 계시네요. 전국 1등 씨?”
“···네?”
나는 다른 학생들 사이에 파묻혀, 있는 듯 없는 듯 그림자처럼 숨어 있다가 이하은에게 불려서 일어났다.
“인공지능은 전공 서적 하나를 모두 통달하는데 과연 얼마 정도의 시간이 걸릴까요?”
“음······”
나는 잠시 고민했다.
이하은이 내준 문제의 답을 몰라서가 아니었다.
‘사실대로 말하면 너무 충격적이니까······’
그래서 나는 현재 시중에 나온 컴퓨터·인공지능 성능을 기준으로 이하은의 질문에 답을 했다.
“시중에 나온 솔리드 스테이트 드라이브(Solid State Drive)의 한계치인 50T 기준으로, 만약 전공 서적의 데이터 용량이 20MB 정도라고 한다면, 다 읽어 들이는데 초당 0.12초 정도 걸립니다.”
쏴아아아ㅡ!
1초도 안 걸린다.
내 충격적인 대답에 강의실에 앉아 있던 모든 학생과, 질문을 했던 유하은까지 모두 할 말을 잃고 얼어버린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사실 전공서적 한권이 20MB까지 하진 않겠지만, 사진 같은 것도 포함해서 맥시멈으로 넉넉히 잡았지.’
텍스트만 친다면 아마 7MB를 넘기 어려울 거다.
보통 일반 책의 텍스트 용량이 3MB이하라고 치면, 거의 7배 가까이 높여준 수치였다.
하지만, 2배가 됐든, 7배가 됐든 중요한 건······.
‘1초도 안 걸린다는 거지······.’
당연히 컴퓨터니까 그럴 수도 있는 거 아니냐?
컴퓨터는 대신 사람이 하는 사고적인 판단은 전혀 못 하잖아! 라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그 주장을 뒤엎는 컴퓨터 프로그래밍이 나온다면?
‘AI라면 가능하지······.’
전공서적을 읽어 들이는 것뿐만 아니라, 사람처럼 내용을 분석·분류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물론, 완벽히 사람처럼 해내지는 못하겠지만, 만약 전공서적에 한해서 전문적으로 프로그래밍을 해서 사람과 경쟁시킨다면 사람보다 더 뛰어난 분류·분석을 할 수도 있었다.
‘물론 지금은 그 정도밖에 못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을 조금씩 대체해나가지······.’
지금은 일부분, 한 분야씩 특정한 알고리즘을 짜서 개개별로 인간과 맞붙는다면, 나중에는 전분야에서 통합적인 분류와 사고판단을 하는 ‘강인공지능’이 등장한다.
‘막연한 SF 공상과학 영화가 아니라, 근미래에 우리에게 불어닥칠 현실이다.’
현재 70·80년대와 다름없이 대학교 생활을 하고 있는, ‘한국대’라는 명문대 간판만 믿고 어영부영 술이나 퍼마시며 놀 생각을 하고 있는 학생들은, 앞으로 5년 내에 인공지능과의 경쟁에서 100% 뒤처진다고 나는 확신했다.
아니, 1000%까지 확신할 수 있었다.
내 대답에 놀라서 입을 떡 벌리고 있던 유하은 교수가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다시 말을 걸었다.
“저번에 이름이 뭐라고 했었죠?”
“이준혁입니다.”
“준혁 학생. 정말 좋은 대답이었어요. 갑작스러운 질문이었는데, 별로 당황하지 않고 곧바로 정확한 해답을 내놓는군요.”
“항상 하는 생각이라 별로 어려울 것도 없었습니다.”
“······.”
항상 하는 생각이라는 말에, 또 다시 강의실 안에 적막이 찾아들었다.
‘이거 또 나 때문에 갑분싸(갑자기 분위기 싸해진) 된 건가?’
예전에 학교 다닐 때처럼, 그저 있어도 없는 사람처럼 공기 같은 비중을 가진 학생이 되고 싶었는데······.
‘입학 첫날부터 너무 주목을 받아서 큰일이네···.’
안 그래도 신입생들 앞에서 대표로 선서를 읽느라 얼굴이 근질근질거리고, 화끈화끈 거렸다.
한데, 매 수업마다 교수들이 ‘어이, 전국 1등. 이것 좀 말해보지?’라고 하면 매우 귀찮고 창피할 거 같았다.
‘마치 지금처럼 말이지.’
나는 그저 상식대로, 일상적인 생각을 얘기했을 뿐인데도 이곳의 사람들은 말 그대로 ‘평범한 사람들 중에 조금 나은 수준’의 사람들만 모여 있다 보니, 내 말 한마디, 한마디가 전부 컬쳐쇼크로 다가오는 모양새였다.
‘사실 한국대 학생이라고 뭐 지방대 학생들과 큰 차이가 있는 건 아니니까······.’
내가 보기엔 솔직히 도긴개긴이었다.
물론 걔네들 사이에선 도토리 키재기를 하며 서열을 많이 나눠놨던데, 나에겐 솔직히 아웃오브안중, 노관심·노상관이었다.
“좋아요, 준혁 학생. 학생을 보니 괜히 전국 1등을 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
“특히나 이번 역대급 헬 난이도 수능에서 전과목 만점을 받는다는 것도 솔직히 말이 안 되는 일이었는데······.”
“······.”
나는 이하은 교수의 이어지는 말에 불안감을 느끼며, 침을 꼴깍 삼켰다.
이하은은 그런 나를 귀엽다는 듯 내려다보더니.
“그럼 이준혁 학생은 이번에도 헬 난이도 코스에 도전하겠죠?”
나에게 국지도발을 걸어왔다.
*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위치한 위치한 마탑 종합 병원. 일명 ‘마탑 병원’이라 불리는 이곳은 이준혁이 경쟁 회사였던 안비제약으로부터 빼앗은 건물이었다.
연면적 8만평에 이르는, 한국대학교 병원보다 더 큰 규모의 이 병원은 현재 도보까지 줄을 선 환자들 때문에 인산인해를 이뤘다.
“아, 오늘도 줄이 좀 많이 밀리네요······.”
“그렇네요.”
아리는 마탑 그룹의 법인 차인 롤스로이스를 타고 포부도 당당하게 병원 입구를 지나쳐, 박태진이 거하는 병원 원장실로 이동했다.
박태진은 마탑제약의 사장 자리에 오르면서, 개인적으론 병원 실무에서 손을 떼고 경영자로써 마탑 제약을 이끌어오고 있었다.
‘날이 갈수록 규모가 점점 커지네······.’
아리는 올 때마다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 있는 마탑 병원의 광경을 신기하게 쳐다보았다.
아리가 보는 것처럼, 마탑 병원과 제약은 날이 갈수록 폭풍성장해가고 있었다.
-마탑 제약, 생산하는 영양제에 대한 공급 부족으로 자사의 분점에만 물량 공급. 타 병원에는 아직 공급 예정 없어······.
-일반 병원들, 마탑 제약의 간판을 달기 위해 줄줄이 자신의 병원 이름 바꿔. 무늬만 ‘마탑’인 병원도 등장.
-영양제로 병원·약국 줄 세우기. 꼬우면 우리 약 안 받으면 될 거 아니냐?
연일 마탑 제약의 행보로 기사들을 쏟아내는 각종 기자들과 언론사들. 그들은 대체로 다른 병원이나 제약사로부터 로비를 받고 마탑 제약에 대해 안 좋은 늬앙스의 기사를 양산했다.
하지만.
-기레기들 또 돈 처먹고 마탑 견제하네 ㅉㅉㅉ.
-응, 다른 병원들 다 망해도 상관없으니까 마탑만 있으면 돼. 돌팔이들 이참에 대거 망하자. 세금만 낭비하는 지잡대들처럼.
-의레기들도 이제 마탑 밑에서 배워서 오진 좀 그만 낼 때 됐다. 기레기들이 마탑 견제하는 거 보면, 확실히 현재 마탑이 하는 일이 옳은 일인 듯.
하며, 대부분의 네티즌들이 옹호적인 여론을 보냈다.
그래서 ‘내가 내다’하며 프리미엄 의식을 지니고 있던 유수의 제약 업체·대학 병원들은 ‘어··· 어···’하다 줄줄이 도산하는 중이었다.
-순양대학교병원, ‘우린 제대로 검증조차 거치지 않은 마탑 영양제 안 받는다’라고 했다가, 얼마 전 유진광에게 찾아가 무릎 꿇고 애걸복걸. 하지만, 결과는 문전박대.
-한국대학교병원·구려대학병원·앤세대학병원 등등···. 현재 마탑 영양제를 배척한 병원들 모두 파리만 난리는 중. 자금난 심각······.
현재 마탑 병원의 독주로 인해, 한국의 의료업계는 거의 핵폭탄을 넘어 수소폭탄을 얻어맞은 상태였다.
그리고, 그 폐허 위에 우뚝 선 것은 ‘마탑’ 하나뿐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사모님.”
“오랜만이에에요. 박 사장님.”
아리와 박태진은 거의 반년 만에 다시 만나 해후하며, 즐거운 덕담을 나눴다.
“실프 소식은 많이 들었습니다. 아기 낳고 얼굴이 더 예뻐지셨네요.”
“아이, 참. 쑥스러운 얘기는 그만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아리는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가 자신의 옆을 따라온 안지민을 소개했다.
“발목이 많이 안 좋으세요. 다친 지 벌써 5년이 넘었데요.”
“아, 어디 좀 봅시다.”
박태진은 본래 외과 전문의는 아니었지만, 과거 의대를 다닐 때 외과 관련해서도 많이 배웠기 때문에 안지민의 발목 상태를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MRI를 안 찍어봐도 알겠네요. 이거 인대 전부 끊어지고, 연골도 전부 다 닳았습니다. 관절 상태도 마모가 심한 거 같아요.”
“으······.”
아리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박태진을 쳐다보았다. ‘무슨 방법이 없느냐?’하는 간절한 눈빛이었다.
“하지만.”
“···하지만?”
박태진은 걱정스러운 표정인 아리를 향해 씨익 웃으며, 책상 위에 있던 주사기 하나를 집어 들었다.
“이거 하나만 있으면, 다시 원상태로 돌아가실 수 있습니다.”
그것은 관절회복영양 성분이 들어 있는 ‘마탑 만능 DNA주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