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10th Circle mage RAW novel - Chapter 2
2
1.최후의 전쟁
이마까지 깊게 눌러쓴 후드.
몸 전체를 칠흑처럼 덮은 흑색 로브.
후드 안으로 언뜻언뜻 비치는 선홍색 불꽃과 함께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후······.”
그가 엉켜 있던 전장의 중심부로 서서히 걸어들어왔다.
큰 키에 삐쩍 마른 모양새였으나,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막강한 기파는 무시무시했다.
비키라고 말하지 않아도, 저절로 뒷걸음치게 만드는 아우라였다.
그의 오른손에 쥔 지팡이엔 붉은색으로 빛나는 거대한 보석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그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걸음걸이로 계속 전진해나갔다.
“후······.”
입에 문 기다란 연초에서 연기를 뿜어내며, 그는 시종일관 여유로웠다.
하지만.
화르르륵.
“크아아아악ㅡ!”
여유와는 전혀 다른 대참사가 일어났다.
콰광ㅡ!
“크아아아악ㅡ!”
그가 전장에 당도하자, 대이변이 일어난 것이다.
화염의 장막이 땅밑에서 솟구쳐 올랐고, 마군들이 서 있던 땅바닥이 염화지옥으로 변했다.
모두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후······.”
아무런 동작도, 마법의 영창도 없이, 그저 연초 연기만 뻑뻑 내뿜으며 일으킨 이적.
거대한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신의 압도적인 힘과 대비되는.
마신에 비하면 작디작은 체구에서, 신체의 한계를 뛰어넘은 무지막지한 마법이 폭사 되었다.
“마왕학살자······.”
누군가의 중얼거림.
“마법의 지배자······.”
웅성거림 속에서 알 수 없는 칭호들이 튀어나왔다.
“용 사냥꾼······!”
“대륙 최초의 10서클 대마법사 이준혁!!!”
10서클.
인간도, 엘프도, 심지어 드래곤조차 오르지 못한 그 경지.
부활한 마신 아르고스조차 10서클의 벽을 넘지 못했다.
9서클의 끝자락에서 머물며 세계를 쥐락펴락하고 있었다.
콰과과과······.
“끄아아아악ㅡ!”
200만에 육박하던 어둠의 군단이 눈에 띄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180만, 150만, 100만, 70만, 40만······.
수십만의 대군이 달려들어도 줄지 않던 그 숫자가, 오직 단 한 명.
단 한 명의 마법사에 의해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 무슨······!”
전장을 휘저으며, 드래곤들을 학살하던 마신 아르고스.
그의 눈동자가 충격과 공포로 붉게 물들었다.
*
‘아직 많이 남았군······.’
입에 문 연초를 쳐다보았다.
아직 필터의 끝자락에 여유가 있었다. 얼마 흐르진 않았지만, 대부분의 마물들이 전장에서 삭제되었다.
그동안 연구한 최상위급 화염 마법을 마음껏 뽑아냈다. 9서클의 영역을 넘어선 순간부터 혼자만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100년.
지구에서 이계 데모스 행성으로 끌려온 그 순간부터.
살아남기 위해 나는 처절하게 몸부림쳤다.
타고난 피지컬이 없어, 검도 잡지 못했다. 어중간할 거라면 차라리 머리라도 쓰자!
그렇게 결심한 후, 마법에 몰두했다.
깨어 있는 시간, 그리고 자면서 꿈에서까지 마법을 공부하고 또 연구했다. 인종이 다른 탓에 온갖 멸시와 구박을 받으면서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 섰다.
“허어억ㅡ!”
털썩.
눈앞에 석탄처럼 시커멓게 탄 마신이 무릎 꿇고 있었다.
저벅저벅.
노곤한 눈빛을 숨기지 않고, 녀석에게로 걸어갔다. 이제 끝이다. 이 순간을 위해 귀환을 미뤄왔다.
이 순간을 위해 내 자신을 극한으로까지 몰아붙였다.
반신들조차 오르지 못한, 10서클의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
“크아아악! 네 녀석 반드시 후회할 테다!”
내가 다가가자, 마신이 움찔거리며 발악적으로 외쳤다.
뭐지? 이 뻔한 대사는?
좀 더 나를 자극시킬만한 파격적인 대사는 없는 건가?
이놈은 영화나 소설에서 많이 봤던 그 뻔한 레퍼토리를 반복했다.
“그런 건 연초에 불붙이기 전에 얘기했어야지······.”
“······!”
나는 입에 문 연초를 한 모금 빨아당기며 후, 하고 내뱉었다.
연기가 녀석의 얼굴에 뿌려졌다.
이미 우리는 손을 뻗으면 닿을 근접거리까지 가까워 있었다. 하지만 녀석은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다.
일렉트릭 레스트릭션(Electric Restriction)
미세한 검은 뇌전이 마신의 육신을 타고 오르며, 그의 전신을 포박했다. 동시에 녀석의 마력과 근력의 수축을 모두 단절시켜버렸다.
치지지직.
“크아아아악ㅡ!”
아직 필터가 남은, 입에 문 연초를 빼내 마신의 이마에 푹 찍었다.
“연초 한 대 다 피기 전에 네 녀석을 없애기로 약속했거든.”
이제 약속은 지켰다.
콰과과과ㅡ!
마신이 무릎 꿇고 있던 지반이 불기둥과 함께 통째로 솟아올랐다.
*
펠레노르의 수도에 있는 아르카첸성.
제국을 지배하는 황제가 머무는 그 성에 수많은 인파가 몰렸다.
“감사드립니다.”
“마법사님 덕분입니다.”
“이 세계를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가 지나갈 때마다, 사람들이 한 마디씩 건넸다.
마신에 의해 멸망할뻔한 세상을 구했다. 무슨 대가를 바라고 한 일은 아니었지만, 그래서 더더욱 사람들이 호의를 건네왔다.
“준혁 경. 정말 고맙소.”
황좌에 느른히 앉아 있던 황제 베네포르.
최후의 연합군의 총사령관을 맡아 전장의 선두에 섰던 자다. 그가 황좌를 박차고 뛰어와 내 손을 붙잡고 흔들었다.
“뭘, 당연한 일을 한 것 가지고······.”
그와 손을 맞잡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로 꽂혔다. 나의 일거수 일투족을 경외의 눈길로 바라보고 있었다.
“준혁!”
내가 황제와 덕담을 나누는 사이, 가느다란 미성의 목소리가 내 귀에 꽂혔다.
꽈악.
그리고 뒤에서 백허그를 했다.
꽃처럼 향긋한 냄새가 풍겨왔다.
“아르젠?”
“···가지마 준혁.”
뾰족하게 솟은 두 귀를 쫑긋거리며 아르젠이 울먹거렸다. 그녀와의 한 약속은 지켰다.
사실 나는 데모스 행성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마신을 무찔렀다.
이계에 혼자 내동댕이쳐진 후, 아무도 내게 손을 내밀지 않을 때.
오직 그녀만이 구원의 손길을 건네줬다.
노란색 원숭이라고 차별하지 않고, 동등한 인격체로 대우해주며 마법과 지식을 전수해줬다.
일정 클래스를 넘어서면서, 그녀의 도움은 필요 없어졌지만 그래도 그 은혜를 잊진 않았다.
“약속은 지켰으니, 이젠 돌아가야겠어.”
“흑흑······.”
로브가 축축하게 젖어오는 게 느껴졌다. 아르젠이 펑펑 눈물을 쏟았다. 이미 500살 넘게 살아온 그녀는 여전히 청초한 20대 미모를 유지했다.
나는 돌아서 그녀의 얼굴을 양손으로 감쌌다.
주먹만 한 얼굴이 내 손에 잡혔다.
“미안해.”
나는 그녀의 하얗고 고운 이마에 입맞춤하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긴 속눈썹에 맺힌 이슬이 파르르 떨렸다. 아르젠은 다시 한번 나를 끌어안은 채 눈물을 터트렸다.
그녀를 달래고, 나는 에이션트 드래곤 바라곤드와 독대했다.
*
“그래, 본래 살던 고향으로 돌아갈 방법을 찾았다고?”
“그렇소.”
어두컴컴한 밀실에서 폴리모프 마법으로 변신한 바라곤드.
금발에 회색의 로브를 걸친 그는 마법사처럼 보였다. 하지만, 내면은 수만 살의 드래곤이었다.
“시간축과 공간축을 온전히 맞췄다는 게 정녕 사실인가?”
마신의 발치에서 내장과 피를 토하던 그는, 어느새 레스토레이션의 마법으로 상처를 치유한 상태였다.
죽지만 않으면, 사지가 절단돼도 살아남는 게 9서클의 위엄이다.
“예상 범위 안에 있는 평행 우주의 경우의 수를 모두 파악했소. 확실하오.”
나는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그렇게 대답했다. 내 대답에 바라곤드는 놀란 듯 입을 벌렸다.
“정말 대단하군. 그걸 모두 계산해내다니. 역시 10서클의 위엄이라 이건가······.”
10서클.
일명 신의 경지라 일컬어지는 절대 경지.
신을 제외한 그 어떤 존재도 발 딛지 못한 그 경지에 올라선 나다.
나에게 불가능이란 없었다.
“이곳에 남아서 해줄 일이 많을 텐데······.”
“그런 건 당신이 하시고······.”
바라곤드가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지려 하자, 내가 농담조로 말했다.
그래.
나는 할 만큼 다했다.
이계로 끌려와서, 아무런 이유도 알지 못한 채 이계에서 뒹굴었다. 후에야 그게 창조주 우르메의 안배라는 걸 알았다.
“마지막으로 악수나 한 번 합시다.”
나는 오랜 세월 인연을 맺어온 스승 바라곤드와 뜨거운 악수를 나누고 워프 게이트를 열었다.
이제 진짜 마지막이다.
이곳을 넘어가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데모스 행성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지구에서 태어났지만, 이곳에서 더 오래 살았다. 그래서 미련도 약간 있었다. 그 어떤 미녀들보다 더 예쁜 아르젠도 눈에 밟혔다. 하지만 돌아가야 한다.
죽기 전에 부모님을 뵙고 싶었다.
평생 나 때문에 고생만 하신 우리 어머니.
가족들을 위해 온갖 일을 마다하지 않고 살아오신 아버지.
나만 졸졸 따라다니던 귀여운 동생 혜은이.
가족들이 보고 싶었다.
지금쯤 어찌 살고 있을지, 내가 사라진 후로 가정이 무너지진 않았는지 걱정이 됐다.
“후······.”
마음속으로 모든 술식을 완성한 나는 긴 한숨을 토하며 마법을 시전했다.
휘황찬란한 빛이 내 몸을 감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