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10th Circle mage RAW novel - Chapter 44
44
27.방구석 폭군
“뭐? 방송을 하겠다고?”
나는 병아리같이 생긴, 노란색 츄리닝 차림의 이혜은을 내려다보며, 피식 웃었다. 그러자 혜은이가 내 팔을 잡고 졸랐다.
“오빠, 나 성공할 자신 있어. 나 한 번만 믿어줘.”
“음······.”
워낙 간절한 표정이라 쉽게 뿌리치지 못했다.
“그래, 하고 싶으면 해라.”
“와, 오빠 고마워.”
“장비랑 이것저것 준비하는데 얼마나 드냐?”
혜은이가 이렇게 내 허락을 바라는 것도 다 돈 때문일 테니, 나는 동생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했다.
“음, 방송용 컴퓨터는 최고사양으로 견적 내봤는데 200만 원 정도 든데.”
“마이크랑 캠은 안 사냐?”
“로지텍 4K HD 웹캠이랑 아벌미디어 갓위트 마이크까지 하면 넉넉잡아 300만 원?”
“총 300만 원이면 충분해?”
“음······.”
나는 고민하는 혜은이에게 그냥 회사 법인카드를 건넸다.
“필요한 만큼 다 결제하고 내 책상에다 올려놔.”
“우와, 오빠. 고마웡!”
혜은이는 방긋 미소지으며 잽싸게 카드를 받아들고는 방으로 쪼르르 들어갔다. 아마 당장이라도 점찍어 놨던 장비들을 거리낌없이 지를 모양새였다.
‘혜은이도 그동안 고생 많이 했으니까, 이 정도는 해줘도 되겠지.’
사실 내가 15년간 자리를 비우는 동안, 혜은이가 내 몫까지 자식으로서 도리를 다했지 않은가?
아버지 병문안도 챙기고, 엄마와 말동무도 해주고. 어찌 보면 그것도 큰일이었다.
비록 후진 대학에 들어가 등록금만 축내고 있었지만, 사실 혜은이는 공부를 잘할 필요가 없었다.
나중에 취업 못 해서 빌빌거리더라도, 내가 돈이 많으니 상관이 없었다.
‘앞으로 우리 가족이 일을 하는 경우는 없을 거다.’
돈?
먹고 살기 위해서 일을 쉬면 안 된다?
그건 우리 가족에게 해당되지 않는 말이었다.
‘앞으로 내가 차릴 제약회사와 각종 마도공학을 이용해서 시대를 앞서나가는 오버테크놀로지를 통해 떼돈을 벌 테니까.’
아마 갈퀴로 돈을 쓸어 담을 게 분명했다. 거기서 걸리적거리는 놈들은 모조리 마법으로 쓸어버릴 것이고.
당장 큰돈이 생겼기 때문에 나는 마음이 한결 편안했다.
수십억 단위에서 수조 단위로 바뀌었으니,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띠융!
나는 쇼파에 걸터 앉아 오랜만에 티비를 켰다. 해외에 있는 동안엔 한국 방송을 못보고 CNN 같은 해외 뉴스만 주구장창 봤다. 아리가 시사나 경제에 관심이 많아서, 평소에도 드라마보단 뉴스를 많이 본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낄낄낄.”
오랜만에 누워서 티비를 보니 참 재밌었다. 래퍼들이 나와서 랩을 하는 방송이었는데, 스피드한 전개가 참 인상적이었다.
“니 *신 같은 랩 들으니 존나 졸려. 돈 벌고 싶으면 쇼미 말고 쇼가서 걸레질이나 해 이 *발*끼야!”
중간중간 삐처리 된 래퍼들의 목소리가 방송을 타고 내 귀로 흘러들어왔다.
“요즘엔 수위가 많이 올라갔네.”
나 때는 어디 정치 뉴스에서나 나왔던 삐처리 욕설이, 이젠 대놓고 방송 컨셉으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무튼 래퍼들이 나와서 경쟁하는 쇼미란 프로그램은 서로 서바이벌 미션을 통해 한 명씩 떨구어서 최종 1인자가 우승 상금을 거머쥐는 시스템이었다.
“후, 재밌네.”
나는 장장 2시간을 쇼파에 누워서 쇼미를 본 후, 그대로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잠에 빠져들었다.
*
혜은이가 주문한 방송 장비들이 3일 만에 모두 배송되었다. 혜은이가 컴맹이라 모두 조립과 윈도우까지 설치된 상태여서 코드에 선만 끼우면 됐다.
그동안 혼자서 열심히 구닥다리 컴으로 아프리카TV 방송국도 만들고, 본격적으로 방송에서 써먹을 컨텐츠도 많이 구상했었다. 본인 말로는 얼굴이 좀 딸리는 대신 말빨이 있기 때문에, 다양한 컨텐츠로 여캠들을 압살하겠다고 시작하기 전부터 의욕이 넘쳤다.
“자, 이제 다됐네.”
나는 혜은이와 함께 컴퓨터, 캠코더, 마이크 등을 같이 설치해주고 옆에서 방송 테스트 등을 지켜봐 줬다.
“으아아~ 떨린다!”
“크크크.”
혜은이는 입술을 달달 떨며, 평소와는 다르게 오두방정을 떨어댔다. 나는 그런 동생이 웃기기도 하고, 귀여워서 옆에서 계속 웃으며 지켜봤다.
“안녕하세요오~ 혜실버입니다.”
혜은이는 자신의 BJ명을 혜실버라고 지었다. 자신의 이름 두 글자를 나름 재치있게 푼 것 같으나.
-시청자 0명
“너, 아무도 안 들어오는데 혼자 인사는 왜 하냐?”
“그··· 그야, 뻘쭘하니까 그러지. 방송 첫날이니까 좀 봐줘.”
“어휴.”
나는 고개를 휘휘 내젓고, 다시 쇼파로 이동했다. 계속 지켜봤는데 시청자 유입은 없고, 가끔 들어오는 사람들도 대화는 안 치고 곧바로 방을 나갔다.
“얼굴 때문에 그런가?”
혜은이는 자신의 못생긴 얼굴 때문에, 인기가 없는 줄 알고 풀이 죽었다. 나는 곁눈질로 그런 혜은이를 쳐다보다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혜은이가 보기보다 얼굴에 관심이 많나 보네······.’
사실, 저번 출국하기 전에 보석 팔아서 수천억을 벌면 자신의 얼굴을 성형해달라고 조르긴 했다. 나는 위험하다고 단칼에 거절했지만, 그래도 아직 미련을 못 버린 것 같았다.
“에이쒸, 이렇게 된 이상······.”
혜은이는 결심한 듯 혼자서 뭐라뭐라 중얼거리더니, 마우스와 키보드를 열심히 두들겼다. 나는 그냥 티비에 집중하기로 하고, 채널을 돌렸다. 뭐 몇 번 저러다가 말겠지, 하고 신경을 껐다.
*
-우리 오빠 마법사인 썰푼다.
혜은이는 단단히 작심한 듯 어그로성이 짙은 제목으로 바꾼 후, 의기양양하게 팔짱을 끼고선, 떡밥에 물고기들이 달려들길 기다렸다.
-고든램지님께서 입장하셨습니다.
-아심심님께서 입장하셨습니다.
-레알드러운리드님께서 입장하셨습니다.
-호옹이?님께서 입장하셨습니다.
.
.
.
“와, 벌써 30명이나 들어왔네.”
혜은이는 잠시 캠코더 방향을 살짝 위로 조정하고선, 다시 화면을 쳐다보다가 대거 유입된 시청자들에 놀라 입을 쩍 벌렸다.
-고든램지:오빠 진짜 마법사임? 몇 살인데 아직도 아다임?
-아심심:30살은 넘었겠지.
-레알드러운리드:딸딸이도 한 번도 안 쳐봄?
-호옹이:혹시 투명 망토 있음?
혜은이는 시청자들의 질문 공세에 입꼬리가 귀에 걸려서 키득거렸다.
“자자, 여러분. 순서대로 답변해드리겠습니다. 저희 오빠는 일단 동정마법사가 아니고요, 진짜 마법사입니다.”
-레알드러운리드:진짜 마법사라고? 그럼 파이어볼이나 윈드 커터 같은 거 써냄?
혜은이는 사람들의 질문에 당당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당연하죠. 저희 오빠는 못 쓰는 마법이 없습니다. 특히, 사람들에게 진실을 토하게 하는 마법을 자주 쓰는데요. 한 번 딱 걸면, 철판 깔고 거짓말치던 사람들도 꼼짝없이 죄다 술술 토해내요. 정말 신기하죠.”
-아심심:와, 그럼 사기꾼이나 도둑놈들한테 마법 걸어서 다 실토하게 하면 개꿀잼이겠다.
-호옹이:그런 마법 있으면 진짜 인생 편하겠다.
-벨벨:ㅇㅈ.
시청자들은 혜은이의 말을 100% 믿진 않았지만, 방송 컨셉이라 생각하고 맞장구를 쳐줬다. 혜은이는 사람들이 자신의 말을 진짜 믿는 줄 알고 신이 나서 술술 떠들어댔다.
“조폭들도 우리 오빠 앞에선 쪽을 못 써요. 특히나 우리 아버지한테 의료사고 낸 의사도 저희 오빠가 참교육시켰거든요. 의사가 그 전까진 우리한테 돈 없다고 무시하더니, 나중엔 1년 치 밀린 병원비랑 피해보상금까지 줬어요.”
-블레파졸:와, 그 말이 사실이면 진짜 대박이네. 원래 의료사고 내면 의사들 거의 나몰라라 하지 않나?
-호옹이:구라면 신고 버튼 누를 거임.
사람들의 반응이 재밌었던지, 혜은이는 연신 방실거리며 주절주절 떠들어댔다.
“거짓말 아니에요. 아무튼 돌팔이의 오진 때문에 암말기가 된 우리 아버지를 마법으로 치료했어요. 우리 오빠는 못 하는 게 없어요~”
-흑드래곤:와, 암말기를 마법으로 치료했다고? 21세기 의학보다 아날로그 마법이 더 짱인데?
-비실:그걸 믿냐? 어그로 끄는 거겠지.
몇몇 사람들은 맞장구도 치고, 몇몇 사람들은 전혀 못 믿겠다는 듯 채팅을 적었다.
-고든램지님께서 별풍선 1개를 선물하셨습니다.
100명으로 불어난 사람들이 연신 질문을 해대는 통에, 혜은이는 어버버 거리다가 알림창을 보고 깜짝 놀랐다.
“와, 고든램지님. 별풍선 1개 선물 고맙습니다.”
혜은이는 진짜 감동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90도로 인사를 올렸다.
-아심심:1개 쏘고 바로 회장다네.
-호옹이:내가 2개 쏘면 이 방송국 지분 63퍼가 내꺼 되는 거임?
-흑드래곤:쏘고 말해 이 건빵아.
별풍선이 터지자, 사람들 또한 축하 이모티콘을 쏘거나 연신 채팅을 쳤다.
큰돈 바라고 한 건 아니었기에, 혜은이는 소소하게나마 방송의 재미를 알아가는 중이었다.
헌데.
-강용재님께서 입장하셨습니다.
오고 가는 많은 사람들 중에, 강용재라는 시청자가 들어왔다.
그러자.
-올챙이:와 강용재 들어왔다.
-블레파졸:혜실버님. 강용재 별명이 방폭인데, 뭔 뜻인지 앎?
혜은이는 시청자의 질문에 고개를 갸웃했다.
“글쎄요. 뭘까요? 방송 폭파?”
-호옹이:ㅋㅋㅋㅋ
-벨벨:첫날부터 강용재 떴으니 액뗌 제대로 하겠네.
“······?”
사람들의 알 수 없는 채팅창을 쳐다보던 혜은이가 고개를 갸웃했다.
-강용재:면상 진짜 개빻았네.
“······.”
강용재의 첫 채팅에 혜은이는 그대로 몸이 굳어버렸다.
-흑드래곤:강용재 별명인 방폭이란 뜻이, 방구석 폭군임.
-아심심:혜실버님. 걍 지금 방종하셈 저 새끼 쓰레기임.
-호옹이:멘탈 강화하고 싶으면 강용재 디스 1시간만 버티면 됨. 그럼 무병장수하고, 어딜 가든 안 꿀림.
사람들의 위로에도 혜은이는 굳어진 표정을 풀지 못했다.
-강용재:뭐? 너네 오빠가 마법사라고?
-강용재:그럼 씨발, 빻아진 니 면상부터 좀 마법으로 고쳐달라고 해봐 이 18련아.
-강용재님께서 벙어리당하셨습니다. 벙어리 1회.
혜은이는 자신도 모르게 마우스를 클릭해 강용재에게 징계를 때렸다. 사실 강퇴시키려고 했으나, 손이 덜덜 떨려서 미스 클릭이 생긴 것이다.
-올챙이:와, 강용재 혓바닥 칼날 같네.
-벨벨:거의 사시미로 배떼지 쑤시는 줄 ㅎㄷㄷ.
-고든램지:초보 비제이한테 저게 뭐하는 짓임? ㅉㅉㅉ
-블레파졸:선비짓 할려면 꺼지셈. 방송 살려면 강용재 같은 애도 있어야 함.
사람들이 갑론을박 하는 걸 멍하니 쳐다보던 혜은이. 30초가 지난 후, 드디어 벙어리에 걸렸던 강용재의 징계가 자동으로 풀렸다.
-강용재:씨발 무슨 면상이 방앗간인 줄.
-강용재님께서 퇴장하셨습니다.
강용재는 30초 동안 벙어리 당한 보복이라도 하는 것마냥 마지막 비수를 박아넣고 유유히 퇴장했다.
“흑흑······.”
혜은이는 곧 얼굴을 찡그리더니 얼굴을 가리고 눈물을 흘렸다.
*
“뭐야, 왜 울어?”
나는 재밌게 티비를 보던 도중, 혜은이의 울음이 들리자 곧바로 고개를 돌렸다.
저벅저벅.
혜은이가 방송하는 거실 컴퓨터 책상으로 다가가니, 혜은이는 얼굴을 가리고 울고 있고, 채팅방은 저들끼리 재밌다고 난리였다.
-올챙이:와, 강용재 새끼 결국 비제이 하나 울리고 사라지네. 닉값 ㅆㅅㅌㅊ.
-블레파졸:이 정도로 질질 짤 거면 방송 때려치워야지.
-블레파졸님께서 퇴장하셨습니다.
-올챙이:아, 노잼이네. 나도 감. ㅂㅂ.
-올챙이님께서 퇴장하셨습니다.
.
.
.
사람들이 하나둘씩 썰물처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확인하기 위해, 채팅창을 위로 올렸다.
그리고.
-강용재:뭐? 너네오빠가 마법사라고?
-강용재:그럼 씨발년아, 빻아진 니 면상부터 마법으로 좀 고쳐달라고 해봐 이 개같은 련아.
-강용재:씨발 무슨 면상이 방앗간인 줄.
-강용재님께서 퇴장하셨습니다.
“하······.”
난생 처음 보는 미친놈을 채팅창으로 확인했다. 아무리 얼굴이 안 보이는 넷상이라지만, 처음 보는 사람에게 어떻게 이런 식으로 욕을 할 수가 있을까?
이건 거의, 인신공격에, 욕설에, 갖가지 모욕이 버무려진 9서클급 욕설이었다. 상당히 수위가 높은 칼같이 버려진 흉기가 내 동생을 깊게 찌르고 유유히 사라진 것이다.
‘두고 보자, 이 개새끼.’
나는 이를 악물며 마력을 폭사시켰다.
*
“낄낄낄······.”
벽지가 누렇게 변색된 눅눅하고 좁은 방 안에서, 한 남자가 부랄을 벅벅 긁으며 낄낄댔다.
그는 아무렇게나 산발한 머리에, 덥수룩한 수염을 지닌 30대 초반의 남자였다. 한 자리에 오래 앉아 있는 탓에, 그의 온몸엔 살집이 뒤룩뒤룩했다.
그는 부랄을 긁던 손을 키보드에 올려 열심히 타자를 두드렸다.
타닥탁탁탁!
-제목:오늘 면상 개빻아진년 하나 족쳤다. 나 덕분에 일찍 고생길 접은 듯.
글쓴이 : 강용재
내용:면상 개 빻아진 년이 어떻게든 풍선 터트려서 먹고 살아 볼려고 개어그로 끌길레 내가 참교육시켰다. 오빠팔이 하는 년들은 모두 뒤져야 돼. 그리고 어차피 그런 면상이면 풍선도 안 터져.
화장 떡칠했는데도 존못이더라.
딸칵.
강용재는 순식간에 작성한 글을 디씨인사이드 인터넷방송 갤러리에 올리며 새로고침을 눌렀다.
사람들이 댓글을 달길 기다리며, 그는 열심히 웹서핑을 하고 또 다른 여캠 방송들을 얼쩡거리며 열심히 키보드질을 했다.
“흑흑······.”
그리고 강용재가 사는 집 거실에는 그녀의 엄마가 몸을 웅크린 채 울고 있었다. 강용재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반찬이 나물밖에 없다고 주먹으로 마구 휘둘러서 코피가 터진 것이다.
“아아······.”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2년 전 아들에게 심하게 얻어맞아 두 눈이 실명된 그녀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남편은 빚을 남겨두고 도망가고, 아들이랑 단둘이 살았다.
그런데 아들은 철이 덜 들었던지 일도 안 하고, 나라에서 주는 생활보조금을 뺏어서 별풍선을 쏘거나 폰게임에 현질을 했다. 그래서 그녀는 반찬도 제대로 사 먹지 못하고 나라에서 주는 나랏미로 근근히 식량을 조달하고 있었다.
반면, 아들은 엄마를 패서 눈을 장애인으로 만들어 놓고 병원도 안 데려가고, 오히려 병신같다고 더 때렸다.
“낄낄. 결국 그년 방송 접었네.”
강용재는 아까 전 자신이 욕설한 혜실버란 비제이를 검색해 방종된 것을 확인하고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그는 사람들이 말하는 ‘방구석 폭군’이었다. 키보드만 잡으면 아무도 그를 이길 수 없었고, 그것에 중독되어 매일매일 사람들을 괴롭히고 공격했다.
하루라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속이 답답하고, 천불이 났다. 밖에선 사람들 앞에서 찍소리도 못했지만, 인터넷에선 직접 마주칠 일도 없으니 스릴 넘치게 욕설을 때려 박고 공격할 수 있어서 편했다.
타닥탁탁탁!
강용재는 오늘도 인방갤에서 열심히 키보드배틀을 하며 시간을 죽여나갔다. 거실에선 엄마가 질질 짜고 있었지만, 잘 들리지 않았다. 이미 머릿속은 마약을 한 것처럼 아드레날린이 넘쳐 흘렀다.
그런데.
쥬르륵.
“어······?”
한창 열을 올리며 키보드를 치는데, 손이 이상했다.
모니터에 열중하던 눈이 곧바로 키보드를 주시했다.
그리고.
“씨발 이게 뭐야?”
강용재는 그만 깜짝 놀라서 뒤로 자빠졌다.
그는 멍하니 키보드를 올려보다가, 자신의 손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손이 왜 이래?”
강용재는 팔을 들어 손을 얼굴 가까이 갖다 대었다.
“손이 씨발 왜 이러냐고!!!!!!”
아파트가 떠나가라 소리를 지른 강용재는 고통스럽게 울부짖었다.
쥬르륵.
그의 손은 밀가루 반죽처럼 흘러내리고 있었다. 아까 키보드 칠 때부터 흘러내리기 시작한 손은 키보드에 눌어붙고, 방 여기저기에 눌어붙은 상태였다.
“으아아아악ㅡ!”
잠시 후, 자각하지 못했던 고통이 서서히 밀려들기 시작했다.
손부터 시작해 팔, 다리, 얼굴 등등···.
몸의 겉 표면을 구성하는 피부 전체에, 엄청난 작열감과 함께 괴사하듯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끄아아아악ㅡ!”
강용재는 고통스럽게 울부짖었지만, 몸의 괴사는 멈추지 않았다. 그는 녹아내린 팔다리를 버둥거리다가 몸통만 남아서 바닥을 뒹굴뒹굴거렸다. 이미 사지는 모두 녹아내렸고, 입과 코도 녹아내려서 말도 제대로 하기 힘들뿐더러 숨도 쉬기 어려워졌다.
“끄어억······.”
강용재는 그렇게 타들어가는 작열감을 견디지 못하고 기절하고 말았다. 그의 몸은 아스팔트 위 아이스크림처럼, 몸이 계속 녹아 괴사했고, 결국 아무것도 못하는 반병신이 되어 버렸다.
*
“어?”
강용재의 엄마는 아들의 울부짖음에 괴로워하며 두 손으로 귀를 막고 있었다. 눈을 질끈 감은 그녀는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 일어나 밖으로 도망치려 했다.
아들이 화날 땐 무차별적인 폭행이 가해지기 때문에, 어디 부러지지 않으려면 자리를 피해야 했다.
헌데.
“눈이······?”
그녀는 감았던 눈을 떴다가, 저도 모르게 뚝하고 멈춰버리고 말았다.
“······.”
2년 전, 아들에게 얻어맞고 실명한 눈이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동안 어두컴컴하고, 폭력에 노출된 고통스럽고 지옥같은 삶이었는데, 그것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눈이 보여······?”
그녀는 멍한 표정으로 서 있다가, 괴성이 흘러나온 아들의 방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어······?”
그녀는 팔다리가 괴사한 채 바닥에 엎어져 기절한 인간을 멍하니 내려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