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10th Circle mage RAW novel - Chapter 53
53
32.추석, 그리고 콩가루(3)
“저··· 저새끼가!”
한순간에 벼락부자가 된 이준혁에게, 돈을 뜯어내려고 했던 이문수. 그는 순간 열이 너무 뻗쳐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는 이곳에서 제일 연장자이자, 왕이었다.
그동안 그의 말이라면 그대로 진행되지 않은 일이 없었고, 그건 앞으로도 그래야만 했다.
그런데, 웬 거러지 같은 놈이 돈 좀 벌었다고 함부로 나오자, 그는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저 자식 왜 이렇게 싸가지가 없냐?”
그는 이준혁 대신 그의 아버지인 이강수를 돌아보며 그렇게 되물었다. 이강수는 대답 대신 쓴웃음만 지으며, 무안하게 거실 벽에 기대어 앉았다.
이강수는 속으로 시원하기도 하고, 또 형제들 보기 뻘쭘하기도 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혜은이와 부인은 이미 작은방으로 가서 자기네들끼리 얘기 중이었다. 여자들은 원래 절할 때 말고는 거실 밖으로 나올 일이 없었다.
이강수가 별반 반응이 없자, 이문수는 곧바로 자신의 형제들을 모아서 이준혁을 헐뜯었다.
“원래 배운 것도 없는 중졸 새끼잖아요. 꼴에 돈 좀 벌었다고 지가 무슨 사업가라도 되는냥 착각하는 거죠.”
“사업가는 무슨. 보나 마나 보따리나 지고 다니는 나카마 같은 거겠지.”
“뭐? 보석 사업? 씨발 우리 집 개가 다 웃을 일이다. 제까짓 게 보석은커녕, 금반지라도 한 번 쥐어 봤겠어? 돌 반지 말고.”
그들은 씩씩거리며 너나 할 것 없이 이준혁을 헐뜯었다. 평소 같으면 이준혁의 동생인 이혜은을 앉혀놓고 빙 둘러싸, 이지매를 하듯 ‘요새 뭐하고 사냐?’의 공격 세례를 퍼부었을 거다.
전문대 나온 걸 트집 잡으며, 자기 자식들 자랑을 하면서 자식몬 배틀을 걸었을 텐데, 그것이 실패해 매우 분개한 표정들이었다.
드르륵.
9시가 되어 본격적이 제사가 시작되자, 담배를 다 핀 이준혁이 돌아왔다.
*
“후······”
홧김에 뛰쳐나가서 줄 담배를 피고 돌아오니, 기분이 별로 안 좋았다. 입에서 나도 모르게 저절로 한숨이 튀어나왔다.
나는 뻘쭘하게 서 있는 아버지 곁으로 가서 같이 절을 할 준비를 했다. 이제 절을 몇 번 하고, 집으로 가면 다신 올 일이 없으리라.
그렇게 다짐하며.
“크흠······”
방금 전까지 열심히 나에 대해 디스하던 삼촌들이 입을 꾹 다문 채 못마땅한 표정으로 차례를 지냈다.
제사상에 올린 고기와 사과, 대추 등등 여러 가지 음식들이 잔뜩 올려져 있었다. 그리고 영정사진 앞에 밥그릇 6개와 그 앞에 놓인 술잔들에 술을 채워나가는 의식이었다.
‘나는 나중에 자식들에게 절대 이런 거 안 시켜야지…’
그냥 화장해서 산이나 바다에 뿌리고, 명절 땐 여행이나 다니게 하고 싶다.
솔직히 이런 제사상을 다 차리려면, 돈도 돈이지만 여자들은 또 뭔 죄란 말인가?
엄마도 예전에 아침 일찍 와서 저런 일들을 거들었다. 한데, 다른 형님들이 엄마에게 ‘이런건 원래 네가 해야 되는겨’하면서 히스테리를 부리고, 일도 잘 안 가르쳐주면서 왕따를 시켰다.
안 그래도 타향 사람이라 어색해 죽겠는데, 먼저 다가가서 가르쳐주지는 못할망정 이 인간들은 모두가 한통속이라서 쓰레기처럼 굴었다.
게다가, 제사는 뭘 그렇게 많이 지내는지 설날, 추석을 제외하고도 부모님 제사, 증조 제사, 고조 제사까지······
부모님 제사를 각자 지내는 거까진 그런대로 이해할 수 있어도, 형제들끼리 아무 연관도 없는 증조, 고조 제사를 지내기 위해 다 모이라고 하는 건 좀 아니다 싶었다.
다들 바빠 죽겠는데, 각자 일해서 먹고 살기도 힘든 시절에, 무슨 자기네 윗윗대 조상 제사까지 모두 꼬박꼬박 챙겨가며 어떻게 이 치열한 사회에서 경쟁할 수 있단 말인가?
물론 할 수야 있겠지. 말로는 뭔들 못해? 행동으로 못하니까 지적을 하는 거다. 여기 모인 사람들 중에 제대로 자신의 앞가림을 하는 놈들이 단 한 놈도 없었다.
재산이나, 집도 모두 아버지가 물려받을 재산을 강탈해서 아직까지 존버한 것들.
게다가 그 자식들 또한 대부분 모두 전셋집이거나, 아니면 아직 집 대출이 한참이나 남았다.
나는 그런 무리에 섞여 있는 게, 너무 비상식적으로 느껴졌고 따르기도 싫었다.
“후······”
30분 정도 지나, 제사상에 절 올리는 의식이 끝나고, 제사상에 올렸던 음식상을 거실 중앙으로 옮겼다.
이제 식사할 시간.
나이든 어르신들부터 자리를 꿰차 않았고, 젊은 것들은 대체로 방으로 쏙 들어가 저들끼리 대화를 나눴다.
보통 저 녀석들은 다음 제사를 지내는 큰집에 가서 밥을 먹을 것이다. 그 집이 바로 녀석들의 홈그라운드였다.
나 또한 보통 여기서 밥을 먹을 먹고, 거기 가서는 거의 음식에 손도 대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은 여기서도 밥을 먹고 싶지가 않았다. 그래서 혜은이가 있는 작은 방으로 가려고 했다.
“야, 이준혁. 너 거기 앉아라. 혜은이도 나와서 같이 밥 먹고.”
제일 나이 많은 첫째 큰삼촌 이문수가 명령조로 그렇게 말하자, 나는 식탁으로 다가와 털썩 주저앉았다. 밥 한번 같이 먹는 게 힘든 일도 아니고······ 아니, 솔직히 힘들다.
같이 먹고 싶지 않은 사람하고 밥 먹으려니.
하지만, 아버지 체면을 봐서라도 이쯤 해두고 조용히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음······”
혜은이 또한 어르신의 부름에 방에서 쪼르르 나와서 식탁 한 구석탱이에 자리 잡고 앉았다.
“혜은이 넌 요새 뭐하냐? 아직도 전문대 다니냐?”
“네.”
첫째 삼촌 이문수의 물음에 혜은이는 고개를 푹 수그린 채 짧게 대답했다. 별로 대화하고 싶지 않은 모양새였다.
“거기 졸업해서 뭐 하려고? 그냥 때려치우고 공장이나 들어가는 게 낫지 않아?”
“······”
“그런데 졸업해봐야 부모 등골만 빠지지, 사회 나가도 그런 전문대는 쳐주지도 않아. 시간 낭비, 돈 낭비라고.”
그는 이번에 자신의 아들이 경육대학교 체대를 졸업해서 보안요원을 한다고 자랑했다. 나에게 디스를 시도했다가 된통 당하니까 이제 만만한 혜은이를 노리는 듯싶었다.
“저 크리에이터 할 거예요.”
“크··· 뭐?”
“크리에이터요. 개인 방송하는 거요.”
혜은이가 소심스러운 태도를 바꾸어, 당당히 고개를 들어 보이며 대답하자.
“······”
이문수의 입이 순간 딱, 하고 다물어졌다. 자세히 보니, 예전보다 얼굴과 몸매가 많이 달라져 있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밋밋했던 얼굴라인이 갸름해지고, 눈도 커지고 코도 오똑해지고, 쭉 찢어졌던 입도 작고 예쁘게 바뀌었다.
게다가, 몸매까지 볼륨감 있게 변했다. 가슴도 눈에 뜨일 만큼 커졌고, 허리는 잘록해졌으며, 예전엔 분명 통자였던 골반도 서양 미녀들처럼 풍만했다. 게다가 시원시원하게 쭉 뻗은 다리까지.
이문수는 그제야 경악하며 입을 열었다.
“너 혹시 성형했냐?”
“몸에 칼 덴 거 아니에요. 오빠가 마사지를 배워와서 이렇게 바뀐 거예요.”
혜은이는 그단새 자신감이 생겼던지, 씨익 웃으며 내게 공을 돌렸다. 음식을 다 나르고, 주방 식탁에 옹기종기 모여있던 여자들의 시선이 전부 혜은이 쪽으로 쏠렸다.
“······”
“···”
그녀들은 몰라보게 바뀐 혜은이의 모습을 쳐다보며, 넋을 놓았다. 아까 전엔 나와 어르신들이 옥신각신하느라, 혜은이가 주목받을 새가 없었다.
하지만, 매미가 어느 정도 소강상태에 접어들자, 이젠 쓰나미가 몰려들었다. 아직 태풍은 끝나지 않은 것이다.
“누나, 근데 비제이면 별창녀 아니야?”
“뭐?”
아까 나한테 용돈 뜯으러 왔던 조카 녀석이 심술궂은 표정으로 혜은이에게 묻자, 혜은이가 당황한 얼굴로 녀석을 쳐다보았다.
“너 그런 말 어디서 배웠니?”
“보니까, 여캠들이 진태희하고 같이 이상한 성관계 방송하던데. 누나도 그런 거 하는 거 아니지?”
“너 그게 무슨 말이냐고?”
녀석은 아까 전 나에게 5천 원 싸대기를 면상에 맞은 앙갚음으로 혜은이에게 미친 말들을 쏟아내었다. 7살이라고 다 봐줄 줄 알고, 저렇게 입을 함부로 놀리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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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끝에서 자그마한 벌레가 녀석의 귓속으로 쏘옥 들어갔다. 극속의 하이 블링크로 이동한 거라, 나를 제외한 아무도 그 모습을 보지 못했다.
혜은이는 조카에게 별창년 소리를 듣고,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눈물을 그렁그렁했다. 그리고 곧바로 밥숟갈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나, 얼굴을 가린 채 작은 방으로 뛰어갔다.
“으헤헤헤······”
녀석은 아까 전 나에게 당했던 모욕을 통쾌하게 복수했다고 생각했던지 배를 잡고 깔깔거렸다. 7살 애가 친척 누나한테 별창녀니 뭐니 얘기가 나오는데, 집안 어른들 중 말리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더 하라는 듯, 옆에서 계속 모른 척 딴청을 피웠다.
나는 의기양양해진 녀석을 향해, 곧바로 기생충의 지옥을 선사했다.
“끄아아아악ㅡ!”
방금 전까지 통쾌한 목소리로 깨잘꺠잘하던 녀석이 갑자기 머리통을 감싸쥐고 거실 바닥을 대굴대굴 굴렀다.
녀석이 지랄발광을 하자, 밥을 처먹고 있던 다른 어른들과 모든 친척들이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찬수야! 이찬수! 너 갑자기 왜 이래?”
어르신들이 바닥을 뒹구는 이찬수의 몸을 잡고 흔들었지만, 녀석인 눈물 콧물을 질질 짜며 괴성만 질러댔다.
‘지금쯤 아주 괴로울 거다.’
머리통을 구성하는 뇌를 불에 굽듯이, 머릿속을 침투한 기생충이 이찬수의 세포 하나하나를 뜨겁게 태우는 중이었다. 녀석은 왜 고통받는지도 모른 채, 바닥에 토를 하고 똥오줌을 지렸다.
“119 불러, 119!”
“추석인데 119가 되나요?”
“차 있는 사람, 얼른 얘 병원 데리고 응급실로 가.”
친척들은 애 하나 때문에 난리 부르스를 치며, 얼른 제사상을 접었다. 지금은 한가히 둘러앉아 한담을 나눌 때가 아니었다.
나는 그런 녀석들에게서 벗어나, 혜은이가 들어간 작은방으로 이동했다.
끼익.
“흑흑흑······”
문을 열고 들어가자, 혜은이가 얼굴을 감싸 쥔 채 흐느끼고 있었다.
“괜찮아, 우리 딸. 남들이 뭐라 하건 신경 쓸 거 없어.”
“흑흑······”
엄마의 달램에도 혜은이는 눈물을 그치지 못했다.
조카인 이찬수의 말에 심한 충격을 받았던지, 계속해서 흐느꼈다.
“혜은아. 찬수가 너 놀리다가 천벌 받았나 보다.”
“······뭐?”
내가 작은방에 들어오자마자, 그렇게 운을 떼자 눈물을 흘리던 혜은이가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혜은이의 얼굴은 눈물이 범벅인 채,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그래도 예전보다는 낫네.’
예전엔 그렇게 인상을 찌푸리면 너무 못생겨서, 인상 좀 피고 다니라고 했었는데, 이젠 지나가던 남자들이 한 번씩 뒤돌아볼 정도로 예뻐졌다.
“그 녀석, 지금 응급실로 실려 갔다고. 너한테 이상한 말 하다가 벌 받은 거야. 아마 지금쯤 머리통이 터져나가는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을걸?”
“그게 정말이야?”
“그렇다니까. 네가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일어난 일이야. 정 못 믿겠으면 나가서 직접 확인해보던가.”
“······”
내 말에 혜은이는 울음을 뚝, 하고 그치더니 곧이어 딸꾹질해댔다. 울상이던 표정이 약간 풀린 것 같았다. 사실 여자 입장에서 BJ한다는 얘기를 꺼낸 것도 꽤나 용기를 낸 셈인데, 그런 사람 앞에서 면전에다 별창년이니 뭐니 해댔으니 녀석은 천벌 받아도 싼 놈이었다.
‘이건 나이를 떠나서, 마땅히 응징해야 될 일이지.’
어리다고 자꾸 봐주면, 그 새끼는 나중에 더 큰 악인이 된다. 그러니 그렇게 자라나기 전에 미리 싹을 밟아버리는 게 세상에도 이롭고, 녀석에게도 이로운 일이었다.
나는 혜은이를 달래주기 위해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앞으로 그놈이 너한테 함부러 말할 일 없을 테니까, 그만 기분 풀어.”
“응!”
혜은이는 눈물을 쓱쓱 닦으며 밝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