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10th Circle mage RAW novel - Chapter 69
69
40.청사진(2)
“하아···”
풀썩.
나는 침대에 걸터앉아, 내 옆자리에 누운 여자를 바라보았다.
“······”
그녀는 바로 아리였다.
화사하고 아리따운 분홍색 플라워 원피스를 입은 그녀.
우월한 기럭지에, 우월한 이목구비.
금색으로 풍성한 긴 생머리가, 그녀의 허리까지 내려와 있었다. 그녀는 최근 갈색에서 금발로 다시 염색했다.
꿀꺽.
나는 다시 아리의 몸매를 잠시 훑어보다가, 침을 한 번 꼴깍 삼킨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능도 이제 정말 끝이 났군······’
그동안 주변 사람들에게 크게 내색은 안 했지만, 스트레스를 안 받은 건 아니었다. 정말 오래간만에 해보는 공부였고, 또 새로운 공부였기 때문에 쉬운 도전은 아니었다.
거기다 전국 1등이라는 내기까지 걸렸으니···
다른 사람같았으면, 부담스러워서 오히려 시험을 망쳤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오히려 전국 1등이 아니라, 전과목 올백을 계획하고 공부했으니까. 올백을 맞으면, 당연히 1등을 하는 거니까 애초에 경쟁 자체를 신경 쓰지 않았다.
오롯이 전과목 100점 맞는 것에만 신경 썼다.
동일 100점이 나와도, 최소 공동 1등이고 그럼 목표는 이루는것이니까.
“끄으응······”
“······”
아리의 입에서 미약한 신음소리가 나왔다.
그리고.
“이준혁 미워······”
“···”
?
도대체 왜 내가 밉다는 걸까?
그녀는 꿈속에서 그렇게 잠꼬대를 하며, 엎어져 곯아떨어져 있었다.
스윽.
나는 손을 들어, 그녀의 흐트러진 머리를 가지런히 빗겨주고, 이불을 목까지 덮어주었다. 아리를 옆에 두고 어떻게 할지 고민했었는데, 이제 결정했다!
“집에 가야겠다.”
“······”
나는 곧바로 외투를 챙겨 밖으로 나왔다. 아리에게는 집을 잘 몰라서 이곳에 놔두고 간다고 쪽지를 남겨뒀다.
내가 밤새 이곳에 붙어 있는 것보다는, 그녀의 가족에게 맡기는 게 좋을 듯싶었다.
그리고, 마침 최진우와 연결이 되어 아리가 있는 주소를 찍어서 보내줬다.
최진우는, 누나가 원래 그렇게 취하도록 마시는 사람이 아닌데, 오늘은 이상하네요······라며 중얼거렸다.
아무튼, 나는 오늘도 그렇게 호구 등신새끼처럼 그녀의 순정을 지켜주곤 집으로 복귀했다.
*
끼익, 퍽.
“휴······”
이준혁이 나간 후, 아리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잠꼬대가 아니었다.
스윽.
아리는 곧바로 이불을 치우고 일어나, 비틀비틀 걸음을 옮겨 냉장고 앞으로 갔다.
그리고, 냉장고 안에 있던 생수 한 병을 들어 뚜껑을 따고 벌컥벌컥 마셨다.
“이준혁, 바보.”
그녀는 볼이 발그래진 상태에서, 그렇게 혼자 중얼거렸다. 몇 번 그렇게 중얼거리다가, 그녀는 자신의 외투가 걸린 옷걸이로 다가갔다.
스윽, 스윽.
그리고 옷을 주섬주섬 챙겨입은 다음, 가방까지 들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뚜우우, 뚜우우ㅡ
-발신자 최진우.
아리는 전화가 걸려온 스마트폰을 잠시 쳐다보다가,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
“웬일이야?”
“어? 멀쩡하네?”
“갑자기 전화 걸어 놓고,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준혁이 형이 누나 완전 술에 곯아떨어져서, 나보고 데려가라고 했단 말이야.”
“······”
“근데 목소리 들어보니까 멀쩡해 보여서 하는 소리지.”
“나 혼자 갈 수 있으니까, 신경 쓰지 마.”
“그냥 거기 있어. 내가 데리러 갈게.”
“괜찮데두.”
뚝.
아리는 신경질적으로 전화를 끊고, 스마트폰을 아무렇게나 가방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주얼리샵의 기사를 불러서, 집으로 복귀했다. 미리 그녀가 언질을 해줬기 때문에, 기사는 미리 대기하고 있었다.
*
다음날.
나는 아침에 일어나서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대동타운에 도착했다.
나는 내가 벌이려는 모든 사업을 대동그룹의 명의로 떠벌리기로 작심했다.
그래야 내가 전면에 부각되는 일이 없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해외 컴퍼니로 사업을 해도, 결국 그 배후를 뒤지다 보면 그 뒤에 내가 있다는 건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하지만, 대동그룹과 유필준은 그 덩어리가 컸기 때문에, 나 같은 소시민이 유필준의 뒤에서 그를 조종하고 있으리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하리라.
“좋은 아침~”
“안녕하세요. 실장님.”
나는 대동그룹 회장이 쓰는 30층 바로 아래, 29층 전체를 뺏어서 내가 사용했다.
29층에서도 복도 제일 끝인 내 전용 사무실 안.
허허벌판 같은 100평 사무실 안에, 책상 하나를 꿰고 앉은 비서 이지연이 아침인사를 해왔다.
“지연 씨, 출근한 지 얼마나 됐어요?”
“2주 정도 됐습니다.”
나는 수능 준비와, 기타 여러 가지 사업을 챙기느라 이런 게 생긴지도 몰랐다.
-기획조정실 실장 이준혁.
기획조정실!
한국에서도 끝발 날린다는, 진성그룹 같은 그룹에나 있는 컨트롤 타워의 주인이 내가 되다니?
내 후광으로, 아버지 대신 그룹의 실권을 틀어쥔 유진광.
그는 그룹의 부회장 자리를 꿰차고, 그룹의 모든 계열사들의 사장단을 자신의 사람으로 끌어들이고 있었다.
‘내가 그룹 승계지원금까지 대줬으니까······.’
이번에 유진광이 아버지인 유필준으로부터 대동그룹에 대한 지분 60%중 50%를 양도받았다.
물론, 대동그룹의 가치가 바닥일 때 시도한 빅딜이었다. 세간에 크게 회자되진 않았지만, 그래도 세금은 다 냈다.
낼 거 시원하게 다 내고, 주식을 양도했기 때문에 뒤탈이 없었다.
후에 대동팬시에서 출시한 수능아이템이 불티나게 팔리면서, 주식 양도가 화제로 떠올랐지만 그뿐이었다.
-대동그룹의 실권이 아들 유진광으로 바뀌면서 대동그룹 승승장구.
-마탑팬시의 수능아이템, 유진광의 작품?
-유진광, 누구인가? 그가 벌이려는 차기 마탑제약 또한 주목해야 될······.
대동그룹이 전국민의 입방아에 오르면서, 그동안 해왔던 장애인 공채 사실과, 수능아이템의 효능이 전부 유진광의 공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나는 전혀 아쉬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유진광이 부각되면 부각될수록 내가 더 이득이었다.
나는 관심을 원하는 관종이 아니라, 그냥 조용히 묻혀가는 성격이었다.
그런 건 진짜 관종인 유진광이 해야 한다.
유진광이 내 덕택에 개과천선하긴 했지만, 아직 그 버릇을 못 고쳐서 관종짓을 많이 하고 다녔다.
“실장님, 전에 말씀하셨던 보고서 여기 있습니다.”
“벌써 견적이 나왔나요?”
나는 이지연이 건네주는 파일철을 받아서, 하품을 하며 대충 쓱쓱 넘겨보았다.
-대동파운드리의 자체 반도체 설계팀 개설계획
*앞으로 우리 대동그룹을 이끌어갈 차세대 반도체 설계사원 모집과 대동파운드리의 사명 개명.
사명은 마탑반도체로 변경 예정. 이에 대한 피드백 회신 바랍니다.
앞으로 전문적인 반도체 인력 채용과, 새로운 부서 개설, 공장 설비 증강······
보고서엔 내가 지시한 대로, 유진광이 마탑 파운드리의 체질개선에 대한 보고사항이 빼곡이 적혀있었다.
‘음······. 마탑 반도체라. 나쁘지 않은데?’
사명 앞에 ‘마탑’이라는 사명이 붙었다. 팬시, 제약 다음으로 내가 기획하고 있는 세 번째 마탑 시리즈였다.
‘어차피 대동이나 마탑이나 다 내 회사인데, 나도 슬슬 애사심을 가질 때도 됐군.’
과거 대동그룹이 우리 아버지의 회사를 강탈해가긴 했지만, 결국 내가 그 그룹을 전부 빼앗았으니 은원관계는 어느 정도 청산된 셈이었다.
게다가, 그들 부자는 내 밑에서 개처럼 부림 받으며 일하고 있었다. 대신 유진광은 차후에 회장 자리라도 약속돼 있었지만, 그 외에 유필준 가족은 국물도 없다.
앞으론 나를 제외한 그 어떠한 누구도, 대동그룹의 자금에 함부로 손을 못 댄다. 다 나의 허가가 떨어져야 했다.
안 그럼 곧바로 응징이 떨어졌다.
이미 유필준 회장 가문에서, 몇 명이 배임 횡령죄 위반으로 콩밥을 먹은 사람도 수두룩했다.
유진광은 그동안 아버지와 가족들에게서 받아온 괄시를 단단히 보복했다.
나에게 받은 칼자루를 쥐고, 무당이 칼춤 추듯 마구 흔들어댔다. 일단 자신의 가장 큰 걸림돌이였던 능력 있는 동생을 먼저 쳐내버렸다.
동생 유준현은 한국대 경영학과 출신에, 차기 대동그룹 회장 자리가 예약된 엘리트였다.
그는 평소 공부도 못하고, 사업 수완이 떨어지는 형을 벌레 보듯 깔보고 무시했다.
사람은 원래 자기가 잘 나갈 때는 다른 사람이 눈 아래로 보이는 법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하찮아 보이고, 그것은 남들이 자신을 떠받들어줄수록 더욱 심해졌다.
하지만, 사람은 잘 나갈 때가 있으면 못 나갈 때도 있었다.
사람 인생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
밑바닥에서 빌빌기던 사람이, 그룹의 부회장까지 치고 올라갈 수도 있는 것이고, 차기 그룹 회장 승계권이 유력한 사람이 지금은 검찰을 들락날락거리며 형의 바짓가랭이를 붙잡고 늘어지는 일도 생기는 것이다.
‘세상만사가 다 그런 것이지.’
그래서 사람은 항상 겸손해야 한다.
언제 위치가 역전될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자세를 낮추고 그 누구도 무시해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언젠가는 자신이 무시당하게 된다. 똑같이 그런 일을 겪고 싶지 않으면, 진작에 잘해야 한다.
유진광이 그룹의 실권을 잡아도, 여론과 국민들의 정서는 온건했다.
부자상속이니 뭐니 하며, 국민들이 한 번 들고 일어날 만한데, 조용했다.
아니, 오히려 다른 부분에서 더 난리였다.
사실상 그룹 지분 소유 1위로 등극한 유진광이 실권을 잡자마자, 칼날을 빼어 들어 대동그룹의 다이어트를 시행하고 있었다.
일단 썩은 살은 모조리 도려내고, 치부가 있으면 곧바로 드러내어 깨끗이 해결했다.
좀 무식한 방식으로 해나가곤 있지만, 열정이 있어서 도와주는 사람이 많았다.
일단 내가 제일 첫 번째 조력자이고, 나머진 한국대나 외국 아이비리그 출신의 수제들이 유진광의 뒤를 받쳐주고 있었다.
최근엔 유진광 팬클럽까지 생겨났다.
유진광이 하는 짓이 좀 덤벙거리긴 하지만, 그래도 시원하고 인간적이고 매력적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좋아라했다.
‘게다가 마탑 파운드리의 직접설계제작으로의 체질개선은 정말 확실하게 진행될 거 같단 말이지······.’
유진광은 이미 언론에 떡밥을 뿌려두고 있었다. 조만간 있을 남북한 통일을 위한 통일자금 조성을 위해 본격적으로 자체적인 반도체 설계라인을 증설하겠다고.
아직 멀게만 느껴지는 통일이란 단어를, 자신감 있게 내뱉는 그 모습에 국민들이 열호했다.
게다가 다들 꺼려하는 통일세를 대동그룹에서 먼저 내겠다고 발벗고 나서자 당연히 전국민적인 뜨거운 관심이 일어났다.
-수능 아이템 하나 대박났다고, 어그로 뒤지게 끄네.
-와, 진짜 유진광이 회장되고나서 대동그룹 미쳤네. 그룹 유보금 그냥 다 기부각?
-우리한텐 다 좋은 일이니 한손 보탤 거 아니면, 그냥 입 닥치고들 있으셈.
댓글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나댄다’, ‘응원해야 한다’ ‘국개들은 뭐하냐? 본받지 않고?’ ‘유진광을 국회로!’와 같은 응원과 힐책이 번갈아서 일어났다.
나는 그게 웃기기도 하고, 재밌어서 흥미진진하게 지켜볼 생각이었다.
아무튼 반도체 사업이 정말 내 예상대로 대박 성공을 이룬다면, 연간 100조 이상 벌어들이는 것도 꿈은 아니었다.
이번에 출시한 수능아이템이 월 100억이상 팔리고 있다고 보고를 받았는데, 그게 반짝이 아니라 장기간 이어진다면······. 아니 전 세계적으로 열풍이 분다면 그 불은 쉽게 꺼지지 않을 것 같았다.
게다가 새로 출범하는 대동제약의 영양제들도 이제 출시를 앞두고 있었다. 대동그룹의 이미지가 많이 좋아지면서, 식약처에서도 우리가 출시하려는 영양제들에 대해 빨리빨리 허가를 내줬다.
이제 날아오를 일만 남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