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10)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10화(10/482)
띠링-!
김 실장이 급히 넥타이를 정돈하며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터벅, 터벅-.
고요함이 감도는 복도를 따라 분주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오셨어요, 김 실장님?”
비서가 기다렸다는 듯 종종걸음으로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내 손짓하며 복도 끝에 있는 대표실을 향해 앞서 걸었고.
꿀꺽-.
김 실장은 마른침을 삼키며 뒤따라 걸음을 옮겼다. 이내 긴장감으로 좁아졌던 시야를 넓히니….
‘소속 연예인이 이렇게나 많았나.’
양측 벽면에 LS 엔터의 역사라 부를 수 있는 여러 아티스트들의 프로필 사진이 트로피마냥 주르륵 붙어 있다.
압도적인 유명 연예인들을 훑다 보니 감탄이 절로 튀어나왔고 얼마 안 가 종착지인 대표실 문 앞에 닿았다.
‘이 연예인들을 세우고 올라선 인물….’
새삼 대표의 자리가 얼마나 더 높은 자리인지 머릿속에 각인되는 순간이었다.
똑, 똑.
비서가 문을 두들기자, 안에서 대표의 “들어오세요.” 하는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녕하십니까, 대표님!”
김 실장은 문이 열리자 고개를 바짝 숙이며 우렁차게 소리쳤다.
“예, 일단 앉으세요”
이내 대표가 말을 덧붙였다.
“차 괜찮으신가요? 아니면 커피?”
“저는 차로 부탁드리겠습니다.”
바짝 긴장한 태가 역력한 김 실장은 푹신한 소파마저 가시방석처럼 느껴졌다.
“그럼 우리 차 한 잔씩.”
그와 달리 대표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비서를 통해 차 심부름을 시켰다.
전남일 대표.
40대 초반이라는 어린 나이에 LS 엔터테인먼트를 만들고 단기간 만에 대형 탑 기획사 반열에 올려놓은 장본인이다.
더불어 이런 엔터 대표의 이미지와는 달리 상당히 온화하고 신사적인 느낌을 주는 인물로, 대외적으로도 평판이 좋았다.
하지만.
마냥 말랑한 사람이었다면, 정글 같은 연예계 바닥에서 LS 엔터를 이런 규모로 키워 놓을 수는 없을 터.
괜히 이 자리에 앉은 인물이 아니다.
혹여나 오늘 입을 잘 못 놀린다면 사내 인사기록부에서 제 이름이 지워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해.’
김 실장이 바짝바짝 말라 오는 입술을 축이던 찰나.
“제가 호출한 이유는 이미 아시겠지만….”
대표가 찻잔을 들어 한 모금 홀짝 마시고는 덧붙였다.
“새로 데려온 작곡가가 서지니 싱글 총괄 프로듀서를 맡기로 했다던데.”
김 실장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네, 양측 합의하에….”
“혹시 주지태 씨가 요청한 사안입니까?”
주지태가 서지니를 억지로 떠맡게 된 일에 불만이 깊다는 건 누구라도 알 만한 이야기였다.
그러니.
대표 머릿속에선 충분히 주지태의 강압으로 신인 작곡가가 희생되었다는 그림이 그려질 만했다.
“아닙니다, 본인이 희망했습니다.”
“본인이?”
“네, 저도 좀 의아한 점입니다.”
김 실장이 잠시 텀을 두고 말을 덧붙였다.
“극구 말려 봤습니다만 고집을 꺾을 수가 없었습니다.”
대표가 찻잔을 들어 올리며 낮게 중얼거렸다.
“그 고집을 꺾는 것이 김 실장님이 하셔야 하는 일 아닐까요?”
그 말에 김 실장이 한차례 “죄송합니다.” 하며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러나 듣는 둥 마는 둥, 대표는 턱을 괸 채 다시 한번 말을 이어 나갔다.
“정 그렇다면 차라리 두 사람이 공동으로 작업을 진행하는 건 어떻겠습니까?”
“예?”
“주지태 씨도 혼자 맡는 것에 힘들어했는데, 둘이면 할 말이 좀 줄어들지 않겠습니까?”
대표는 나긋하게 덧붙였다.
“그 친구도 숨 쉴 구멍 하나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아….”
“그럼 앨범이 잘못되더라도 면피는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대표의 말이 곱씹을수록 옳다고 느껴졌다.
아니지.
오히려 신인 작곡가 따위에 안위를 생각해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그렇지만….
서지니를 직접 연주하겠다며 나선 현승이 머릿속에 그려졌고, 과연 대표의 제안을 순순히 받아들일지는 미지수였다.
“한번 당사자들과 얘기를 나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대표는 “흠.”하고 침음을 흘리며 작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높은 조건을 부르고 어렵게 데려온 친구이지 않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지니 싱글 발표 시기가 좋지 않다는 것도 알고 계시죠?”
“예, 알죠.”
현재 홍보팀으로부터 입수된 정보들에 의하면 지니의 싱글 발표 시기는 정말 좋지 않았다.
타 엔터 유명 아이돌의 컴백과 벌써 팬덤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남성 아이돌 그룹의 데뷔와 맞물릴 것으로 예상되어 있었다.
심지어.
같은 소속사에서는 평판도 좋고 실력도 출중한 공효주까지 판에 끼어들었으니, 서지니가 설 자리가 없을지도 모를 판.
“아시다시피 이번 앨범까지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한다면 서지니와의 계약은 끝날 겁니다. 그 친구 손에 서지니 재계약 여부가 달려 있다고 봐야겠네요”
지속해서 언급되어 온 서지니 계약 해지 문제.
LS 엔터는 예술가들을 위해 자선사업을 하는 단체가 아니다. 이윤을 목적으로 모여서 생긴 집단이다,
단순히 정 하나만으로 손익분기점조차 넘기지 못하는 소속 가수와 계약을 유지할 이유가 없었다.
이미 퇴물 소리를 듣고 있는 그녀인데 LS와의 계약이 쫓겨나듯 해지되었다는 소문이 퍼진다면?
서지니가 전적으로 밑지는 조건이 아니라면 제대로 된 매니지먼트사와는 계약이 어려울 터였다.
대표의 말대로 현승의 손에 서지니 명줄이 달린 상황이었다.
반대로 말하자면….
서지니 앨범 성공 여부에 현승의 명줄도 달린 셈이기도 했다.
“저는 충동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은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팔걸이를 일정하게 “톡톡.”하며 두들기던 대표가 낮게 읊조렸다.
“통제가 안 되고, 예측이 어렵거든요.”
경고였다.
“물론 더 큰 성과를 낸다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김 실장을 통해 현승에게 전해져야 할 경고.
“제가 잘 얘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요, 저는 그 친구를 오래 볼 수 있으면 좋겠거든요.”
대표의 얼굴 위로 옅은 미소가 스쳤다가 빠르게 사라진다.
“네, 감사합니다….”
김 실장은 얼른 제 목을 옥죄이는 넥타이를 풀고 싶을 따름이었다.
* * *
대표의 제안을 전해 들은 현승의 답변은 역시나.
“악기 선정도, 악보도 제가 만들고 연주도 직접 할 겁니다. 다른 사람 손 타는 건 싫어요.”
예상했던 바였다.
“혹시나 이번 앨범 잘 안 되면 앞으로 제대로 활동도 못 해 보고 그대로 접어야 할 수도 있어.”
김 실장은 재차 설득해 보았고.
“잘 안 되면 전부 책임질 테니, 이만 녹음하러 가 봐도 되죠?”
만류에도 불구하고 현승은 홀로 녹음실을 찾았다.
끼이익-.
서지니가 녹음실로 들어서자, 현승이 기다렸다는 듯 물었다.
“오늘 목 상태는 어떻습니까.”
“제 목 상태요?”
당황한 서지니는 손으로 제 목을 만지며 가다듬었고.
“뭐, 나쁘진 않은데.”
“우선 목부터 풀고 있어요.”
왠지 현승이 뿜어내는 분위기는 첫인상과 매우 달랐다.
녹음실에서 만난 현승은….
흡사 수년 차 베테랑 디렉터나 프로듀서처럼 느껴진달까.
그녀가 “아-.” 하며 목을 풀자, 현승이 눈매를 좁히며 말했다.
“목에 힘을 조금 더 빼고 소리를 내 보면 좋을 것 같은데.”
현승의 귀를 사로잡은 목소리.
하지만 위축된 마음 때문인지 성공해야 한다는 욕심 때문인지 억눌린 성대가 탁한 소리를 만들어 낸다.
“아-. 이렇게요?”
“그렇지.”
자신이 고른 악기답게 금세 원하는 소리를 내자, 현승이 만족스럽다는 양 고개를 끄덕였다.
“뒤로 스케줄 없죠?”
“네.”
“내일도 없고?”
“네….”
“내일모레는?”
“없기는 한데….”
그녀는 의문이 담긴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이제 시작해 볼까?”
현승은 대답 대신 녹음 부스 문을 열며 손짓했다. 생각 외로 다정한 에스코트에 서지니가 흠칫 발걸음을 멈추었고.
“들어가서 준비되면 말해요. 먼저 사운드 체크부터 해 봅시다.”
이내 그녀는 얼마 안 가 그 손짓이 지옥문으로 인도하는 악마의 위험한 손짓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독한 놈.’
녹음이 시작된 지 5시간이 초과하였을 때 그녀 머릿속에 가득 채운 단어였다.
그녀는 수많은 프로듀서 내지 레코딩 디렉터와 함께 작업을 해 왔지만.
‘이렇게 지독하게 녹음하는 놈은 또 처음이네.’
처음에는 풀 테이크로 여러 번 따길래, 풀 테이크 녹음을 선호하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이내 한 마디마다 숏 테이크를 따내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한 음절씩 따기 시작했다.
“조금만 쉬었다가 하면 안 될까요?”
“그러죠. 대신 입은 계속 풀어야 합니다.”
그녀가 녹음 부스 문을 열고 나와 벌러덩 소파에 누웠다.
‘쟤는 쉬지도 않네,’
계속 따 놓은 테이크를 들으며 작업에 몰두하는 현승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패기 어린 신인 작곡가라고만 생각했는데.’
서지니가 오늘 녹음실에서 만난 현승은 결코 신인 작곡가가 아니었다.
좋은 질의 녹음이 나올 수 있도록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태도라든가.
가수가 좋은 소리를 낼 수 있게끔 컨디션을 살피며 세심하게 잡아 주는 모습.
결코 녹음을 처음 디렉팅 하는 프로듀서가 아니었다.
무엇보다 억압적이지 않고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가수조차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나올 수 있도록 기다려 주는 모습이….
그녀의 마음속 남아 있던 작은 의심의 촛불도 꺼트렸다.
‘무엇보다 곡이 나랑 너무 잘 맞아.’
그녀가 억눌린 성대를 개방시키고, 자신 있게 부를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당연히 곡이 좋아서였다.
이번 싱글 앨범은 총 세 곡이 수록되는데 그 모든 곡이 그녀의 ‘맞춤옷’처럼 목에 착 감겨 왔다.
‘어쩌면 이번 싱글은 잘될지도 몰라….’
그녀가 피어오르는 희망으로 옅은 웃음을 보이던 찰나.
“너무 누워 있지 마세요. 목 잠깁니다.”
딱딱하기 그지없는 현승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네. 알겠습니다.”
그마저도 곡을 위한 잔소리라는 것을 알아서였을까?
고깝게 들리지 않았다.
그녀의 입꼬리에 기분 좋은 미소가 걸렸다.
“근데 언제까지 쉬실 겁니까?”
“다 쉬었습니다.”
서지니가 소파에서 몸을 일으키며 덧붙였다.
“이제 다시 시작해 볼까요?”
누구 하나 그만하자는 말 없이 이어진 녹음은 장장 이틀 뒤까지 이어졌다.
* * *
“어휴, 이게 뭐야 대체.”
다 먹은 배달 음식 쓰레기와 물통들로 어지럽혀진 녹음실을 바라보자 절로 한숨이 나왔다.
김 실장이 바라본 녹음실은 한차례 태풍이 쓸고 지나간 듯 더럽혀져 있었다.
뒤늦게 김 실장을 발견한 현승이 헤드셋을 벗으며 인사했다.
“오셨어요?”
“여기서 무슨 일이 있던 거야?”
그의 물음에 주위를 다시 살핀 현승은 어깨를 들썩였다.
“실장님….”
그때 구석 소파에서 웅크린 채 자고 있던 서지니가 부스스한 얼굴로 눈을 뜨며 말했다.
“조용히 좀 해 주세요. 녹음실 에티켓 모르세요?”
“녹음실 에티켓…?”
이내 “휙.” 돌아눕는 서지니를 보며 김 실장은 뒷머리를 긁적였다.
‘녹음실은 원래 시끄러운 곳 아냐…?’
김 실장이 녹음실 내부를 한번 훑고는 다시 그녀에게 시선을 옮기며 작게 말을 이어 나갔다.
“그보다 대체 녹음실에서 무슨 일이 있던 거야?”
이렇게 더러운 녹음실도 처음이지만, 그녀가 녹음실에서 쪽잠을 자며 에티켓을 운운하는 광경을 보다니.
그녀는 주변 모든 이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로 자기관리에 엄격한 편이었다.
피부가 상한다고 밤샘 촬영이 예상되는 예능은 뭐가 됐든 전부 까 버리던 그녀가 아니던가?
한데, 녹음실에서 날밤을 새우다니 이 정도면 특종감이다.
“녹음실에서 녹음하죠.”
“아직도 녹음하고 있다는 소리 듣고 와 보기는 했는데.”
김 실장이 “허.”하고 헛웃음을 뱉고는 중얼거렸다.
“진짜일 줄은 몰랐네.”
“녹음실 오늘까지 더 써도 상관없죠?”
“오늘은 좀 쉬고 다른 날 다시 해.”
“괜찮아요. 모니터링만 좀 하다가 갈게요.”
그 말을 끝으로 현승은 다시금 헤드셋을 뒤집어쓰며 따 놓은 테이크별로 모니터링을 시작했다.
보이스 트랙이 빼곡하게 채워진 프로그램 화면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김 실장은 고개를 내저었다.
현승이 곡을 만드는 능력이 타고난 작곡가라고만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꽤 광기 어린 프로듀서의 눈을 가지고 있었다.
“곡 좀 들어봐도 되나?”
“아직 완성 아니에요.”
“괜찮아, 조금이라도 들려줘.”
매니지먼트부의 실장으로서 자신이 맡은 아티스트들의 발매 곡을 전부 들어 본다지만….
이번만큼은 그런 의무감 따위가 아니라 온전히 궁금한 마음으로 들어 보고 싶었다.
“그렇게 하세요. 서지니 자니까 헤드셋으로 들으시고.”
현승이 제 목에 걸린 헤드셋을 건넸고.
딸칵.
이내 헤드셋을 타고 귀를 간지럽히는 반주가 시작되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김 실장이 마른침을 삼키고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맙소사.”
그리고는 현승을 슬쩍 돌아보며 재차 덧붙였다.
“미친 거 아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