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103)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103화(103/482)
드디어 K-싱어스타의 마지막 심사평이 시작되었다.
“음….”
현승은 K-싱어스타에 들어와 느낀 점이 하나 있었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여기 있는 심사위원들은 하나같이 음악에 대한 깊은 애정을 품고 있다는 거였다.
그만큼 좋은 곡, 좋은 목소리, 좋은 무대를 마주하게 되었을 적에는 얼굴색부터 달라지곤 했다.
마치….
제일 좋아하는 간식을 받게 된 어린아이의 표정 같달까?
지금 그들의 표정이 딱 그랬다.
윤제이 무대에 대한 심사평을 진행하려던 그들의 얼굴 위로는 황홀감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이윽고,
무대가 시작되기 전, 그녀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던 이영아가 먼저 마이크를 들었다.
“보통 좋은 곡을 들으면 그 곡에 대한 잔상이 남는다고 하잖아요? 저는 오늘 집에 들어가는 길에도 윤제이 참가자의 잔상을 듣게 될 것 같아요. 너무 잘 들었습니다.”
김광진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 심사평을 이어 나갔다.
“음악을 전시하게 되는 날이 온다면, 오늘 제이 양의 오늘 무대를 꼭 전시하고 싶네요. 그만큼 황홀한 무대랄 수 있었습니다. 기분 좋게 들었습니다.”
둘은 일부러 자작곡에 대한 언급을 모쪼록 아끼는 게 느껴졌다.
하기야.
누구 곡이 더 좋다고 얘기하기에는 당사자들이 모두 자리하고 있으니까 껄끄럽겠지.
다만.
윤제이에게 전하는 심사평 속에 모두 녹여져 있었기에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사실 실력을 폭발시키는 것보다, 그 사람이 가진 흥을 무대에서 폭발시키고 녹여 내는 게 더 어려운 일이거든요. 근데 윤제이 씨는 그걸 해낼 줄 아시는 것 같아요.”
원진섭까지 심사평을 마치자, 이어지던 칭찬 퍼레이드가 잠시 행진을 멈췄다. 다음 차례인 제이블이 입매를 꾹 다물고 있던 탓이었다.
아무래도 쉽사리 입술이 떨어지지 않는 듯 보였다.
그가 침묵을 계속 유지했고, 보다 못한 MC가 상황을 전환시키려고 하던 찰나였다.
“음….”
마이크를 타고 제이블의 침음이 흘러나왔다.
“우선….”
별안간 그는 고개를 돌려 현승을 바라봤다.
“곡 자체가 사람이 부르라고 만든 곡이 맞나?”
현승은 영문을 알 수 없는 그의 시선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음?’
이건 심사평인가, 질문인가? 현승이 대답해 줘야 하나 고민하기도 잠시.
“-싶은 정도로 정말 어려운 극상위 난이도의 곡이에요.”
제이블이 다시금 무대 위로 시선을 옮기며 덧붙였다.
“거의 파트별로 장조가 계속 바뀌고, 전체적으로 변조가 심하다 보니 아마 웬만한 실력을 지닌 기성 가수라도 이 곡을 라이브로 부르라고 하면 기피하고 싶을 겁니다.”
그리고는 다들 쉬쉬하던 자작곡을 스스럼없이 짚어 나갔다.
“그런데도 윤제이 씨가 곡을 부르는 내내 쫓아간다거나, 버겁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어요. 오히려 윤제이 참가자가 지닌 목소리의 모든 매력을 발산하기 적합했던 것 같습니다.”
다른 심사위원들도 짐짓 아닌 척하지만, 제이블의 긴 심사평에 제법 놀란 눈치였다. 모두가 다들 연예계 바닥에서 꽤 오래 굴러온 사람들이다.
모두가 눈치껏 제이블이 HS와 좋은 감정을 지닌 사이가 아니라는 것도, 그런 이유로 윤제이를 썩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점도 알고 있었다.
그랬던 그가….
“뭐랄까? 이 곡의 장르가 윤제이, 그 자체였던 것 같네요. 잘 들었습니다.”
여태껏 해 온 심사평 중 가장 긴 심사평을 늘어놓았다.
그것도 다른 이가 아닌 윤제이 참가자에게 늘어놓았으니 놀랄 만도 했다.
탁.
심지어 마이크를 내려놓는 그의 얼굴 위로 기분 좋은 미소가 담겨 있었다.
‘뭐지?’
현승도 헬멧 안에서 의외라는 양 눈썹을 들썩였다. 처음에는 제 자작곡을 지적하려는 건가 싶더니, 거의 칭송에 가까운 심사평으로 끝을 맺었으니까.
하물며, 매일 돌부처같이 딱딱하게 굴길래 자신만큼 감정표현에 아주 박한가 보다 했는데 저렇게나 인자한 미소를 지어 보일 줄 알았다니….
‘좀 의외인걸?’
현승의 입가에도 제법 기분 좋은 웃음이 걸렸다. 물론, 헬멧을 쓰고 있는 터라 아무도 못 보겠지만.
그때,
심사위원 점수가 공개되고, MC는 다시 한번 입술을 열었다.
“이로써 윤제이 참가자가 심사위원 점수에선 500점 만점에 491점으로 480점을 받았던 강하준 참가자를 11점 차이로 앞서 나갑니다.”
기분 좋은 선방이었다.
* * *
실시간 문자 투표 마감을 앞두고, 무대 위는 분주했다. 바로, 스페셜 무대를 준비하기 위함이었다.
‘하준이 오빠의 스페셜 무대인가?’
현아가 기대에 가득 찬 얼굴로 두 손을 맞잡던 찰나.
돌연.
장내에는 칠흑 같은 암전이 찾아왔다.
─ 한바탕 시끄러운 세상이에요.
거친 남성의 목소리와 함께 전광판 위로는 윤슬이 반짝이는 밤바다가 철썩거렸다.
─ 그대는 늘 고요 속에 살겠죠.
두 번째 소절을 내뱉을 무렵에서야 무대 위에 서 있던 남자의 머리 위로 옅은 빛이 쏟아졌다.
‘이 노래는….’
현아는 익숙한 선율에 눈매를 좁히며 무대 위 남자의 얼굴에 집중했다.
─ 어쩔 땐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어요.
절대 모를 수가 없는 곡이다.
직접 찾아 듣기도 많이 듣고.
길거리에서 많이 들리고.
들으며 울기도 많이 울었던.
제 오빠의 개인 앨범 타이틀곡이자, 아빠를 위해 만든 곡이니까.
다만.
라이브로 듣기는 처음이었다.
톡톡.
현아는 곧장 아빠에게 수어로 전달했다.
─ 아빠, 지금 문범재 아저씨가 부르고 있는 곡이 오빠가 만든 Dear my Beethoven이야.
─ 응, 그런 것 같았어. 직접 부르는 걸 눈으로 보니까, 곡의 감정이 더욱 확실하게 전달되는 것 같네.
슬쩍 웃으며 대답하는 아버지의 표정이 어딘가 슬퍼 보이는 건 착각일까?
왠지 씁쓸함이 묻어 있는 미소였다.
아니.
어딘가 모르게 처절해 보이기까지 했다.
‘아빠….’
현아가 애써 모르는 채 다시 앞으로 시선을 옮기기도 잠시.
─ 부디 우리 살자, 살자고.
곡이 마지막을 향해 달려 가고 있었다.
─ 우리, 살자고.
문범재의 목소리는 곡이 지닌 슬픔이나 애환과 같은 감정을 지독하게 끄집어냈다.
이윽고.
곡이 끝나자, 장내에는 박수 대신 연신 코를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현아는 울지 않았다. 되레 의연한 척 힘차게 손뼉을 부딪치며 환호를 보냈다.
짝짝짝짝짝-!
제 오빠가 곡에 담아낸 것은 슬픔이나 애환 따위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으니까.
‘희망.’
그래, 이제는 행복하게 우리 가족 다 함께 살아가자는 간절한 바람을 담아낸 곡이니까.
옆을 바라보니….
아버지는 생각보다 담담한 표정을 짓고 계셨다.
그러나.
장내에 옅은 조명들이 켜질수록 아버지의 붉어진 흰자위가 보였다. 얼마나 감정을 억눌렀길래 꼬옥 말아 쥔 손은 부들거리기까지 했다.
“아빠아….”
현아는 자신도 모르게 아빠를 소리 내어 부르다 말고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여느 평범했던 날.
아빠가 집에서 ‘Dear my Beethoven’을 크게 늘어놓은 채 처참하게 울던 모습을 본 적이 떠올랐다.
그날, 오빠가 그랬지.
어른도 가끔 운다고, 그럴 때는 모르는 척해 주는 거라고.
모쪼록.
오늘도 모르는 척 해 드리기로 마음먹은 현아는 애써 고개를 치켜올렸다. 아빠를 따라 붉어진 눈시울을 말리기 위함이었다.
이내.
현아가 씩씩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수어로 말을 건넸다.
─ 아빠, 공연이 끝났으면 박수를 쳐 줘야죠.
그 말에 아빠도 무대를 향해…
아니,
아들을 향해 힘찬 박수를 보냈다.
* * *
문범재의 스페셜 무대가 끝나고, 사람들의 울음과 박수 소리가 뒤엉켜 오묘한 소음이 일었다.
현승은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윤제이가 지더라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었다.
이런 걸로 자존심이 상할 성미의 사람이 아니기도 했거니와, 어차피 좋은 무대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오랫동안 남아 거듭 회자 될 테니 연연치 않기로 했었다.
무엇보다.
윤제이를 연주하는 일이야, 같은 엔터 식구가 되었으니 앞으로 얼마든지 할 수 있을 테니까.
다만.
‘히든카드까지 쓴 마당에 질 수야 없지.’
현승의 시선이 무대 아래편에 서 있던 문범재를 향했다. 그의 등장은 강렬한 인상과 함께 긴 여운을 남겨 놓았으니, 분명 결과에도 영향력을 행사했으리라 확신할 수 있었다.
‘조만간 곡 하나 드리긴 해야겠네.’
곡을 바라고 수락하신 건 아닐 테지만 인간적으로 그 정도야 해 줘야 할 정도의 무대였다. 흘끔 바라본 제 가족들이 격한 박수를 보내고 있는 걸 보면 말이다.
‘Dear my Beethoven도 불러 달라 하기를 잘했네.’
그때 MC의 부름과 함께 두 참가자가 무대 중앙으로 걸어 나왔다.
“심사위원 점수에서는 윤제이 참가자가 강하준 참가자를 앞서 나가고 있는데요!”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두 얼굴이 전광판에 비추고, MC는 박진감이 넘실거리는 투로 말을 이어 나갔다.
“다만, 게임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고 하죠. 바로 시청자가 직접 참여하는 사전투표와 실시간 문자 투표도 무시할 수가 없는데요-!”
그 말에 현승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으레 이런 오디션 프로그램은 시청자 투표로 인하여 갑작스레 순위가 뒤바뀌는 경우가 왕왕 일어난다.
그래서 논란도 많은 편이고.
이번 K-싱어스타도 아마 엄청나게 떠들썩해질 터였다. 자신과 제이블의 음원 대결도 마찬가지지만, 두 참가자 역시 요즘 화제의 중심에 서 있으니까.
그래.
강하준은 ‘될놈될 패자 부활자’라는 다소 오글거리는 타이틀이 생겼고, 윤제이는 ‘HS가 살려 낸 기적의 참가자’라는 타이틀을 얻어 냈다던가?
심지어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둘을 묶어 ‘패자들의 반란’이라고 칭하기도 한다더라.
‘좀 유치하긴 하지만….’
그런 둘의 결승 무대인 만큼 방송이 끝나면 한바탕 커뮤니티는 시끄러워지겠지.
“실시간 문자 투표가 마감되었습니다. 이후에 보내 주시는 문자는 전부 무효 처리되므로 시청자 여러분은 양지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그때 MC의 설명과 함께 전광판 위에 보이던 카운트다운이 종료되었다.
이제 정말 결과만이 남았다.
설령 심사위원이라도 알 수 없는, 예측할 수 없는 결과가 곧 발표될 거다,
‘누구려나?’
둘 다 LS 엔터인만큼 누군가를 1위로 만들어 달라는 로비도, 청탁도 하지 않았다.
정말 순수하게 집계된 점수들이 모여 최종 우승자가 탄생하게 된다는 말이었다.
‘음.’
현승이 고개를 돌려 강하준을 바라봤다. 첫 방영이 되던 때부터 압도적인 인기를 몰고 다니며, 늘상 시청자 지지율 1위를 차지한 참가자였다.
하나.
지난 준결승전에서 윤제이가 시청자 투표에서 강하준의 뒤를 바싹 쫓으며 1위를 거머쥔 만큼 오늘 결과는 아무도 예상할 수가 없게 되었다.
아마도….
오디션 프로그램의 거대한 세력이랄 수 있는 시청자들의 마음을 더 많이 동요시킨 사람이 승기를 잡게 될 터였다.
그때.
MC가 익살스럽게 웃으며 큐카드 하나를 들어 보였다.
“자, 지금 바로 제 손안에 결과지가 들어왔는데요. 과연 누가 초대 우승자라는 왕관을 쓰게 될까요!”
물음 같은 멘트에 관객석에서는 너나 할 거 없이 강하준과 윤제이의 이름을 외쳐 댔다.
그리고는.
시청자들에게 돌팔매질 당하기 딱 좋다는 금기 멘트를 내뱉고야 말았다.
“60초 후에 공개하겠습니다.”
하나, 관객들은 아무렴 상관없다는 듯 계속 두 참가자의 이름을 부르짖었다.
‘잠깐….’
무언가 번뜩인 현승이 눈매를 좁히며 고개를 휙 돌린 찰나였다.
“강하ㅈ…!”
기차 화통을 삶아 먹은 듯 큰 목소리로 강하준의 이름을 외치던 제 여동생을 발견했다.
탁.
곧장 고글을 살짝 올리고 노려보자, 현아는 황급히 입가를 손으로 가리며 딴청을 피워 댔다.
‘저게, 진짜….’
이래서 옛말에 자식(?) 키워 봐야 소용없다는 건가.
“쯧.”
현승이 혀를 차며 다시 고개를 돌렸을 무렵, 광고 타임이 끝이 났고.
“60분 같은 60초를 기다려 주신 시청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 인사드리면서-!”
MC가 사뭇 진지한 얼굴로 박진감을 보태듯 말을 덧붙였다.
“지금 바로, 전 국민 오디션 프로젝트 K-싱어스타의 최종 우승자를 공개하겠습니다-!”
전광판에 두 참가자의 얼굴이 번갈아 떠올랐고.
“어-?!”
드디어.
기나길었던 대장정의 막이 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