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108)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108화(108/482)
현승은 이제 제 작업실 문을 두들기는 노크 소리만으로도 누구인지 얼추 예상할 수 있었다.
이를테면….
서지니의 경우 빠르고 간결하게 두 번, 정아린은 정신 사납게 네 번을 연달아 두들겼다.
똑, 똑, 똑.
그리고 지금처럼 적당히 구색을 갖추려는 양 대강 두들기는 노크 소리는….
“그냥 문 열고 들어오실 거면서 왜 맨날 노크하세요?”
“이건 그저 형식적인 매너랄까?”
예상대로 김 실장이었다.
“아침 일찍부터 웬일이세요?”
“깜짝 선물 주려고 왔지.”
“아무리 봐도 빈손이신데요?”
현승이 장난기 서린 얼굴로 이리저리 살펴 대고 있노라니, 김 실장은 짐짓 근엄한 표정으로 테이블 위에 서류 가방을 올려놓으며 답했다,
“여기 있잖아, 여기.”
“안 사요.”
“아니, 얘기라도 좀 들어 봐.”
“안 산다니까요?”
김 실장이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거참.” 하며 중얼거리고는 서류 가장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이게 뭐예요?”
“깜짝 선물이라니까?”
잘 갈무리되어 있는 서류 뭉치를 현승의 앞쪽으로 내밀며 덧붙였다.
“좀 늦은 감이 있기는 하지만, 우리 다시 재계약해야지.”
그의 말에 현승이 작게 “아.”하고 탄식하더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까먹고 있었네요.”
어느덧 LS 엔터와 계약한 지 약 1년하고도 4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처음 계약서를 작성할 때, 자신이 제시했던 특약 조건 중 계약 기간을 일 년 단위로 설정하겠다는 사항이 있었다.
다만.
LS 엔터와 전속 계약을 한 지 일 년이 되어 갈 무렵부터 하도 연달아 일이 있던 탓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제이블 음원 내기를 시작으로….
봄 시즌곡 ‘벚꽃 한 줌’ 발매와 연이어 K-싱어스타로의 심사위원으로서 촬영을 이어 나가고, 여름 시즌곡 ‘윤슬’ 발매까지 쉴 틈 없이 달려왔으니까.
“처음에 계약할 때는 그렇게나 까탈스럽게 굴더니.”
“뭐, 알아서 잘 챙겨 주시겠거니 했죠.”
“하기야, 나도 정신이 통 없었는데 너는 오죽했겠어?”
김 실장은 계약서 내 바뀐 조건을 현승이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밑줄을 쳐 놓으며 덧붙였다.
“알아서 잘 챙겼어야 하는데, 늦어서 미안하다.”
“아닙니다. 저도 까먹었는 걸요, 뭐.”
그래, 정말 새까맣게 까먹고 있었다. 죽었다가 되살아난 것도 모자라, 시간을 되돌아왔을 적에는 정말 가족을 위해 돈을 버는 수단으로 작곡가를 선택한 거였다.
자신이 제일 잘하는 일이 작곡이었으니까.
하나, 생각보다 작업이 너무 재밌어졌다. 오히려 전생에서보다 더욱 흥미로운 일투성이다. 본래 목적인 돈보다는 재미를 쫓아 작업을 이어 나갔다.
물론.
돈은 알아서 따라오고 있으니, 걱정은 없었다.
사락, 사락-.
현승이 생각을 멈춘 뒤 계약서를 확인해 나가던 찰나였다.
“어…때?”
김 실장이 잔뜩 긴장한 얼굴로 조심스레 물어왔고.
“음….”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장난기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분명 성의는 느껴지는데….”
현승이 새어 나오려는 웃음을 꾹 참으며 처음 계약할 때처럼 떨떠름한 듯 말을 이어 나갔다.
“제가 보여 드린 성과들이 마음을 충족시켜 드릴 정도는 아니었나 봐요?”
“그럴 리가! 네 덕분에 처음으로 2팀이 작년 성과 1위를 달성했는데!”
억울하다는 양 발끈하는 김 실장을 보고 있노라니, 결국 참지 못한 현승이 웃음을 터트렸다.
“조크, 조크.”
이내 현승이 눈꼬리에 맺힌 눈물을 훔치며 덧붙였다.
“조건 다 마음에 듭니다.”
“너 간 쫄리게 할래?”
“그건 아마 술 때문일걸요?”
“뭐, 인마-?”
그리고는 계약서에 사인을 휘갈기다 말고 넌지시 되물었다.
“저도 저지만, 김 실장님도 얼른 새 계약서에 잉크 묻히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러게나 말이다. 민현승이 더 힘 써 주면 올해는 새 계약서에 사인하는 날 오지 않겠어?”
“저야 뭐 매번 좋은 곡을 만들 테니까, 김 실장님이 좀 더 힘내시면 가능할 수도?”
김 실장이 심통 난 표정을 지으며 “한마디를 안 져 줘!”하고 호통치기도 잠시.
“여하튼, 한동안 좀 쉬고 와라.”
“갑자기요?”
“응, 휴가비도 지원해 주기로 했어.”
테이블 위에 서류 한 장을 올려놓으며 부연했다.
“하준이 곡도 지금 반응 뜨겁고, 지금 제이도 뜬금없이 SNS 글 때문에 여론이 상당히 좋아. 이대로 차근차근 데뷔 준비하면 될 것 같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좀 쉬고 와.”
잠자코 듣고 있던 현승이 눈썹을 들썩이며 “SNS 글?”하고 되물었고.
“다름이 아니라, 제이 공식 SNS를 등록하는 과정에서 예전에 써 놓은 글을 제대로 확인도 안 한 모양이더라고.”
김 실장이 휴대폰을 몇 번 두들기더니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며 부연했다.
“스위터에 매일 일기처럼 부모님을 그리워하는 심정을 적어 놨었나 봐. 근데 이게 사람들 사이에서 꽤 반응이 좋아. 아마 공감하는 이들이 많은 모양이더라고.”
현승이 휴대폰을 집어 들며 중얼거렸다.
“그거참 속상한 일이네요.”
그리고는 윤제이가 스위터에 올렸다는 글들을 차례대로 훑어보기 시작했다.
「 기억이라도 나면 마음껏 그리워할 텐데, 기억조차 없으니 그리워할 수도 없어요. 엄마랑 아빠는 나를 기억할까요? 」
「 왜 세상에 나만 덩그러니 남겨놓고 가버린 거야. 나도 같이 데려가지. 내 손 놓지 말고, 나도 같이 데려가지. 」
「 내가 보란 듯이 성공할 테니까, 꿈에서라도 대견하다고 한 번만 꽉 안아주면 안 돼요? 엄마의 온기가 궁금해요. 」
아마 공감하는 이들 중에는 자신과 현아도 포함일 터였다.
자신도 어렴풋이 남은 어머니의 기억을 붙들고 일기장에 끄적거리던 때가 있었다. 아버지가 슬퍼하실 테니, 티를 내진 못했지만 그리웠다.
제 동생인 현아는 기억조차 없는 어머니가 보고 싶다며 운 적도 있었다. 그런 동생에게 넌 엄마랑 똑같이 생겼으니, 거울을 보면 된다고 타이르곤 했었다.
그때.
김 실장은 상념에 빠져든 현승의 어깨를 흔들어 깨웠다.
“현승아, 내 말 듣고 있어? 무슨 일 있어?”
“아, 아니에요. 잠시 생각할 게 있어서.”
“그러니까 푹 좀 쉬면서 머리 좀 식히고 와.”
그리고는 걱정이 잔뜩 묻어나는 어투로 덧붙였다.
“이번 참에 가족들하고 시간 좀 보내고, 리프레쉬 하고 와. 너 그러다가 쓰러진다?”
김 실장의 말을 잠자코 듣고 있던 현승이 돌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고.
끼익, 쿵-!
그 바람에 현승이 앉아 있던 의자는 요란스러운 소리를 내며 뒤로 넘어갔다.
“무, 무슨 일이야!”
하지만 현승은 아무런 대꾸도 없이 콘솔 앞으로 향해 프로그램을 실행시켰다.
“혀, 현승아…?”
그리고는 가볍게 손을 움직여 섹션을 채워 나갔다. 김 실장의 눈에는 그 모습이 마치 미치광이 과학자처럼 보인 까닭에 더 이상 말을 걸 수가 없었다.
“여기서 마이너키로 시작하면….”
현승은 스스로 조절할 수조차 없는 영감에 저절로 손이 움직였고, 계속해서 머릿속에 차오르는 악보를 감당하지 못해, 섹션 칸으로 옮겨 찍어 냈다.
“이거 참….”
김 실장이 현승의 뒷모습을 바라보기도 잠시.
“오늘 점심 같이 먹기는 글렀네….”
이내 제 손에 들린 계약서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음….”
분명 전례가 없을 만큼 파격적인 조건으로 이뤄진 계약서였지만, 왠지 볼품없어 보일 따름이었다.
물론.
저런 불세출의 천재 앞에서는 어떤 계약서든 초라할 테지만.
* * *
윤제이는 오랜만에 단짝 친구인 김수빈을 만나기 위해 시내로 향했다.
“너 요즘 얼굴 보기 너무 어려운 거 아니야?”
“하도 정신이 없어서, 미안해.”
“아냐, 그래도 티비에 자주 보여서 좋더라.”
김수빈은 넉살 좋게 웃어 보이고는, 윤제이와 팔짱을 끼운 채 카페 안으로 들어섰다,
“제이야, 너 뭐 마실래?”
“내, 내가 살게!”
“오, 우승 턱 내는 거야?”
자연스레 지갑을 꺼내 들었던 김수빈은 다시금 주머니에 지갑을 집어넣으며 외쳤다.
“그럼 난 밀크티! 따듯한 걸로!”
“응, 먼저 앉아 있어! 주문하고 갈게.”
김수빈은 대견스럽다는 얼굴로 윤제이의 등을 두들기고는 카페 내 빈자리를 찾아 앉았다.
“저, 저기 밀크티 따듯한 거 하나랑 아이스티 하나 주세요.”
이윽고.
제법 또랑또랑하게 주문을 마친 윤제이는 뿌듯한 표정으로 카드를 내밀었다.
“이걸로 계산해 주세요.”
형편이 어려운 자신을 위해 싫은 내색 하나 없이 늘 먼저 카드를 꺼내 줬던 친구에게 이젠 자신이 사 줄 수 있다는 생각에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이내.
진동벨을 건네받은 윤제이가 픽업대 앞에 선 찰나였다.
“어라?”
또래처럼 보이는 여자가 불쑥 자신을 가리키며 중얼거렸다.
“케싱스 우승자…?”
“예?”
“윤제이 맞죠?”
“네….”
“헐, 대박! 실물 미쳤다.”
발까지 굴러가며 한바탕 호들갑을 떨어 보인 여자는 제 휴대폰을 들이밀며 물었다.
“진짜 찐팬인데, 같이 사진 한 번만 찍어 주시면 안 돼요?”
“완전 가능하죠.”
흔쾌히 허락한 윤제이는 곧장 그 여자 옆에 나란히 서서 카메라를 응시했다. 아직 정식 데뷔조차 하지 않았는데 팬이라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이윽고.
찰칵하는 소리와 동시에 윤제이가 방긋 웃어 보였다.
지이이이잉-!
때마침 손에 쥐고 있던 진동벨이 울려 댔고.
“그럼 조심히 들어가세요.”
윤제이는 여자에게 공손히 인사를 전한 뒤 주문한 음료를 찾아 자리로 향했다.
“이야-!”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김수빈은 윤제이의 옆구리를 콕콕 찌르며 익살스럽게 말했다.
“내 친구 이제 연예인 다 됐네-!”
“아, 아니야.”
“아니긴? 아주 프로페셔널하더만-?”
윤제이는 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얼굴로 그만하라며 애꿎은 빨대만 씹어 댔다.
“그건 그렇고, 이번에 전셋집 계약했다면서?”
“응, 세면대에다가 샤워부스도 있어!”
“잘했네, 잘했어. 뜨거운 물도 콸콸 잘 나오고?”
“그럼! 집도 엄청 깨끗하고 좋아.”
계약한 새로운 전셋집 얘기가 나오자, 윤제이는 화색을 띠며 눈을 반짝거렸다. 그 모습에 김수빈도 덩달아 따라 웃으며 잘 됐다며 함께 기뻐했다.
그렇게 서로 있었던 일들을 나누기도 잠시.
“쟤 케싱스에서 편법으로 우승한 애잖아.”
“나도 그 기사 봤어.”
“어쩐지, 슈퍼패스부터 이상하다 싶었어.”
“가정사도 다 거짓말 아냐?”
“당연히 작가들이 다 만들어 낸 거겠지.”
주변에서 윤제이를 향한 험담이 들려왔다.
“아니, 저것들이-!”
김수빈은 그들을 향해 돌진할 기세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잠깐, 잠깐만-!”
윤제이는 그런 김수빈의 옷자락을 다급히 부여잡으며 만류했다.
“수빈아, 우리 그냥 무시하자.”
그 말에 김수빈은 잔뜩 격양된 어투로 되물었다.
“쟤네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데 어떻게 그냥 무시해?”
“그래, 네 말대로 어차피 헛소리에 그칠 말들일 뿐이잖아.”
김수빈은 답답하다는 양 주먹으로 제 가슴팍을 내려쳤다. 윤제이는 늘 이랬다. 자신이 손해 보더라도, 욕을 먹더라도 이런 일은 아무것도 아니라며 넘어가곤 했다.
착하고 순수한 친구였지만….
이럴 때면 답답했다. 왜 늘 괜찮다고만 할까? 분명 안 괜찮을 게 뻔한데 말이다.
“아니야, 제이야 이런 건 하지 말라고, 완강하게 대처해야 해. 그래야 쟤네도 안 하지.”
김수빈은 친구를 대신해, 자신이라도 대신 얘기해야겠노라 생각하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러나.
이번에도 손목이 잡히는 바람에 도로 착석할 수밖에 없었다.
“수빈아, 나 정말 괜찮아.”
윤제이는 완강하지만 부드러운 어투로 덧붙였다.
“나한테는 이제 소속사가 생겼잖아.”
그리고는 생긋 웃어 보이기까지 했다. 그 모습에 김수빈은 더 이상 아무 말도 잇지 못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제 친구가 괜찮아 보인 까닭이었다.
그래.
윤제이는 이제 자신을 지켜 줄 소속사가 있으니, 자질구레한 낭설 따위에는 더 이상 휩쓸리지 않기로 했다.
차라리 그럴 시간에 노래 연습이나 한 번 더 하고, 어떻게 하면 자신을 사랑해 주는 팬들에게 보답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게 더 나을 테니까.
그때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던 휴대폰에서 알림음이 울렸다.
띠링-!
문자를 확인한 윤제이의 눈이 별안간 화등잔만 해졌고.
“이 기집애야, 칠칠찮게-!”
입안에 머금고 있던 음료가 턱을 타고 흐르고 있었지만, 아무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 나밖에 없던 그대에게_.mp4 ]HS로부터 온 문자가 아무런 내용도 없이 음원 파일만 덩그러니 첨부되어 있던 탓이었다.
‘잘못 보내신 건가?’
문자와 눈싸움을 이어 나가던 찰나.
띠링-!
연달아 문자 하나가 더 도착했다.
“푸웁-!”
이번에는 아예 머금고 있던 음료를 스프레이처럼 뿜어 버렸다.
“이번에는 왜 또? 예슬이가 재준이 딸이래?”
“아, 아니 그게 아니라….”
“그게 아니면 뭔데? 무슨 일이라도 났어?”
김수빈은 재차 윤제이를 흔들며 재촉했지만, 이미 그녀는 사고회로가 멈춘 듯 멍하니 문자창만 들여다볼 뿐이었다.
“수, 수빈아? 있잖아….”
“어, 무슨 일인데 그래?”
“일주일이면 며칠이지…?”
“엉? 그게 무슨 소리야?”
그녀가 이렇게나 넋이 나간 건.
[ 준비 기간 일주일 준다. ]단, 열 글자도 안 되는 문자 내용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