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114)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114화(114/482)
현승은 더문을 이틀에 한 번꼴로 불러들여 온종일 하드 트레이닝을 시작했다.
‘생각보다 빈틈이 많아.’
본인들의 곡을 부를 때는 꽤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확실히 낯선 곡을 부르게 되니 빈틈이 속속히 드러났다. 역시 전문적인 케어를 받지 못한 게 이런 곳에서 티가 난다.
개중 다행인 건….
가지각색으로 다른 네 명의 목소리가 이상할 만큼 합이 좋다는 거다.
만약.
이들이 단독적인 악기라 치면 별 볼 일 없는 악기랄 수 있었지만….
누군가는 헤드, 누군가는 넥, 누군가는 바디, 누군가는 사운드 홀을 맡아, 제법 그럴싸한 소리를 낼 줄 아는 기타로 탄생했다.
다만.
각자의 역량도 최대한으로 발휘를 해내야만 더욱 좋은 소리가 나올 터.
“발성부터가 잘못 됐어.”
현승은 안지호를 앞에 세워 둔 채 심각한 얼굴로 부연했다.
“이대로면 얼마 안 가서 목 다 망가진다.”
묵묵히 듣고만 있던 안지호는 푹 숙였던 고개를 들어 보였다.
그리고는.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마주하며 입술을 열었다.
“다시 해 볼게요.”
현승은 마주해 오는 시선을 피하지 않은 채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무식하게 많이 부른다고 좋아질 일이 아니야.”
그래.
발성은 한 번에 좋아질 수가 없다. 무엇보다 잘못된 발성법을 오랫동안 습관적으로 사용해 왔다면 고질병처럼 고치기가 더욱 어렵기 마련이다.
전문적인 발성 교육을 받아야 하는데….
똑, 똑!
자신이 일일이 모든 멤버를 트레이닝해 줄 수도 없고, LS 엔터 소속도 아닌데, LS 엔터의 보컬 트레이너를 붙여 줄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나?
“들어와.”
그럼 도움을 보태 줄 수 있는 이라도 붙여 줘야겠지.
끼이이익-.
제 말이 끝나기 무섭게, 강하준이 문을 활짝 열며 들어섰고.
“작곡가님-!”
뒤를 따라 들어온 매니저는 양손 가득 챙겨 온 것들을 작업실 테이블 위에 들여놓았다.
“이건 다 뭐냐?”
“출출하실 듯해서, 도시락 좀 사 왔습니다.”
더문 멤버들은 강하준의 등장에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워낙 요즘 세간에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는 신인 가수라 모를 수가 없기도 했거니와.
얼마 전.
어렵사리 음방 무대를 오르게 된 더 문이, 별안간 잡힌 강하준의 데뷔무대로 순서가 밀려나는 바람에 멘트 하나 없는 첫 번째 무대에 오른 웃지 못할 헤프닝을 겪어야 했다.
그러니 절대 몰라볼 수가 없는 인물이었다.
뭐….
그렇다고 강하준을 싫어하는 건 아니었다.
‘약육강식’
그래, 연예계는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곳이다.
강하준은 애초 유명 기업체의 아들이자, LS 엔터테인먼트라는 거대 대형 기획사를 등에 업고 있으니 데뷔무대부터 뒷 순서에, 가장 넓은 대기실을 이용하고, 엄청난 홍보를 지원받으며 탄탄대로 흘러갈 테고.
자신들은 영세한 엔터테인먼트 소속에 인지도조차 없는 그룹이니, 음방 출연조차 부탁해야 하며, 그마저도 늘 밀려서 맨 첫 번째 순서에, 좁아터진 대기실을 이용하고, 홍보 기사 한 줄 송출하기조차 어려운 거다.
어쩔 수 없는 차이는, 되레 인정하는 게 맘이 편하다.
아주 조금.
미운 맘이 드는 거야 사람이니 어쩔 수 없고.
‘하지만, 이제 우리도….’
상념을 이어 나가던 안지호가 현승의 얼굴 위로 시선을 옮겼다.
‘많은 것이 달라지지 않을까.’
그때.
강하준이 구김살 하나 없는 얼굴로 도시락을 나눠 주며 말을 건넸다.
“선배님들도 좀 드시면서 하세요.”
안지호를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은 고된 연습에 연속으로 배가 곯을 대로 곯은 채였기에, 선배의 체면이고, 뭐고 침을 꼴딱 삼키며 현승의 눈치를 살폈다.
이내.
주우민은 자신이 총대를 메기로 결심하고, 조심스레 입술을 열었다.
“작곡가님! 저희 밥만 얼른 먹고 다시 연습해도 될까요?”
“그러던가.”
“진짜 감사합니다-!”
“나한테 감사할 거 없어. 그거 사 온 애한테 감사해야지.”
더문 멤버들은 자신들끼리 눈짓을 주고받고는 감사하다며 고개를 꾸벅거렸다.
그런 멤버들을 한번 쓱 살피던 현승이 안지호에게 시선을 멈추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안지호, 너는 밥 다 먹는 대로, 강하준한테 발성 교육부터 다시 받아.”
“예?”
“쟤가 유명 트레이너한테 배우기도 했고, 제일 올바르고 곧게 열려 있거든.”
“아….”
현승은 급격히 어두워지는 안지호의 표정에 잔뜩 날이 선 투로 물었다.
“왜, 막 데뷔한 후배한테 교육받는 게 자존심 상해?”
“아, 아닙니다.”
“그럼 이제 강하준이 네 트레이너이자, 발성 지도사인 거야.”
“예, 알겠습니다….”
묘한 긴장감이 형성되기도 잠시.
짝-!
강하준이 제 두 손을 부딪치며 숙연해진 분위기를 전환시켰다.
“선배님들, 맛있게 드시고 잘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최정혁은 공손히 고개까지 숙여 보이는 강하준의 어깨를 다독이며 넉살 좋게 웃어 보였다.
“에이, 돈 많이 벌면 선배지. 하준 씨가 선배 해요!”
“야, 우리가 돈이 없지, 자존심이 없냐!”
“아마 돈이 없어서, 자존심도 없어진 거 아닐까?”
주우민이 “맞지….”하며 중얼거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돈이 없고, 인지도가 없고, 회사가 영세한 탓에 어디 가서 자존심을 내세워 본 적이 없었다.
그런다고 자신들에게 득이 될 것이 하나도 없다는 걸 너무 일찍 깨달아 버렸으니까.
‘저 녀석들, 쓸데없는 말을….’
홀로 도시락을 건드리지 않고 있던 안지호는, 끝내 고개를 떨구며 입술이 새하얘지도록 깨물었다.
강하준은 얼마 전, 자신들의 음방 순서가 밀리는 절망감을 안겨 준 당사자라는 걸 벌써 망각한 걸까?
끝내.
미운 마음이 튀어나와 버린 안지호는 도시락 뚜껑을 굳게 닫으며 삐죽거리는 투로 말했다.
“같은 회사도 아니고. 우리 같은 무명 아이돌한테 잘 보여서 뭐 한다고, 뭘 이런걸.”
억지로 입꼬리를 올려 보이고는 있다지만, 자꾸만 말투는 빈정거렸다.
“하물며 배움을 청하는 처지에 얻어먹기까지 하려니, 좀 염치가 없는 것 같네.”
하나.
강하준은 아무런 동요조차 없이 고요한 눈동자로 안지호를 들여다봤다. 악의도, 분노도 느껴지지 않지만, 당최 무슨 생각을 하는지 가늠할 수 없는 눈이었다.
“제가 너무 돌려 말했나요?”
아주 차분한 어투로 말문을 연 강하준이 부드럽게 첨언했다.
“선배님들께 잘 보이고 싶은 마음으로 준비한 것도 맞지만.”
조용한 정적이 흐르기를 잠시.
“저보다, 작곡가님 잘 부탁드린다는 뜻으로 드리는 겁니다.”
안지호가 “작곡가님?”하고 되묻자, 강하준이 넉살 좋게 웃으며 답했다.
“예, 안 힘드시게끔 잘 좀 부탁드린다는 의미로요.”
그의 말이 끝나자 장내의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특유의 고운 목소리와 부드러운 투로 건넨 말이었으나, 일련의 위압감이 느껴진 까닭이었다.
한편.
최정혁은 손에 쥐고 있던 수저를 맥없이 바닥에 떨어트렸다.
툭.
삽시간에 얼어붙은 분위기에 놀란 탓이다. 마치 밥알이 아닌 모래알을 씹는 것마냥 입안에 남아 있던 음식물이 까끌까끌하게 느껴졌다.
‘뭐지…?’
그러고 보면 윤제이 역시 지금 강하준이 한 말과 비슷한 뉘앙스의 말을 했었다.
‘우리가 타 엔터라고 선 긋는 건가?’
하나.
단순히 선을 긋는다고 치부하기엔, 딱히 텃세를 부리거나 한 건 또 아니었다. 하물며 윤제이는 자신에게 몹시 친절하게 웃어 주기까지 했는걸….
‘아니지, 이건 중요한 게 아니고.’
아무쪼록 확실한 건 윤제이도, 강하준도 자신들을 경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경계에 이유는 뭐랄까….
‘질투?’
그래, 질투 같기도 하고….
마치 우리가 꼭 드라마 속 서브 여주가 된 기분이었다. 남주를 빼앗기 위해 나타난 서브 여주 말이다.
‘HS는 대체 저 사람들을 다 어떻게 구워삶은 거지?’
최정혁은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와중에도, 다시 수저를 주워 식사를 이어 나갔다. 다년간 무명 아이돌로 활동하며 깨달은 게 하나 있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지.’
그래, 공짜 밥은 먹을 수 있을 때 최대한 먹어 두자는 것이 최정혁의 신조라면 신조랄 수 있었다.
* * *
LS 엔터 사옥 로비 한구석에 마련된 소파에 앉아 여유롭게 신문을 펼쳐 보고 있는 한 남자.
다름 아닌, 계진성이었다.
“오늘은 출근한다는 정보를 입수했는데-.”
신문을 펼쳐 보이고 있었지만, 사실 그의 눈은 지나가는 이들을 살피기 바빴다.
“이상하다, 오전 6시부터 와 있었는데-.”
계진성이 꼭두새벽부터 나와 기다리고 있는 자는….
“나올 때가 된 것 같은데….”
LS 엔터의 대표적인 아티스트, 문범재였다.
그를 기다리는 이유는-.
이제 얼마 안 있다가 치러질 콘서트와 관련된 인터뷰를 요청하기 위해서였다. 문범재 콘서트는 자주 하지 않는 만큼, 스케일이 아주 성대하게 펼쳐진다.
무엇보다.
그의 콘서트는 말도 안 되는 초호화 게스트 라인업을 자랑하기로 입소문이 나 있는지라, 꼭 문범재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어도 꼭 가야 할 콘서트 1위로 손꼽힐 정도였다.
하지만.
늘 게스트 라인업은 비밀에 부쳐 놓았기에, 혹여 이번 콘서트의 게스트 라인업에 대한 정보를 얻게 된다면 특종기사가 되리라- 라는 생각으로 이곳을 찾게 된 것이다.
그래.
그런 이유와 더불어 오늘 문범재가 콘서트 관련 회의로 사옥에 오기로 했다는 정보까지 입수하여, 온종일 사옥 로비에 죽을 치고 있었건만.
‘벌써 오후 5시인데-.’
반나절이 가까이 되도록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이러면 나가리인데-.’
계진성이 초조한 표정으로 손에 쥔 신문을 와그작 구겨 버렸다. 당일 다른 대형 연예기획사의 신인 걸그룹 데뷔 쇼케이스 현장까지 포기하고 온 걸음이었다. 그런데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돌아가야 한다니, 실로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테이크 아웃한 커피만 석 잔.
쪼옥, 쪼옥-.
남은 커피를 다 빨아들인 계진성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정말 딱 마지막으로 한 잔만 더-!’
이대로 돌아갈 수도 없지만, 계속 여기서 죽치며 시간을 버리는 것 또한 의미 없는 짓이 될 수도 있다. 기자에게 시간은 곧 정보고, 돈이다.
아닐 때는 얼른 돌아설 줄도 알아야 한다.
그러니까.
정말, 딱 한 잔만 더 하고 미련 없이 돌아서는 거야!
터벅, 터벅-.
결심을 마친 계진성이 혹시 모를 희망을 품은 채 발걸음을 옮겨 카페테라스에 접어들려던 찰나였다.
“오늘 고맙다.”
너무 귀에 익은 목소리에, 계진성은 자신도 모르게 숨을 들이켜며 몸을 낮췄다.
중저음에 차분한 결을 지녔지만, 어딘가 거들먹거리면서도 자신감이 가득 들어찬.
절대 잊을 수 없는….
이상하게 신뢰를 가득 실어 주는 목소리.
‘분명 저 사람은….’
슬쩍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헬멧을 쓴 머리통 아래로 잘 뻗은 기럭지가 보였다.
그래, HS다.
꿩 대신 닭이 아니라, 타조가 나타난 기분에 계진성은 자신도 모르게 “나이스!”하고 소리치곤 입술을 틀어막았다. 기나긴 기다림에 대한 보상일까? 정말 자신은 연예부 기자를 하라고 하늘이 돕고 있는 걸까?
“하나님, 부처님, 알라신님, 감사합니다….”
계진성이 두 손을 모은 채 연신 중얼거리기도 잠시.
“옆에 사람들은 누구지?”
모자를 푹 눌러쓰며 둘러보니 HS의 옆으로 강하준과 훤칠한 남자들이 넷이나 더 서 있었다.
‘어디선가 봤는데….’
어딘가 모르게 낯이 익은 그들은 단박에 누구인지 알아볼 수는 없었지만, 아이돌임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멀리서도 눈에 띄는 수려한 외모가 딱 아이돌 상이었으니까.
“뭘요, 저는 그저 잠깐 시간 내서 도움을 준 게 다인걸요.”
“덕분에 안지호 발성이 눈에 띄게 좋아진 건 사실이잖아.”
“음, 그렇기는 하죠? 작곡가님에게 도움이 되어 다행이에요.”
계진성이 강하준과 HS의 대화로 파악할 수 있는 건….
강하준이 HS에게 도움을 줬다는 사실이고. 아마 그 도움은 안지호라는 사람의 발성 트레이닝인 모양이었다. 추가로 강하준과 HS의 사이가 아주 좋다는 것 정도?
사락, 사락-.
계진성은 곧장 제 안주머니에 들어 있던 조그마한 수첩을 꺼내 끄적거렸다.
‘잠깐, 잠깐-.’
별안간 그는 머리에 번뇌라도 내려친 양 황급히 수첩을 넘겨 대기 시작했다.
“안지호, 안지호….”
조금 전 대화에서 흘러나온 이름을 재차 중얼거리기도 잠시.
“여기 있다.”
연신 종이를 넘기던 손을 뚝 멈춰 세웠다.
그리고.
멈춘 수첩 위로는 ‘The moon/ 안지호 010-xxxx-xxxx 오후 3시 청담 더 카페’라고 휘갈긴 글씨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래, 내용을 보니 일전에 컴백 관련 인터뷰를 요청받아 진행했던 바가 떠올랐다.
안지호, 저놈이 리더였지, 아마?
눈빛이 신인 아이돌답지 않게 매섭게 살아 있었던 녀석이라, 인상에 남아 한동안 그들의 행보를 지켜본 바 있었다.
하지만, 워낙 영세한 엔터테인먼트 소속의 그룹인 탓인지 도무지 뜰 기미가 보이지 않아 접기로 하고 잊어버렸었다.
‘저 눈빛 보니까 맞네, 맞아.’
계진성은 안지호와 HS를 번갈아 살펴 대기 시작했다.
‘아이돌을 키우는 작곡가라….’
하기야.
계진성은 누구보다 HS의 행보를 유의 깊게 지켜보고, 유일하게 직접 대면해 본 적이 있는 기자다.
HS가 단순 작곡가로 머무를 짬이 아니라는 걸 진작에 눈치채고 있었기에, 썩 놀라울 일도 아니었다.
‘내 안목이 아직은 살아 있다니까?’
인터뷰 내용을 정리했을 적에 HS는 절대 조용히 곡이나 끄적거리며 살 수 없을 거라고 확신했었으니까.
잠깐, 잠깐만.
그저 그런 아이돌 그룹이 아니라, 연습생만 가져다 놔도 음원차트 1위를 시킬 수 있는 게 HS라는 작곡가였다. 더문은 어째서 그런 HS의 선택을 받을 수 있었을까?
궁금하다.
너무 궁금해서 가슴이 답답한 와중에 연거푸 웃음이 났다. 대중의 마음 역시 별반 다르지 않을 터였다. 기사가 보도되면 자신 못지않은 호기심에 사로잡히겠지.
사락, 사락.
이내 계진성은 제 수첩을 펼쳤다.
─ 작곡가 HS의 아이돌? 아픈 손가락?
그리고는 지금 당장 떠오르는 걸 무작정 휘갈겼다.
사락, 사락.
다듬는 건 회사 들어가서 해도 되니까.
─ ‘The Moon’ 가요계에 제대로 출사표 던지며 화려한 컴백.
이윽고.
계진성은 묘한 미소를 띠며 손가락을 튕겨 수첩을 톡톡 쳐댔다.
“역시 LS 엔터는 맛집이야, 맛집.”
N년차 연예부 기자의 감으로 봤을 적에 이 기사는 무조건 대박이었다.
그럼….
LS 엔터에서 어떻게 나오는지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