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116)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116화(116/482)
안지호는 오늘도 어김없이 멤버들과 함께 LS 엔터 사옥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창밖으로 비치는 풍경이 눈에 익는 것을 보면, 이제는 가는 길목마저 익숙해진 모양이다.
“벌써 녹음이라니, 설레면서도 뭔가 아쉽다.”
그때 조수석에 앉아 있던 최정혁이 창가에 기대며 볼멘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뭐가 아쉬운데?”
최정혁이 고민에 빠진 듯 턱을 긁적거리기도 잠시.
“아무래도 녹음 끝나면 우리가 LS 엔터에 올 일은 거의 없을 거 아니야.”
그 말에 다른 멤버들도 무언가 동감한다는 양 “아.”하고 탄식을 내뱉었다.
“구내식당도 맛있었고, 연습실도 넓고, 녹음 부스 딸린 작업실도 있잖아.”
안지호는 최정혁이 중얼거리듯 덧붙인 “우리는 없고.”라는 말에 핸들을 쥔 손에 꽈악 힘이 들어갔다.
문득.
멤버들이 LS 엔터 사옥을 들어설 때마다 짓던 얼굴 표정이 떠올랐다.
마치 놀이공원에 처음 놀러 온 어린아이들마냥 설레임으로 가득 찬 얼굴.
맞다.
구내식당이 맛있다던 정혁이와 댄스 연습하기 안성맞춤이라며 연습실을 뛰어다니던 우민이.
그리고.
돈을 내지 않고도 시간제한 없이 맘껏 부스에서 녹음해 볼 수 있어서 좋다던 찬영이까지.
그래….
요즘 매일같이 고단한 연습을 이어 나갔음에도 불구하고, 늘상 웃는 얼굴이었다.
‘LS 사옥에 오는 것 자체가 좋아서겠지.’
분명.
나중에는 TM 엔터도 꼭 사옥을 얻게 될 거라고 큰소리를 쳐 놨다만, 사실 한순간에 짠하고 이뤄질 일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다.
당장 산덩이처럼 쌓인 부채부터 해결해야 할 테고, 국내외로 더문이라는 그룹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유명해져야 가능한 일이겠지.
그래.
지금은 자격지심이라던가 박탈감 따위에 감정을 느끼고 있을 때가 아니다. 더문은 갈 길이 멀고,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주변에 많은 도움을 얻어 성장해야만 한다.
우선은 리더인 자신부터 그래야겠지.
탁-!
안지호가 쥐고 있던 핸들을 괜스레 한번 치고는 말문을 열었다.
“하기야, 나도 여기 와서 제대로 된 트레이닝을 받고 있는 느낌안데, 끝난다고 생각하니까 아쉽네. 받기 전보다 확실히 실력이 늘어난 것 같은데.”
백미러를 통해 다른 멤버들이 “맞아, 진짜.”하고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는 걸 확인하고는 덧붙였다.
“그렇지만 우리는 여기서 얻은 걸 토대로 더 나아가야 해. 지금은 최대한 도움을 받고, 얻어 낼 수 있는 건 얻어 내 가면서 더욱 성장하면 돼. 그러면 우리도 사옥으로 갈 수 있을 거야.”
안지호는 진심으로 멤버들도 자신과 같은 마음가짐으로 임해 주기를 바랐다.
‘그럴 거라고 믿고.’
차가 신호를 받아 서서히 속도를 멈추어 나가던 찰나였다.
“제이 누나 예뻤는데….”
돌연 뜬금없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최정혁이 턱을 괸 채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젠 만나기 어렵겠지….”
그의 얼굴은 아련하기 짝이 없었으며, 눈동자는 공허해 보이기까지 했다.
“진짜 사랑했었다….”
뒷좌석에서는 “미친놈.”하고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너 그럼 아쉽다는 게….”
“제이 누나, 못 볼 거 아니에요….”
“그거 때문이었어?”
“형, 그거 때문이라니! 난 진심이었어.”
안지호가 넋이 나간 채 바라보기도 잠시.
빠앙-!
뒤에서 울려 대는 경적에 황급히 액셀을 밟았다.
아무래도.
멤버 전원이 리더와 같은 마음가짐을 바라는 건, 제 욕심인 모양이었다.
* * *
“잠, 잠깐만요-.”
최정혁이 손으로 항복 표시를 해 보이고는 장렬히 전사하듯 쓰러졌다.
“하-아.”
차가운 부스 바닥에 엉덩이를 깔고 앉아, 참아왔던 숨을 토해 내듯 뱉었다. 지금 대체 몇 시간 째란 말인가? 어느샌가 시간 개념조차 사라져 가고 있었다.
‘이런 녹음은 처음이야….’
원래 이전 앨범을 준비할 적에는 스튜디오 대여를 통해 프로듀서를 붙여 녹음을 진행했었다. 그마저도 있는 돈, 없는 돈을 다 털어 잘 봐 주고 시설이 좋다는 스튜디오로 다녔었는데-.
‘그때도 반나절이면 끝났단 말이야.’
그런데 지금 현승의 집도하에 이뤄진 녹음은 고작 한 구간 녹음하기를 수십 번의 테이크를 따는 것도 모자라서, 끝음절이 마음에 안 든다며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고 있지를 않은가?
그래.
녹음을 도우러 온 엔지니어들이 체력은 좀 좋은 편이냐, 중간에 탈주하면 안 된다, 참을성이 좋아야 한다며 으름장을 놓을 때부터 눈치를 챘어야 했다. 단순히 우리를 골려 주려고 뱉은 말들이 아니었다는 걸.
‘악마, 독종, 변태….’
최정혁이 차마 입 밖으로는 뱉을 수 없는 말들을 속으로 중얼거리고 있기도 잠시.
“다른 멤버부터 녹음하게 나와.”
이내 부스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목소리에 자동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끼이이익-.
부스 문을 열고 나온 최정혁은, 녹음 시작한 지 단 하루 만에 수척해진 몰골을 하고 있었다.
야윈 뺨, 빛을 잃어버린 눈동자, 창백한 혈색까지.
지금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 아슬아슬한 모양새를 한 그는 무거운 걸음을 옮겨 안지호와 하이파이브를 하고는 소파 위로 맥없이 쓰러졌다.
“형, 잘 부탁해.”
“그래, 좀 쉬어.”
그런 그들을 보며 엔지니어들은 익살스럽게 웃으며 자기들끼리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현승 씨, 다른 집 식구들이라고 너무 살살해 주는 거 아냐?”
“그러니까! 지금 들어간 지 5시간밖에 안 됐잖아!”
“저기는 24시간은 있어야 나올 수 있는 개미지옥 아니었나?”
현승은 그 말에 별다른 대꾸 없이 안지호를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다.
이윽고.
안지호는 제 손에 들린 닳아서 해진 악보를 내려놓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터벅, 터벅-.
걸음 소리부터 강한 심지가 느껴진 탓에, 엔지니어들은 안지호를 바라보며 호기심 어린 탄사를 내뱉었다.
“호오-? 쟤가 리더지?”
“저놈 눈빛 좀 봐라.”
“오, 뭐 좀 보여 주겠는데?”
현승은 엔지니어들의 말에 작게 주억거렸다. 아무래도 자신이 느꼈던 바를 이들도 느낀 모양이었다.
그래.
안지호를 대기실 복도에서 처음 맞닥뜨렸을 적, 스파크가 튀어오르며 호기심이 생겼었다.
속죄의 의미로 곡을 준다고 마음먹기는 했으나-.
애초에 안지호에게 흥미를 느끼지 않았다면, 협박장이던, 안쓰러운 사연 팔이던 무시해 버렸을 테지.
물론.
제 기준에 실력으로서는 부족한 점이 많았다고는 하나, 들끓는 열의 하나는 자신이 봐온 사람들 중 뒤처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상하게 안지호의 눈빛은 보는 이로 하여금 긴장감을 쥐게 만들었다.
왠지.
금방이라도 대형 사고를 칠 것만 같은 그런 눈빛 말이다.
‘기대되는걸.’
현승은 녹음부스 안에 들어가 곧장 자세를 잡고 헤드셋을 뒤집어쓰는 안지호를 바라보며 묘한 웃음을 흘렸다.
그래.
저 녀석은 강하준이 지닌 반짝이는 스타성과는 또 다른, 형용하기 어려운 자신만의 스타성을 보여 주기 위해 매섭게 이를 갈고 있는 사자 같았다.
“준비됐어?”
현승의 물음에 부스 안에 서 있던 안지호가 머리 위로 동그라미를 올려 보였다.
“넌 리더니까 중도에 관두는 거 안 돼.”
그 말을 끝으로 토크백을 꺼 버린 현승은 입꼬리를 씨익 올려 보였다.
탁.
엔지니어들은 현승의 미소를 보며 잠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는 워밍업이었구나.
이제 본격적인 시작이구나.
녀석이 버텨낼 수 있으려나.
사실은….
녀석뿐만 아니라, 자신들도 이 녹음실에서 사지 멀쩡하게 나설 수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 * *
“징하다, 징해.”
이번에는 엔지니어 하나가 먼저 항복 표시를 하며 데스크 위로 쓰러졌다.
“둘이 이제 그만 싸워.”
“그래, 살살해.”
“화장실도 안 마렵냐!”
그리고는 하나, 둘 반기를 들고 일어나듯 불만 섞인 목소리로 소리쳤다.
이번 녹음은 여태 겪어 온 녹음과 무언가 달랐다.
현승도, 안지호도 무언가 싸우고 싶어 안달난 사람인 양 팽팽한 기 싸움을 벌이고.
아주 조금의 숨 돌릴 틈도 없이 죽어라 테이크를 따고, 지우고, 날리기를 반복했다.
한 치의 양보도. 물러날 기세도, 쓰러질 조짐도 없이.
그 둘을 보고 있노라니 섬뜩하기까지 했다. 마치 그 둘의 안광이 정글에 서식하는 짐승처럼 번뜩거렸기 때문이다. 녹음 과정 내내 거의 대화는 오가지 않았다.
다만.
신기하게도 눈빛을 통해 둘의 대화가 들리는 착각에 휩싸이기 여러 번이었다.
그래.
– 너 이거 할 수 있냐?
– 어, 까짓거.
– 그럼 한 번 해 보던가.
이런 대화 말이다.
“이거, 이거,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더니, 내 등 안 터졌나 좀 봐 주라.”
한 엔지니어는 익살스럽게 제 등을 보여 주며 칭얼거렸고, 그 모습에 현승이 피식 웃으며 시간을 확인했다.
‘시간이 꽤 흘렀구나.’
어느새 안지호가 녹음 부스에 들어간 지 6시간이 흘렀으며, 더문이 녹음하러 온 지는 꼬박 하루가 지난 채였다.
휙.
뒤를 돌아보니, 소파에 앉아 대기 중이던 멤버들은 하나같이 악보를 들여다보며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약해 빠져선.”
현승이 혀를 한번 차고는, 다시금 부스 안에 서 있는 안지호로 시선을 옮겼다. 그는 부스 안에 들어갔을 적 모습 그대로 우두커니 서 있었다.
“역시 리더는 리더다, 이건가.”
강건해 보이는 어깨는 지치지도 않는지, 처진 기색 하나 없었다.
“쟤도 잠깐 나와서 쉬라고 해. 화장실은 보내 줘야지.”
“그래, 우리 애들도 아닌데 뭘 이렇게까지 해.”
현승은 귓등으로 듣는 시늉도 하지 않고, 토크백을 누르며 호기롭게 물었다.
“너 쉬고 싶어?”
안지호는 됐다는 양 고개를 무심히 내저었다.
“잠깐 화장실은 다녀와야지.”
“안 마렵습니다.”
“이제 그럼 기회 없다?”
“예, 괜찮습니다.”
현승은 미묘한 웃음기를 띠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래, 이렇게 나와 줘야지.
그리고는 흡족한 표정으로 다시금 자세를 고쳐잡았다.
“저 변태, 집착 대마왕.”
“난 이제 못 참아.”
“나도, 나도 같이 가.”
아연실색한 표정의 엔지니어들이 너나할 거 없이 화장실로 뛰쳐나가던 찰나였다.
끼이이익-.
녹음실 문이 열리며 한 남성이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섰다.
“이런, 벌써 녹음이 끝난 건가?”
엔지니어들은 공손하게 두 손을 모아 고개를 숙이며 남자에게 인사를 건넸다.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그 남자는 문범재였다. 그는 녹음실 내부를 한번 스윽 살피고는 되물었다.
“내가 혹시 늦은 건가?”
“아닙니다. 저희는 화장실을 가려던 차였고….”
엔지니어 하나가 현승과 부스 안에 있는 안지호를 흘끔거리고는 마치 고자질하는 어린애마냥 속삭였다.
“저, 집요한 변태가 뭐 어디 하루 만에 녹음을 끝낼 사람입니까? 하물며 저 안에 있는 애도 아주 지독한 변태입니다. 덕분이랄지, 아직 한-참 남았네요.”
그 말에 문범재가 너털웃음을 지어 보이고는 얼른 다녀오라며 어깨를 다독였다.
“어, 선생님 오셨어요?”
뒤늦게 그를 발견한 현승도 자리에서 일어서며 인사를 건넸다.
“볼일이 있어서 사옥에 왔다가, 자네 녹음하고 있단 소식 듣고 잠시 구경할 겸 들렸지.”
“그러셨군요. 마침 잘됐네요. 그럼 선생님 오신 김에 저놈 한번 어떤지 봐 주시겠습니까?”
문범재는 현승의 눈짓을 따라 부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흐음?”
그 안에 들어선 남자와 눈이 마주친 문범재는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처음 보는 놈 같은데, 저런 놈은 어디서 또 데려온 건가?”
“다른 엔터 아이돌 그룹 리더입니다.”
“다른 엔터 소속이라고?”
“예, 제가 피치 못하게 곡을 하나 주게 돼서요.”
문범재가 “그럴 수 있지.”하며 다시 한번 안지호와 눈을 맞추고는 덧붙였다.
“나 저놈 노래 한번 듣고 싶은데, 바로 들어가 줄 수 있나?”
“예, 물론이죠.”
현승이 곧장 안지호를 향해 손짓으로 녹음 시작을 알렸고, “딸깍”하는 소리와 함께 진행하던 하이라이트 코러스 구간이 천천히 흘러나왔다.
─ 나는 네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이내 안지호의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현승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어쭈?’
갑작스러운 대선배의 등장에도 미동조차 없는 눈동자와 흔들림 없는 목소리는 바로 감정에 흠뻑 젖어 들어 강건하다 못해 단단한 심지마저 느껴졌다.
대선배이자, 전설적인 문범재 앞이라 잘 보이고 싶었나? 안지호는 조금 전 믹싱 없이 고스란히 쓸 수 있을 정도로 완벽한 하이라이트 코러스를 선보였다.
이걸 대견하다고 해야 할지-.
이렇게 잘할 거 왜 아까는 안 보여 줬나 싶은 심술도 올라왔다.
“선생님, 어떠셨어요?”
“자네는 저놈을 어떻게 보고 있나?”
현승은 토크백이 꺼져 있는 걸 확인하고는 즉답했다.
“왠지 보고 있으면 사고 한번 거하게 칠 것 같달까요?”
“하하, 완벽한 비유군.”
한바탕 호탕하게 웃어 보인 문범재는 작게 덧붙였다.
“나도 자네와 똑같은 생각일세. 뭔가 한번 한바탕 가요계를 뒤집을 놈 같달까?”
“예, 그래서 이왕 칠 사고 엇나가지 말고 똑바로 치라고, 제가 곡을 주게 된 겁니다.”
문범재는 “그렇군.”하고 잘게 주억거렸다.
“흐음-.”
그리고는 깊은 번뇌에 빠진 양 미간을 좁히며 침음을 흘려댔다.
이윽고.
무언가 결심한 양, 눈을 번뜩이며 현승과 눈을 맞추며 선언했다.
“그렇다면 저놈 사고 한번 제대로 치는 꼴 좀 보게, 나도 판을 깔아 줘 봐도 되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