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119)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119화(119/482)
작업실 문틈 사이로, 익숙한 실루엣 하나가 꾸역꾸역 안으로 밀고 들어왔다.
“작곡가님, 저 왔어요.”
현승이 안지호를 곁눈질로 슥 훑고는 물었다.
“할 말 있어 보이네?”
“어떻게 아셨어요?”
“딱 봐도 그래 보여서.”
“네, 맞아요.”
안지호는 짧게 대답을 끝낸 뒤 덧붙였다.
“드릴 것도 있고요.”
말을 마친 안지호가 어색하게 억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또, 그와 동시에 현승의 표정은 살짝 일그러졌다.
늘 날카로운 눈매를 삐죽거리던 녀석이, 별안간 서글서글하게 웃고 있으니 괜스레 불쾌해진 까닭이었다.
“야, 웃지 마.”
“왜요?”
“징그러워.”
그 말에 안지호가 숨을 길게 내쉬며 답했다.
“덕분에 탄탄대로 컴백 준비 끝 맞추게 되어 기뻐서 그러죠.”
“인생사 새옹지마라는 말 알지? 너무 기뻐하지는 말고.”
“예, 예, 새겨듣겠습니다. 어쨌든 감사 인사도 드릴 겸-.”
안지호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서는 건네줬다.
“이거 전해 드리려고 온 거예요.”
“음? 이거 달러북 아니냐?”
“유럽 여행 가신다고 들어서요.”
“여유 있게 환전해 놔서 괜찮아.”
“그래도 팁 줄 때 편하게 쓰세요.”
안지호는 도로 돌려주려는 현승의 손을 막으며 말을 이었다.
“작곡가님이 주신 도움에 비하면 보잘것없지만 성의 표시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멤버들끼리 돈 모아 준비한 거예요. 그러니 가벼운 마음으로 받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 말에 현승이 제 손에 쥐어진 달러북을 내려다봤다. 일전에 듣기로는 전 멤버가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생활비를 충당한다고 들었다. 그 와중에 코 묻은 돈을 모으고 모아서 이런 걸 준비한 건가?
‘정성은 갸륵하네.’
이쯤 되면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다. 현승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고맙다, 잘 쓸게.”
“그리고, 이것도.”
“이건 또 뭔데?”
“저희 팬들이 준비했대요.”
올나잇? 또 협박장인가? 아니면 가내 평안을 묻는 말로 시작해 구구절절 더문을 잘 돌봐 달라는 말로 귀결되던 장문의 편지?
‘이런 거 필요 없는데.’
애초부터 더문의 팬덤의 협박이나 조공에 마음이 흔들린 건 아니었다. 그저 전생에서부터 따라온 일말의 죄책감과 더불어 안지호라는 악기에 꽂혀 곡을 주고자 마음먹은 거였으니까.
물론.
플스 선물이라면 두 팔 벌려 환영이긴 한데.
“내용물이 뭔데?”
“그건 저도 몰라요.”
현승의 물음에 안지호가 기억을 더듬어 가며 부연했다.
“오늘 길에 사옥 앞에서 우연히 팬분을 마주쳤는데, 작곡가님께 감사하다고 꼭 좀 전해 달라더라고요.”
그 말에 현승이 쇼핑백을 열어 봤다. 새하얀 편지 봉투 하나와 더불어, 정갈하게 포장된 박스 몇 개가 담긴 채였다. 잠시 쇼핑백 안을 들여다보던 현승이 고개를 몇 번 주억거리고는 말을 이었다.
“그래, 나중에 확인해 볼게.”
“네.”
“용건 끝났으면 가 봐.”
안지호는 축객령에도 꿈쩍 않고 서 있었다.
“저, 작곡가님.”
“왜?”
흡―
세상이 멈춘 것처럼 안지호는 숨을 꾹 참고, 자신의 진심을 내뱉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는 대단한 결심이라도 하는 양 숨을 길게 내쉬고는 재차 말을 이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사실 현승 정도 되는 작곡가가 자신들 같은 무명 아이돌 그룹에 곡을 준 것만 하더라도 감사한 일이었다.
더불어-.
자신들의 팬덤으로부터 부탁받아 곡을 주게 됐다는 사실에 대해 끝끝내 말하지 않은 것 역시 감사했다.
‘아마, 작곡가님만의 배려였겠지.’
별 볼일 없는 무명 아이돌 그룹의 자존심이나마 지켜 주기 위한 배려.
문득.
현승을 처음 만났던 날이 떠올랐다.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독설을 늘어 놓던 모습이 오버랩됐다.
“네 곡, 폐기 처리해야 할 쓰레기는 아니었어.”
“그럼요?”
“뭐, 깨끗이 사용한 재활용 쓰레기 정도는 돼.”
자신이 쓴 곡을 만들다 만 것 같다며 ‘쓰레기’라고 표현하고는, 달래 준답시고 재활용은 가능한 재활용이라고 칭찬(?)을 늘어놓던 모습이 말이다.
첫 만남부터 자신이 만든 곡을 ‘쓰레기’라 표현하는 사람이 마냥 달갑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안다. 그는 표현에 서투를 뿐이지, 섬세하고 사려 깊은 사람이다.
남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른다지만….
적어도 안지호만큼은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었다. 심지어 그런 현승이 좋았다. 친해지고 싶고, 더욱 가까워지고 싶고, 도움이 되는 존재가 되고 싶었다.
물론.
입이 찢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이런 낯간지러운 말을 직접 입 밖으로 꺼내진 않을 테지만.
“이제 용건 다 끝났지?”
“네, 끝났습니다.”
“그래, 그럼 가 봐.”
“은혜는 꼭 갚겠습니다.”
“그래, 배로 갚고.”
“예, 이만 가 보겠습니다.”
꾸벅, 인사를 해 보인 안지호가 곧장 뒤돌아섰다. 고맙다는 말을 얼마나 안 하고 산 건지 귀가 빨개진 채였다.
그런 녀석이 구태여 감사를 표하는 모습이 꽤 기특하게 느껴져 괜히 웃음이 나왔다.
저벅, 저벅-.
그렇게 안지호가 문 앞에 서던 찰나였다. 현승이 시선을 모니터 화면 위에 고정해 둔 채 다시금 그를 불러 세웠다.
“야.”
“네?”
정적이 흐르기를 잠시.
“여태껏 내가 만든 곡이 1위 못 찍은 적 없는 거 알지?”
재수 없지만, 정말 팩트였다.
“예,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내 커리어에 오점 남기지 마.”
“죽을 각오로 해 보겠습니다.”
다음 순간, 현승이 고개를 휙 돌려서는 그를 바라봤다.
“그래, 가서 찢고 와.”
일순,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맞물리기를 잠시.
“아….”
이내 안지호가 고개를 힘차게 끄덕이며 답했다.
“예, 작곡가님 포트폴리오에 ‘더 문’이라는 화려한 이력 하나 남겨 드리겠습니다.”
안지호 자신 스스로 덧붙인 다짐이었다.
* * *
더문과 더불어 윤제이의 데뷔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나밖에 없던 그대에게….”
전남일 대표는 곡명을 한 번 중얼거리고는 테이블 위에 서류를 내려놓았다.
꼴깍.
회의실 내부는 침 넘어가는 소리만 들려올 만큼 고요함이 내려앉은 채였다.
‘대표님도 참석하실 줄은 몰랐네….’
김 실장은 A&R과 매니지먼트의 대표 담당자로서 이 회의에 참석했으며, 그저 각 부서의 담당자들끼리 간단히 진행되는 회의라 여기고 자료마저도 간략하게 준비했다.
그런데.
돌연 대표가 참석하는 바람에 브리핑을 끝낸 뒤 서류 뭉치에 고개를 박은 채 곁눈질로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고작 신인 가수 데뷔 회의에 대표가 참석한 사례가 있었던가?
아니, 단언컨대 없었다.
보통은 홍보, 마케팅, 매니지먼트부를 거쳐 최종적으로 정리된 사안을 서류상으로 확인하는 정도? 지금처럼 직접 회의에 참석하여 개입하진 않았었다.
아마….
예상해 보건대, 현승의 영향이 아닐까?
그래.
어찌 보면 윤제이는 현승이 직접 발굴해 낸 사람이지 않나?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다른 거위를 낳아 온 셈이랄까?
과연 ‘윤제이’라는 거위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일지, 그저 평범할 거위로 성장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때.
잔잔하지만 묵직하게 깔린 대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홍보팀, 짧게 브리핑 시작해 주세요.”
그 말에 홍보실 곽 팀장은 긴장으로 잠긴 목을 가다듬었다.
“큼, 흠! 네, 우선 지난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한 차례 사연이 공개된 바 있고, 개인 SNS에 올렸던 글이 한 팬에 의해 발견되면서 동정표가 쏟아지고 있는 상황인 만큼….”
스크린에는 아주 단출하게 정리된 PPT가 떠올랐고.
“다른 채널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이번에는 SNS 홍보 채널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곡과 사연을 엮어 홍보할 생각입니다.”
슬쩍 눈치를 살피던 마케팅 담당자도 바통을 이어받듯 일어나 발언을 이어 나갔다.
“다음 장으로 넘겨 보시면 아시겠지만, 마케팅 쪽 의견도 비슷합니다. 무대 연출도 사연에 포커스를 맞춰 진행하고 있으며….”
잠자코 듣고 있던 김 실장은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결국 누군가의 가슴 아픈 사연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판매성을 높이겠다는 말이지 않은가?
잔인하더라도….
이 바닥에서 흔히 쓰이는 셀링 전략이었다.
물론.
자신도 다를 바 없었고.
“매니지먼트 또한 같은 방향성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김 실장은 말랑말랑하게 치밀어 오르는 동정심을 옆으로 치워 둔 채 말을 이었다.
“이미 예능 출연도 토크쇼 위주로 잡아 놓은 채이며, 이번 기회에 여론몰이를 확실히 해 두는 게 좋으리라 판단합니다. 자세한 사안은 서류에 기재해 두었습니다.”
간단하게 브리핑을 마친 김 실장이 도로 자리에 앉았다.
“예, 그렇군요.”
대표는 아무런 미동조차 없는 표정으로 차분히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마침 이번 데뷔곡도 SNS 글을 모티브로 만든 곡이라죠?.”
이번에는 김 실장이 나서서 즉답했다.
“네, 맞습니다. 전속 작곡가인 HS가 직접 총괄 프로듀서를 맡아 진행했습니다.”
“좋습니다. HS 씨가 맡고, 마침 여론도 좋다고 하니까 이대로 흐름 타 보죠.”
대표의 긍정적인 답변에 각 담당자는 쾌차를 불렀다. 사실 윤제이가 강하준과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 우승자 출신이라고는 하나, 둘의 상황은 달랐다.
물론.
윤제이 또한 인지도나 팬덤이 있다지만, 여성 팬을 많이 확보한 강하준에 비하면 일시적인 방송 효과였을 뿐이니까.
그만큼 더 많은 홍보 채널과 여론을 움직여야 하는 상황인데, 대표가 직접 흐름을 타 보자고 지시를 내렸다?
몰아붙이는 건 일도 아니지.
“그리고 더문은 ….”
전남일은 말을 하다 말고, 입매를 꾹 다문 채 생각에 잠겼다.
The Moon.
보고서를 통해 충분히 전달받기도 했거니와, 오보부터 정정 기사까지 직접 확인도 했다.
문득.
그 과정들을 곱씹다 보니, 묘하게 웃음이 번져 나갔다.
‘그래, 보통내기가 아니야.’
전남일은 이미 HS가 타 엔터 그룹에게 곡을 준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채로, 오보 기사를 전달받았다. 그땐 금방 정정 기사가 송출될 거라 미루며 넘겨짚었다.
하나.
예상은 엇나가고, 누군가 쏘아 올린 작은 공 하나로 추측성 기사들은 순식간에 퍼져 나갔다. 다만, 사사로운 일 하나에 신경 쓸 수가 없었다.
그리고.
머지않아 누군가 다시금 작은 공을 하늘 높게 쏘아 올렸다. 첫 번째 공은 연예부 기자였고, 두 번째 공은 HS였다. 그래, 황금알을 낳는 거위.
‘민현승….’
그는 연예부 기자를, LS 엔터를, 그리고 하물며 자기네임까지 완벽히 이용하여 언론 플레이를 한 것이다. 더문이라는 그룹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그러니.
다른 엔터 소속의 아이돌 그룹을 위해 이만하면 됐겠지.
“우리 식구도 아닌 사람들에게 구태여 기사 한 줄 내어 줄 생각은 마시고.”
전남일은 아주 단호한 투로 덧붙였다.
“윤제이 데뷔에만 전투적으로 임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말은 그렇게 했다지만, 사실 전남일의 깊은 내면에서는 ‘HS’라는 이름 하나면 잘 될 거라는 확신이 어느 정도 싹트고 있던 채였다.
무엇보다.
과연 회사 지원 한 줌 제대로 못 받는 영세한 그룹, 더문이 HS라는 빛 한 줄기 받게 되어 정말 성공을 이뤄 낼 수 있을지 궁금하기도 했다.
“최종취합해서 결재 보고 받는 걸로 하고, 그럼 이만 회의 종료하도록 하죠.”
일순간.
전남일은 올해도 왠지 작년처럼 HS의 이름이 도배된 보고서를 줄지어 받게 될 것 같은 촉이 번뜩거렸다.
아아.
내년도, 내후년도 그러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