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12)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12화(12/482)
발매 당일, 해가 저물고 밤이 찾아왔다.
안티도 팬이라 했는가?
서지니의 안티들이 스트리밍을 돌리는 탓에 의도치 않게 음원차트 100위 안으로 진입을 하게 되었다.
[ 분명 깔려고 들었는데 할 말이 사라짐. ]↳ 대체 무슨 일이 있던 것임.
↳ 걍 작곡가를 잘 만난 덕이지;
↳ 곡이 잘 나온 것도 맞지만 소화한 것도 얘 능력 아님?
↳ 맞아, 인정할 건 인정하자.
그러나 애석하게도 딱 거기까지였다.
이후로는 순위 변동이 없다시피 했으니까.
하루, 이틀, 사흘, 나흘….
약 닷새라는 시간이 흐르고 무대에 오르기 전까지 말이다.
[ ‘뮤직중심’ 서지니, 여왕의 컴백 ‘gorgeous’완벽 라이브 무대 ]↳ 이젠 인정해야 함. 서지니 노래 잘하는 거.
↳ 솔까 노래 이렇게 잘하는지 지금까지 몰랐어.
↳ 뭔가 분위기랑 창법이 많이 바뀌지 않았어?
↳ ㅇㅇ. 나도 그 생각함. 곡을 잘 만난 듯.
↳ 아니 서지니 데뷔초 말고는 노래 다 그저그랬는데 대박이다 진짜
↳ 이 무대 보고 서지니에 대한 이미지가 달라짐
↳ 모든 것이 말 그대로 완벽한 레전드 무대였음.
뮤직중심을 필두로 공중파 3사 음악방송에 컴백 무대를 하고 나니, 커뮤니티는 제법 시끌벅적거렸다.
동시에 타이틀곡인 ‘gorgeous’는 국내 음원 플랫폼에서 50위 안으로 진입하는 쾌거를 이뤘다.
‘악조건 속에서 이 정도면 호재지….’
계속 이렇게 좋은 물살을 타고 이어진다면 곧 있을 대학 축제 기간에 행사까지 이어진다면 손익분기점은 가뿐히 넘길 터였다.
“흠.”
김 실장은 제 앞에서 뚱한 표정으로 게임기를 들여다보고 있는 현승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저 녀석은 조금 실망스러울 수도….’
회사 입장에서는 이 정도의 결과면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운 결과일지 모르나….
처음 제 곡을 제작하고 유통한 작곡가 입장에서는 아쉬운 결과이지 않겠는가?
“너는 처음이라 잘 모르겠지만, 이 정도 시작이면 괜찮은 거야,”
김 실장이 현승의 등을 가볍게 두들기며 말을 덧붙였다.
“어떻게 첫술에 배부르겠냐. 너무 부담가질 것 없어.”
현승이 의아한 표정으로 어깨를 들썩이며 답했고.
“알아요, 제가 부담 가질 필요 없는 거.”
“어…?”
“말씀드렸잖아요, 이후는 회사 몫이라고.”
매번 혹시나 해 보지만, 역시나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놈이다.
“이 곡이 여기서 끝나면 유통 능력이 거기까지인 거겠죠.”
“응…?”
“뭐, 유감스럽지만 한배를 탄 입장이니 이해는 합니다.”
현승은 심해 같은 남자였다.
깊고, 어둡고, 고요하다.
시종일관 나른한 태도로 여유롭다.
그래도 이십 대 초반의 신인 작곡가이지 않나?
내색은 안 하더라도 결과에 연연한다거나.
마음에 작은 돌 하나 얹어 놓고 있으리라 짐작했지만.
쓸데없는 기우였다.
“아니, 난 또 네 표정이 안 좋길래.”
“지금 무 농사가 제 맘 같질 않아서요.”
개인 작업실에서 살다시피 하는 것 같은데, 농사는 또 언제 지으러 다니는 거지?
‘역시 저 여유로움은 부지런하게 흘린 땀들 덕분이려나….’
김 실장의 계속해서 오해가 깊어지던 때, 현승이 다시금 말을 이어 나갔다.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잖아요? 던져진 주사위가 멈추고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 봐야죠.”
이내 게임기를 내려놓으며 작게 덧붙였다.
“그러니 침착하게 저처럼 농사나 지으면서 기다려 보세요.”
정말 저런 여유를 얻으려면 ‘농사’를 시작해야 하나.
이윽고.
김 실장은 저도 모르게 귀농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 * *
“후, 머리야….”
북적이는 카페 내 구석진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머리를 싸매고 있는 한 여자.
대한민국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대형 광고대행사 ‘대일기획’에 다니고 있는 김희연이다.
“좀 괜찮은 곡 없나.”
그녀의 눈 밑으로는 어두운 그늘이 져 있다.
드르륵, 드르륵-.
오늘도 수많은 곡이 여러 음악 플랫폼을 통하여 쏟아져 나온다.
가요부터 클래식, CCM….
다양한 장르의 곡들이 있지만, 그 중 딱 어울리는 한 곡!
그것을 찾아내는 일은 참으로 어렵다.
하지만.
그런 곡을 찾는 것이 그녀가 오늘 맡은 임무였다.
“하….”
그녀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기획 스토리보드를 구상하는 과정에서 그녀가 가장 힘들어하는 것이 바로 광고 삽입곡을 선정하는 일이었다.
‘정 안 되면 아예 로고송 제작 쪽도 의논해 봐야겠어.’
귀에서 “윙윙!”거리는 이명이 들릴 때까지 듣고 또 들었다. 하지만 이내 그녀는 노트북을 탁 닫아 버렸다.
‘더는 못 듣겠어….’
숙박 플랫폼에 관련한 광고 대행을 맡게 된 것도 처음이고, 뻔하지 않은 훌륭한 기획 스토리보드가 나오기도 했다.
‘이거다! 하는 게 없네.’
그에 응하는 삽입곡을 선정하려면 그녀의 듣는 귀 또한 더 까다로울 수밖에 없었다.
쪼르륵, 쪼르륵-.
그녀가 상념에 휩싸여 커피를 흡입하다 보니, 어느새 잔은 밑바닥을 드러냈다.
오늘 끝장을 보기로 맘먹은 그녀가 커피를 추가 주문한 뒤 다시 자리로 돌아오던 찰나.
“어?”
카페 내부에서 은은하게 흘러나오는 노래.
‘누구지?’
익숙한 듯, 낯선 여성의 목소리.
곡을 끌고 가는 여성의 목소리는 거친 듯 따듯하고 포근하게 맘을 감싸 온다.
그녀는 무선 이어폰을 빼고, 음질이 썩 좋지 않은 카페 스피커에 귀를 기울였다.
‘노래도 좋은데…?’
어쩐지 자신이 생각했던 분위기와 탁 맞는 곡일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피어올랐다,
지이잉-.
그때 진동벨이 울리기 시작했고, 커피를 가져오기 위해 카운터로 향했다.
“저, 저기….”
나오고 있는 곡의 제목을 물어보고 싶었지만, 아르바이트생에게 그럴 정신 따위는 없어 보였다.
소득 없이 자리로 돌아온 그녀는 음악 찾는 앱을 이용하여 찾으려 애썼지만.
주변 소음 때문인지 ‘음악을 찾지 못했어요.’라는 안내창만 줄곧 떠올랐다.
‘아씨, 1절 다 끝났는데….’
그녀가 휴대폰을 스피커 쪽으로 높게 들어 올리던 찰나.
“이 노래 가수가 걔잖아, 걔.”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말소리가 옆 테이블에서 들려왔다.
“아! 서지니, 맞아. 서지니 신곡이잖아.”
“이게 서지니가 부른 거라고?”
“그렇다니까. 분위기가 확 다르지 않냐?”
“서지니가 이렇게 노래를 잘했어?”
“나도 놀랐어. 애초부터 이런 곡을 부르지.”
젊은 여자 둘이 격양된 목소리로 떠드는 통에 주변에서도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방금 들었어? 서지니 노래라는데?”
“검색해봐, 제목 뭐야?”
“나도 이 노래 좋다고 생각했는데.”
그 소리에 김희연도 곧장 ‘서지니’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최근에 발매된 싱글은 총 3곡.
첫 번째 재생 곡 ‘지나간 봄’
두 번째 재생 곡 ‘gorgeous’
그리고 마지막으로 ‘같이 걷자’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 차례대로 재생시켰고.
첫 번째 곡이 시작되고 마지막 곡까지….
듣는 내내 김희연의 입가에는 웃음이 만개했다.
어느새 발장구를 치고 금세 익숙해진 후렴구를 따라서 흥얼거리기도 했다.
결론은 모든 곡이 전부 좋았다.
따사로웠던 어느 봄날이 떠오르기도 하고, 정열적인 햇볕이 쏟아지던 어느 여름날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마지막 곡에서는 뭉글뭉글하게 피어오르는 벅찬 감동 속에서 평안을 느끼기도 했다.
그중 카페에서 흘러나왔던 곡이자 마지막 수록곡인 ‘같이 걷자’라는 곡은 그녀가 찾던 느낌을 모두 가지고 있다.
곡의 분위기, 템포, 라인, 목소리, 숨결 모든 것이 전부….
진하게 퍼져 오는 감동은 잠시 뒤로 하고 그녀는 다시금 노트북을 켜고, 타자를 두들겼다.
완성하지 못한 스토리보드에 한 칸을 채워 낸 뒤 휴대폰을 들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네, 저 김희연이에요. 삽입곡으로 쓸 노래를 찾았어요.”
그녀는 지금 자신이 참여한 것 중 최고의 스토리보드가 탄생했음을 직감했다.
* * *
구내식당을 찾은 김 실장과 현승은 각자 식판을 챙겨 들었다.
“이야, 오늘 구내식당 메뉴 괜찮지 않냐?”
“맞아요.”
“비빔밥도 맛있을 것 같고, 이야 오믈렛도 괜찮겠는데?”
“그런 듯.”
“저번부터 대답만 할 거야?”
“그렇죠?”
“민현승 바보, 똥개, 해삼, 말미잘.”
“동감이에요.”
김 실장은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는 양 제 가슴을 “퍽퍽” 치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건 그렇고, 왜 부르신 거예요?”
현승이 식판을 내려놓으며 물어 왔고.
“왜긴, 서지니 이번 앨범 손익분기점 넘긴 기념으로 불렀지.”
“기념이요? 그런데 왜 구내식당으로 데려오신 건데요?”
그리고는 곧장 핀잔을 주듯 덧붙였다.
“구내식당이 아니라 더 좋은 곳으로 가야죠.”
제 몫의 비빔밥을 비비던 김 실장이 멋쩍게 웃으며 답했다.
“구내식당만큼 좋은 곳이 어디 있냐? 이 가격에 이 정도 퀄리티를 제공하는 곳이 흔하질 않아.”
이내 먹음직스럽게 한 수저 크게 뜨며 말을 덧붙였다.
“그런 이유로 앞으로 기념할 일 있거든 구내식당에서 기념하도록 하자고.”
그 말에 현승이 고개를 내저으며 답했다.
“개인 작업실에서 그냥 배달이나 시켜 먹죠.”
김 실장이 “리스펙이 없어, 리스펙이….”하고 중얼거렸다.
그때.
A&R 소속의 한 팀장이 빠른 보폭으로 구내식당 안으로 들어섰다.
“시, 실장님! 여기 계셨네요!”
“무슨 일인데 또 호들갑이야?”
숨이 넘어갈 것처럼 보였을뿐더러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 걸 보니, 김 실장을 찾기 위해 회사 구석구석을 한바탕 뛰어다닌 모양이었다.
“마침 작곡가님도 같이 계셨네요.”
한 팀장이 한차례 거친 숨을 고른 뒤 말을 이어 나갔다.
“실장님, 광고대행사 대일기획 아시죠?”
“응, 알다마다.”
“거기서 조금 전에 연락이 왔어요.”
일순간 김 실장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대일기획에서? 광고 삽입곡 문의겠네?”
“네, 그런데….”
“흠, 신곡이라면 효주 곡 때문일 거고….”
김 실장이 말을 이어 나가려던 찰나였다.
“아뇨.”
한 팀장이 아랫입술을 한 번 핥아 내고는 답했다.
“지니의 ‘같이 걷자’를 사용하고 싶다네요.”
그의 발언은 김 실장에게 꽤 큰 충격을 안겼다.
“뭐? 뭐를 사용해?”
LS 엔터 앞으로 저작권이 묶인 곡은 셀 수 없이 차고 넘친다.
그중 범국민적으로 유명했던 곡도 있고.
요즘 메가 히트를 기록한 곡들 또한 발에 치일 정도다.
그런데 서지니의 곡이라니…?
하물며 아직 음악방송 한번 타지 않아서 순위권에도 못 들어간 ‘같이 걷자’를 말이다.
물론 광고 삽입곡으로 쓰이는 노래가 잘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대일기획’은 대기업 광고주들이 줄을 서서 기다릴 만큼 명망 높은 광고 대행사였다.
그만큼 퀄리티가 좋고, 임팩트가 강한 광고를 기획하는 곳으로 소문이 자자했고….
그러니 만약 ‘같이 걷자’가 광고 삽입곡으로 사용된다면, 광고의 덕을 톡톡히 볼 가능성이 농후했다.
“제작이 시급한 상황이라 최대한 빨리 회신 부탁한다고….”
한 팀장의 재촉 덕에 상념에서 깨어난 김 실장이 입을 열었고.
“계약서 왔지? 일단 바로 검토하러 가 보자고.”
곧장 자리에서 일어난 그가 현승을 바라보고 말을 덧붙였다.
“현승아, 미안하지만 아무래도 오늘 밥은 혼자 먹어야겠다.”
“으레 해야 할 일 하러 가시는데 미안할 게 뭐가 있어요?”
김 실장은 고갯짓으로 인사하며 한 팀장과 함께 구내식당을 빠져나갔다.
현승은 덤덤한 얼굴로 김 실장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엄청나게 들뜬 것 같아 보이시네.’
이번 CM송 제안은 서지니에게 있어 좋은 기회임이 분명했다.
어지간하면 엄청난 반사이익을 누릴 수 있을 테니….
사 측 인사들에게는 이 기회가 마냥 크게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뭐….’
현승은 낭중지추라는 말을 맹신하는 부류의 인간이었다.
좋은 곡은 어떻게든 뜨기 마련이다.
이번 기회가 아니었더라도 서지니의 곡은 분명….
‘어차피 뜰 텐데 뭘.’
모쪼록 전혀 예측지 못한 바라지만 서지니의 이번 앨범이 순풍을 타기 시작한 양 보였다.
기억났다.
으레 연예계란 이런 식으로 짐작 불가능한 변수에 의해 흥망성쇠가 판가름 나는 곳이었다.
“흠.”
이내 현승이 비빔밥을 한술 떠서 오물오물 씹어 대다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구내식당 밥이 맛있긴 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