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120)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120화(120/482)
어느덧 더문의 음원 발매 당일이 찾아왔다.
“체감상 신인 데뷔할 때 같지 않아?”
“중고 신인 맞지, 뭐.”
더문은 음원 발표의 순간에 대한 기쁨을 느낄 틈도 없이 차에 몸을 싣고 쇼케이스 현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때.
뒷좌석에 앉아 있던 이찬영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많이 왔으려나….”
안지호는 그 말을 듣고는 백미러로 이찬영의 안색을 살폈다. 얼굴 위로 먹구름이 잔뜩 드리웠다.
‘녀석도 참….’
더문 멤버의 막내인 이찬영은 아닌 척하지만, 동글한 생김새만큼 가장 마음이 여린 녀석이다.
만약.
지금 향하고 있는 쇼케이스 현장이 예상보다 더 텅텅 비어 있다면, 제법 상처받을 게 뻔했다.
아마.
이찬영은 그 상황까지 모두 예측해 보고 걱정하는 모양이고….
“아참, 대표님 말로는 우리 음반 사전 예약 판매량이 꽤 괜찮게 나왔다고 하더라고?”
안지호는 백미러로 슬쩍 눈치를 살펴 가며 넌지시 말을 이었다.
“왠지 첫 시작부터 느낌이 좋다.”
음반 사전 예약 판매량이 괜찮은 건, 작곡가 HS의 영향을 받았을 확률이 아주 농후했다.
‘작곡가님 팬덤이 우리 팬덤보다 훨씬 크니까….’
안지호는 이찬영이 우려하고, 걱정하는 점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 점에 대해서는 확답해 줄 수 없었기에 말을 아꼈다.
그래.
앞선 내용들로 미루어 봤을 때, 앨범 사전 예약 구매를 하여 추첨에 당첨된 이들이 쇼케이스까지 찾아와 줄 거라고 보장할 수는 없었으니까.
‘너무 텅 빈 느낌만 안 나면 좋겠는데….’
자신은 길거리에서 스피커 하나 두고, 관객 하나 없이 무대를 꾸리는 일에 워낙 익숙해졌기에 제법 덤덤하게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현재 쇼케이스 현장에 기자를 부르고 먼저 가 있을 대표님과 멤버들은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두 배로 하게 되는 건 아닐까 염려될 뿐이었다.
설령.
그렇다고 한들, 이제 시작이니까 괘념치 말자고 다독이겠지만.
“와, 씨-!”
그때 보조석에 앉아 있던 최정혁이 방금 막 건져 올린 활어처럼 팔딱거렸다.
“뭐야, 뭔데?”
덩달아 바로 뒷좌석에 앉아 있던 주우민까지 튕겨 나오듯 앞으로 몸을 기울이며 물었다.
“축하한다고 연락 왔어….”
“누가? 설마, 부모님이…?”
주우민은 고개를 살짝 기울여 최정혁의 옆얼굴을 살폈다. 반 정도 넋이 나간 표정이 가관이다.
정말 부모님이 축하한다고 연락이 온 걸까?
사실 최정혁은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무작정 서울로 상경하면서 부모님과 관계가 틀어진 채였다.
몇 년 전.
성공하기 전까지는 절대 연락하지 않을 거라며 쓰디쓴 술 한잔을 입에 털어 넣던 최정혁의 얼굴이 스쳤다.
‘정혁이 부모님도 기사 보셨겠지.’
그렇게 지레짐작한 주우민은 힘을 실은 손으로 최정혁의 어깨를 두들기며 덧붙였다.
“역시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아니, 부모님 아니야.”
“어? 아, 아니야? 그럼 누군데…?”
최정혁은 언제 심각했냐는 듯, 배실배실 웃으며 답했다.
“작곡가님이!
휴대폰을 내밀며 자랑하는 것도 빼먹지 않았다.
“연습 관련된 거 아니면 절대 답장 안 해 주시더니, 이렇게 연락이 왔다니까!”
주우민은 주책 떠는 최정혁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잠시나마 심각하게 생각한 것에 대해 창피해졌다.
[ 갓곡가님: ㅊㅋ 무조건 잘 돼야 한다. ]하여튼, 작곡가님이 축하 문자를 보내왔다는 건 제법 놀랄 일이었다.
어쩐지….
축하 문자라기보단, 망하면 죽는다는 협박 문자 같기는 했지만.
뭐, 아무렴 어떠하리?
‘저렇게나 좋아하는데, 초 치지 말자.’
한편.
운전대를 잡고 있던 안지호는 관심 없는 척, 기어봉 쪽에 올려놨던 휴대폰 화면을 훔쳐봤다.
‘안 왔네….’
아마 대신 전하라는 의미로 한 명에게만 보내신 거겠지. 그래, 그렇게 생각하자.
하나.
안지호의 표정은 급격히 어두워져만 갔다.
* * *
박수림은 오늘도 쇼케이스 MC 섭외를 받고, 아트홀을 찾았다.
“가만있어 보자….”
가수보다 앞서 도착한 그녀는 당일 컴백 쇼케이스의 주인공인 그룹 ‘더문’을 검색해 보기 시작했다. 처음 듣는 그룹인 만큼, 대본 외에도 사전 조사는 필수였기 때문이었다.
대충이라는 단어와 거리가 멀었던 그녀는 앉은 자리에서 30분간 온갖 커뮤니티와 팬카페를 뒤져 본 후에야 휴대폰을 집어넣고, 대본을 손에 쥐었다.
“이번 컴백 타이틀 곡이 HS의 곡이라 장안의 화제인데, 짧게 곡에 관해 설명해 주신다면….”
대본을 중얼거리기도 잠시.
“오케이.”
박수림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본을 내려놓았다. 이 정도면 충분히 자가 리허설은 끝 맞춘 셈이다.
사실.
그녀는 데뷔 20년 차 베테랑 방송인이자, 뛰어난 진행 능력으로 라디오와 제작 발표회, 각종 쇼케이스 MC 섭외 1순위로 손꼽히는 사람이었다.
그만큼 섭외 자체도 어렵거니와, 섭외비조차 만만치 않았다.
“어?”
그런 그녀를 섭외할 수 있었던 이유는….
“수림아! 언제 왔어?”
“응, 얼마 안 됐어.”
“와줘서 정말 고맙다.”
“아냐, 이 정도로 뭘.”
TM 엔터의 대표인 김효섭이 그녀와 오래된 인연이 있던 덕분이었다.
“우리 애들, 지금 주차하고 올라올 거야. 아무쪼록 네가 잘 좀 부탁한다.”
“아무렴, 나 박수림이야! 나만 믿고, 학부모는 잠시 빠져 있어 주시겠어요?”
김효섭이 그녀를 따라 활짝 웃으며 생각했다.
‘앞으로는 이렇게 웃을 일이 많아지지 않을까?’
물론.
자신의 얘기가 아니라, 더문의 얘기였다.
.
.
.
“자, 다들 모여 봐.”
준비를 마친 더문은 백스테이지에 동그랗게 모여 선 채로, 안지호의 쏟아지는 잔소리를 듣고 있었다.
“너무 긴장하지 마. 음방도 아니고, 쇼케이스니까.”
“예, 물론이죠.”
“물론 그렇다고 대충하면 안 되는 거 알지?”
“당연한 소리를-!”
“아, 근데 너무 잘하려고 애쓰다가 괜히 실수하지 말고.”
“있잖아, 지호 형….”
최정혁은 그런 안지호의 어깨에 손을 올려놓으며 덧붙였다.
“아무리 봐도 지금 형이 제일 긴장한 것 같은데?”
“맞아, 지호 형 꼭 긴장하지 말라고 하면서 자기가 제일 긴장 많이 하잖아.”
리더 놀려 먹기에 주우민까지 거들며 동참하자, 안지호는 민망해졌는지 얼른 올라가자고 말을 돌렸다.
때마침.
“박수로 맞이해 주시기 부탁드립니다-!”
무대에서는 귀에 익은 MC 박수림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더문은 차례대로 무대 위로 걸음을 옮겼다.
차츰차츰.
이찬영은 맨 마지막으로 계단을 올라, 무대 중앙에 자리를 잡을 때까지도 고개를 올려보지 못했다.
“인사드리겠습니다.”
머지않아 약속된 대로 인사 신호 말이 들려왔고.
“하나, 둘, 셋-!”
인사를 하기 위해 번쩍 고개를 치켜든 이찬영은 그대로 빳빳이 굳어 홀로 인사하지 못하는 모습이 그대로 생중계되고야 말았다.
“안녕하세요, 더-문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꺄아아아아아-!
관객석이 빈틈없이 꽉 채워진 있던 까닭이었다.
* * *
안지호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이런 함성 소리를 언제 마지막으로 들었더라?
‘월드컵 때였던가….’
때마침 제 옆에 앉아 있던 최정혁이 마이크를 집어 들자 관객석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꺄아아아아아아-!
정신이 번쩍 차려질 만큼 거대한 함성이었다.
“와, 오늘 쇼케이스를 찾아 주신 팬 분들의 열기가 아주 뜨거운 것 같아요. 리액션이 정말 좋네요.”
박수림은 능수능란하게 관객을 진정시키며 진행을 이어 나갔다.
“정혁 씨, 편지 얼른 한번 펼쳐서 읽어 봐 주세요.”
“하, 이게 너무 떨리네요.”
“그래도 기다릴 팬들을 위해 얼른 읽어 주세요-!”
최정혁은 떨리는 손으로 편지지를 펼치고는 목을 가다듬었다.
“더문이 막 데뷔했을 때는 수험생이었는데, 어느새 2년제를 졸업하고 취업을 했네요. 덕분에 내가 번 돈으로 앨범도 사고 쇼케이스까지 올 수 있게 되었어요. 이제는 제 인생에서 정말 더문이 잘 되는 것만이 남았네요. 예전에는 뭔가 나만의 아이돌이라는 느낌이 좋았는데, 지금은 그저 나의 더문이 날개를 펼치고 잘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어요.”
생각보다 침착하게 편지를 읽어 내려갔지만, 이미 최정혁의 눈시울은 잔뜩 붉어진 채였다.
“흡, 흡….”
머지않아 관객석에서도 훌쩍이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박수림은 구태여 울지 말라는 멘트는 하지 않았다. 원래 이 시간은 이러라고 만들어 놓은 시간일 테니까.
이내.
리더인 안지호가 마지막 편지를 손에 쥐었다.
박수림은 눈물 한 방울도 기대하면 안 될 것 같은 안지호의 날카로운 눈매를 보며 생각했다.
‘얘는 안 울겠는데?’
마지막 편지인 만큼 펑펑 울어 주면, 반응도 뜨겁고 좋을 텐데 다소 아쉬움이 남았다.
이윽고.
안지호가 편지를 집어 들고 중저음의 목소리로 또박또박 편지를 읽어 내려갔다.
“기나긴 연습생 시절부터 충치처럼 썩었지, 이제 금이 될 시간이다. 다들 고생 많았다. 내가 했던 말대로 다 찢어 버리고 와라.”
다소 유치한 내용이었지만.
이 편지의 주인공이 누군지 깨달은 안지호는 왈칵 차오르는 눈물을 잠재우기 위해 입술을 꽉 깨물었다.
“쓰라고 해서 쓰기는 하는데 더 이상, 큼, 흠. 할 말이 없다….”
그리고는 마지막 문장을 어렵사리 중얼거렸다.
“아무튼 응, 응, 으응헌…한다.”
* * *
유럽 여행을 이틀 앞두고, 현아는 캐리어부터 시작하여 배낭까지 한가득 짐을 챙기고 있었다.
“너 혹시 이민 가?”
현승은 캐리어 지퍼가 안 닫혀 낑낑거리는 현아를 내려다보며 한숨을 내 쉬었다.
“오빠는 무슨 마실 가는 것도 아니고, 저게 뭐야?”
현승은 기내에 들고 탈 수 있을 만큼 작은 사이즈의 캐리어를 흘깃 한번 바라보고는 잠시 ‘좀 너무했나?’ 싶은 생각을 해 보기도 잠시.
‘옷이야 부족하면 가서 사면 되지.’
그래.
확실히 여동생이 유난인 게 맞다.
“이 정도면 피난 가는 것 같은데.”
“도와줄 거 아니면, 저리 가!”
현승이 씩씩거리는 현아를 보며 키득거리기도 잠시.
“야, 이거.”
현아의 캐리어 위에 선물로 받은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무심히 올려놓았다.
“오빠, 웬 폴라로이드 카메라야?”
“어제 오는 길에 주워 왔어.”
“진짜? 잘 주워 왔네!”
“야, 설마 진짜 주워 왔겠냐?”
“그럼? 오빠가 이런 걸 사 왔을 리는 없잖아.”
그 말에 현승이 붕어마냥 입술을 뻐끔거리다 이내 꾹 다물었다. 직접 사 온 게 아니기도 하거니와, 여동생에게 비치는 자신의 이미지가 그랬나 싶어서였다.
“어, 그냥 받았어.”
“그럼 그렇지.”
“됐고, 얼른 정리나 해.”
현승이 심술 섞인 발로 현아의 캐리어를 살짝 “툭.”하고 치던 찰나였다.
지이이잉-!
김 실장으로부터 링크가 첨부된 문자 하나가 도착했다.
[ 지금 더문 애들 쇼케이스 잘하고 있는 것 같더라. ] [ 생중계되고 있으니까 한번 봐봐. ] [ 물론 넌 안 궁금하다고 하겠지만 혹시 모를 일이잖아. ] [ 반박 시 원형탈모. ]하여간, 이상한 신조어는 자꾸 어디서 주워오신담.
‘민현아, 준비하려면 한참 남았는데, 한 번 보기나 해 볼까.’
현승은 곧장 소파에 앉아 링크를 클릭했다.
─ 꺄아아아아아아!
라이브 영상을 키자, 고막이 찢어질 듯한 함성이 들려오는 걸 보아, 사람은 제법 많이 온 모양이었다.
‘다행이네.’
그 소리에 짐을 싸던 현아도 손을 멈추고 옆으로 다가왔다.
“헐, 더문이네?”
“가서 짐이나 싸.”
“아니, 오빠 잠깐만.”
“뭘 잠깐만이야.”
현아가 휴대폰 화면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지금 안지호 우는 것 같은데?”
“운다고? 왜?”
“헐, 손에 들린 편지 읽고 우는 거 같은데?”
때마침 눈물에 젖은 안지호의 목소리가 들렸다.
─ 뭐, 아무튼 응, 응, 으응헌…한다.”
그 모습을 애잔하게 바라보다가 끝내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인 현승이 문자창을 켰다. 그래, 열심히 하는 녀석들이다. 만약 신이라는 게 정말 존재한다면, 성공해야만 하는 녀석들이다.
특히 안지호의 경우는 더더욱 그렇다.
톡, 토독-.
현승은 그런 녀석에게 꼭 해 주고 싶은 말이 있었다.
톡, 토독-.
문자로라도 지금 당장 꼭 해 주고 싶은 말….
[ 야, 우냐? ㅋ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