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126)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126화(126/482)
여행 둘째 날, 현승과 가족은 파리의 상징이랄 수 있는 에펠탑을 보기 위해 찾았다.
“우와-!”
에펠탑의 거대한 규모 앞에 현아가 입을 떡 벌린 채 감탄을 이어 나가기도 잠시.
“시골 쥐 아냐.”
별안간 입매를 꾹 다물고는 현승을 바라보며 덧붙였다.
“아무튼 아님.”
“누가 뭐래?”
“방금 시골 쥐라고 생각했잖아.”
“음, 현아야.”
현승이 제 여동생을 심오한 표정으로 불러 세운 뒤 나지막이 첨언했다.
“옛날에 도둑이 제 발 저린다는 말이 있어.”
“갑자기 무슨 말이야?”
“지금 너의 모습을 보니 딱 그 속담이 떠오르는구나.”
“진짜 오빠랑 말 안 해-!”
두 남매가 투닥거리는 모습을 바라보던 아버지는 내리쬐는 햇빛처럼 따사로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저.
아들, 딸과 여행을 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기분이 좋은데 두 자녀의 사이 좋은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세상을 다 가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행복하다….’
아버지가 행복한 감상에 젖어 들던 그때.
“아!”
현아는 불현듯 무언가 떠올랐는지 가방에서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더문의 팬덤인 올나잇이 준 선물 중 가장 쓸모 있어 보여, 여동생에게 줬던 거다.
─ 아빠, 포즈 잡고 서 봐요.
현아가 수어로 건넨 말에 아버지는 빳빳하게 굳은 채 서 보였다.
“웃어야지-!”
그런 아빠를 바라보던 현아는 손가락으로 제 입꼬리를 올려 직접 시범을 보여 줬고.
어느덧.
에펠탑 앞에서 사진 삼매경이 시작되었다.
찰칵-!
단독으로 한 컷.
찰칵-!
부자지간끼리 한 컷.
찰칵-!
부녀지간끼리 한 컷.
마지막으로….
온 가족이 나란히 서서 한 컷.
“C’est Si Bon-!”
찍어준 행인이 엄지를 올려 보일 정도로, 현승과 가족들은 카메라 앞에서 아주 행복하게 웃고 있었다.
‘제법 유용하네.’
현승이 인화된 필름들을 바라보며 피식 웃어 보이기도 잠시.
“어-?”
저 멀리 익숙한 형체의 남성을 발견하고는 눈매를 좁혀 자세히 바라봤다.
“김 실장님…?”
여기까지 쫓아온 건가. 정말이지, 곤란하네. 고개를 내저어 보인 현승은 그의 옆에 선 여성으로 시선을 옮겼다.
‘옆에는 어머님이신가?’
서로 마주 앉아 웃고 있는 모습이 붕어빵처럼 쏙 빼닮은 걸 보면, 모자지간이 확실해 보였다.
늘상….
아버지마냥 자신을 챙기던 김 실장도 어머니 앞에서는 영락없는 평범한 아들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런 모습이 퍽 어색했지만….
보기 좋았다.
‘김 실장님이 저런 미소를 지을 줄도 아셨구나.’
평상시에 자신과 있을 적에도 호탕하게 잘 웃는 편이라 여겼는데, 그의 처음 보는 미소 앞에 현승은 자신도 모르게 따라 웃어 보였다.
어….
가족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행복한 모습을 보고 행복을 느낀 적이 있던가?
아니.
현승은 남의 감정에 동요되는 인물은 아니었기에, 전생부터 여태껏 그런 적은 없었다.
“현아야.”
“응?”
“폴라로이드 좀 줘 봐.”
“나 찍어 주려고?”
이내 현아가 브이를 해 보였지만, 현승은 그런 동생을 가뿐히 무시하고는 뷰파인더를 통해 김 실장과 어머니의 모습을 눈으로 담아냈다.
하나.
둘.
셋.
속으로 숫자를 센 뒤 버튼을 누르자, 금세 필름 하나가 톡 튀어나왔다.
팔락, 팔락-.
가볍게 잡고 흔들어 보이자 뿌옇던 필름 위로 점차 사람 형상이 떠올랐다.
“오빠, 나 찍어 주는 거 아니었어? 뭐 찍은 거야?”
“그냥-.”
현승은 뚜렷해진 필름 속에 웃고 있는 김 실장과 그의 어머니의 모습을 바라보며 조용히 덧붙였다.
“행복한 모자.”
“모자가 어떻게 행복해-?”
엉뚱한 물음에 피식 웃어 보인 현승이 제 여동생의 머리를 헝클어트렸다.
여하튼.
폴라로이드 하나로 제 가족과 김 실장 모자의 행복한 추억을 담아냈으니….
제법 유용한 선물이라 느껴질 따름이었다.
* * *
하드 버스킹.
이번 첫 버스킹 촬영의 키워드였다. 말 그대로 어렵고, 험난함 버스킹이 예상되었다.
그도 그럴게….
악기와 음향 장비 세팅이 거의 완료되는 이 시점에도 거리에 오가는 사람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여행객이 자주 다니는 관광지가 아닌, 주택단지에 꾸려진 작은 공원으로 장소를 선정한 탓이겠지.
‘하여간 방송국 놈들….’
심지어 무조건 자신의 곡 중 선택해야만 했다. 한국 가사로 이루어진 케이팝을 말이다.
지나다니는 사람도 없고, 한국 가수를 알아보고 멈춰 설 일은 더더욱이나 어려운 일인데….
발길을 묶어 둘 만큼 유명한 팝송도 부르면 안 된다니.
‘차라리 정글 가서 살아남는 프로그램에나 내보낼 걸 그랬나.’
김 실장은 걱정 어린 눈빛으로 윤제이를 바라봤다. 만약 들어주는 사람도, 관심 가져 주는 사람도 없다면, 얼마나 민망할지 괜스레 제 얼굴이 뜨거워졌다.
반면,
윤제이는 본격적인 버스킹에 앞서 호흡을 맞춰 보고 있는 원진섭과 이유주에게 시선이 고정된 채였다.
‘와, 잘한다….’
가볍게 리허설을 맞춰 보는 게 저 정도라니. 각 잡고 부르면 얼마나 더 잘하려나?
이내.
윤제이는 고개를 휙휙 내젓고는 제 손에 들린 악보 위로 시선을 옮겼다.
‘선배님이 내 위주로 배려해 주셨는데 망치면 안 되지….’
첫 버스킹 곡은 자신의 데뷔곡인 ‘나밖에 없던 그대에게’와 K-싱어스타 결승 경연곡으로 불렀던 ‘I wish time would stop’ 그리고 이영아의 대표곡인 ‘너 하나밖에’로 선정되었다.
의견을 제시한 건 이영아였다.
하물며 제이블도 이견 없이 동의하는 바람에 다수결로 완료되어 버렸다. 자신을 그렇게까지 배려해 주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이영아는 완강했다.
뭐라고 했더라….
“나도 HS가 만든 곡 한번 불러 보고 싶었어. 내가 부르고 싶은 거니까 네가 나한테 배려해 주는 거지.”
이영아는 첫인상과 달리, 따듯하고 잘하는 것에 대해선 칭찬도 후한 편이었다.
“제이야, 경연 때보다 실력이 훨씬 좋아졌는데?”
“너 하고 싶은 대로 애드리브 라인 쳐도 돼.”
“네가 중점적으로 부르고, 내가 덧입혀 볼게.”
그녀의 칭찬에 힘입어 시차 적응을 하기 전부터 밤을 새워 가며 연습에 몰두했다.
군말 없이 따라서 편곡과 연주를 맡아 준 제이블에게도 너무 감사할 따름이었다.
다만.
거의 말이 없는 통에,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HS 님이랑 라이벌 관계 아니었나….’
윤제이가 이런저런 생각을 이어 나가고 있노라니, 촬영 준비가 완료되었다.
“제이야, 우리는 여기 앉아 있으면 된대.”
윤제이는 앞선 팀들의 버스킹을 듣기 위해 배치된 의자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카메라 전원에 빨간 불이 깜빡이고.
본격적인 촬영이 시작되자, 시선을 끌어당기기 위해 김광진이 사운드 체크를 시작했다.
“와….”
그 모습에 제작진들 사이에서도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진짜 최고다….”
윤제이 또한 두 손을 꼭 부여잡은 채 그의 손짓부터 기타에 맞춰 흔들리는 작은 몸짓 하나까지도 놓치지 않고 눈에 담았다. 언제쯤이면 저런 연주를 할 수 있을까?
어떻게….
단순 사운드 체크만으로 사람을 꼼짝달싹 못 하도록 제압할 수 있는 거지?
‘본 연주도 얼른 듣고 싶다….’
경쟁 프로그램도 아닌 만큼, 윤제이는 맘껏 기대하며 버스킹이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그들이 부를 첫 번째 곡은….
원진섭의 숨어진 명곡이라고 칭송받는 ‘사랑이 흘러가네’였다. 이 곡은 당시 최고의 인기를 이끌던 여가수와 함께 듀엣으로 불렀던 곡으로 남녀가 부르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이윽고.
원진섭의 매끄러운 음성이 버스킹의 첫 시작을 알렸고.
─ 너를 처음 봤던 그 날로 돌아갈 수 있다면 좋겠어.
지나가던 주민들은 노랫소리에 흘끔흘끔 바라보며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한 명, 두 명, 세 명….
그렇게 점차 늘어간 사람들은 어느덧 10명이 넘어갔다. 듣다 가 버리는 사람도 있었지만, 가만히 앉아 노래를 들어주는 사람도 여럿 생겨났다.
한국에서는 최고라 불리는 가수들이자, 콘서트를 열었다 하면 매진은 기본이다 보니 이 정도 인원으로는 감흥이 없을 수도 있지만….
그 누구도 대충 부르지 않았다.
특히.
이유주는 흩날리는 머리칼을 넘길 생각도 없이 제 파트를 소화해 내기 바빴다.
‘잘한다….’
자신이 들어도 이유주의 보컬은 경연 당시보다 훨씬 더 안정적으로 자리 잡은 듯 보였다.
“제이야.”
그때 이영아가 속삭이는 어투로 말을 걸어왔다.
“우리도 그저 최선을 다해서만 부르자.”
“네, 꼭 그럴게요.”
그 말에 세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던 찰나였다.
휘-익!
어디선가 힘찬 휘파람 소리가 들려왔고, 그들의 버스킹이 끝남과 동시에, 이곳저곳에서 산발적으로 박수가 터져 나왔다.
짝짝짝짝-!
나름 성공적인 시작이었다.
* * *
음악 리뷰를 중점으로 하는 백만 유튜버 레오는, 요즘 딱히 리뷰할 만한 곡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오늘은 별 수 없나….”
그는 액션캠을 들고 집 밖으로 나섰다. 요즘 통 업로드가 안 된다고 욕을 먹고 있었기에, 단순 브이로그라도 업로드하기 위함이었다.
“하….”
사실 그의 채널은 음악 리뷰보다는, 그의 잘생긴 외모 때문에 화제가 된 것이었기에 얼굴이라도 비추면 잠시는 시간을 벌 수 있었다.
“정말 요즘 귀에 쏙 들어오는 음악이 없는 걸 어떡하라고….”
푸념을 늘어놓기도 잠시.
“안녕하세요, 레오입니다.”
캠 앞에 선 그는 금세 웃는 얼굴로 고쳐 지어 보였다.
“여러분, 요즘은 제가 건강이 좋지 않아서 리뷰를 제대로 못 했는데요. 그래서 잠시 쉬었다 가는 느낌으로 저의 일상을 보여 드리려고 합니다.”
레오는 캠 앞에서 만큼은 프로 방송인이었다.
유려한 말솜씨를 이어 나가며, 하염없이 걷다 보니 어느덧 집 근처에 위치한 공원에 다다랐다.
“여기는 제가 거의 매일같이 산책하는 공원입니다.”
물론….
“한적하고 푸른 숲이 참 아름다운 곳이에요.”
뻥이었다.
레오는 이 동네에 산 지 십여 년이 넘었지만, 공원 안으로 발을 들여 본 건 처음이었다.
터벅, 터벅-.
캠을 든 채로, 미친 사람처럼 혼자 떠들어 대며 공원을 거닐던 찰나였다.
─ ♬ ♬ ♬
어디선가 귀를 확 끌어당기는 선율이 들려왔다.
“여러분, 공원에서 누가 버스킹을 하나 봐요.”
그는 때마침 잘 됐다며 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바삐 걸음을 옮기며 생각했다.
‘오늘은 버스킹으로 때울 수 있겠군.’
소리를 따라 도착한 곳은 공원 내부에 자리한 작은 광장이었다.
버스킹 관객은 그렇게 많지 않았지만….
촬영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다는 것과 하나같이 처음 보는 외국인의 외모를 가지고 있는 걸로 미뤄 보았을 때, 해외에서 촬영하러 온 걸로 보였다.
“오, 여러분 아무래도 해외 음악 프로그램에서 촬영을 하러 온 것 같아요.”
그는 버스킹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작은 목소리로 부연하고는, 캠을 돌려 버스커들을 찍기 시작했다.
─ 기억이라도 나면 마음껏 그리워할 텐데
알아들을 수 없는 외국어에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잠시.
─ 기억조차 없으니, 그리워할 수도 없어요.
마이크를 쥔 두 여성 중 한 명의 목소리가 그의 귀에는 제법 매력적으로 들려왔다.
‘잘하는데?’
이내 그 여성의 파트가 끝이 났는지, 옆에 앉아 있던 여성이 마이크를 고쳐 잡았다.
─ 그대는 나를 기억할까요?
레오는 일순간 캠을 떨어트릴 뻔했다.
“와, 씨….”
여성의 목소리에 놀란 까닭이었다. 비단 그 목소리에 놀란 건, 자신만이 아닌 듯 보였다.
─ 왜 세상에 나만 남겨 놓고 가 버린 거야.
몇 안 되던 관중들은 점차 버스커들과 함께 호흡하기 위해 가까운 곳으로 자리를 옮겨 잡았고.
또.
어떤 누군가는, 노트 위에 노래를 부르는 그녀의 모습을 그려 냈다. 그리고 다른 누군가는, 촬영하던 휴대폰을 내려놓은 채 눈을 지그시 감았다.
아마….
그녀의 노래에 심취하여 자연스럽게 나온 행동일 터였다.
레오, 역시 마찬가지로 분명 머릿속으로는 영상의 재미를 더하기 위해 중간중간 리액션을 보여 줘야 한다고 생각했으나, 선뜻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저.
무언가에 홀린 듯 캠 하나만 든 채로 여성을 향해 다가갔다.
─ 내 손 놓지 말고, 나도 같이 데려가지.
뭉글뭉글한 구름 위를 거니는 듯한 몽환적인 목소리와 끊어질 듯 옅은 숨소리, 그 위로 탄탄하게 뽑아 나오는 절규에 가까운 고음까지….
비록.
무슨 말을 담아내고 있는 곡인지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곡이 담아내고자 하는, 그녀가 전하고자 하는 감정이 무엇인지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 꿈에서라도 한 번만 꽉 안아 주면 안 돼요?
어느덧.
곡의 절정이 다가왔는지, 두 여성은 서로 눈을 마주한 채 호흡을 공유하며 감정을 폭발시켰다.
‘좀만 더, 좀만 더….’
레오는 곡이 끝날 조짐이 보이자, 끝나지 않기를 바라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렇게 곡을 듣는 내내 제 팔에 닭살이 돋아 있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로….
─ 나 그대의 온기가 궁금해요.
곡이 끝이 났다.
짝, 짝, 짝-!
레오는 그 즉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짝, 짝짝, 짝짝짝-!
그리고는 캠마저 내팽개친 채로 손마디가 부서져라, 힘차게 박수를 보냈다.
짝짝짝짝짝짝짝짝짝-!
이윽고.
그를 따라 관객들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 귀가 찢어질 듯 박수와 함께 환호성을 내질렀다.
“la meilleur-!”
오늘 버스킹 리뷰는….
방송사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