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131)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131화(131/482)
김 실장은 매니지먼트 2팀의 하반기 예상 실적 관련 회의를 위해 회의실로 걸음을 옮겼다.
오늘 회의는….
주요 임원진들도 모두 참석한다던데, 다들 2팀에 제법 관심을 두고 바라보는 모양이었다.
‘어쩌면 정말 곧 승진하는 거 아니야?’
들뜬 마음을 품은 채 회의실 안으로 들어가 상석과 제일 먼 자리를 먼저 꿰차고 앉았다.
물론, 머지않아 최 이사님이 오면 제 옆으로 오라고 하실 테지만, 다른 사람들의 보는 눈도 있는데 먼저 그 자리를 탐낼 수야 없지.
아니나 다를까.
바로 뒤이어 들어온 최 이사가 상석 오른편을 차지하고 앉더니, 옆으로 오라며 손짓했다.
“최 이사님, 잘 지내셨어요?”
“나야 뭐, 근데 우현아 너는 왠지 핼쑥해졌는데?”
“그런가요? 요즘 밥을 좀 걸러서 그런가?”
“구내식당 짝꿍이 사라져서 그런 모양인가 보군.”
여기서 구내식당 짝꿍이라 하면 ‘현승’을 말하는 거였다.
그 말을 맞은편에서 듣고 있던 매니지먼트를 이끄는 총본부장이 입술을 열었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그 짝꿍은 휴가에서 언제쯤 돌아오나? 너무 길어지는 것 같은데 말이야.”
김 실장은 그 물음에 곧장 표정을 굳히며 “예?”하고 되묻고는, 반문했다.
“걔 매일 같이 밤새워 가며 작업하고 다른 작곡가들 일 년 걸려서 한 곡 내놓을 때 올해만 몇 곡을 내놓은 줄 아시나요? 그것도 다 차트인 시켰습니다.”
“그거야, 잘 알지….”
“하물며 그 녀석이 헛물켜고 다니는 것도 아니고, 가족 데리고 여행 중인데 그것까지 시간 압박해야 하는 겁니까?”
“아니, 그냥 뭐 언제쯤 돌아오나 싶어서….”
본부장은 김 실장의 완강한 태도에 민망해져 괜스레 넥타이를 매만졌다.
“김 실장도 참, 하여간 제 짝꿍 일이라면 이렇게 바짝 날을 세우더라?”
그때 마침 내부로 들어서던 박 전무가 너스레 섞인 어투로 김 실장의 어깨를 가볍게 주무르며 덧붙였다.
“너무 편애하는 거 아니야?”
그 물음에 악의는 담겨 있지 않았다.
그저.
이 정도쯤 했으면 됐다는 브레이크 신호였다.
“근데….”
김 실장이 차분함을 유지하기 위해 옷깃을 매만지던 그때, A&R의 한 팀장이 입을 열었다.
“HS 님, 계속 저희 쪽 메일로 곡 보내고 있어요.”
그의 뜬금없는 발언에 다들 무슨 소리냐는 표정으로 시선이 집중되었다.
한참 유럽 여행 중인 사람이 곡을 보내온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요 며칠 사이에 두 곡이나 보내왔어요. 상주하는 작곡가들보다 더 잘 보내주는데요?”
“뭐?”
“개인 앨범 준비하고 있는 모양이더라고요. 간단하게 마스터링만 부탁한다고 하더라고요.”
본부장이 겸연쩍은 얼굴로 “그 친구는 어딜 가나 음악 생각뿐이군.” 하며 웃어 보였다.
“아, 맞다-!”
별안간 할 말이 더 떠올랐는지, 한 팀장이 A&R 메일함을 확인하고는 부연했다.
“비밀리에 진행하는 프로젝트니까, 1팀에도 알리지 말고, 중요 관계자만 알게 해 달라고 덧붙였어요.”
한 팀장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박 전무에게로 향했다.
“왜 다들 날 보지?”
박 전무는 영 언짢다는 표정으로 어깨를 들썩이며 말을 이었다.
“말 안 해. 그랬다가 김 실장한테 어떤 소리를 들으려고?”
그 말에 다들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입을 가리며 키득거리던 찰나였다.
“본격적인 회의가 시작되기도 전부터, 제법 흥미로운 얘기가 들려오는군요?”
대표가 안으로 문을 열고 들어와, 일제히 일어난 인원들을 보고 앉으라며 손짓했다.
그리고는 이내….
스으으윽-.
테이블 위에 올려진 자료를 슬쩍 옆으로 치워 내며 물었다.
“비밀리에 진행한다는 그 프로젝트에 대해 더 자세히 말씀해 보시겠어요?”
* * *
스위스로 넘어온 현승은 고르너그라트 전망대에 있는 테라스 카페에 자리를 잡고 앉은 현승은 곧장 노트를 펼쳐 다시금 무언가를 휘갈기고 있었다.
왜냐면….
테라스 한쪽에서 노인들이 스위스 전통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에 악상이 떠오른 까닭이었다.
“오빠, 일 좀 그만하고 이 절경을 즐겨야지!”
“어어, 즐기고 있어.”
“거짓말! 눈이 계속 노트 위로 향해 있구만, 뭘!”
“아니야, 보고 있다니까.”
현승은 그녀의 등쌀에 밀려, 만년설이라 불리는 고르너그라트를 눈에 담았다. 확실히 경이로운 자연 앞에서 일련의 위압감이 느껴졌다.
‘정말 절경이긴 하네.’
사실.
이번 가족과의 유럽 여행을 결심한 건 현아의 요청도 있었지만, 다른 이유가 두 가지 목표가 더 포함되어 있었다.
첫 번째는….
바로 다음 개인 앨범 작업을 준비하기 위함이었다. 매일같이 같은 작업실에서 하다 보면, 제아무리 현승이라도 같은 악상에 갇히기 마련이니까.
가끔은….
이렇게 먼 나라에 와서, 여유롭게 풍경을 바라보고, 다양한 인종의 사람을 마주치다 보면 획기적인 악상이 번뜩 떠오르기도 하니까.
그래.
이번 여행을 통해 만든 곡들로 다시 한번 개인 앨범을 제작해 볼 요량이었다.
‘다른 이름으로.’
요즘 사람들 사이에서 음원차트를 보고, HS가 자신과의 싸움 중이라는 말이 많던데, 이왕 자신과 싸워 볼 겸 제대로 판 깔고 해 봐야 하지 않겠는가?
이미.
두 곡은 완성하여, A&R 메일로 전송을 완료했다.
하나는….
가족들과 폴라로이드 카메라 하나로 행복하게 웃으며 추억을 남기던 그 순간을 담았고.
다른, 하나는….
우연히 듣게 된 홈리스의 연주로부터 영향을 받아 만들었다.
아아.
물론, 이건 그가 세션을 해 줘야만 비로소 완성될 수 있겠지만.
“연락이 올 때가 됐는데-.”
현승은 당연히 그가 자신에게 연락해 올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정말 홈리스가 맞는다면, 자신의 제안에 구미가 당길 게 분명하거니와….
무엇보다 그도 흥미로운 양 동요되는 걸 봤으니까.
휴대폰을 지그시 바라보던 현승은 의아하다는 양 제 턱을 긁적거렸다. 로밍이 제대로 안 됐나? 그건 아닌데, 여기가 전파가 잘 안 잡히는 건가?
그것도 아니면.
“밀당하나….”
현승은 휴대폰을 내려놓고는 아버지의 옆얼굴로 시선을 옮겼다. 그는 하염없이 만년설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글자글한 주름 사이로 그가 살아온 세월이 담겨 있다.
그래.
더 늦기 전에 모시고 온 건, 참 잘한 일이다. 여행도 체력전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현승은 제 아버지의 거동이 어려워지기 전까지는 더 많은 세상을 눈에 담아 드리겠노라고 다짐했다.
‘아버지….’
이내 현승이 이번 유럽 여행의 두 번째 목표를 되새겼다.
‘꼭….’
이번 여행의 두 번째 목적은….
바로.
자신의 아버지였다.
* * *
현승은 택시로 가족들을 숙소에 내려 준 다음, 홀로 어디론가 향했다.
이번 여행의 세 번째 목표를 이루기 위함이었다.
「 Institut für Stammzellenregenerative Medizin 」
현승은 도착한 건물 앞에 걸린 명패를 훑어보고는, 이내 벨을 눌렀다.
“…….”
왠지는 모르겠지만, 손안에는 땀이 흥건한 채였다.
이윽고.
인터폰을 통해 독일어로 누구냐는 물음이 흘러나왔다.
“헨리 박사님과 만나 뵙고 싶다고 이메일을 여러 차례 보냈던 사람입니다.”
인터폰에서는 잠시 기다려 달라는 말과 함께, 연결이 툭 끊겼다. 설마 이대로 못 만나고 돌아가는 건 아니겠지? 초조한 기색을 보이던 현승은 이내 제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유럽 여행을 떠나기 전.
헨리 박사에게 보냈던 이메일은 아직 답장받지 못하기는 했다. 그러나, 이대로 포기할 수 없던 현승은 직접 만나기 위해 찾아오게 된 거였다.
드높은 대문 앞에서 하염없이 기다리기도 잠시.
“얼마 전에 연구비 지원 관련하여 이메일 보내셨던 분 맞죠?”
열린 문틈 사이로 여성이 조심스레 물어왔다.
“네, 맞습니다. 꼭 여쭙고 싶은 게 있어서 실례를 무릅쓰고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아주 잠시라도 직접 만나 뵙고 얘기를 좀 나누고 싶어서요.”
“헨리 박사님이 시간이 별로 없어서, 오래 대화 나누실 수는 없을 거예요. 괜찮으면 들어오세요.”
“네, 감사합니다.”
현승은 그 여성을 따라 연구소 내부로 들어섰고.
머지않아.
접견실처럼 보이는 곳에 도착하자 여성은 기다리라는 말만을 남겨 둔 채 홀연히 사라졌다.
달, 달, 달-.
현승은 기다리는 내내 어딘가 불안한 사람마냥 다리를 달달 떨어 댔다. ‘박사’를 만난다고 하여 떨 사람은 아니다. 아마 대통령 앞에서도 떨지 않을 사람이니까.
그런데도 이렇게 떨리는 이유는….
헨리 박사가 청신경을 다 잃어 수술이나 보청기의 힘으로도 아예 들을 수 없는 농인들을 위해 청신경을 다시 만들어 내는 줄기세포를 연구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
어쩌면 그의 손에서 탄생한 새로운 줄기세포로 제 아버지가 다시 듣게 될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후우….”
현승이 숨을 깊게 몰아 내쉬던 찰나였다.
끼이익-.
접견실의 문이 열리고 흰 가운을 입은 인자한 인상의 남성이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이 연구소에서 연구 총괄을 맡은 박사 헨리라고 합니다.”
헨리가 손을 내밀어 보이자, 현승은 제 손에 맺힌 땀을 바지춤에 닦아 내고는 가볍게 손을 맞잡았다.
“네,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한국에서 온 민현승이라고 합니다.”
“오, 상당히 멀리서 온 손님이셨네요.”
“얼마 안 걸리던걸요. 그건 그렇고 박사님, 혹시 제 이메일을 보셨을까요?”
“네, 연구비 지원을 해 줄 테니, 만나 뵙고 싶다는 메일은 잘 전달 받았습니다.”
현승이 “그렇군요.”하고 대답하고는,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덧붙였다.
“박사님께서 답장이 없으셔서, 실례인 걸 알지만 꼭 여쭙고 싶은 게 있어서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그저 장난인 줄 알았거든요. 얼마든지 지원하겠다는 허무맹랑한 메일을 누가 믿겠어요.”
말을 마친 헨리가 옅게 웃어 보이고는 되물었다.
“그래서 한국에서부터 여기까지 찾아와서 여쭙고 싶으시다는 게 뭔가요?”
“현재 아예 청신경을 잃은 농인들을 위해 줄기세포 연구를 하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맞으시죠?”
“예, 맞습니다.”
“혹시 연구 진행은 얼마나 되었나요?”
“대외비 적인 내용이라 자세히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절반 정도 왔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현승의 얼굴 위로 옅은 희망이 피어올랐다.
‘절반이라면….’
생각보다 더 긍정적인 퍼센트였다.
“그럼 머지않아 실현이 되겠네요?”
“사실….”
헨리가 그런 현승의 얼굴을 살피며 머뭇거리기도 잠시.
“이 절반 오는데도 십 년이 넘게 걸렸기 때문에 얼마나 더 걸릴지 확답드리기 어렵습니다.”
솔직한 상황을 토로했다.
“무엇보다 현재로서는 성공할 수 있을지도 아직 미지수인 상태라….”
현승의 얼굴 위로 다시금 어두움 그림자가 드리웠다. 세상이 귀 뒤로 아득하게 밀려나는 기분이었다. 부풀어 올랐던 기대라는 풍선이 “팡”하고 터져 버린 양 심장이 내려앉았다.
“아, 그렇군요….”
마냥 떼를 쓴다고 될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안다. 해내라고 한들, 돈을 얼마를 준다고 한들 될 일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다. 알고 있는데….
“허무맹랑한 소리로 들리실 수 있으나, 저는 돈이 아주 많습니다. 몇 년 치 연구비든, 전부 다 지원해 드릴 수 있으니까, 꼭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연구를 이어 나가 주실 수 있겠습니까?”
조그만 가능성이라도 있는 거라면, 아버지를 위해서라도 포기할 수 없었다. 현승은 거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지는 심정으로 헨리의 손을 덥석 마주 잡았다.
“음, 아무래도 귀를 꼭 고쳐 주고 싶은 분이 계신 건가 보군요?”
“예, 사실 저는 작곡가입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청신경이 아예 다 죽어 버려서, 보청기도 인공 삽입 수술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는 잠시 텀을 두고 덧붙였다.
“근데 제가 만든 곡을 꼭 듣고 싶으신지, 매일 악보를 보느라고 밤잠을 설치세요.”
현승은 전생에서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며 봤던 수백 장의 닳아버린 악보 제 노래가 흘러나오는 스피커에 손을 올려놓은 채, 눈물을 쏟아 내던 아버지의 모습을 단 하루도 잊어 본 적이 없었다.
이제는.
아버지의 귀를 고쳐드리는 것이 제 인생의 소원이자, 한이 될 정도였다.
“아버지의 마음도, 현승 씨의 마음도 알 것 같군요.”
헨리는 공감한다는 양 현승의 손등을 가볍게 두들기며 말을 이었다.
“저도 아버지가 선천적으로 농인이십니다. 그래서 이 연구를 시작한 거고요. 절대 포기할 일 없을 테니, 현승 씨도 희망을 잃지 마세요.”
현승의 동공이 흔들렸다. 이 사람이라면 어쩌면, 아버지의 귀를 고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스친 까닭이었다.
이내 현승은 같은 아픔을 지닌 사람의 앞에서 살면서 처음으로 무너져 내리듯 예를 갖춰 허리를 푹 숙여 보였다.
아아.
누군가에게 정중히 허리를 굽혀 본 게, 언제가 마지막이더라?
“꼭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네, 정말 너무 감사합니다.”
기억조차 가물가물하지만….
우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만족스러운 방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