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132)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132화(132/482)
다큐멘터리 촬영을 끝내고 뉴욕으로 돌아온 이든은, 제집이 아닌 다른 이의 집부터 찾았다.
띵-동!
대문에 달린 벨을 누르니, 머지않아 친숙한 인물이 모습이 드러냈다.
“이든-!”
이든을 맞이한 그는, 뉴욕필하모닉의 지휘자이자 음악 고문 직책을 역임하고 있는 폴이었다.
“오늘 파리에서 돌아온 거 아닌가? 좀 쉬고 내일 보면 될 텐데, 무슨 일로 왔나?”
폴은 묻는 말과는 달리 반가운 기색을 보이며, 들어오라는 듯 슬쩍 몸을 비켜 보였다.
“선생님께, 개인적으로 자문할 일이 있어서요.”
“우선 들어오게, 차 한 잔 줄까?”
“그럼 감사하죠. 따듯한 걸로 한 잔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든은 거실에 널찍하게 자리한 소파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주위를 찬찬히 살폈다.
‘와….’
미국 내 가장 영향력 있는 지휘자라는 명성이 허풍은 아니라는 양, 거실 한쪽에는 온갖 트로피가 빼곡히 진열된 채였다.
하물며 투명 케이스 안에는 세계적인 거장들도 손에 한 번 쥐어보기 힘들다는 역사와 유래가 깊은 악기들도 가득했고….
‘저건 경매로도 구하기 힘들다던데….’
진귀한 악기들 앞에서 잔뜩 벌어진 입술 사이로 침이 흐르려던 찰나였다.
“자, 마셔. 파리 다녀온다고 피곤했을 텐데, 피로 해소에 조금 도움이 될 걸세.”
“감사합니다.”
“여유롭게 차 마실 동안 기다려 주고 싶은데, 혹시 자문할 일이라는 게 뭔가?”
“아, 그게 말이죠….”
이든은 마시려던 찻잔을 고스란히 내려놓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다큐멘터리에 쓰일 장면으로 실험 카메라를 촬영했는데, 제가 노숙자 행색을 하고 길거리 연주를 하는 거였습니다.”
“웁스, 자네가 노숙자 꼴을 하고 파리 길바닥에서 바이올린 연주를 했단 말이야?”
“네, 제가 이든 스미스라는 걸 몰라도 과연 사람들이 제 연주를 들어줄까? -라는 호기심으로 시작된 일이었죠.”
“결과는 어떻게 됐지?”
그 물음에 이든이 지난 기억을 복기해 보기도 잠시.
“처참했죠.”
짤막하게 그때 상황을 표현해낸 이든이, 멋쩍은 웃음을 터트리며 말을 이었다.
“한 시간을 연주했는데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어요. 다들 잠깐 흘겨보더니 본인 갈 길 가기 바쁘더라고요.”
“이런, 다들 듣는 귀가 부족한가 보군. 파리 쪽 필하모닉 애들은 뭐 하고 있었대?”
“그런데 제가 마지막 연주를 끝냈을 때, 방금 지휘자님이 하신 말씀과 비슷하게 말하는 청년을 마주했어요.”
폴이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청년?” 하며 되물었다.
“네, 안 그래도 궁금해하실 것 같아서 영상 담아왔는데 보실래요?”
“그래, 한번 보여 주겠나?”
이든은 곧장 휴대폰에 담아 온 영상 파일을 재생시켰다.
영상 속에는….
노숙자 행색을 한 남자가 무관심하게 지나치는 행인들 사이에서 ‘Paganini: 24 Caprices’의 연주를 시작했다. 폴은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정말 영락없는 노숙자 꼴이구만.’
이런 행색을 하고 있었다면, 자신 같아도 가까이 다가가지 않았을 터였다. 물론 이 정도의 연주라면,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나마 지켜봤겠지.
‘녀석도 참….’
폴은 영상 속 이든이 제 연주에 완전히 심취해 있다는 것이 느껴져, 절로 웃음이 나왔다. 길거리 연주이거늘, 누가 보면 국제 대회라도 참가한 줄 알겠군.
영상 속에서 흘러나오는 선율에 집중하기도 잠시.
“음?”
폴은 화면 가까이 목을 쭉 빼며, 눈매를 좁혀 보였다.
“이 청년인가?”
그 물음에 이든이 화면을 보고는, 자신도 몰랐던 장면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 맞긴 한데….”
둘은 화면 속 담긴 청년의 기이한 모습에, 액정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처럼 다가갔다.
‘허공에 대고 뭐 하는 거지…?’
폴은 청년의 몸짓과 손가락의 움직이는 모양새를 유심히 들여다봤다. 예상이 맞는다면, 청년은 지금 이든의 독주 연주에 맞춰 반주자로서 함께 연주해 주고 있는 양 보였다.
그래.
허공에서 튕겨대는 손이라던가 고개가 흔들리는 모양새가 단순히 시늉이 아니라, 바이올리니스트가 지닌 습관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었던 까닭이었다.
한 마디로….
저 청년은 있지도 않은 허상의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바이올린을 좀 켤 줄 아는 사람인 것 같군.”
“연주에 심취해 있어서, 이러고 있는 줄 몰랐네요.”
“이 청년과 대화도 나눠봤다고 했지?”
“네, 따로 바이올리니스트란 말은 없었고, 작곡가라고….”
폴은 “작곡가?”하고 중얼거리고는 가볍게 웃으며 덧붙였다.
“자네가 이런 노숙자 꼴을 하고 있는데도, 연주를 듣는 것도 모자라, 허공에 반주해 주고, 말까지 걸어온 걸 보면 이 청년도 음악에 단단히 미친놈인가 보군.”
“좀 특이한 청년이긴 했습니다. 자기 곡에 세션을 서 달라며, 원하는 만큼 값을 치르겠다고 하더라고요. 백만 불을 불러도 상관없다면서….”
“백만 불? 허풍은 좀 있는 것 같군. 이 청년이 나랑 비슷하게 얘기했다는 거지?”
“네, 다들 듣는 귀도 정보력도 없는 것 같다면서 근방에 필하모닉은 오늘 쉬는 날이냐고 하더군요.”.
“확실히 허풍이 좀 있는 놈이야. 아무튼 그래서 자네는 세션을 해 주겠다고 했나?”
“아니요, 명함만 받아왔습니다.”
폴은 이든이 내민 명함 한 장을 앞뒤로 훑어보며 중얼거렸다.
“작곡가라….”
그리고는 명함에 적힌 ‘HS’라는 이름을 진득하니 바라봤다. HS는 이름의 약자일까? 왠지 모르게, 구미가 당기는 이름이다.
계속해서 명함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조금 전 허공에 대고 바이올린을 연주하던 청년의 모습이 오버랩되어 아른거렸다.
비록.
실제로 바이올린을 연주한 건 아니라지만, 폴은 청년이 움직이는 손만 보더라도 어떤 연주를 들려줬을지 알 수 있었다. 아주 수준급의 실력이었다.
어쩌면.
필하모닉의 반주자로서 손색없는 정도일지도 모르겠다.
“뉴욕필하모닉에 정식으로 초청하고 싶은데.”
“이 청년을 말입니까?”
“응, 얘기를 좀 나눠 보고 싶어져서 말이야.”
그 말에 이든이 놀란 기색을 보이기도 잠시.
“네, 바로 연락해 보겠습니다.”
이내 은은한 미소를 띠며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자신이 아는 폴은….
성미가 급하고, 빠른 피드백과 결과물을 좋아한다. 그런 그의 입에서 얘기를 나눠 보고 싶다는 얘기가 나왔다는 건, 아주 빠른 시일 내에 뉴욕필하모닉에….
아니, 아니지.
폴의 눈앞에 청년을 데려와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하나.
원래 인생사라는 게 제 마음처럼 되질 않는 법.
뚜르르르르르르-.
길어지는 신호음이 한 번.
뚜르르르르르르-.
두 번, 세 번, 네 번.
뚜르르르르르, 툭-.
연이어 걸었더니, 아예 전화가 끊겨 버렸다.
“안 받아?”
폴은 답답하다는 양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발을 동동 구르며 같은 자리를 빙글빙글 맴돌았다.
그리고는 이내.
무언가 결단을 내린 듯, 소파에 앉으며 차분하게 덧붙였다.
“연락이 안 된다면, 이 명함에 기재된 회사로 공문을 발송해 봐야겠군.”
“네, 바로 요청하겠습니다.”
폴은 고즈넉한 오후를 보내고 있었다.
이든이 찾아오고.
청년의 영상을 보여 주기 전까지는.
물론.
지금도 아주 고즈넉한 오후였다.
“얼른 만나서 얘기를 나눌 수 있게 된다면 좋겠군.”
운명 교향곡에서 절정이 찾아오기 직전, 서정적인 전개와 같은, 심해처럼 조용하되….
어쩐지.
폭풍이 몰아칠 것만 같은 그런 고요한 오후였다.
* * *
최 이사는 오전부터 기분이 영 좋지 못했다.
바로.
자신의 바운더리 안에, 앙숙이랄 수 있는 박 전무가 쳐들어온 까닭이었다.
“전무님, 2팀에는 무슨 일이십니까?”
“업무적으로 물어볼 게 있어서죠.”
“따로 연락하시지, 여기까지 왜….”
“2팀 바쁜 거 뻔히 아는데, 제가 와야죠.”
박 전무는 싱긋 웃으며 2팀 내부를 훑어보고는 덧붙였다.
“최 이사님, 저랑 잠시 얘기 좀.”
그리고는 사무실 내부에 있는 소회의실로 홀랑 들어갔다.
“후-우.”
최 이사는 작게 심호흡을 해 보이고는, 그를 따라 소회의실로 들어갔다. 박 전무의 능글스럽게 웃는 얼굴로 보아, 뭔가 아쉬운 소리를 하러 온 것이 분명해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박 전무는 바로 말을 놓으며, 자신을 불러왔다.
“최 이사.”
“왜.”
“알려 줘라.”
“뭘?”
박 전무가 망설이기도 잠시.
“혹시 HS, 저번에 말한 개인 앨범 언제 발매한대?”
“그거 물어보려고 여기까지 행차하셨어요?”
“뭐, 1팀에서 겹쳐 발표해 봤자 좋을 게 없으니까.”
그 말을 하는 박 전무가 왠지 꼬리를 만 강아지처럼 보였다. 물론 귀여워 보인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그저.
천하의 박 전무가 ‘HS’의 음원을 피해 가고 싶은 장애물로 여긴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하면서 내심 기분이 좋아졌다.
“말해 주고 싶은데, 아직 정해진 게 없어.”
“치사하게 그럴 거냐?”
“정말 휴가 끝나고 얘기해 봐야 해.”
박 전무는 영 미심쩍다는 듯 침음을 흘려 보였다.
하나.
정말 아무것도 정해진 건 없었다. 휴가 중이라, 따로 확인하지 않은 이유도 있거니와, 계속해서 곡이 들어오는 통에 몇 곡이나 수록할지도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럼 혹사 뭔가 정해지면….”
박 전무가 어렵사리 말을 이으려던 찰나.
똑, 똑, 똑-!
2팀 직원이 짧게 노크를 한 뒤, 문 사이로 비집고 들어왔다.
“저, 최 이사님, 죄송하지만-.”
“얘기 중에 그렇게 불쑥 들어오면 되겠나?”
최 이사의 날카로운 물음에 직원은 사시나무 떨듯 몸을 떨어 보이고는 재차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래서, 무슨 일인가-?”
“팩스가 하나 들어왔는데, 이건 이사님께서 직접 확인해 보셔야 할 것 같아서요….”
그때 박 전무가 2팀 직원 손에 들려 있는 서류를 뺏으며 말했다.
“알겠으니까, 이만 좀 나가주겠나?”
“아, 네네….”
박 전무는 직원이 문을 닫고 나간 걸 확인하자, 못한 얘기를 이어 나갔다.
“혹시 예상 날짜라도 나오면 말해 줘.”
“내가 왜.”
“자꾸 그렇게 나오면, 나도 어쩔 수 없어.”
“왜? 네 손에 들린 것도 빼돌리게?”
“내가 애냐?”
“몇 달 전에는 애였나 봐?”
“그래, 이젠 아니고.”
최 이사는 바로 인정하는 그를 보자, 기분이 묘했다. 요즘 부쩍 변했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나, 자신이 저지른 과거의 잘못을 순순히 인정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괜히 치부를 들쑤신 것 같아 기분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박 전무.”
최 이사는 괜스레 그를 불러 세웠다.
“촌스러운 넥타 이나 바꿔.”
“이거 네가 사준 거잖아.”
“그래, 무려 10년 전에.”
둘이 마주 앉아 시 덥잖은 얘기나 하고 있노라니, 왠지 처음에 같이 일하던 신입 때로 돌아간 것 같았다.
‘그때도 많이 싸웠지.’
최 이사가 회상에 잠겨 들던 찰나였다.
“최 이사, HS 유럽 간다고 하지 않았어?”
슬쩍 서류를 살펴본 박 전무가 귀신이라도 본 것 같은 얼굴로 물어왔다.
“응, 그렇게 들었어.”
“근데 왜 여기서 얘를 찾아? 어?”
“무슨 소리야?”
“내가 벌써 눈이 침침해졌나?”
뜬금없는 소리에, 최 이사는 박 전무 손에 들린 서류를 황급히 빼앗았다.
그리고는 흘러내린 안경을 바로 쓰고는, 서류를 천천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어-?’
최 이사는 미간을 좁히며 다시금 서류를 확인했다.
그도 그럴게.
영문으로 이뤄진 서류 맨 상단에….
「 New York Philharmonic 」
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던 까닭이었다.
‘말, 말도 안 돼….’
두 번, 세 번 다시 보더라도 서류에는, ‘HS’를 정식으로 뉴욕필하모닉에 초청하여 대화를 나눠 보고 싶으니 빠르게 답변을 달라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물며.
모든 경비를 지원하겠다는 약속과 함께, 현 음악 고문관으로 역임 중인 폴 포터의 사인까지 새겨진 정식 요청문이었다.
대체.
여행을 떠난 그 녀석은 뭘 하고 다니길래, 이런 곳에서 공식 초청 문서가 날아오게끔 하는 거지?
“최 이사….”
“왜….”
“너 뉴욕필하모닉에서 보낸 서류 받아 봤냐?”
“받아 봤겠어?”
“그러게, 나도 처음이야.”
“나도 처음이야.”
“녀석 때문에 이런 첫 경험이 다 생기네.”
최 이사와 박 전무는, 오랜 시간 연예계 바닥을 굴러다니며 산전수전을 다 겪고 많은 협업과 협력관계를 맺어 왔지만, 뉴욕필하모닉은 처음이었다.
“아니….”
그들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뉴욕필하모닉’이라는 글자 앞에 서서히 몸이 굳어 갔다.
“뭐가 대체 어떻게 된 거야….”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고 했던가?
때마침 회의실 문 너머에서 “최 이사님-!” 하는 친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아.
호랑이가 아니라, 호랑이 어미가 찾아온 격이라고 하는 게 맞으려나?
‘그래, 거의 어미지.’
최 이사는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문 너머의 사람은 이 내용에 대해 꼭 알아야 하는 사람이라고 판단했다. 그리고는 이내 “들어와-.” 하며 점잖게 소리쳤다.
이윽고.
열린 문틈 사이로 김 실장이 정중하게 인사를 건네며 회의실 내부로 들어왔고.
“미팅 끝나고 복귀하는 대로 회의 하….”
그는 최 이사 맞은편에 앉은 박 전무를 확인하고는, 황급히 고개를 숙여 보였다.
“박 전무님도 계신 줄 몰랐네요. 죄송합니다. 그럼 먼저 나가 있겠습니다.”
최 이사는 회의실을 빠져나가려던 그를 불러 세웠다.
“김 실장, 괜찮으니까 들어와.”
“예? 두 분이 할 얘기 있으신 거 아닌가요?”
“이미 나눌 얘기는 다 나눴고….”
그리고는 제 손에 들린 서류를 김 실장에게 내밀며 첨언했다.
“이건, 내가 아니라 자네가 확인해 봐야 할 내용 같아서.”
공손히 서류를 전달받은 김 실장은 확인해 보겠다는 말과 함께 진지한 얼굴로 한참이나 서류를 살펴댔고.
점점.
그의 얼굴 위로 아연실색한 표정이 번져 가더니.
“이 녀석….”
이내 서류를 들고 있던 손이 바닥을 향해 힘없이 툭 떨어졌다.
“스위스랑 스페인 가서 끼 부리지 말라고 했더니…,”
그리고는 혼자만 알아들을 법한 말들을 재차 중얼거렸다.
“이번에는 뉴욕이냐…?”
박 전무의 눈에는 지금 김 실장의 모습이 마치 바람 난 현장을 덮친 남자친구 같아 보였지만,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 들 수는 없었다.
맞다.
저렇게 세상 다 잃은 표정을 짓는 이의 앞에서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하-아.”
김 실장은 깊은숨을 내보이고는 애써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제가 현승이 통해서 확인해 보겠습니다.”
“그래, 어떻게 된 건지 내용 확인하는 대로 연락해 주고.”
한편.
소회의실을 나선 김 실장은 곧장 내용 확인을 위해 ‘금쪽이’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전원이 꺼져 있다는 안내만 흘러나왔다.
가만있어 보자….
설마 뉴욕필하모닉에서 작곡가로 현승을 데려가려는 건가? 김 실장의 생각으로는, 그게 가장 유력한 이유였다.
[ 너 끼 부리고 다니지 말라고 했지? ] [ 하다 하다 이제 뉴욕에서까지 찾아. ] [ 진짜 이러면 나 오늘 또 악몽 꾼다고. ]다급히 문자를 보내기 위해 손가락을 바삐 움직이기도 잠시.
[ 민현승, 뉴욕필하모닉에서 소고기 사준다고 하면 따라가지ㅁ…. ]이내 입력하고 있던 내용을 지워 버렸다.
“휴, 됐다.”
사실.
현승이 앞으로 뭘 하든, 어딜 가든 존중해 줘야 하는 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전부다. 그래, 큰물로 나가, 더욱 행복할 수 있기를 바라야겠지.
무엇보다.
자신은 현승이처럼 돈으로 붙잡을 수 있는 여건도 없고, 뉴욕필하모닉 같은 세계적인 관현악단보다 제 곁이 더 좋을 거라 말할 수도 없었다.
‘쿨하게, 어른답게, 남자답게! 갈 거면 가라! 나도 안 잡는다!’
이윽고.
마음을 다잡은 그가, 차분히 문자를 보냈다.
다만, 이 정도에서 그쳤어야 했는데-.
[ 아, 그리고 한국에는 며칟날 들어오지? 마중 나갈까? ] [ 내가 한국 돌아오면 내 식권 다 너 줄게. ] [ 커피도 맨날 벤티로 사줄게. 아니다. 자이언티로 사줄게. ]결국 김 실장은 쿨하지 못한 남자가 되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