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138)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138화(138/482)
이영아는 그토록 고대하던 ‘HS’의 곡을 받게 되었다는 사실에, 몹시 기뻐했다.
얼마나 기뻤냐고?
내일모레 서른인데, 길거리에서 펄쩍 뛰며 환호성을 내지를 정도였달까.
그래.
개인적인 연락은 물론이고, 회사를 통해 정식 러브콜까지 보내며 청했던 구애가 헛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물론, HS의 개인 앨범 수록곡이긴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연예계라는 곳이 본래 서로 피처링도 해 주고, 곡도 써 주면서 서로 품앗이해 주는 곳이니까.
다음을 기약해 봐야겠지.
이영아는 우선 이번 피처링부터 잘 해내자는 마음가짐으로 연습에 몰두했다.
눈떠서 눈 감는 순간까지.
밴을 타고 이동하는 중에도, 촬영 쉬는 시간에도, 화장실에서 볼일을 볼 때마저.
HS의 곡을 흥얼거리기 일쑤였다.
윤제이도 단번에 오케이 났다고 했으니, 자신도 본 실력을 제대로 보여 주겠노라고 다짐했다.
분명.
그럴 거란 자신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 왜….’
이영아는 녹음 부스 안에 서 있는 자신이, 멈추지 않는 쳇바퀴에 갇힌 햄스터마냥 느껴질 따름이었다.
그래.
잘생긴 얼굴과 프로페셔널한 디렉터 실력에 잠시 홀렸던 게 분명하다.
“한 번만 더 갈게요.”
“다시.”
“그게 아니라니까요?”
그녀는 문득 정신을 차려 보니.
지독한….
녹음 굴레에 빠진 채였다.
‘소문이 진짜였어.’
미남의 탈을 쓴 악마의 프로듀서, 그게 연예계에 은밀히 퍼져 있는 HS의 수식어였다. 그리고 그 진상을 정확히 알게 된 순간이랄까-.
“잠깐 10분만 쉬고 다시 갈게요.”
그 말에 이영아는 화생방에 갇혀 있던 군인마냥, 신속히 빠져나왔다.
“후웁-.”
그리고는 4시간 만에 마주한 바깥 공기를, 폐 깊숙이 들이마시던 찰나였다.
“선배님!”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 보니, 윤제이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서 있었다.
“어머, 제이야! 언제 왔어?”
“조금 전에요-.”
“요즘 한창 바쁘지 않아?”
윤제이는 제 손에 들린 커피를 건네며 말했다.
“그래도 선배님 오셨다니, 보러 와야죠.”
그리고는 비타민과 이온 음료가 가득 담긴 봉투도 마저 건네며 중얼거렸다.
“선배님이 너무 걱정되기도 하고….”
봉투를 확인하느냐고, 뒷말까진 듣지 못한 이영아가 마냥 해맑게 답했다.
“제이야, 정말 고마워!”
“이거 드시면서 조금만 더 힘내세요!”
“응, 조금만 더 하면 되겠지!”
“그, 그럼요! 그럴 거예요!”
이내 이영아는 비밀 얘기라도 하는 듯 목소리를 낮추며 속닥거렸다.
“소문으로만 듣다가, 직접 겪으니까-.”
“예, 예.”
“진짜 지독한 놈인 것 같아.”
“아, 그래요…?”
“지금도 무려 네 시간 만에 내보내 준 거라니까?”
“이, 이러언….”
윤제이는 더문이 최근에 일주일 합숙 녹음을 진행했었다는 얘기는 구태여 덧붙이지 않았다.
어차피.
맛보게 될 지옥이라면, 아무것도 모른 채 발을 들이는 게 좋지 않겠는가?
‘선배님, 죄송해요….’
윤제이가 때아닌 속죄를 이어 나가던 찰나였다.
“이영아 씨, 그만 노닥거리시고.”
때마침 HS가 헤드셋을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녹음한 테이크 들어 보니까 1절 코러스가 좀 아쉬워서 다시 갈게요.”
이영아는 마치 그의 말이 저승사자의 부름처럼 느껴졌다.
뭐랄까….
왠지 절대 따라가서는 안 될 것 같은 음습한 기운이 든달까?
“지, 지금요? 벌써 들어가나요?”
“예, 지금 9분 45초 지나고 있거든요.”
아아.
지독한 놈인 것 같다는 말은 취소해야겠다.
“네에….”
그냥 지독한 놈이었다.
* * *
다음 날이 밝아 오고….
“반가운 얼굴이 둘이나 있네-?”
문범재가 두 번째 타자로 녹음실에 발을 들였다.
“서, 선배님!”
소파에서 시름시름 앓아 가던 이영아는 대선배가 찾아온 탓에 꾸역꾸역 몸을 일으켜 인사를 건넸다.
“선배님 오신다고 해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리고는 이내 작별 인사도 함께 건넸다.
“만나 뵙게 되어, 너무 반갑지만 저는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문범재는 그녀의 몰골이 왜 저렇게 처참한지, 왜 곧 죽을 것처럼 목소리가 갈라지는지 이유를 알고 있었기에 얼른 가 보라며 배웅했다.
이내.
문범재는 녹음실 안에 둘만 남게 되자, 현승의 곁으로 다가가 장난스럽게 말을 건넨다.
“자네, 이러다가 가수 잡아먹는 작곡가라고 소문나는 거 아닌가?”
“에이, 그래도 이영아 씨는 쉬는 시간 빼면 12시간 정도밖에 안 했어요.”
보통의 녹음 시간보단 훨씬 긴 시간이었지만, 문범재는 그의 말에 공감한다는 양 끄덕였다.
“12시간? 영아가 엄살을 피웠군.”
그리고는 의기양양한 어투로 덧붙였다.
“나는 콘서트 연습 일정을 이틀 정도 비워 놓았지. 얼마든지 들어오시게.”
현승이 그 모습에 가볍게 피식 웃으며 맞받아쳤다.
“예, 그럼 목 풀 시간 안 드려도 되죠?”
“물론이지.”
그 말을 끝으로 문범재는 본인 스스로 녹음 부스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
.
.
머지않아 문범재는 넋이 나간 얼굴로 되물었다.
“뭐야? 정말 이렇게 끝이라고?”
현승이 두 번의 원테이크만에 오케이 사인을 보낸 까닭이었다.
고작 10분이다.
첫 녹음 때와 차이가 나도, 너무 나는 거 아닌가?
“예, 끝났으니까 얼른 나오세요.”
“콘서트 일정 빠듯하다고 일부러 봐준 거지?”
“에이, 그럴 리가요.”
“그런 게 아니라면, 이렇게 끝날 리가 없잖아!”
녹음 부스 창 하나를 앞두고 둘은 토크백을 통해 실랑이를 이어 나갔다.
“그러지 말고 한 번 더 하면 안 되나?”
“싫어요.”
“아, 왜! 딱 한 번만 더 해 보자니까?”
“안 돼요.”
이내 부스 밖으로 뛰쳐나온 그는, 현승의 옷자락을 잡고 늘어졌다.
“분명 자네도 아쉬웠잖아.”
“만족했다니까요?”
“아니, 거짓말하지 말게.”
“거짓말 아니에요.”
“자네 이렇게 호락호락한 사람 아니잖나?”
그의 물음대로 현승은 절대 사정 봐주며 녹음을 진행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지금 또한.
문범재의 콘서트 일정을 고려해, 봐준 것도 아니었다. 정말로 만족스러운 연주가 나왔기에 끝낸 거였다.
‘요즘 전국 콘서트 때문에, 거의 연습실에 틀어박혀 수련 중이라더니….’
확실히 목 자체가 이미 트여 있었던 탓에 완벽히 원하는 소리가 나와 준 모양이었다.
더군다나 문범재의 목소리를 대입해 만든 곡이라 그런지, 원테이크만으로 충분했다.
아니지.
더할 나위 없이 완벽했다.
그때.
문범재가 옆자리를 꿰차고 앉으며 물었다.
“그건 그렇고, 이게 타이틀곡 맞지?”
“아니요.”
“역시 그럴 줄 알… 어? 아니라고?”
“예, 아니에요.”
오늘따라 제 예상을 계속 빗겨 나가는 현승 때문에, 문범재의 동공이 뒤흔들렸다.
“그럴 리가? 아무리 들어도 이게 타이틀곡이었는걸?”
“아무튼 아니에요.”
“아니, 이 곡이 타이틀곡이 아니면 무슨 곡이 타이틀곡인데?”
그 물음에 현승이 침음을 흘려 보이기도 잠시.
“있어요, 청춘을 노래하는 곡.”
무언가 기대에 가득 찬 미소를 띠었다.
* * *
한편.
김광진은 오랜 옛 친구를 만나기 위해, 오랜만에 먼 길을 나섰다.
“형님-!”
그가 반갑게 부른 사람은 바로….
“이게 얼마 만인가-.”
연예계의 시조새, 이두석이었다. 둘은 아주 젊은 시절부터 호형호제하며 함께 성장한 사이랄 수 있었다.
“잘 지내셨죠?”
“그럼, 나야 늘 잘 지냈지.”
그가 김광진을 반갑게 맞이하기도 잠시.
“근데, 자네….”
위아래로 훑어보며 덧붙였다.
“옷차림이 왜 이런가…?”
김광진이 나이에 안 맞는 청재킷과 청바지를 맞춰 입고 나타난 까닭이었다.
“좀 젊어 보이지 않아요? 이렇게 입으면 마음마저 좀 젊어지는 기분이라.”
이두석은 마지못해 주억거렸고.
“우선, 정원으로 가서 얘기 나누도록 하지.”
이내 둘은 시시콜콜한 안부를 나누며, 정원 내 벤치로 걸음을 옮겼다.
“차 맛이 좋네.”
김광진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차를 한 모금 더 들이키고는 말을 이었다.
“어릴 때는 너무 싫었는데, 이젠 따스한 차만 한 게 없네요.”
“맞아, 자네는 몸에 열이 많다며 매일 냉수만 들이켰었지.”
둘이 동시에 가벼운 웃음을 터트리기도 잠시.
“형님.”
김광진이 그를 불러세웠다.
“저 이번에 다시 마이크를 잡게 됐습니다.”
그 말에 이두석이 화색을 띠며 물었다.
“음반을 내기로 한 건가?”
이두석은 젊은 시절 김광진의 음색에 끌려 친해졌다. 거친 듯 부드럽고, 마모된 듯 깔끔한 목소리, 그 독특한 음색을 듣고 있노라면 이런 저란 생각들이 정리되고 안정을 되찾았기 때문이다.
하나.
사람은 나이 앞에 한없이 작아지기 마련이다. 자신도 그런 이유로 현직에서 물러난 거고.
김광진 또한 다를 바 없었다.
사실상 음악 프로그램의 심사위원이나, 라디오 DJ로 활동을 이어 나갈 뿐, 십 년 전 발표한 리메이크 음반을 마지막으로 ‘가수 김광진’은 은퇴한 셈이니까.
그런 김광진이….
다시 마이크를 잡는다니, 실로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제 음반은 아니고요. 작곡가 HS의 개인 앨범 타이틀곡을 부르게 됐어요.”
크흡―!
이두석은 까딱하면 사레에 걸릴 뻔했다.
작곡가 HS라면….
자신의 대국 상대인 ‘현승’이 아니던가?
“형님, 괜찮으세요?”
“어, 괜찮네-.”
“LS 엔터 소속 작곡가니까, 이름은 들어 보셨죠?”
듣다마다, 종종 바둑도 같이 두는 사이지. -라는 말은 그냥 묵혀 두기로 했다.
아직 바둑을 이겨 보지 못했으니, 승패를 묻는다면 할 말이 없어지지 않겠는가?
“그건 그렇고, 왜 다시 노래를 부르기로 결심한 건가?”
“청춘으로 다시 돌려보내 준다는데, 안 부를 수가 있어야죠.”
이두석이 눈썹을 들썩이며 “청춘?”하고 되물었다.
“그게 무슨 말인가?”
“곡을 들어 보시면 무슨 말인지 아실 겁니다.”
김광진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근처에 서 있던 집사를 불러 세웠다.
“혹시 이 곡을 좀 틀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예,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이두석은 왠지 모를 긴장감에 휩싸였다.
아니….
기대감이라 표현하는 게 맞겠다.
‘광진이가 다시금 마이크를 잡겠노라 결심한 곡이라….’
하물며.
현승의 곡이라니, 기대하지 않을 수가 없는 대목이었다.
이윽고.
정원에 설치된 스피커를 통해 곡이 흘러나오자,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래, 어쩌면 자신도 청춘을 잠시 맛볼 수 있을지도 모르지 않나?
─ ♬ ♬ ♬
자유로움이 느껴지는 기타 선율로 시작되었고.
─ ♬ ♬ ♬
색소폰 소리가 풍성하게 화음을 만들어 낸다.
다소.
촌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을 법한 악기의 선율이 멜로디 위를 통통 튀어 다니며 밝고 힘찬 에너지를 뿜어냈다.
어쩐지 곡을 듣고 있노라니….
길거리 위에서도 무서울 게 없었던, 마이크 하나를 쥐고, 좋은 노래를 들으면 행복에 겨워 웃던….
그래.
가장 화려하고.
가장 빛나고.
가장 뜨거웠던.
우리의 청춘이 환하게 타올랐다가, 저물었다.
이내.
이두석이 주름이 자글자글하게 자리 잡은 눈을 떠내자, 장강(長江)의 뒷물이 되어 버린 김광진이 눈에 가득 차올랐다. 김광진의 눈에도 자신은 마찬가지일 터였다.
“…….”
둘은 한동안 아무 말도 없이 눈을 맞췄다.
아마도.
같은 추억을 엿보고 왔으리라.
이내.
이두석이 잠긴 목소리로 넌지시 말을 꺼냈다.
“정말 좋은 곡이군.”
“무어라 더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좋은 곡이죠.”
김광진은 여운에 젖은 얼굴로 덧붙였다.
“제가 이 곡이 담아낸 청춘을 잘 표현할 수 있을지 염려스러울 정도로 말이죠.”
노파심 섞인 그 말을 잠자코 듣고 있노라니, 김광진의 주름진 얼굴 위로 젊었을 적 얼굴이 겹쳐 보였다.
“김광진, 또 그러는군.”
이두석이 피식 웃으며 되물었다.
“자네는 젊은 시절, 가요제를 나가기 전날에도 비슷한 말을 했었지, 기억나나?”
“아, 그랬었죠. 전날 밤부터 졸리다는 형님 붙잡고 칭얼거렸던 것 같은데-.”
“그런데, 지금 한번 보게나. 결국 가요계의 아버지라고 불리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는 이내 어깨를 가볍게 토닥이며 첨언했다.
“분명히 이 곡도 잘 해낼걸세.”
걱정으로 얼룩졌던 김광진의 얼굴이 서서히 풀려갔다. 맞지, 그립기는 해도, 후회 없는 삶이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왔으니까.
이왕 그렇게 살아온 삶….
앞으로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환하게 저물어도 되지 않을까?
“이 곡을….”
김광진이 상념에 잠겨 있기도 잠시.
“우리 다음 세대, 그리고 다음 세대가 자신들의 젊음을 떠올리며 계속해서 불러 주기를 바랍니다. 그럴 수 있도록, 제가 첫 타자로서 잘해야겠지만요.”
“아마 그럴 걸세.”
이두석이 한 차례 텀을 두고 덧붙였다.
“그리움을 담은 희대의 명곡은 절대 잊히지 않는 법이니까.”
그래.
머릿속에 깊게 남은 선율의 잔상들로 보아….
“분명 그럴 걸세.”
이 곡은 후대에도 재차 불릴 거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