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140)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140화(140/482)
이번 개인 앨범에 수록하고자 만든 5곡 중, 4곡은 모든 작업을 끝마친 상태였으나….
아직 한 곡만이 보류로 남겨 둔 채였다
명확히 말하자면….
변화를 거쳐 나가고 있다고 봐야겠지.
탁, 타닥, 탁-.
완성되지 않은 첫 번째 트랙은 현승의 손에 의해 재차 변화를 이뤄 나가는 중이었다.
‘out to sea’
첫 변화로는 곡명이 생겼고, 길다면 긴 제 전생과 현생을 단 2분으로 압축하여 담아냈다.
가사는 단 한 줄도 없었다. 구구절절한 제 인생사를 적어 내려가고 싶지는 않던 까닭이다.
아아.
가사뿐만 아니라, 제일 중요한 세션도 없으니 이게 제일 큰 문제라면 문제였다.
탁, 타닥, 탁-.
물론 가상악기로 가닥은 만들어 나가고 있다지만….
‘실제 연주만은 못하네.’
백 프로 마음에 쏙 드는 선율이 나오지 않고 있었다.
꼭.
파리에서 바이올린을 켜던 홈리스의 세션이어야 하는 건 아니다. 얼추 비슷한 연주를 흉내 낼 수 있는 바이올리니스트야 많아질 테니까.
하나.
자신이 반주자가 되어, 함께 연주하고 싶게끔 느껴진 연주는 처음이었다. 실력, 그 이상의 무언가가 동반된 연주였으니 더욱 끌렸던 거겠지.
똑, 똑, 똑.
그때 마침 김 실장이 현승의 작업실을 찾았다.
“아직도 작업 중이야?”
“이제 뭐 거의 다 끝났죠.”
그리고는 작업 창을 곁눈질로 살펴보고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지금 완성 음원이 총 4곡만 입고 됐던데, 나머지 한 곡은 어떻게 할 생각이야?”
“아직 미완성이에요.”
“그래? 그 곡까지 완료가 되어야, 얼추 발매 일자를 잡고 홍보 자료도 꾸리고 할 텐데.”
현승이 그 말에 고민해 보기도 잠시.
“서두를 거 없잖아요?”
“그렇기는 하지.”
“그럼, 이렇게 하죠.”
설렁설렁 만들어 발표하는 건, 안 되지. 나름의 제 인생과 이야기를 담아낸 곡이니까.
“일주일 있다가 다시 얘기해 보는 걸로 하죠.”
딱.
일주일만 기다려 보고도, 연락이 안 오면 그때 결정하자. 현승은 그렇게 마음을 먹었다.
“그래, 편하게 얘기해.”
김 실장은 작업 창을 슬쩍 가리키며 덧붙였다.
“그런 의미로 저 곡, 한번 들어 봐도 돼?”
“안 되죠.”
“하여간, 바로 알겠다고 해 주는 적이 없어.”
현승을 입술을 삐죽거리던 그를 바라보다 피식 웃고는, 스페이스 바를 눌러 방금까지 작업 중이던 트랙을 재생시켰다.
“그래, 이렇게 들려줄 거면서 꼭 튕….”
김 실장은 곡이 시작된 지 단 3초 만에 인상이 찌푸려졌다.
‘이게 뭐야….’
음습함이 서린 피아노의 음률은 듣는 이로 하여금 괴로움을 선사했다. 자신의 전생을 담아낸 구간이니, 묘하게 불쾌감이 온몸을 기어오르기도 할 거고.
일부러 그런 연주를 녹여 낸 것이니, 지금 김 실장의 반응은 아주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곡이 절정을 향해 치달을수록 현승의 입가에는 웃음이 피어올랐다.
1분 30초….
“됐다.”
현승의 작은 속삭임과 동시에.
갑자기 바이올린이 천사의 나팔 소리마냥 신비로운 선율을 마구 쏟아 냈다. 이 곡은 마치 두 개의 단면으로 이뤄진 흑과 백을 담아내듯, 극적인 변조를 줬다.
아니, 이 정도면 반전이지.
그래.
지금 김 실장의 표정이 서스펜스 넘치는 반전 영화라도 보고 있는 듯한 걸 보면 반전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을지도.
어느새.
약 2분의 곡이 ‘탁’하고 끝이 났고….
“이야, 야….”
김 실장은 말을 잇지 못한 바싹 마른 제 입술만 재차 달싹거렸다. 비단, 말을 잇지 못한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잠깐….’
현승도 곡을 듣고 있노라니 별안간 악상 위로 조각 조각난 장면들이 퍼즐처럼 떠올랐다. 이 퍼즐들을 맞춰 하나의 그림으로 만든다면 제법 그럴싸할 것 같기도 한데….
“음….”
이렇게 된 거 이번 앨범은 뮤비 제작에 좀 더 관여를 해 볼까?
“김 실장님.”
현승이 상념에 빠져 있기도 잠시.
“곡 들어 보자고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갑자기 너 왜 그래?”
“그런 의미로 이만 나가 주시겠어요?”
“진짜 치사해-!”
지금 현승은 얼른 이 조각들을 기획서 위에 나열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 * *
현승은 기획서 작성을 끝낸 뒤, 이메일 전송 완료가 되었다는 창을 보며 나름 뿌듯하다는 양 씨익 웃어 보였다.
이쯤 했으면, 결과물은 기대해 봐도 되겠지.
“후우….”
작업부터 기획서까지, 뻐근해진 손가락을 풀며 한숨 좀 돌리던 찰나였다.
쿠웅, 쿵, 쿵-!
김 실장은 거의 세상 큰일이라도 난 것마냥 호들갑스럽게 작업실 문을 두들기며 찾아왔다.
“민현승! 현승아-!”
“하루에 두 번 보기는 싫은데….”
“지금 말장난할 때가 아니라.”
“그럼 뭐할 때인데요?”
“우선 그 옷, 그 옷 좀 벗어 봐.”
갑작스러운 발언에 현승의 얼굴은 충격으로 물들어 갔다.
.
.
.
“대뜸 옷 벗으라고 해서 얼마나 놀랐는지….”
“지금 너무 급하니까 그렇지.”
“그래도 자초지종은 좀 알고 벗어야죠.”
정장으로 갈아입은 현승은 몹시 불편한지 오만상이었고….
“우선 가만히 좀 있어 봐.”
김 실장은 아들 첫 면접 보내는 엄마마냥 걱정이 가득 묻은 얼굴로 넥타이를 매 주며 말을 이었다.
“뉴욕 필하모닉에서 공문이 온 것도 놀랄 일인데, 직접 찾아왔다니 지금 정신이 온전하겠냐.”
“온전치 못할 건 뭐예요-?”
“설마 뉴욕 필하모닉에 대해 잘 모르는 건 아니지?”
“잘 알죠, 전 세계 3대 관현악단.”
“그래, 그런 곳에서 오로지 너를 만나겠다고 한국에 왔다는데, 넌 놀랍지도 않아?”
현승이 제 턱을 몇 번 긁적이고는 되물었다.
“아니 그러니까, 저를 왜 찾아온 거래요?”
“난들 알아? 그냥 너랑 할 얘기가 있다잖아.”
김 실장의 손에 이끌려 서둘러 발걸음을 옮기다 보니, 어느새 사내 접견실 앞에 도착했다.
“자, 여기야.”
보통,
대표가 각별한 손님을 맞이할 때 쓰는 접견실로, 이용하는 경우가 거의 없는 곳인데….
그만큼 세계 3대 오케스트라 악단이라는 뉴욕 필하모닉의 영향력이 대단하다는 거겠지.
“근데 정말 뉴욕 필하모닉이 저를 왜 찾는지 도통 모르겠다니까요?”
“우리도 몰라. 근데, 더 기다리게 할 수는 없으니까 만나서 얘기해 봐.”
김 실장은 현승의 옷깃을 툭툭 털어 주며 덧붙였다.
“저번에 보니까 영어는 제법 잘하는 것 같아서, 통역사는 따로 안 불렀어.”
“예, 괜찮아요.”
“같이 들어가 주고 싶은데, 너하고만 따로 얘기 나누고 싶다는 바람에….”
“걱정 좀 그만하세요.”
현승은 “제가 애도 아니고….”하고 중얼거리고는 접견실의 문을 과감하게 두들겼다.
“작곡가 HS입니다. 들어가겠습니다.”
그리고는 벌컥 열린 문 사이로 빠르게 들어서, 인사를 건넸다.
“처음 뵙겠습니다. 작곡가 HS라고 합니다.”
고개를 들고 바라본 남성은, 이제 40대가 막 지나 보였으나 꽤 관리를 잘해 온 듯….
얼핏 보면 30대 정도로 보일 만큼 슬림한 체형과 세련된 인상을 지니고 있었다.
대체 누구길래, 무슨 이유로, 나를 찾아온 걸까.
“오랜만입니다.”
그의 입에서는 예상외의 말이 튀어나왔다.
‘뭐지?’
현승이 의미심장한 인사말에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잠시.
“뉴욕 필하모닉의 부악장이자 바이올리니스트인 이든 스미스라고 합니다.”
남성이 명함을 건네며, 곧장 본론을 꺼내 드는 바람에, 되물을 타이밍을 놓치고야 말았다.
“우선 거두절미하고, 우리 뉴욕 필하모닉의 지휘자를 맡은 폴이 당신을 만나 보길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
“명성 깊은 뉴욕 필하모닉에서 지휘봉을 잡고 계신 분께서, 한국의 작곡가를 만나 뵙고 싶다니….”
현승은 잠시 텀을 두고는 덧붙였다.
“좀 신빙성이 없는 이야기라서, 믿기지 않는군요.”
전생과 달리, 아직 자신은 아시아권에서 좀 알려진 정도이지 않은가? 뉴욕 필하모닉의 수장 격인 사람이 티타임을 요청해 왔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었다.
하나.
이든이라는 남성은 제 말에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았고.
“경비는 얼마나 들더라도 전부 다 대겠습니다.”
제 할 말만 이어 나갈 뿐이었다.
“저와 함께 뉴욕으로 가 주시겠습니까?”
현승은 영 내키지 않는 대목이었다.
공문까지 보내 온 걸 보면, 뉴욕 필하모닉의 사람은 맞겠지만, 안 그래도 개인 앨범 준비로 바쁜 이 와중에 순순히 따라 주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지금 한참 개인 앨범을 작업하던 중이라, 자리를 비우기는 곤란할 것 같네요.”
“그건 미처 알지 못했던 정보네. 그럼 개인 앨범 준비는 언제쯤 끝나십니까?”
“아직 그 곡을 연주해 줄 악기가 나타나지 않아서, 무어라 확답드릴 수가 없습니다.”
그 말에 이든은 처음으로 “악기?”라고 되물으며 반응을 보였다.
“악기라면, 세션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예, 맞습니다.”
“그걸 제가 해 드리면 어떻겠습니까?”
현승은 처음으로 살짝 구미가 당겼다.
안 그래도 바이올린 세션을 기다리고 있던 와중에, 뉴욕 필하모닉의 부악장으로 역임 중인 바이올리니스트가 먼저 세션을 해 주겠다고 한다니 확 끌리는 제안이 아닐 수가 없었다.
하나.
파리에서 만난 홈리스의 연주에서 느꼈던 전율을 제 곡에 녹여 내고 싶다는 욕심이 더욱 크게 자리한 채였다.
그래.
화려한 홀 위에서 허물만 그럴싸한 연주가 아니라, 포효에 가까웠던 그의 연주를 꼭 다시 한번 듣고 싶었다.
“공교롭게도 바이올린 세션을 구하는 건 맞지만, 이미 러브콜을 보낸 사람이 있습니다.”
“저보다 더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입니까?”
“아니요, 그냥 우연히 파리에서 만났던 홈리스입니다.”
“혹시 그 홈리스가 Paganini: 24 Caprices를 연주하고 있지는 않았습니까?”
그 물음에 현승은 고개를 휙 치켜들며, 그와 공중에서 눈을 마주쳤다. 너무 놀란 나머지 어떻게 알았냐는 물음은 나오지 않았지만….
“제가 파리에서 그 곡을 연주하고, 당신에게 명함을 받은 홈리스입니다.”
이든은 제 눈에 담긴 말을 읽어 내리기라도 한 양, 웃음기 섞인 얼굴로 부연했다.
“그때 치르신다던 연주 값은 저와 함께 뉴욕에 가는 걸로 대신 하는 건 어떠실까요?”
현승은 왠지 모를 허탈감에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아아.
자신이 조금은 바보 같다고도 느껴졌다.
‘좀 당한 기분인걸….’
공문에 이 내용을 한 줄 기재해 줬더라면, 기다리지 않았어도 될 일이지 않은가?
그래도.
대체로 굴러들어 온 돌이 뉴욕 필하모닉이라면 제법 가치 있는 기다림이었다고 할 수 있겠지.
지금.
현승의 머릿속은 또다시 악상이 가득 차올라 과부하가 오고 있었다. 오늘따라 머리가 잘 굴러가네.
“예, 따라가죠. 대신 세션을 해 주셔야겠습니다.”
“네, 제가 세션은 해 드린다니까요?”
“아니요. 이든, 당신의 세션은 물론이고.”
단호하게 말한 현승이, 잠시 텀을 두고는 묘한 흥분감에 휩싸인 얼굴로 덧붙였다.
“뉴욕 필하모닉 전체 말입니다.”
이윽고.
쨍그랑-!
이든은 마시려고 들었던 찻잔을 떨구고야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