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141)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141화(141/482)
HS와 만남을 끝내고 숙소로 돌아온 이든은, 힘이 빠진 탓에 소파 위로 축 늘어졌다.
그 청년이 뭐라고 했더라…?
“아니요. 이든, 당신의 세션은 물론이고.”
난생처음 듣는 말이었지.
“뉴욕 필하모닉 전체 말입니다.”
그래, 아주 황당한 제안.
‘하….’
아무리 먼저 저자세로 찾아왔다고는 하지만, 어떻게 세계적인 관현악단이라 불리는 뉴욕 필하모닉 전체를 세션으로 쓸 생각을 할 수 있는 거지?
정말이지.
첫 만남부터 지금까지 예측 불가능한 청년이다.
‘이럴 때가 아니지.’
이든은 몸을 일으켜 곧장 폴에게 전화를 걸었다.
과연.
폴은, HS의 제안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뚜르르르-.
궁금증을 품은 채 긴 신호음을 기다리기도 잠시.
─ 어, 이든.
수화기 너머에서 폴의 잠긴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마 뉴욕은 이른 오전 시간이겠군.
“혹시 주무시다가 깨신 거면, 나중에 전화 올릴까요?”
─ 아니, 그만큼 중요한 얘기겠지. 말해 보게나.
“작곡가 HS 씨와 만나고 오는 길입니다.”
─ 오, 그래도 순조롭게 만남이 성사된 모양이군.
“네, 그렇기는 한데….”
이든은 차분하게 아까 전 HS와 나눈 대화와 제안에 대해 부연해 나갔고.
─ 음.
그 얘기를 전해 들은 폴이 침음을 흘리기도 잠시.
별안간.
호탕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폴, 왜 웃으시는 거예요?”
─ 이거 참, 점점 더 궁금해지잖아.
“예? 뭐가요?”
─ 그 청년이… 아니지, 그 작곡가가 우리 뉴욕 필하모닉을 제 손으로 지휘해 보겠다는 뜻이지 않나?
“그렇죠. 전체 세션을 요청했으니….”
한차례 정적이 흐르고.
머지않아.
폴의 들뜬 목소리가 들려왔다.
─ 그럼 우리도 조건을 하나 걸지.
“역으로 조건을 걸자고요?”
─ 응, 우리 뉴욕 필하모닉을 지휘할 능력이 있다는 걸 증명해 보이면 세션을 해 주겠다고 말이야.
폴은 그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 걸까?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이미 반 정도는 승낙이 이루어진 셈이었다.
“네,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 빠른 시일 내로 뉴욕에서 만나게 된다면 좋겠군.
“일정 확인 후 또 연락 올리겠습니다.”
─ 그래, 고생하게.
전화는 그렇게 끝이 났다.
나름….
평화로운 오후였다.
* * *
현승은 이든으로부터 온 문자를 내려다보며 피식 웃어 보였다.
[ 당신의 제안을 받아들이겠습니다. 함께 뉴욕으로 가시죠. 단,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뉴욕에 가서 당신이 뉴욕 필하모닉을 지휘할 능력이 있다는 걸 증명해 주시면 전원 세션으로 참여하겠습니다. ]그리고는 머리를 긁적이며 대충 알겠다고 답장을 보냈다.
사실.
현승은 이미 그들을 데리고 어떤 연주를 할지 고민 중이었다. 머릿속이 부푼 팝콘마냥 악상으로 가득 차올라, 얼른 토해 내고 싶었다.
능력을 증명하는 일이야, 어려운 일도 아니니까.
‘뉴욕 필하모닉이라….’
현승은 제 손에 굴러들어 온 수많은 악기를 떠올리며 프로그램 창을 켠 다음, 온갖 가상악기를 찍어 나가기 시작했다.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중심으로.
비올라, 첼로, 콘트라베이스, 오보에, 바순, 클라리넷, 플루트, 트럼펫, 호른, 하프, 팀파니, 북까지….
하물며.
우리나라 전통 현악기인 가야금, 거문고, 아쟁, 해금까지 다 끌어와 사정없이 코드를 찍어 내려갔다.
탁, 타닥, 탁-!
덜어 내고, 더해 내는 건 전부 쏟아 낸 이후였다.
탁, 타닥, 탁-!
신들린 사람처럼 그 과정을 수없이 번복하기도 잠시.
“아.”
일순간 현승의 손이 멈췄다. 무언가 번쩍하고 떠오른 까닭이었다.
이내.
별안간 새로운 트랙을 생성했다. 요즘 부쩍 머리가 더 잘 돌아가는 기분이다.
역시 이래서 사람이 가끔은 멀리 나가서 머리를 식히고 와야 한다는 걸까?
그래.
이왕 자신에게 싸움을 걸었으니, 칼자루 정도는 쥐여 줘야겠지.
탁, 타닥, 탁-.
무엇보다 이래야 사람들도 의심을 좀 거둘 테니까.
탁, 타닥, 탁-.
한 명의 작곡가가 같은 시점에, 다른 필명으로.
탁, 타닥, 탁-.
다른 장르의 곡을 낼 거라고는 생각 못 하겠지.
탁, 타닥, 탁-.
현승은 뭐가 그리 재밌는지 작업하다 말고, 이따금 웃음을 터트렸다.
‘이 정도면 얼추 가닥은 잡혔나.’
기존 웅장함이 음습하던 퓨전 뉴에이지 곡과는 사뭇 다르게, 새로 만든 트랙은 리드미컬한 드럼과 베이스 그리고 신디를 얹어 찍어 내려갔다.
딸칵-.
이윽고 저장까지 완료한 현승이 기지개를 켜며 중얼거렸다.
“쉽게 지지만 말아 주면 좋겠는데.”
자신에게 건넨 말이었다. 아니지, HS에게 건넨 말인가?
뭐가 되었건.
이미 HS와 최지현의 싸움은 시작된 채였다.
* * *
그로부터 이틀 뒤….
현승은 뉴욕을 향하기 전 간단한 장비를 챙기기 위해 A&R 실을 찾았다.
김 실장은 그런 현승의 주변을 빙글빙글 맴돌며 걱정 어린 얼굴로 물었다.
“현승아, 정말 세션 때문에 가는 거지?”
“그렇다니까요.”
“막 도장 찍자고 해도 찍으면 안 돼.”
현승이 한숨을 작게 폭 내쉬고는 되물었다.
“제가 김 실장님 계약서도 몇 번이나 깠던 거 기억 안 나세요?”
“기억나지! 근데 혹시나 뉴욕 필하모닉이라는 이름에 혹해서….”
이내 현승이 공중에서 손을 휙휙 내저었다. 이든과 공항에서 만나기로 한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기에,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저는 이만 가 볼게요.”
그리고는 신속하게 가방을 챙겨 장내를 나가 버렸다.
쿵-.
김 실장이 굳게 닫힌 문을 아련하게 바라보던 찰나였다.
“걱정 안 하셔도 될 것 같은데요?”
옆에 서 있던 한 팀장이 피식 웃으며 말문을 열었다.
“위로라면 됐어. 내가 요즘 쟤 때문에 하루가 다르게 늙어 가.”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아서요.”
“무슨 소리야?”
“새벽에 A&R 메일로 곡을 하나 더 입고했더라고요.”
그 말에 김 실장이 되물었다.
“개인 앨범에 곡을 하나 더 수록하는 거야?”
“아니요.”
“그럼?”
“메일 직접 한번 보실래요?”
그 물음에 곧장 모니터로 시선을 옮기니, 파일이 첨부된 이메일이 보였다.
[ A.N.P_MP3 ]그리고.
내용에 간결하게 기재된 사안들.
1. 서지니 일본 스케줄 비우고 녹음날짜 잡을 것.
2. 작곡가 명은 ‘HS’로 발매할 것.
3. 맨 레코즈사를 통해 유통할 것.
누가 봐도 현승이 보낸 이메일.
그리고.
이번 악기는 서지니인 모양이었다.
“아니, 개인 앨범 준비하느라고 정신없어 보이더니 고새 곡을 또 만들었어?”
김 실장이 감탄스럽다는 양 고개를 내젓기도 잠시.
“A.N.P가 무슨 뜻이지?”
첨부된 파일명을 살피며 물었다.
“글쎄요, 그건 잘….”
“그놈 속은 하나님도 모르지.”
그리고는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고 앉아서는 재생을 요청했다.
“어디 한번 들어나 보자.”
“저도 아직 못 들어 봤는데, 같이 들어 보시죠.”
한 팀장은 기다렸다는 듯, 첨부된 음원을 재생시켰다.
머지않아.
몽환적인 선율이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왔고.
─ ♬ ♬ ♬
이내 그 위로 펑키함이 비집고 들어오자, 두 사람은 동시에 “아.”하고 깨달음의 탄식을 뱉었다.
그래.
이제야 현승이 메일에 기재한 내용들이 다 이유가 있던 선택들이었다는 걸 알게 된 까닭이었다.
아아.
J-POP 풍의 곡이라, 서지니를 악기로 세우고 맨 레코즈사로 유통하라고 한 거구나.
‘이놈은 진짜….’
다른 필명으로 준비한다고 했을 때, 왜 굳이 그런 선택을 할까 싶었는데.
어느새 뉴욕 필하모닉까지 끌어들여 대형 프로젝트로 판을 벌여 놓더니….
이제는.
HS라는 이름으로 치트키를 깔아 놓는다니….
이쯤 되면 경외심이 들 정도였다.
그때.
한 팀장이 잔뜩 웃음기를 머금은 채 물었다.
“지니, 올해까지는 일본에 쭉 있어야겠는데요?”
“그러게, 일본에서 알박기나 해야겠다.”
“이러다 하준이랑 박 터지게 싸우는 거 아니에요?”
“뭐 어때? 현승이는 자기 자신이랑 싸우는데.”
김 실장은 자신이 얘기하고도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래.
HS던, 최지현이든, 필하모닉이든, 서지니든….
뭐 어떤가?
현승의 성공은 이미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 * *
뉴욕에 도착한 현승은, 이든을 따라 뉴욕 필하모닉의 보금자리랄 수 있는 ‘데이비드 게펜 홀’을 향했다.
마침.
공연 연습이 한창이었는지, 홀 안에는 단원들이 각자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때.
“이든?”
지휘봉을 들고 있던 남성이 반가운 내색을 보이며 성큼성큼 걸어왔다.
그리고는.
“당신이군요, 만나 뵙게 되어 무척 반갑네요.”
이든의 옆에 서 있던 자신에게도 인사를 건네 보였다.
아마.
이 남성이 자신을 만나고 싶다고 했던 ‘폴’이겠지.
아니나 다를까.
“HS라고 부르면 될까요? 나는 폴이라고 해요.”
그는 묻기도 전에, 제 소개까지 끝마치고는 악수를 청해 왔다.
“예, 처음 뵙겠습니다.”
“잠시 여기 앉아서 얘기 나눌까요?”
“네, 좋죠.”
“뭐 마실 거라도 드릴까요?”
“저는 그럼 커….”
“우리 뉴욕 필하모닉 전 단원을 세션으로 원한다고 했다죠?”
현승은 ‘커피’라는 말을 꺼내지도 못한 채, 아쉽게 입맛만 다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폴이라는 사람은 성미가 급한 사람인 모양이었다.
“능력을 보여 주셔야, 우리 단원들을 세션으로 사용할 수 있을 거라는 말도 들으셨을 거고요.”
“예, 압니다.”
“자, 그럼 어떻게 입증해 주실 겁니까?”
그 물음에 현승이 침음을 흘려 보이기도 잠시.
“우선 그럼 제가 준비해 온 악보대로 연주해 주실 수 있나요?”
“지금 바로요?”
“예, 뉴욕 필하모닉 정도라면 악보만 보면 바로 연주할 수 있을 겁니다.”
성미가 급한 사람에게는, 직접 보여 주는 것만큼 좋은 게 없다.
어차피.
남 말은 잘 안 들으니까.
“음?”
폴은 현승이 준비해 온 악보 꾸러미를 확인하고는 하얗게 센 눈썹을 들썩거렸다. 우선 오선지 위로 그려진 음표들이 흥미롭기도 했거니와, 악기별로 악보가 나뉘어 있던 까닭이었다.
물론.
지휘자가 봐야 할 악보도 따로 있었고.
“이봐.”
이내 폴은 오케스트라 매니저를 불러 각 단원에게 악보를 나눠 주라고 지시했다.
그리고는.
현승과 눈을 맞추며 물었다.
“혹시 우리가 연주하다 실수했다고, 제 작곡 능력을 인정해 달라고 그러는 건 아니겠죠?”
피식 웃어 보인 현승이 고개를 끄덕이며 즉답했다.
“예, 그럴 일은 없습니다.”
“그럼 여기서 지켜보시죠.”
그 말을 끝으로 다시 홀 위로 올라간 폴이 지휘봉을 잡았다.
─ ♬ ♬ ♬
괜히 세계적인 관현악단으로 불리는 게 아닌 모양이었다. 갑작스레 받은 악보이자, 처음 듣는 곡일 텐데, 그의 지휘봉에 맞춰 곡은 순조롭게 연주가 시작되었다.
‘out to sea’
제 곡이 다른 사람에 의해 직접 연주되는 걸 듣고 있노라니, 제법 즐거운 일이었다.
한편.
필하모닉 단원들은 괴로운 듯 미간을 찌푸렸다. 음습함이 서린 음률이 계속해서 이어진 까닭이었다. 비단, 단원뿐만 아니라 지휘를 맡은 폴이나, 이든도 마찬가지였다.
‘이게 대체 뭐야….’
폴은 까딱하면 박자를 놓칠 것만 같은 기분에, 지휘봉을 단단히 고쳐 잡았다.
마치 거대한 소용돌이 앞에서 맞서 싸우는 것마냥 버겁게 느껴졌다.
이내.
마지막 악보를 넘긴 폴은, 까딱하면 지휘봉을 놓칠 뻔했다.
뭐랄까….
두 개의 곡을 이어서 연주하게 된 것 같은 기분이라고 하면 설명이 쉬우려나?
조금 전에는 사탄에게 저주의 의식을 올리는 곡이었으면, 지금은 고해성사를 통해 죄를 씻어 내고 극락을 걷는 듯한 곡처럼 느껴졌다.
결국.
충격적인 전개 앞에서 반 박자를 놓치는 단원들도 속출했다.
땅, 땅땅, 따앙-!
20분 같던 2분이 끝이 나고, 폴은 아려 오는 손을 펴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하아….”
폴이 급격히 몰려오는 탈력감에 휩싸이던 찰나였다.
“갑부들한테 너무 후원을 많이 받은 탓인가요?”
홀 아래에 앉아 있던 현승이 탐탁지 못한 얼굴로 물어 왔다.
“폴, 제가 뉴욕 필하모닉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컸나 봅니다.”
그리고는.
단원들의 일그러지는 표정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양 신랄하게 독설을 날리는 것도 모자라….
“이 곡은 결핍을 담아야 하는데, 다들 살찐 돼지처럼 연주하고 있네요.”
이윽고.
촤―악
현승이 홀 위로 올라와 지휘봉을 낚아채며 첨언했다.
“저랑 한 번 더 하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