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146)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146화(146/482)
컴퓨터 앞에 앉아, 마우스를 바삐 움직이고 있는 조세진은 얼마 전 정년퇴직한 중년의 홀아비였다.
통역가로 일했던 그는….
취미 삼아 영상 편집을 배웠고, 전공을 살려 뉴튜브에서 한국 가수의 무대 영상이나, 뮤비에 대한 외국인 반응과 리액션을 담아내는 채널을 운영하고 있었다.
딸칵, 딸칵.
그는 얼마 전 ‘최지현’이라는 신인 작곡가의 개인 앨범 타이틀곡인 ‘푸른 봄’의 뮤비 티저를 보게 된 이후로 정식 발매일만을 애타게 기다렸다.
평상시 김광진이라는 뮤지션을 좋아했던 까닭도 있지만….
더 큰 이유는 뮤비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었다. 확실히 이 뮤비는 화제가 될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렇다면 누구보다 빨리 확인해서 영상을 만들어야겠지.
“아-!”
하나, 제 맘과 달리 다운된 서버 창에 마우스를 내던졌다.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이지? 일시적인 오류인 건가?
딸칵, 딸칵.
조세진은 휴대폰과 컴퓨터를 번갈아 가며, 새로고침을 광클했고.
딸칵, 딸칵.
수십 번의 접속을 시도한 끝에야 성공해 낼 수 있었다.
이윽고.
그토록 고대해 온 뮤비를 볼 수 있게 되었음에 환호성을 지르기도 잠시.
“어….”
조세진은 화면 위로 낡은 필름지가 눈으로 담을 수도 없을 만큼 빠르게 거슬러 오르자, 홀린 듯 뮤비에 빠져들었다.
─ 언젠가 웃었던 것 같아요.
이내 해맑게 웃으며 침을 흘리는 아기가 아장아장 화면을 향해 걸어왔고, 후루룩 넘어간 필름 속에는 두 어린애가 등을 보인 채 엉덩이를 씰룩거렸다.
─ 넘어지는 것조차 무섭지 않던 때가 있던 것 같아요.
머지않아.
둘 중 여동생처럼 보이는 아이 하나가 다리에 힘이 풀려 털썩 자리에 넘어졌다.
조세진은 그 위로 어릴 적 제 딸의 모습이 겹쳐 보여 웃음이 터져 나왔다.
“풉.”
빠르게 전환되어 가는 화면 속에서 교복을 입은 소녀는 뛰어가는 뒷모습을 마지막으로 조각조각 나며 흩어졌다.
─ 그때는 자그만 일도 나를 압사시키는 태산마냥 느껴졌던 것 같기도 해요.
이내 흩어진 조각들이 모여, 젊은 남녀의 형상을 만들어 내고 둘은 푸른 바다가 펼쳐진 길을 나란히 거닐었다.
─ 아아, 그래도 제법 웃던 날이 더 많았어요.
행복하면서도, 퍽 아슬아슬한 모양새로 부둣가를 뛰어다니던 두 남녀는 화면을 타고 넘어가 오래된 결혼식 사진의 주인공이 되었다.
─ 이제야 말하는데, 진심으로 사랑도 했어요.
그리고는 날짜가 찍힌 사진들이 빠르게 흩어졌다.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제법 단란하고 평범한 가정의 사진들이었던 것 같다.
─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다시 전환된 화면 속에는 기타를 둘러멘 젊은 남자들이, 끝도 없는 광야를 향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뛰어갔다.
─ 아마 똑같을 거예요.
뙤약볕에 피부가 타는 건, 아무렴 상관없다는 듯 민소매에 청바지를 입은 남자들은 아무 곳에나 엉덩이를 깔고 앉아 맘껏 기타를 연주했다.
─ 웃고, 울고, 가끔은 화도 낼 테죠.
조세진이 뮤비가 지닌 특유의 영상미에 혼을 빼앗기던 찰나.
─ 결국 겪어야 할 일은 겪을 테고.
어지럽게 흔들리는 영상 속 남자는 어두컴컴한 단칸방 안에서 기타를 부수며, 제 두 귀를 틀어막고 절규했다.
아아.
목소리가 들리진 않지만, 몹시 슬프게도 울고 있는 듯 보였다.
머지않아.
상반되는 푸른 빛과 함께, 방금 막 찍은 듯 생동감 넘치는 영상이 흘러나왔다.
─ 지금의 행복을 잃을 수도 있잖아요.
아주 따스한 봄날 나풀거리는 여자애가, 잔뜩 들떠서 뛰어가다 말고 엎어진다.
마치.
초반 영상에서 엉덩이를 흔들다 엎어진 꼬마애처럼.
─ 나는요, 지금의 나로 살아서 참 다행이에요.
촬영하던 사람이 지금의 자신처럼 웃음이 터지기라도 했는지, 화면이 가볍게 흔들렸다. 이내 “휙.”하고 화면이 전환되었고, 폴라로이드 사진이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처럼 펄럭거렸다.
─ 아니었으면, 몰랐을 감정들도 있을 테니까.
빛이 번져 잘 보이진 않았지만, 어느 가족의 행복한 일상들이 담겨 있었다.
─ 가끔 그립기는 해요. 철없이 웃던 그때가요.
어느새 뮤비는 마지막을 향했고.
─ 따스한 봄날의 어느 날이요.
폴라로이드 필름들이 다시 조각조각 나 불꽃에 의해 “파르륵” 타들어 가는 것 같더니.
─ 하지만 이제 나의 따스한 봄날은 맘속에 있어요.
이내 불티들이 모여 화사한 벚꽃 나무로 귀결되었다.
그 아래….
어린 꼬마 두 녀석이 나란히 어깨에 기대어 자는 모습으로 화면은 서서히 어두워졌다.
“하아….”
조세진은 당장 영상을 만들기도 바빴지만,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잠시, 잠시만….
가만히 앉아 제 인생을 다시 거슬러 다녀올 시간이 필요했다. 분명 자신에게도 존재했었던 ‘청춘’이라 불리는 흐트러지게 아름다운 봄날로 말이다.
─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그가 재차 재생되는 뮤비를 앞에 두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찰나였다.
똑, 똑, 똑-.
문 너머에서 딸아이의 조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버지-.”
아주, 아주 아기 때는 아빠라고 불러 보라고 해도 “뺘뺘!”하고 웃어 주던 녀석이 어느 세월에 다 커선 시집을 가더니, 철이 들었는지 갑자기 존댓말을 쓴다.
“들어와라.”
그 모습이 퍽 서운하면서도, 대견해서 그냥 내버려 뒀다.
─ 지금의 행복을 잃을 수도 있잖아요.
뮤비는 계속해서 반복되었고, 딸은 시선도 주지 않은 채 제 할 말을 전했다.
“반찬 몇 가지 챙겨 왔어요. 엄마 없다고 밥 굶지 마시고, 끼니 잘 챙겨 드세요.”
“그래.”
“저는 그럼 하윤이 하원 시간 때문에 가 볼게요.”
아마 제 자식을 키우는데 시간이 쫓겨 여유를 잃은 거겠지.
─ 가끔 그립기는 해요. 철없이 웃던 그때가요.
조세진은 퍽 낯간지럽지만, 오랜만에 딸아이의 이름을 불러 보고 싶어졌다.
“서원아.”
“네?”
“오랜만에 아빠라고 한번 불러 볼래?”
“가, 갑자기요?”
“응, 한 번만 불러 봐라.”
그리고 왠지 철없이 ‘아빠!’하고 소리치던 딸아이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졌다.
─ 따스한 봄날의 어느 날이요.
그런 아빠의 마음을 알 리가 없는 딸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걱정스럽게 물어왔다.
“아버지, 혹시 오늘 무슨 일 있어요?”
“아니, 아니다.”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나서 그래요?”
“생각은 나지만, 이젠 마음에 묻어서 괜찮아.”
그녀는 아빠라는 그 흔한 단어를 오랜만에 발음하자니, 괜히 낯간지러웠다.
“아, 아….”
입술을 딸싹이며 망설이기도 잠시.
“아, 아빠아…?”
동시에 뮤비는 다시금 끝이 났다.
─ 하지만 이제 나의 따스한 봄날은 맘속에 있어요.
“아빠, 힘들면 언제든 연락하세요.”
“그래, 서원아. 너도 언제든 힘들면 아빠한테 달려와.”
오늘 조세진은….
뮤비 하나로, 제 맘속에 숨어 있던 따스한 봄을 찾았다.
* * *
최지현(*현승)의 개인 앨범이 발매된 다음 날.
“이야….”
세간이 한바탕 떠들썩해지는 거 아니냐는 김 실장의 말은 실제가 되었다.
“현승아, 다들 난리야.”
“알아요.”
“같이 좀 보자.”
“혼자 봐요.”
“치사하기는….”
김 실장은 툴툴거리면서도 입가에는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 나 out to sea 처음에는 가사도 없고 뭐 이런 불쾌한 곡이 다 있지 했는데 듣다 보니까 진짜 띵곡이야.. 그냥 연주 하나하나가 살아있고 말보다 더 깊은 울림이 느껴지더라,, 진짜,, 애들아, 처음에 별로라고 느껴져도 꼭 여러 번 들어 봐,, ]스르륵, 스르륵-.
⤷ ㄹㅇ 나도 넘 음울해서 별로라 생각했는데 어느새 스며듦., ⤷ 여기서 앨범명 해석해본 사람 있냐?ㅠㅠㅠㅠㅠ눈물 광광,, ⤷ 앨범명에? 뭐라고 적혀 있는데? 나도 좀 알려줘ㅠ
⤷ ‘그저 많은 이들이 듣고 맘껏 슬퍼하기를 바랍니다.’
⤷ 헐 이렇게 적혀있다고? 진짜 이 작곡가 울릴라고 작정했네ㅠ
⤷ 찾았다 내 눈물샘 버튼
비단, 말이 씨앗이 된 건 김 실장의 말뿐이 아니었다.
[ 푸른 봄 뮤비 보고 진짜 내 인생이 다 스치고 지나가면서 온종일 울었음..후유증 개오래간다,, 나같은 사람 없음? ]스르륵, 스르륵-.
⤷ 그거 우리 엄마도 보고 우시더라,,
⤷ 야 너두? 야 나두ㅠ 우리집은 부모님 다같이 우셨어ㅠ
⤷ 푸른 봄도 작곡가가 직접 기획에 참여했대! 기사에서 봄!
⤷ 와; 영상미도 미쳤고 곡도 미쳤고 걍 최지현 미친듯; ⤷ 나도 여운이 너무 길어서 반복 재생하기가 힘들 정도였어
⤷ 찾았다 내 눈물샘 버튼
현승의 말대로, 곡 중에는 ‘out to sea’가 제일 반응이 뜨거웠으며, 뮤비로는 ‘푸른 봄’이 가장 이슈였다.
뉴튜브에서는 개인 앨범에 대한 해석 및 외국 반응 영상이 쏟아져 나왔고, 그 영상들의 조회수는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쭉쭉 솟아올랐다.
그뿐이랴?
작곡가 개인 앨범의 전 수록곡이 단 하루 만에 차트인에 성공하는 이례적인 일도 벌어졌다.
‘진짜, 이게 말이 되나?’
아무리 피처링과 세션 라인업이 빵빵하다고 하더라도, 세간에서 최지현은 신인 작곡가다.
역시.
현승이 만든 곡 앞에서 네임벨류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걸까?
“야, 지현아.”
“왜 부르세요?.”
“네가 지현이야?”
“최지현 맞잖아요?”
김 실장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래, 지금은 최지현이지.”
당장 HS 곡이 조금 지지부진해도 뭐 어떠하리?
어차피 그 곡도….
머지않아 제 가치를 증명해 보일 날이 올 테니까.
* * *
한편.
오스틴은 어색한 한국어 발음으로 누군가의 이름을 재차 중얼거렸다.
“유, 윤제이? 윤제이, 윤제이….”
얼마 전 앤드류가 보여 준 영상 속 보컬리스트의 이름이었다. 영상이 점차 퍼져 나갈수록, 그녀를 아는 사람들이 나타나 댓글을 남기기 시작했고.
댓글 번역을 통해 알아낸 정보는 이러했다.
1. 국적은 대한민국 이름은 윤제이
2. LS 엔터테인먼트 소속 신인가수
3. 오디션 프로그램 우승자 출신
추가로 영상 속 버스킹은 한국 예능 프로그램인 ‘스트리트 어게인’을 촬영하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여기까지만 알았다면 좋았을 텐데….
“하-아.”
집요한 성미의 오스틴은, 윤제이가 영상 속에서 부른 곡의 작곡가를 기어코 찾아냈고.
활동명이 ‘HS’라는 사실을 알아낸 것에 그치지 않은 채, 그가 만든 다른 곡까지 전부 찾아 들었다.
그뿐이랴?
한국인 직원을 통해 HS와 더불어 그의 경쟁 상대로 언급되고 있다는 ‘최지현’이라는 작곡가의 곡과 관련 기사까지 전부 섭렵한 뒤에야 조사가 끝이 났다.
특히 충격적이었던 곡이 두 개 있었는데….
HS가 만들었다는 Dear my Beethoven과 최지현이 만들었다는 out to sea였다. 묘하게 분위기가 닮은 두 곡이었지만, 엄연히 결이 다른 두 곡은 까탈스러운 오스틴의 귀를 만족시켰다.
하물며.
뉴욕 필하모닉이 한국 작곡가의 곡에 직접 세션을 해 줬다는 대목에서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대체 무슨 연이 닿았길래, 그들을 세션으로 세울 수 있었을까?
‘한국에 이렇게나 실력 좋은 작곡가가 많았다니….’
오스틴은 자신의 좁디좁은 시야와 정보력에 한탄스러웠다.
잠깐-.
사라가 봤다던 그 청년도 동양인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음….”
오스틴은 이상하게 자꾸만 한국이라는 나라에 가 보고 싶다는 충동이 올라왔다.
그래.
자신을 현재 유니스 뮤직 그룹의 대표이사직에 오르게 해 준 촉이 발동한 까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