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156)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156화(156/482)
“오랜만이네.”
이두석은 자신을 찾아온 현승을 버선발로 맞이했다.
“한참 작업이 바빠 보이던데, 이제 일들은 얼추 끝나 가나?”
“예, 그래서 숨 좀 돌리러 왔죠.”
“승부를 앞두고 숨을 돌리러 왔다니, 너무 긴장감이 없군.”
“그럴 리가요.”
가끔 안부를 주고받기도 했거니와, 발매 소식을 전부 접해 들었기에 바쁜 일정이 끝나길 기다렸다.
홀로 대국을 즐기면서….
그래, 이두석은 오로지 현승과 겨루게 될 날을 위해 하루에 대부분을 바둑돌을 쥔 채 보냈다.
탁-!
오늘에서야.
인고의 시간을 거쳐 단련한 실력을 보여 줄 수 있게 되었는데.
‘이상한데….’
이두석은 현재 바둑판을 내려다보며 영 마뜩잖다는 듯 침음을 흘렸다.
“흠-.”
그리고는 현승의 얼굴로 시선을 옮기며 넌지시 말문을 열었다.
“자네, 어쩐지 기풍이 잔뜩 흐트러졌는데?”
“그랬나요?”
“응, 맘속에 태풍이라도 몰아친 듯 말이야.”
그 말에 현승이 피식 웃으며 손에 쥐고 있던 바둑돌을 도로 내려놓았다.
달그락-.
“역시 연륜은 무섭네요. 이미 제 속마음까지 다 읽혔으니, 이번 대국은 제 패배입니다.”
그리고는 이내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덧붙였다.
“좋은 승부였습니다.”
이두석은 자신이 고대하며 기다려 온 대국이 허무하게 끝이 나 버린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나.
그것과 별개로,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됐다.
특히나 자신이 봐 온 현승은 늘 평온하고 고요하면서도 저 멀리까지 내다 보며 정확히 착수하는 사람이었다.
그래.
이십 대 초반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사람 심리를 이용한 환격에 능하고, 웬만한 프로 기사보다 더욱 뛰어난 실력과 자질을 갖춘 자였다.
그런 녀석이 오늘은 유달리 포석을 쌓는 과정에서 빈틈이 가득해 보였다. 하물며 원래 같으면 절대 하지 않을 착수금지라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다.
거의 뭐….
접대 바둑 같았달까?
영리하고, 차분하며, 맹렬한 기세를 뿜어내던 녀석이 오늘따라 왜 기도 못 편 채로 저러는지.
궁금해졌다.
대체 누가 이 세상 무서울 것 없이 굴며, 나른할 정도로 평온하던 녀석을 불안정하게 만든 것인지.
“괜찮으면 여유롭게 다도나 즐기며 얘기해 보는 게 어떤가?”
꼭 알아야겠다.
“오늘, 날 찾아온 이유를 말해 보게나.”
“어르신, 눈치가 너무 빠르시네요.”
“나이는 괜히 먹어 가는 게 아니지.”
그 말에 현승이 가볍게 웃어 보이고는, 정원에 아름답게 핀 백일홍을 눈으로 담으며 말했다.
“저한테는 여동생이 하나 있어요.”
“자네랑 닮았나?”
“얼굴은 제법? 성격은 정반대고요.”
“그것참 다행이군.”
현승이 잠시 당황하며 “무슨 의미죠?”하고 되물었으나, 이두석은 계속 얘기해 보라는 양 소리 없이 싱긋 웃어 보였다.
“제 동생은 한없이 밝은 아이입니다. 계절에 비유하자면 봄 햇볕같이 따스하고, 여름철의 윤슬처럼 반짝이는 아이죠.”
“여동생을 무척 사랑하나 보군.”
“근데 저는 사실 그 아이한테 죄인입니다.”
“이렇게나 아끼는 마음이 전해지는데, 왜?”
그 물음에 현승은 전생의 기억을 더듬어 상기시켰다.
‘참 못났었지.’
곰살맞지 못한 성격 탓에 가족에게 살가운 말 한마디 할 줄 모르고, 곁을 내어 준 적조차 없었다.
성공, 돈, 명예.
그저 세 가지만을 쫓아 앞만 보고 달렸고, 집에 돈만 가져다주면 제 역할은 다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독립한 뒤로도 먼저 안부 연락 한 통 해 본 적 없는 자신을 대신해, 여동생은 늘 아버지를 살뜰히 챙겼다.
하물며.
귀가 불편한 아버지를 홀로 살게 할 수 없다는 이유로 여동생은 전생에서 나이가 서른이 다 되도록 시집은커녕 연애 한 번을 제대로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뿐이랴?
전생에서는 스타 작곡가 민현승의 여동생으로 사느라, 사생활 따위는 없는 삶을 살았고.
악플러들에게 매일같이 시달리면서도 오빠 이미지에 피해가 갈까 봐, 고소 한 번 하지 못한 채 홀로 끙끙 앓았다.
결국.
사람들을 고쳐 주는 의사가 마음의 병을 얻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그 사실을 털어놓았었더라지….
아아.
그때마저도 자신이 감당할 몫이니 바쁜데 신경 쓰지 말라며, 되레 남을 걱정했다.
정말.
가족들을 위해서라면 미련할 정도로 헌신하던 아이였다.
그래.
그런 아이가 얼마나 곪을 대로 곪았으면 자신을 떠났겠는가?
“우리 이제 남처럼 살자.”
현승은 전생에서 마지막으로 본 여동생의 표정을 아직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 순간조차도….
“가족이고, 뭐고, 다 버리고 사는데 남들보다 잘살기라도 해야지.”
미련하기 짝이 없는 제 동생의 눈빛 위로는 걱정이 비쳤다.
“제가 그 아이한테 참 미안한 게 많거든요.”
대체 혈연관계가 뭐라고, 왜 그리도 못난 자신을 위해 헌신했는지.
아주 가끔은….
현아가 조금만 더 영악해지기를 바랐다. 세상은 너무나 모질고, 들꽃 같은 아이를 꺾으려 드니까.
하나.
타고난 심성이라는 게 어디 쉽게 바뀌겠나? 현아가 그럴 수 없다면 자신이 지켜 줘야지.
“그래서 이제부터는 오빠 노릇 좀 제대로 해 보겠다고, 저도 헌신이라는 걸 좀 해 보겠다고 결심했었거든요.”
“근데 맘처럼 잘 안 돼서 걱정인가?”
“예, 저는 제 식대로 노력한다고 하는 중인데, 되려 안 좋은 상황을 초래하기도 했고….”
현승이 말끝을 흐리기도 잠시.
“무엇보다 별 이상한 놈이 제 여동생을 울린 것 같더라고요?”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기 위해 주먹을 꽉 말아 쥐었다.
얼마 전, 뮤비가 너무 슬프다며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고 있던 여동생의 얼굴이 떠오른 까닭이었다.
제발.
이번 생에서만큼은 제 여동생이 가급적 많이 웃고, 되도록 울지 않기를 바랐다.
비록 평생 행복하게 해 주겠노라고 약속은 못 해도, 불행한 일은 대신 막아 줄 수 있도록 열심히 돈을 벌었건만….
“근데 더 황당한 건 그 녀석 엄마라는 사람이 제 여동생보고 집안 급이 안 맞는 것 같다는 식으로 헤어지라고 했답니다.”
고작 그딴 가족 때문에 자신의 결심과 다짐이 무너졌다.
분명,
여동생이 흘린 눈물의 지분 중 절반은 그 가족 때문이리라.
“착한 제 여동생은 아마 그 말 듣고 넙죽 헤어져 주고는 혼자 힘든 시간을 버텨 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겉으로는 잘 티가 안 날지라도, 지금 현승의 속에서는 천불이 났다.
잠자코 듣고 있던 이두석은 지금 현승의 모습이 낯설다 느껴졌다.
물론.
많은 시간을 함께하고, 오랜 세월을 봐 온 건 아니라지만 어느 정도 그 사람의 성향을 꿰뚫어 보는 능력이 있다고 자부했다.
우선.
적어도 자신이 여태껏 파악한 현승이라는 사람은 이렇게까지 흥분하고, 분노를 드러내는 사람은 아니었다.
아마도.
현승에게 있어서 ‘가족’이란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지 못할 만큼 소중하다는 거겠지.
‘의외의 모습이군.’
이두석은 부들부들 떨리는 현승의 손을 보며 차분히 말을 이어 나갔다.
“이런, 급이 안 맞는다니? 대체 얼마나 대단한 집안이길래.”
“그놈 어머니가 LS 엔터랑 연계된 청담에 ‘차롬’이라는 샵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뭐? 고작 그 정도로 급을 운운한 건가? 여동생이 자네에 대해 말하지 않은 모양이지?”
“제가 얼굴을 밝히지 않고 활동하고 있다 보니, 함구한 것 같아요.”
“착한 동생을 뒀군, 그래.”
현승은 고개를 끄덕이며, 상상도 하기 싫다는 양 부연했다.
“여동생이 행복하길 바라지만, 만약에라도 그놈을 다시 만난다고 하면 죽어도 말릴 겁니다.”
“어린 나이에 불타는 연애를 한 번 정도는 해 볼 필요도 있지 않나? 자기들이 좋다면 어쩔 텐가?”
“얼마 전에 차롬을 찾아가 그 여자와 마주한 적이 있습니다. 정말 우리 가족과는 급이 안 맞더군요.”
그 말을 들은 이두석이 곧장 되물었다.
“혹 그 샵에 갔을 때 무슨 일이 있었나?”
“손님으로 찾아간 저에게도 급을 매기고, 시시각각 얼굴 표정을 바꾸는 여자인데, 아무리 둘이 좋아 눈이 맞았다고 한들, 그런 집에 시집가면 행복하겠습니까?”
이두석이 “쯧.”하고 혀를 차며, 거긴 장사하기 글러 먹은 곳이라며 빈정 섞인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이내.
잠시 고민에 빠진 듯 침을을 흘리더니 넌지시 물어왔다.
“그럼 자네가 생각했을 때 여동생은 무얼 해 주면 행복하겠나?”
“사실 그 방법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나, 한 가지 확실한 건 여동생을 속상하게 만든 그 사람들이 불행했으면 좋겠다는 겁니다.”
이두석은 “그렇군.”하고 답하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현승이 차를 한 모금 들이키고는 다시 차분해진 어투로 말을 이었다.
“선생님을 찾아온 건 뭔가 바라고 온 건 아닙니다.”
그리고는 찻잔을 가볍게 내려놓으며 덧붙였다.
“그저 다 큰 어른을 만나 얘기하고 싶었습니다.”
“물론, 그런 거라면 얼마든지 들어줄 수 있지.”
“아직 여동생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남동생이었다면 좀 더 편했을까요?”
“동생을 사랑하는 마음에 성별이 어떤 영향을 줄 수 있겠나? 분명 똑같이 고뇌했을 거야.”
현승은 그 말에 “우문현답이네요.”하고는, 다시금 흐드러지게 피어난 백일홍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아아, 생각났다.
주황색 백일홍의 꽃말은 ‘헌신’이었지. 때마침 백일홍 사이로 여동생의 밝게 웃는 얼굴이 피어올랐다.
“지금의 제가 어떻게 해야, 여동생에게 상처가 되지 않을지조차도 감이 잡히질 않아요. 복수해 준다면 여동생이 저를 원망하는 건 아닌가 싶은 쓸데없는 걱정도 되고요.”
“그래, 자네답지 않게 정말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군.”
“그래서 그냥 어르신 만나 이렇게 바둑이나 두고, 맘도 털어놓고 평온을 찾기 위해 걸음 한 겁니다.”
이두석은 잘 왔다며 어깨를 가볍게 두들기고는, 화제를 전환시켰다.
“지금 이때 참 속도 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난 자네와 겨룬 대국에서 처음으로 이겨서 기분이 몹시 좋아.”
“정확히 말씀드리자면, 대국할 기분이 아니라서 져 드린 겁니다.”
“그래, 그럼 자네 말대로 접대 바둑을 받은 거라 치고, 내가 그에 따른 답례 하나 하지.”
현승이 괜찮다며 손사래를 쳐 보였지만, 이두석은 별안간 바둑판 위에 올려진 돌을 치워 내며 답했다.
“아니야, 아주 소소하게나마 자네의 마음을 풀어주겠네.”
“선생님이 제 마음을 어떻게 풀어 주실 수 있는데요?”
“음? 하기야, 아무래도 자네는 나에 대해서 잘 모르겠지.”
달그락, 달그락-.
그리고는 머지않아 흑 돌과 백 돌을 섞어 손에 쥐여 보였고.
“지금은 발톱을 다 잃은 이리 신세니 알 턱이 있나.”
텅 빈 바둑판 위로 조금 전 대국을 역순으로 천천히 복기해 나갔다.
“아주 예전에는….”
탁-!
“나도 아주 매서운 태풍 같은 사람이었지.”
탁-!
“명분 하나만 있다면….”
탁-!
“누군가의 인생을 송두리째 망가트리곤 했어.”
탁-!
“그게 설령….”
탁-!
“설령 내 사람이었더라도 말이야.”
탁-!
잠자코 그의 말을 듣고 있던 현승이, 복기를 이어받듯 바둑돌을 착수하며 얘기했다.
“그럼 앞으로는 저랑 같이 회개하면서, 바둑이나 두시죠. 가끔 이렇게 차를 나눠 마시고, 담소도 나누면서.”
하나.
이두석은 이미 결심이라도 한 양, 안경 너머로 매서운 안광을 번뜩거리며 즉답했다.
“확실히 말해 두지, 난 아직도 명분 하나만 있다면 누군가의 인생을 송두리째 망가트릴 수 있다네.”
현승은 왠지 제 생각과 달리, 너무 일이 커져 버린 것 같단 생각이 스쳤다.
그러나.
사실 여기를 찾았을 적에는 어느 정도 자신이 바랐던 그림이기도 하질 않나?
그래, 솔직하게 맞다.
“저는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이해가 되질 않네요. 못 들은 걸로 하겠습니다.”
생각을 끝마친 현승은 제법 뻔뻔하고, 태연한 얼굴로 차 한 모금을 “호록” 들이켰다.
“그래, 그렇게 하세. 자네는 아무것도 모르고, 못 들은 거야.”
그런 제 모습을 보며 이두석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연륜은 무섭다.
“그 샵은 조만간 문을 닫을 걸세. 자네와는 아무런 관련도, 소리도, 소문도 없이.”
아, 연륜 때문이 아닌가?
“아 참.”
제 앞에서 인자하게 앉아 있는 이 어르신이 원래 무서운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이윽고.
그는 무언가 할 말을 빼먹었다는 양 다급히 찻잔을 내려놓으며 첨언했다,
“자네는 이 말 또한 이해하지 못하고, 못 들은 걸로 하지.”
이번에는 현승이 눈치 빠르게 그렇게 하자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 * *
“아니, 아직도 그런 집이 있다고?”
현승은 김 실장이 이두석을 만나 뭘 했냐며 꼬치꼬치 물어 대는 통에 결국 그에게도 현아의 일을 대략 털어놓게 되었다.
물론.
이두석이 해 주겠다는 답례에 대해선 말하지 않았다. 못 들은 걸로 하기로 했으니까.
그건 그렇고….
“아니, 애들이 만나는데 지가 거길 끼긴 왜 껴?”
지금 김 실장은 왜 자신보다 더 열을 내는 걸까?
“그리고 현승이네 급이 뭐가 어때서? 차롬 연 매출이 네 3개월 정산금이나 되려나 모르겠구만.”
“왜 이렇게 흥분하셨어요.”
“흥분 안 하게 생겼어? 남친 놈 엄마인지, 차롬 원장인지 하는 여자 말하는 싹수가 영 그렇잖아!”
김 실장은 한참을 씩씩거리기도 잠시.
“안 되겠다. 내가 오늘 한 번 차롬 가서 얘기 좀 해야겠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뭐가 괜찮아? 네 여동생 일이면, 내 여동생 일이기도 한데.”
그 말에 현승이 피식 웃어 보이던 찰나였다.
띠링-!
김 실장의 휴대폰에서 청량한 알림이 울려 퍼졌고.
[ 대표실에서 긴급회의가 있을 예정이오니, 주요 임원분들께서는 신속히 참석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대표 비서실에서 날아온 문자를 확인한 김 실장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재킷을 챙겨 들었다.
“미안한데, 긴급회의가 생겨서 가 봐야겠다.”
그리고는 이내 다음 말을 신신당부하듯 덧붙였다.
“차롬은 내가 꼭 가 볼 테니까, 아무 걱정 말고 딱 기다려!”
하여간.
오늘도 김아빠는 앞선 열의가 참 넘쳐 보일 따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