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166)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166화(166/482)
녹음이 끝이 난 뒤, 장진수는 정말 몇 년 만에 목소리가 쉬었다며 잽싸게 녹음실을 나섰고.
“저기, 작곡가님.”
이미 섭외가 들어왔을 적, 집요하게 캐물어 ‘HS’의 곡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던 조예리는 후들거리는 팔다리를 붙잡고 힘겹게 남아 있었다.
그래, 이런 기회가 또 어딨겠는가.
“안 바쁘시면 따로 얘기 좀 할 수 있을까요?”
연을 터놓는다면, 분명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자신의 솔로곡 하나 정도는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나.
단호히 거절당했다.
“후작업도 있고, 이미 이분과 선약이 있어서요.”
조예리가 날이 선 눈매로 조경미를 훑어보고는 자신만 들릴 정도로 작게 콧방귀를 뀌었다.
“어쩔 수 없죠.”
그리고는 다음에 꼭 다시 불러달라며 제 연락처가 적힌 쪽지를 건넨 뒤 녹음실을 나갔다.
탁-.
이내 둘만 남은 녹음실 안으로 적막이 흐르기도 잠시.
“오늘 작업은 어떠셨습니까?”
먼저 말문을 연 건, 다름 아닌 현승이었다.
“저 같은 베테랑도 힘들기는 하더군요. 하지만 즐거웠습니다.”
“그럼, 저랑 작업 하나 더 함께하시는 건 어떠신가요?”
“죄송하지만, 이번 작업도 어렵게 시간을 낸 거라서요.”
그 말에 현승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안될 거라는 건 어느 정도 예상했던 바였다.
하지만.
언제고, 또 작업을 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겠는가?
그래, 전생에서처럼.
현승은 보채지 않고, 차분한 어투로 답을 이어 나갔다.
“예, 공연을 펑크내면서까지 따님분을 위해 귀한 시간 내 주신 거 잘 알고 있습니다.”
그 말에 조경미가 어딘지 씁쓸함이 묻어나는 웃음을 지어 보였다.
“네, 정말 딸 얼굴 한번 보고, 딸한테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를, 가사에라도 힘을 빌려서 해 보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오늘 오랜만에 딸 얼굴 보고, 단순히 가사일지라도 사랑한다고 해 줬으니 만족하십니까?”
그 물음에 조경미는 고개를 푹 숙여 보였다.
사실.
조경미와 조예리는 모녀지간이었다. 현승은 전생에서 그녀와 한차례 작업을 하다, 우연히 알게 된 거뿐이었고.
세간에 밝혀지지 않은 사실이라, 아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
아주 영악하다고 욕할 수 있지만, 이런 점을 이용해 조경미를 섭외할 수 있었던 거다.
그녀의 딸인, 조예리가 함께 작업한다는 정보를 흘리면서 말이다. 조경미라면, 아니, 엄마라면 진심을 담아 부를 테니까.
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덥석 제 사정을 간단히 얘기하며, 제 딸아이와 꼭 같은 날 녹음을 하게 해 달라고 요청해 왔다.
하나.
오늘 둘은 모녀지간이라는 사이가 무색할 정도로, 인사조차 제대로 나누지 않은 채 헤어졌다.
“아니요. 만족하지 못해요.”
조경미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답했다.
“그런데 뭐 어쩌겠어요.”
한 점 슬픔이 담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딸아이는 저를 이제 봐주지도 않아요. 그런데 사랑한다는 말이 과연 전해졌을까요?”
그 말을 끝으로 조경미는 지난 기억 깊은 곳으로 잠겨 들었다.
.
.
.
아주, 아주 어릴 적….
그러니까.
이제 막 성인이 되던 해.
사랑하는 남자가 생겼었다. 정말 죽고 못 산다는 말이 이런 곳에서 나오는 말이구나 싶은 감정을 느끼게 해 준 유일한 남자였다.
꿈을 위해 기나긴 유학 생활을 하게 된 자신을 보러 오기 위해, 국경을 넘어 머나먼 외국 땅으로 한달음에 달려와 주곤 했었다.
철딱서니 없다 하더라도….
그땐 ‘얼른 자리잡아서 이 남자랑 결혼해야지’라는 일념 하나로 고단한 유학 생활을 버텨냈다.
조경미에게 그 남자는 세상, 그 자체였으니까.
그러던 중.
사고가 벌어졌다.
임신.
배 속에 아이가 생겨 버렸다.
어리고, 가진 거 하나 없이 맨몸으로 유학 생활을 하던 조경미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하지만.
마음을 다잡았다. 그와 나의 아이니까, 분명 그와 얘기하면 무언가 정답이 나올 거라고.
무작정.
가진 돈을 전부 털어 한국행 비행기 표를 샀다.
그때 자신은 꿈을 포기할 생각도 했었던 것 같다.
만약.
그가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소박하게 살아가자고 한다면 정말 그럴 생각이었다.
바보같이.
결국 어렵사리 찾아온 한국에서 전해 들은 말은….
“나 다른 여자랑 결혼하게 됐어.”
고작, 그 한마디였다.
성악가라는 직업의 특성상 전 세계를 돌아다녀야 하기에, 결혼한다 해도 정상적으로 가정생활을 하기 어려울 거라는 변명을 늘어놓았지만….
이미 알고 있었다.
사실 제 집안 형편 문제가, 결혼을 할 수 없는 진짜 이유라는 걸.
그랬기에….
조경미는 결국 두 줄이 선명하게 그어진 임신 테스트기 한 번을 내밀어 보지도 못한 채, 헤어짐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렇게.
세상이 무너졌다.
아이를 지우려고 병원 문 앞을 계속 어슬렁거렸다.
하나, 그때의 자신에겐 문턱을 넘을 용기도, 수술할 비용도, 그럴 만한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
정말이지.
가진 거라곤, 목소리 하나뿐인 시절이었다.
꾸역꾸역.
뱃속에 품은 아이를 숨긴 채, 시간을 보내던 중.
결국.
만삭이 가까이 다 되고 나서야, 부모님께 알리고 급히 한국으로 돌아와 아이를 출산했다.
그리고는.
몸을 추스를 시간도 없이, 아이를 부모님께 맡긴 채 도망치듯 한국을 떠나왔다.
그를 닮은 아이를 보고 싶지도 않았고, 가진 거 하나 없는 자신이 잘 키울 자신도 없었으니까.
그때 결심했다.
보란 듯이 성공해서, 그 남자에게 제 이름이 닿기를.
그리고.
성공해서 안정을 찾으면, 그땐 딸에게도 엄마 노릇을 해 주겠다며, 잠시 모든 것으로부터 외면했었다.
단 2년.
마치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마냥 달렸다.
그 결과.
조기 졸업과 동시에 6개의 국제콩쿠르에서 상을 휩쓸며, 화려하게 성악가로서 데뷔에 성공했다.
이후에는 모든 것이 이미 정해져 있던 스텝처럼 술술 풀려갔다.
한 가지.
마음속에 풀지 못한 숙제는 계속 외면한 채로….
─ 경미야, 애가 이제 초등학교 입학하는데 한번 와봐야 하는 거 아니니? 언제까지 엄마아빠가 키워줄 수 없어. 예리, 더 나이 먹으면 그땐 친해지기도 어려워질 거야.
하지만.
당장 눈앞에 다가온 성공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그래.
어떻게든 돈으로나마 엄마 노릇을 대체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 와 생각하면….
참 한심하기 짝이 없는 합리화를 하며 딸이라는 존재를 다시 한번 제 인생에서 밀어냈다.
한 해, 한 해가 흐르고.
간혹 보고 싶다며 전화가 걸려 오던 딸은 어느 순간 전화가 오지 않던 무렵 즈음이었다.
딸의 중학교 졸업 사진을 우편으로 받게 되었다. 자신을 쏙 빼닮은 그 아이의 얼굴을 보는 순간, 어째선지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자신에겐 모성애조차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못난 자신도 결국에는 엄마였나보다.
정말이지.
그날은 하염없이 울다가, 무작정 한국행 티켓을 끊었다.
마치.
그를 만나러 가던 그날처럼.
하나.
딸은 너무나 자란 이후였다.
“이제 와서 엄마 노릇 하려는 거면 됐어요. 저는 엄마 없다고 생각하고 살 테니까, 엄마도 그냥 딸 없는 셈 치세요.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다시금 제 세상은 무너졌다. 그에게 헤어짐을 통보받았을 때와는 또 다른 엄청난 슬픔이 밀려왔다.
아니, 아니지.
슬픔보다 더한 죄책감이 태풍처럼 마음을 휩쓸었다.
딸아.
그게 아니야. 엄마 말 한 번만 들어줘.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라 그랬어. 미안해, 정말 미안해.
조경미는 이 마음을, 이 말을 전하지도 못한 채 다시금 무대 위에 서서 연기를 해야만 했다.
그렇게.
시간만 흘렀다. 이젠 엄마 노릇을 하려는 것조차 할 수 없는 신세가 되어 버린 조경미는, 딸을 먼발치에서 지켜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제 노래 실력을 닮은 딸아이는, 18살이 되던 해 연예인이 되었으니까.
보고 싶으면 언제든 티비를 틀어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만나고 싶다고 하여, 만날 수는 없었다.
그러던 중.
LS 엔터테인먼트로부터 연락이 왔다. 동요를 불러달라는 제안이었다. 당연히 거절했다.
잠잘 시간도 없이, 세계를 돌아다니며 공연해야 했기에 스케줄상 무리였으니까.
그런데.
그다음에 다시 또 전화가 걸려왔다. 대한민국 탑 성우와 유명 걸그룹 멤버인 조예리도 함께 작업할 건데 정말 불가능하냐고 말이다.
그 말이 제 귀에는 마치, 딸을 만날 수 있다는 얘기로 들렸다.
하물며.
‘빼꼼이 가족’이라는 동요로, 자신이 엄마 파트를 부르고, 제 딸인 예리가 딸 파트를 맡게 될 거라질 않는가?
그래.
이건 하늘이, 신이 내게 주신 마지막 기회다.
조경미는 간단히 사정을 전하며, 같은 날 작업하게 해 준다면 응하겠다고 얘기했다.
그리고는 이내.
바로 예정된 공연마저 캔슬한 뒤, 다시금 한국 땅을 밟았다.
이윽고.
몇 년 만에 딸아이의 얼굴을 보게 되었다. 최대한 담담한 척, 괜찮은 척했지만 계속 딸아이의 얼굴에 시선이 갔다.
‘예쁘게 피어나리’라는 뜻으로 지어준 이름에 걸맞게끔 아주 예쁜 숙녀로 성장했다.
아빠 엄마 없이 자랐다고는 볼 수 없을 만큼, 얼굴 위에는 사랑받은 티가 한가득 묻어 있었다.
그래.
잘 자라 주었으니, 그걸로 됐다.
─ 엄마곰은 아기곰을 사랑해요.
가사를 빌려, 딸아이에게 사랑한다고 얘기해 봤으니 그걸로 됐다.
─ 엄마곰은 아기곰을 사랑해요.
녹음을 반복하고, 또 반복해도 좋았다. 그만큼 더 오래 볼 수 있고, 더 많이 사랑한다고 해 줄 수 있었으니까.
“그래서 오늘 오랜만에 딸 얼굴 보고, 단순히 가사일지라도 사랑한다고 해 줬으니 만족하십니까?”
그런데, 정말 그걸로 됐나?
─ 행복해요, 우리 가족!
우리 가족도 이젠 행복해질 수 없을까? 아니, 내가 행복해질 자격이나 있을까?
“작곡가 선생님.”
억눌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예, 말씀하세요.”
“혹시 임신거부증이라고 아시나요?”
“아니요, 상상임신은 아는데….”
“산모가 스스로 임신을 거부해서, 임신 증상이 잘 나타나지 않는 질환이라고 해요. 유럽에서는 상당히 많은 산모가 겪고 있죠.”
그리고는 제법 차분한 어투로 말을 이어 나갔다.
“근데, 정말 무서운 게 뭔지 아세요? 그 마음을 태아도 느낀대요. 그래서 태아는 눈치를 보며 더 깊숙이 자리를 잡고 자라요. 그럼, 일반적인 임산부들과 달리 배가 잘 안 나오게 되죠.”
조경미가 제 배를 쓰다듬기도 잠시.
“제가 그랬기에 잘 알죠. 저는 딸을 거부했던 엄마입니다. 이후에는 외면했고요. 그런 제가 행복할 자격이 있을까요?”
이내 자신의 뱃가죽을 꽈악 쥐어 보였다. 현승의 눈에는 일종의 자학처럼 느껴질 따름이었다.
“저는요, 제 딸아이가 행복하면 좋겠어요. 근데 제가 옆에 있는다고 더 행복해지진 않을 것 같아요.”
묵묵히 이야기를 들어주던 현승이 입을 열었다.
“딸아이에게 사랑하는 마음이 전해졌겠냐고 물으셨죠.”
“예.”
“이번에 안 전해졌다면, 다시 전하면 되죠.”
현승은 녹음할 적에, 부스 너머로 서 있던 모녀의 모습을 다시금 떠올렸다.
애달픈 시선으로 딸을 보는 엄마와, 미움과 증오 그 어딘가의 시선으로 엄마를 흘깃 바라보던 딸.
서로 교차하는 시선.
저 둘도 아마, 전생에서의 자신과 현아처럼 가족이란 말로 뭉뚱그리기에 관계가 너무 곪아 버린 거겠지.
하나.
조예리는 제 엄마가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흘끔흘끔 바라보며, 자신도 똑같은 자세로 고쳐 잡고는 했었다. 그 모습이 꼭, 엄마 화장품을 몰래 발라보는 어린아이의 모습처럼 보였다.
아마도.
닮고 싶었던 건 아닐까?
“이제 두 모녀도 행복해져야죠.”
꼭 당장은 안 되더라도.
“언젠가는 다시 한번 한국에 방문해 주시겠어요?”
아주 천천히라도.
“제가 따님분을 위한 곡 하나 만들고, 기다리겠습니다.”
두 모녀가.
서로의 곁에서 행복해지기를 간절히 바라볼 따름이었다.
이윽고.
조경미는 울음이 새어 나오려는 입술을 꾹 깨물며 대답했다.
“네, 그럼 꼭 다시 올게요.”
남은 생은 엄마로서 살아가겠다고 다짐하면서….
“딸을 위한 노래, 꼬, 꼬옥 부르러 올게요.”
그렇게.
그녀의 비틀어진 입술 사이로는 기쁨인지, 슬픔인지 모를 울음이 끝내 터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