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173)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173화(173/482)
다음날.
아침 일찍부터, 우렁찬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쿵, 쿵-.
이 아침부터 누구지? 김 실장님 노크 소리는 아닌데.
끼이이익-.
현승이 의아하다는 양 문을 열자, 정말 의외의 인물이 서 있었다.
“왜 이렇게 늦게 열어?”
박 전무는 눈치를 살피며 황급히 작업실 안으로 숨듯이 들어왔다.
“뭐예요?”
현승은 경계 어린 눈으로 박 전무를 훑었다. 아침부터 들이닥친 것도 수상하지만….
그의 손에 들린, 하트 문양이 잔뜩 그려진 상자 하나를 보니, 더욱 수상했다.
혹시.
폭탄이 들어 있는 건 아닐까?
“손님이 왔으면, 물이라도 한 잔 내주고 나서, 용건을 묻는 게 예의 아닌가?”
박 전무는 제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며, 소파에 그대로 늘어졌다. 현승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바라보다 말고, 물 한 잔을 건네며 말했다.
“초대하지 않았지만, 여기 물이요.”
“하여간, 싸가지는.”
박 전무는 사막에서 막 살아 돌아온 사람처럼 물을 한 번에 들이켠 뒤 이죽거리듯 덧붙였다.
“너 그렇게 속에 품은 말 다 뱉고 살다가, 미움받고 돌 맞아.”
그 순간, 현승이 몸을 흠칫 떨어 보이기도 잠시.
“알아요.”
짤막이 답했다.
“큼, 흠.”
박 전무는 현승이 너무 쉽게 인정해 버리자, 멋쩍다는 양 헛기침을 해 보였다.
원래 녀석 같으면 유연하게 받아쳐야 정상인데, 어째서 순순히 인정하는 거지?
“야, 이거.”
박 전무는 화제를 전환하기 위해 자신이 들고 온 상자(팬레터)를 건넸다.
괜스레.
이죽거리는 농담도 덧붙이며.
“걱정 마라, 너같이 잘생긴 놈들은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아도 돌은커녕, 편지를 받더라.”
현승은 그의 농담에도, 아무런 대꾸 없이 상자를 품에 안았다.
“…….”
그리 크지 않은 상자임에도 제법 무게감이 느껴진다고 했더니, 상자 안에는 색색의 편지 봉투가 정말 쏟아질 듯 담겨 있었다.
“대체 이게 다 뭔가요?”
“어제 사옥 앞에서 나한테 네 팬레터를 전해 달라더라. 내가 살다 살다 어이가 없어서, 원.”
현승의 물음에, 박 전무는 기다렸다는 양 고개를 내저으며 부연했다.
“뭣도 모르고 전무한테 고작 작곡가 편지를 전해 달라고 하니까, 하도 기가 차서 받아 왔어.”
“얼굴에 전무라고 쓰여 있진 않을 테니까요. 근데 어제 받은 걸 왜 오늘에서야 주신 거예요?”
“어제 여기 근처에 사람이 너무 많더라고.”
“그게 무슨 상관이죠?”
“무슨 상관이냐니?”
탁-.
박 전무는 현승이 정말 영문을 모르겠다는 양 되묻자, 답답하다는 듯 테이블을 치며 말을 이었다.
“전무 체면이 있지. 네 팬레터 셔틀이나 해 줬다고 소문이라도 나면, 내가 고개나 들고 다닐 수 있겠냐?”
“그럼, 그냥 다른 분 시키셔도 됐을 텐데.”
할 말을 잃은 박 전무가 입매를 꾹 다물어 보이기도 잠시.
“뭐….”
괜스레 작업실 내부를 한 번 훑고는 거들먹거리며 답했다.
“겸사겸사, 너 일 잘하고 있나 감시차 들려본 거지.”
“그럼, 이제 용건 끝나셨죠?”
“아니?”
현승이 말하라는 양 차분히 기다리자, 장내에는 어색한 적막이 감돌았다.
“다음 앨범 언제 낼 지 생각해 봤냐?”
“글쎄요, 연말?”
“뭘 그렇게 서둘러? 편지나 좀 천천히 읽으면서 올해는 쉬지 그래?”
“일 잘하고 있나 감사차 오신 분이, 쉬라고요?”
“아니, 네 팬들이 서운해할까 봐.”
“제가 알아서 해요.”
박 전무가 마뜩잖은 표정을 지으며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싸가지, 너 혼자 다 해 먹어라.”
“감사합니다, 살펴 가십쇼.”
“하여튼, 아주 한마디를 안 져요.”
이윽고.
작업실을 찾았을 때처럼, 재빠르게 작업실을 나섰다.
터벅, 터벅-.
작업실로부터 한참 떨어진 곳까지 걸음을 옮긴 후에야 우뚝 멈춰 선 그는, 어디론가 문자를 보냈다.
토독, 토독-.
받는 이는 오 실장이었다.
[ 연말 발매 예정된 거 다 보류해 ]그래.
박 전무가 자존심까지 버려 가며, 팬레터 셔틀을 해 준 건….
“생각할수록 쪽팔리네.”
단순히 제 식구들의 숟가락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 * *
현승은 다음 작업을 준비하기 위해 몰두했다.
한 시간, 세 시간, 여섯 시간….
결국.
하루가 지나고, 안개가 자욱하게 내려앉은 새벽이 찾아올 때까지 쏟아 낸 다음에야 소파에 몸을 뉘었다.
아.
그때 소파 앞에 놓인 상자가 눈에 들어왔다.
자신의 팬들이 써 준 편지가 가득 담긴 상자였다.
왠지.
열어 보기 두려웠던 까닭에, 방치해 둔 채였다.
“음.”
현승이 깊은 고민에 빠진 듯 침음을 흘려 보이기도 잠시.
탁.
굳게 닫혀 있던 뚜껑을 열었다. 제 맘과는 달리, 아주 가볍게도 열린다.
이내.
현승은 맨 위에 서류도 거뜬히 들어갈 만한 봉투 하나를 집어 들었다.
‘음?’
제법 무게감이 있어, 안을 들여다보니 책 한 권과 함께 반으로 고이 접힌 편지지가 들어 있었다.
사락-.
현승은 먼저 편지지를 꺼낸 뒤, 펼치지도 못한 채 눈싸움을 한 판 벌였다.
무슨 내용이 써져 있을지 모르니, 괜스레 긴장감이 몰려온 까닭이었다.
물론.
협박장(?)부터 팬레터 그리고 선물까지 왕왕 받아 왔다고는 하지만….
요즘 부쩍 커진 팬덤 때문에 지난 기억이 스믈스믈 기어 올라오다 보니, 영 껄끄럽게만 느껴졌다.
고작 편지 한 장일 뿐인데.
어째선지 다시 전생이 반복될 것만 같은 기분이 머리를 빠르게 잠식해 나갔다.
꿀꺽.
그렇게 편지 한 통을 올려놓은 채 고사를 지내기도 잠시.
사라락-.
현승은 결심했는지, 편지지를 활짝 펼쳐 보였다.
「 안녕하세요, 작곡가님 」
정갈한 글씨체가 눈에 들어왔다.
「 이 편지가 작곡가님에게 닿을지는 모르겠지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어 몇 줄 적어보려 펜을 잡았습니다. 」
남자 글씨체 같은데, 전생에도 없던 남팬이 생긴 건가?
「 저는 무명 작가였습니다. 가정을 책임져야 하는 한 가장 주제, 꿈을 품었습니다. 단칸방에서 힘겹게 버텨내는 아내와 아이를 모른 척했죠. 」
덤덤히 말하듯 꾹꾹 눌러 담은 편지를 읽어 내려갔다.
「 제가 작곡가님을 알게 된 날은 맥주 한 캔을 털어 마시며, 꿈을 포기해야겠노라 다짐한 날이었습니다.
아무도 ‘김주성’이란 작가의 글을 읽어주지 않았으니까요. 」
편지가 아니라, 책을 읽듯 눈을 굴리다 보니 어느새 마음도 진정되었다. 역시 작가는 다르네.
「 정말 모든 것을 내려놓겠다고 다짐한 그 순간, 작곡가님이 만드신 Dear my Beethoven을 우연치 않게 듣게 되었죠.
살자, 살자고.
우리, 살자고.
문범재 님이 외치던 그 가사가 어째선지 저에게 하는 말 같더군요. 제가 글을 포기한다는 건, 사실상 살아가는 의미를 잃는 것과 마찬가지였거든요.
그때 기적처럼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다는 연락을 받게 되었습니다. 」
현승이 작게 “오, 잘됐네.”하고 호응했다.
「 함께 동봉해 드린 책이, 그때 당선된 책 ‘터널 끝에 꽃밭이 있더라’입니다. 시간 나실 적에 꼭 읽어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작곡가님의 곡을 듣고 힘을 얻어, 살아가고자 다짐했던 것처럼 작곡가님 인생에 혹여나 힘든 일이 생겼을 때 제 책이 힘이 되어드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음악으로 제 생명의 끈을 붙잡아 주신, 저를 구원해 주신 작곡가님에게 이 편지를 빌려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멀리서나마 항상 응원하겠습니다. 」
너무 거창한 말들로 이루어진 편지였지만, 기분은 좋았다.
어찌 되었건.
내 곡을 듣고, 다시금 살아 나갈 원동력을 얻었다는 말이니까.
사락-.
현승은 곧장 그다음으로 가장 눈에 띄는 화려한 편지 봉투 하나를 집어 들었다.
「 안녕하세요, 오랜만이에요! 」
편지 첫 줄부터 활기참이 느껴져, 잠시 거부감이 들었지만 꾹 참고 다음 줄을 읽어 내렸다.
「 예전에 엘에스 사옥 앞에서 제가 헬멧 한 번만 벗어달라고 요청해서 잠깐 올렸다 내려주셨었는데 기억나실까요? 」
아, 걔구나. 현승은 기억이 떠올랐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 데뷔하셨을 때부터 좋아했고, 현재 공식 팬카페인 ‘G-HS’의 카페장으로 활동 중인 미소라고 해요. 정말 어떤 사람일까 늘 궁금했어요. 하지만 이젠 알려고 하지 않으려고요.
처음에는 헬멧이 우리 사이를 막는 선처럼 느껴졌는데, 이젠 그 선마저도 좋아졌어요. 이젠 오빠 얼굴에 화상 자국이 있어도, 앞니가 돌출되있어도, 하관이 엄청 길어도, 화살코여도 좋을 것 같아요! 어떤 모습이라도, 그냥 HS라는 사람 자체가 좋아졌어요 」
이 대목에 왠지 억울해진 현승이었다. 아, 진짜 화상도 없고, 돌출도 아니고, 하관도 짧고, 화살코도 아닌데….
「 그냥 오빠 노래를 듣고 있으면, 음악을 사랑하는 게 느껴지고 그 속에 잠긴 진심이 느껴져서 좋은 것 같아요. 힘든 사회 초년생이라, 퇴근할 때면 정말 너무 고단한데 오빠 노래 들으면 내일을 살아갈 힘을 얻는 것 같아요. 」
근데 내가 오빠는 맞을까? 아, 물론 전생 나이까지 합치면 훨씬 오빠일 것 같기는 한데….
「 아마 많은 사람들이 비슷하게 느꼈을 거라 생각해요! 우리 G-HS는 오빠가 만든 음악을 사랑하고, 음악으로 치유 받은 사람들이 모인 집단이거든요!
비록 음반 활동 말고는 아무것도 안 하셔서 제 지갑을 털 수 있는 길이 없지만, 그래도 언젠가 다 돌려주고 싶고, 보답하고 싶어요. 」
현승이 피식 웃어 보였다. 사회 초년생이 벌면 얼마나 번다고, 그냥 아껴서 예쁜 옷이나 한 벌 더 사지.
「 만약 온 세상 사람이 오빠에게 돌을 던지더라도, 저만큼은 그러지 않을게요. 제가 이해하기 힘든 어떤 큰 잘못을 하시더라도, 같이 돌은 던지지 않을게요. 늘 함께 옆에서 응원할게요! 위로 받은 것에 대한 보답을 그렇게라도 하며 살아갈게요. 너무 무리하지 않아도 되니까, 오래 오래 음악과 함께 우리 곁에 있어주세요! 」
편지를 끝까지 읽어 내려간 현승은, 심장 깊은 곳에서부터 이름 붙이기 어려운 감정이 솟구쳐 오르는 것을 느꼈다.
사락-.
한 번이 어렵지, 다음은 쉽다고.
사라락-.
현승은 꼴딱 밤을 샌 탓에 몹시 피곤했지만, 그런 것도 느끼지 못한 채 편지를 빠짐없이 읽어 내려갔다.
「 난 앳치스가 사각턱이여두 샤랑함니다. 」
일본인이 삐뚤빼뚤한 한글로 써 내려간 편지부터, 더문의 팬이었다가 자신의 팬이 되었다는 사람까지.
“아니, 나 안 못생겼다니까 다들 왜 이래?”
그들의 편지에 혼잣말로 코멘트를 달아 가며, 한참을 읽었다.
다소 의외인 건….
단 한 장도, 얼굴 공개해 달라는 말은 없었다는 거였다.
‘이상하네….’
현승이 편지를 다시금 정리해 나가던 찰나였다.
똑, 똑, 똑-.
익숙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김 실장님이었다.
“현승아, 내가 오늘 출근길에 누굴 데려왔게?”
김 실장은 어색한 종종 걸음으로 들어왔다.
이내 “돌격!” 이라는 말과 함께, 그의 뒤에서 도희가 뛰쳐나왔다.
“부꼿마크매앤-!”
현승은 놀랐지만,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도희를 한 품에 안아 들었다.
“뭐야, 어떻게 왔어?”
“이고 직접 전해주구 시퍼소, 소피삼촌한테 같이 데려가달라구 해써!”
그 말에 현승이 “소피 삼촌?”하며, 김 실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내가 쇼파 하나 사 줬거든. 쇼파라는 발음이 어려운가 봐. 자꾸 소피래.”
“김 실장님은 집들이 선물이 늘 쇼파네요? 좀 발전해 보심이….”
“인마, 쇼파가 집에 중심을 딱 잡아주는 가장 중요한….”
현승은 다시금 도희에게 시선을 옮기며 물었다.
“이게 뭐야?”
“편지이!”
“나 주려고?”
“우웅-!”
그러고는 이내, 도희가 내민 꼬깃꼬깃한 쪽지를 펼쳐 보였다.
「 부꼿마크맨! 빼꼬미 가족 만두러죠서 감사함니다! 짱! 」
현승은 자꾸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참으며, 말했다.
“이게 무슨 편지냐?”
“아냐아! 편지야!”
“맞춤법도 다 틀려서는.”
“아냐아! 다 마자!”
둘이 티격태격하는 걸 보던 김 실장은 입술을 삐죽거리며 쇼파를 차지하고 앉았다.
“참나, 쇼파도 내가 사 주고, 데려와 주기도 내가 데려와 준 건데 둘이 좋아 죽네.”
“삐지셨어요?”
“아니거든?”
“제가 들으면 기분 좋으실 만한 말 해 드릴까요?”
“오늘 구내식당 메뉴라면 이미 확인하고 왔어.”
“그거 아니에요.”
현승이 제 손에 들린 도희의 쪽지 위로 시선을 머무르기도 잠시.
“저번에 말한 거.”
결심한 듯 말을 덧붙였다.
“저, 할게요.”
“뭘?”
“팬 서비스요.”
김 실장은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쇼파에서 천천히 일어섰고.
“진, 진짜로?”
“팬서비스?”
현승의 품에 안긴 도희는 처음 듣는 단어가 신기했는지, 계속 따라서 소리쳤다.
“팬서비수, 팬서비수….”
이윽고.
“팬케이쿠 먹고싶다!”
“가자.”
그 말 한마디에.
“어…. 어? 야 둘이 어디 가!”
현승은 도희만 안은 채 쌩하고 작업실을 나가, 팬케이크 집을 향했다.
“나도 같이 가!”
뒤따라오는 김 실장님도 덤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