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176)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176화(176/482)
김 실장은 끝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현승의 작업실을 찾았다.
“현승아, 근데 선물은 뭘 준비….”
하나.
현승은 어딘가 나가려는 건지, 간단히 짐을 싸고 있었다.
“너 어디가?”
김 실장은 괜히 심장이 쿵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마치.
자식이 집 나가는 장면을 목도 했을 때와 같은 심정이랄까? 닫힌 맘의 문을 열고, 더 넓은 세상으로 발을 내딛길 바라긴 했다지만….
이렇게.
바로 회사를 나가길 바란 건 아니었단 말이야.
“저요?”
잔뜩 심각해진 김 실장과 달리, 현승은 무심히 답했다.
“제이블 작업실로 곡 작업하러 가요.”
그 말에 김 실장이 “아아.”하며 고개를 끄덕이기도 잠시.
“근데 곡 작업이라면 너 작업실에서 해도 되잖아?”
왜 귀찮게 이동하냐는 듯, 어깨를 들썩이며 되물었다.
“기타로 꼬시는 바람에 홀라당 넘어갔지 뭐예요.”
“너 기타 하나면 꼬실 수 있는 그런 남자였어?”
“그냥 기타가 아니라, 유명 기타 브랜드에서 1968년에 생산된 모델로, 기타의 거장이라 불리는 사람의 손때를 탄….”
“그러니까, 대충 비싸고 좋은 기타라는 거잖아?”
현승은 답답하다는 양, 고개를 내저으며 부연했다.
“아니죠. 대충 비싸고 좋은 기타가 아니라, 이 세상에 단 한 대뿐인 기타로서, 돈이 아무리 많아도 구할 수가 없어요. 이미 제이블 손에 있거든요.”
이내 가방을 둘러매며 덧붙였다.
“그러니 별수 있나요? 아쉬운 사람이 움직여야지.”
김 실장은 즉답 대신, 고개를 잘게 끄덕여 보였다.
가만 보면.
재미로 음악을 하는 재능충인 것 같으면서도, 참 음악 관련해서는 박학다식하며 조예도 깊었다.
동쪽이 녀석 성격에, 라이벌이 있는 동굴로 들어가겠다는 것만 보더라도, 정말 그 기타를 꼭 한 번이라도 쳐 보고 싶어서겠지.
그래.
이런 면모들이 현승을 탑 작곡가라는 자리에 올려놓은 것 아니겠는가?
“조심히 다녀와.”
김 실장은 수련회를 보내는 아들을 배웅하듯. 옷깃을 여매 주며 물었다.
“하루 만에 돌아오진 않겠지?”
현승이 고민하기도 잠시.
“글쎄요?”
피식 웃으며, 헬멧을 뒤집어썼다.
이윽고.
불을 끄고는, 함께 작업실을 나섰고.
“갈 땐 가더라도 이거 하나만 대답해 주고 가.”
김 실장은 뒤돌아 가려던 현승을 불러 세웠다.
“뭔데요?”
“선물 뭐야?”
현승이 “아.”하고 탄식하고는, 말을 이었다.
“신경 안 쓰셔도 돼요. 어차피 업체에서 일괄적으로 배송처리 해 주기로 했거든요.”
그러고는 이내 “그럼, 이만.”이라는 말을 남긴 채 유유히 반대 복도로 사라졌다.
“아….”
김 실장은 자신에게조차 비밀로 하는 현승에게 서운함을 느끼기도 잠시.
“혹시 사춘기가 왔나?”
앞날에 대한 걱정이 앞섰다.
* * *
처음.
두 음절로 이루어진 ‘처음’이라는 단어가 지닌 힘은 무척 강력했다.
그래.
제이블에게 있어서 HS는 처음으로 인정한 라이벌인 만큼, 그의 존재가 뿜어내는 힘은 대단했다.
오후 1시.
HS와 만나기로 한 시간이 점차 다가올수록, 손에 땀이 차기 시작하는 걸 보면 말이다.
하물며.
이번에 만나는 건, 라이벌이라든가 회식으로 만나는 게 아니라, 협업을 위해 만나는 자리인 만큼….
“후-.”
천하의 제이블이라도 긴장될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제 작업실 너머로 가볍게 노크 소리가 들려왔고.
“큼, 흠.”
제이블이 목을 가다듬고는, 짐짓 태연한 얼굴로 “들어오세요.”하며 입을 열었다.
끼이이이익-.
두꺼운 방음문이 열리며, 묘한 마찰음이 일었다.
스윽-.
제이블은 그 소리에 맞춰 천천히 시선을 옮겼고.
“살리에리 선생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생전 처음 보는 청년이 서 있었다.
“어….”
리액션이 갈 곳을 잃은 제이블은 바보마냥 입술을 벌린 채 쳐다봤다.
HS의 맨얼굴을 처음 대면하다 보니, 놀랄 만하지 않냐고 변명하기엔….
“얼굴 뚫어지겠습니다.”
너무 오래 쳐다봐 버렸다.
“헬멧 쓰고 올 줄 알았는데 벗고 와서 놀란 탓입니다.”
작은 얼굴 안으로 오목조목하면서도 날카로운 이목구비가 선명하게 가득 들어차 있는 얼굴은 시선을 빼앗기 충분했다.
“쓰고 왔다가, 문 앞에서 벗었습니다.”
이내 HS가 제 손에 들린 헬멧을 흔들며 작업실 내부로 들어왔다.
길쭉한 다리를 단숨에 작업실 중앙까지 도착한 HS는, 작업실을 눈으로 담아내기도 잠시.
“그럼, 우선….”
곧장 심각한 표정으로 말문을 열었다.
“저번에 말씀하신 기타 좀 연주해 봐도 되겠습니까?”
제이블이 무슨 소리인가 싶어 고개를 갸웃거리다 말고.
“아, 잠시만요.”
고급 쇼케이스에 담긴 기타를 조심스럽게 꺼내 들었다.
사실.
어렵사리 경매로 낙찰받은 만큼, 아까워서 자신조차 딱 한 번 손에 쥐어 본 기타였다.
처음.
협업 제안을 받았을 적.
“곡 작업은 제 작업실에서 하는 걸로 하죠.”
제이블은 HS의 말에 순순히 알겠다고 하기 싫었다.
[ 살리에리, 쫄? ]안 그래도 HS의 도발 한마디에 홀라당 넘어가 고민할 새도 없이, 수락한 마당에….
알량한 자존심이라고 할지라도, 곡 작업만큼은 제 작업실에서 하고 싶다는 욕심이 솟구쳤다.
결국.
제이블은 HS가 군침이 살살 돌 만한 필살기를 꺼내 들었다.
“일전에 말했던 기타, 연주 안 해 보고 싶으신가요?”
아니나 다를까, 그 물음 한 번에 HS는 군말 없이 자신이 가겠다며 통화를 종료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제대로 된 인사를 나누기도 전부터 기타를 찾는 걸 보면 순순히 이곳을 온 이유는, 오로지 ‘기타’ 때문인 모양이었다.
하물며.
“대신 나중에 기회가 생기면 연주할 수 있게 해 드리겠습니다.”
“예, 꼭 기회가 생기면 좋겠네요.”
“연주하실 줄은 아시죠?”
“웬만한 기타리스트보다 나을 걸요.”
일전에 나눈 대화에서, 자신이 먼저 제안한 것이기도 했기에 무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제 와서 안 된다고 할 수도 없겠군.’
결국.
제이블의 손에 들린 기타는 HS의 손으로 옮겨졌다.
“조, 조심….”
휙 가져가는 HS의 손길에 약한 소리가 새어 나왔고.
“예? 잘 못 들었습니다. 뭐라고 하셨죠?”
기타를 품에 안은 채 눈빛을 반짝이는 HS를 내려다보다, 이내 아니라며 말을 이었다.
“웬만한 기타리스트보다 낫다는 연주 실력이나 한 번 들어봅시다.”
그 말에 HS는 제일 좋아하는 장난감을 손에 쥔 어린애마냥 자세를 고쳐 잡았다.
“바라던 바입니다.”
머지않아.
제이블이 앰프까지 연결해 주자, HS는 비로소 날개를 달았다는 양 자유롭게 손을 움직였다.
─ ♬ ♬ ♬
힘을 뺀 채, 가볍게 움직이는 손가락만 보더라도, 확실히 웬만한 기타리스트보다 나을 거라는 말은 허풍이 아닌 듯 보였다.
그제야.
제이블은 마음을 놓은 채, HS의 연주에 몰두했다.
─ ♬ ♬ ♬
원래 있는 곡을 연주하는 것 같지는 않고, 단순 프리스타일로 연주한다고 하기엔 조금이라도 거슬리는 구간이 없었다.
계속해서.
피킹 위치를 바꿔, 다양한 연주 주법으로 선율이 지닌 분위기를 바꿔 가는 와중에도 말이다.
─ ♬ ♬ ♬
얇고 곧게 뻗은 손가락이 기타 줄 위를 자유롭게 휘젓고 다니는 걸 바라보다, 지그시 눈을 감던 찰나였다.
“음?”
너무 뜬금없는 포인트에서 “팅.”하고, 엇나가는 소리와 함께 연주가 끝나 버렸다.
“끝난 겁니까?”
제이블이 못내 아쉽다는 듯 고개를 들며 물었다.
“예?”
전혀 속을 읽을 수 없는, HS의 묘한 얼굴 위로는 점차 웃음이 번져 나갔다.
그러고는 이내.
“이거예요.”
뜬금없는 소리를 내뱉었다.
“뭐가 이거라는 겁니까?”
“이거라니까요.”
“아니, 그러니까 뭐가 이건데?”
HS는 제 말에 아무런 대꾸도 없이, 작업 콘솔 앞으로 다급히 뛰어가 프로그램을 실행시켰다.
이윽고.
기타 위에서 춤추던 손가락이 마스터 키보드를 훑어 나갔고, 장내 안으로는 알 수 없는 마찰음이 울려 퍼졌다.
“…….”
제이블은 그런 HS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어쩌면.
소문보다 더욱 별난 놈일지도 모르겠다고.
.
.
.
제이블과 HS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각자 쇼파 위로 늘어졌다.
“아….”
이내 벽에 걸린 시계 위로 시선을 옮긴 제이블은 헛웃음이 새어 나오는 걸 간신히 참아냈다.
재깍, 재깍.
벽에 걸린 시계의 초침이 밤 11시를 막 넘어가고 있던 까닭이었다.
요즘.
부쩍 작업 시간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논스톱으로 10시간 동안 작업을 해 보긴 처음이었다.
기타를 치다 말고, 별안간 이거라며 소리친 HS는 자신이 떠오른 악상을 토해 내듯 코드로 옮겨 담았고.
자신이 보태고, 빼면서 10시간 동안 3곡이나 뽑아냈다.
결과물은….
당연히 만족스러웠다.
“으음.”
제이블이 곁눈질로 HS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별난 놈이 아니라, 독한 놈이었네.’
그래.
보통적인 사람이라면 10시간 동안 작업을 이어 나갔으면 체력이 방전되기 마련이지 않나?
하나.
HS는 아직도 곡의 멜로디를 흥얼거리며, 반주로 얹을 기타를 연주하듯 공중에서 손가락을 움직이고 있었다.
젊음이 좋긴, 좋네.
제이블은 나이 차이를 핑계 삼아, 조금 더 소파에 몸을 파고들었다.
정말.
‘더는 못 해.’
그렇게 생각한 제이블이, 침침해진 눈을 감던 찰나였다.
“모두가 날 좋아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 너 또한 마찬가지.”
HS가 말하듯 흥얼거린 소절 하나가 귀에 팍 꼿혀 들었다.
“어?”
제이블은 스프링마냥 몸을 튕겨 내며 소파에서 일어났다.
“이거야.”
방금 전, 밟힌 잔디마냥 늘어졌던 제이블은 온데간데없고.
“뭐가 이건데요?”
“이거라니까?”
“따라하지 마세요.”
한정판 피규어라도 본 것마냥 눈을 초롱하게 빛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제이블 또한 이십 대로 회귀한 듯 창창해 보였다.
“방금 그 곡을 타이틀 곡으로 잡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고작 그거 말하려고 뜸을 그렇게 들이셨습니까?”
“내 감으로는, 이 곡이 타이틀곡으로 제격인 것 같은데.”
“예, 그러시죠. 이견 없습니다.”
현승의 대답에, 제이블은 다시 한번 의미심장하게 말을 이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제안을 하죠.”
아마.
HS가 절대적으로 거절할 만한 제안이겠지만.
“노래는 직접 하는 걸로 하지.”
“무슨 말씀이십니까?”
제이블은 한 번 머릿속으로 떠오른 일은 무조건 실행시켜야만, 직성이 풀린다.
고로.
“저 기타, 가지고 싶으시죠?”
HS가 거절할 수 없게끔, 먹잇감을 함께 던져 주면 될 일이었다.
“기, 기타?”
역시나.
“가, 가지고 싶어.”
영롱하게 빛나는 ‘1968 기타’를 바라보는 HS의 얼굴은….
꿀꺽.
마치 탐스런 먹잇감을 발견한 짐승처럼 보일 따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