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179)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179화(179/482)
안지호는 HS로부터 호출이 떨어지자마자, 모자와 마스크를 푹 눌러쓴 채 작업실을 향했다.
“작곡가님?”
먼저 도와 달라고 연락이 왔길래, 뭔가 다급한 건가 싶었는데….
부리나케 달려온 지금, 정작 HS는 소파에 늘어져 자고 있었다.
아니, 잠깐만-.
혹시 정말 과로사로 쓰러지신 건 아닐까? 가만히 생각해 보면 더문 녹음 때도 그렇고, 이번 Villain 녹음 때도 그렇고….
HS가 제대로 자는 걸 본 적이 없었다.
그 생각까지 도달한 안지호는 다급히 걸음을 옮겼다.
“자, 작곡가님!”
가볍게 몸을 흔들어 보이자, HS의 머리칼만 스르륵 흐트러질 뿐.
그는 아무런 미동조차 없었다.
갑자기 안지호의 심장은 발끝으로 떨어지고 올라오기를 반복했다.
쿵, 쿵, 쿵!
마치 세상이라도 끝난 것마냥 떨리는 손으로 HS의 팔뚝을 꽉 쥐었다.
“눈 좀 떠 보세요.”
HS의 몸은 인형마냥 제 손이 움직이는 대로 흔들거렸다.
“일, 일어나요.”
이내.
“장난치지 말고.”
마치 가을바람에 정처 없이 떨어지는 낙엽처럼 손이 툭 하고 소파 밖으로 추락했다.
“아니, 작곡가님, 이런 게 어딨어요. 잠, 잠깐만….”
안지호는 눈시울을 붉히며 횡설수설 중얼거렸다.
“저 아직 제대로 보답도 못 했는데 이렇게 가면….”
머지않아.
소파 끄트머리에 고개를 처박던 찰나였다.
“야, 우냐?”
장난기 서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작곡가님?”
고개를 천천히 들어 올리자.
씨―익
익살스럽게 웃고 있는 얼굴이 보였다.
아주.
얄밉기 그지없었다.
“우냐니까?”
“안 울어요.”
이내 HS는 피식 웃으며,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그건 그렇고, 네 상상 속에선 내가 이미 죽은 모양이다?”
“아, 그러니까 왜 사람이 깨우는데 안 일어나시냐고요.”
“나 잠든 지 30분도 채 안 됐어, 인마. 피곤하면 그럴 수도 있지.”
안지호도 웅크리고 앉았던 몸을 꼿꼿이 일으키며 HS의 안색을 살폈다.
잘생기긴 더럽게 잘생긴 얼굴 위로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운 걸 보면 어지간히 피곤하긴 한 모양이었다.
“그렇게 피곤하시면 집 가서 편하게 주무시지.”
“집 가서 잘 거면, 널 왜 불렀겠냐.”
“아, 맞다. 저한테 도와 달라고 하셨던 게 뭐예요?”
그 물음에 HS는 콘솔 앞으로 다가가 프로그램 창을 띄웠다.
그러고는.
아무런 설명조차 없이 스페이스 바를 눌러 트랙을 재생시켰다.
탁-.
머지않아, 가을바람이 낙엽 구멍을 뚫고 지나가듯 휑한 소리가 장내를 채워나갔다.
‘음?’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리지? 라는 생각이 들던 찰나.
─ ♬ ♬ ♬
아주 느린 템포의 피아노 선율이 희미하게 들려왔다.
─ ♬ ♬ ♬
어딘가 쓸쓸한 음률은 바람 소리를 점차 좀먹으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윽고.
─ 찬 바람이 뺨을 스치고 지나가는 그런 날.
귀에 익은 목소리가 스피커를 뚫고 흘러나왔다.
“어?”
그 순간, 안지호가 고개를 돌리자 심드렁한 표정의 HS가 보였다.
“호, 혹시….”
“쉿.”
HS는 아무런 말도 하지 말라는 듯 입술에 손을 가져다 대며 고개를 내저었다.
─ 비에 젖은 낙엽 냄새가 진동하는 그런 날.
낯익은 듯, 낯선 목소리.
─ 묻어 놓았던 기억들이 계속해서 고개를 드는 그런 날.
음악을 제외하곤, 아무런 잡음도 들려오지 않는 장내를 가득 채운 목소리는 확실히 많이 들어본 목소리였다.
예를 들어.
─ 기억을 더듬어, 형체도 없는 감정을 어루만져 봐.
제 바로 옆에 있는 HS라던가.
─ 차라리 이름이라도 붙일 수 있으면 좋으련만.
정말 직접 가이드를 부른 건가? 아니면 개인 앨범에 직접 불러서 수록하실 생각인가?
─ 알 수 없는 감정에 나를 빼앗겨.
근데 왜 여태껏 직접 안 하신 거지?
─ 불투명한 것들을 그리워해.
이런 실력과 감정을 지녔으면서….
─ 그런 어느 날인가 결국 무너지고야 만 거야.
곡이 지닌 감정과 계절을 온전히 목소리만으로 전달할 줄 아시는 분이….
그래.
‘이 정도면 가수들 기만하는 거 아닌가?’
하기야.
작곡만 잘했으면 작곡만 했겠지. 직접 디렉터를 왜 보겠는가? 안지호는 이제야 HS가 광적으로 “다시.”를 외쳐 댄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본인의 실력을 알고 있을 테니….
웬만한 보컬로는 성에도 안 차겠지. 나 같아도 그러겠다.
─ 술이 날 채우는 이 공허한 기분이 싫어.
이미 HS의 목소리라 확신한 안지호는, 곡에 온전히 집중하기 위해 눈을 지그시 감았다.
─ 가을이 가면 괜찮아질까요, 봄이 오긴 올까요.
그러자, 목소리에 가려진 멜로디가 제 심장 한 편을 날카롭게 찌르며 들어왔다.
어딘가 아련한 공기가 막힌 코를 매섭게 뚫고 들어오는 듯한 기분에, 미간을 찌푸렸다.
─ 오늘도 난 낙엽처럼, 그래, 저 낙엽처럼.
가사 한 소절마다, 머릿속으로는 키워드와 함께 몇몇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어느 가을날.
어두운 골목길.
노란 전봇대.
그래.
몰려오는 탈력감에 주저앉아 바람 소리와 낙엽 구르는 소리 따위로 위로받았던.
연습생 시절이 말이다.
아주 쌀쌀한 가을바람 앞에서 긴팔 티셔츠 하나로 견뎌 내며 가족을, 친구를, 지나간 인연을….
불특정 다수를 그리워하며 속으로 울던 그날의 감정이다.
이 곡은.
그날의 감정을 대변하고 있었다.
“후….”
안지호는 자신도 모르게 묵은 숨을 토해 내며 HS를 바라봤다.
아아.
대체 이 장난기 가득한 작곡가는 어떤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기에, 이런 곡을 만들 수 있단 말인가?
저 머리통 속을 한 번만 들여다볼 수 있다면 알 수 있을까?
아니.
저런 천재의 머릿속은 본다고 알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개인 앨범 제작 중인 와중에 이런 곡은 대체 언제 또….’
HS는 이런 제 속마음을 읽기라도 했는지 곡이 끝남과 동시에 입을 열었다.
“아까 너한테 연락했을 때 만든 거라서, 녹음하면서 조금씩 작업은 더 봐야 할 것 같다.”
“네? 그 말은… 제가 연락받고 오는 시간 안에 이 곡을 만든 거라는 말씀이신 가요?”
“응, 그러고 나서 좀 자려는데 네가 너무 빨리 와 버린 거지.”
안지호는 알 수 없는 두려움에 “허.”하는 감탄을 내뱉었다.
거짓말 아니냐고 따져 묻고 싶은 반발심이 일어날 만큼, 안지호로선 쉬이 믿기지 않는 발언이었다.
“아무튼, 그래서 좀 급해.”
“갑자기 뭐가 급해요?”
“방금 들은 곡 발매 말이야.”
안지호가 어깨를 들썩이며 즉답했다.
“그건 저 말고 유통사에 도와 달라고 하셔야죠.”
“너 바보냐? 녹음까지 다 끝내야, 넘기지.”
“녹음이요? 이거 작곡가님이 부르시는 거 아니에요?”
“응, 가이드 따 준 건데?”
“예? 방금 그게 가이드라고요?”
놀라서 되묻자, HS는 잔뜩 귀찮다는 표정으로 턱을 괴며 부연했다.
“어, 빨리 녹음을 끝내야 넘길 수 있는데, 네가 자꾸 헛짓거리할까 봐 코드 대신 직접 가이드 따 준 거야.”
거참.
“헛짓거리라뇨?”
진짜 얄미워 죽겠네.
“오늘 안에 녹음 끝내야 해. 딱 세 번 더 듣고 바로 녹음 들어가자”
하물며, 무자비하기까지 하다. 개인 앨범 녹음을 진행한 지 얼마나 됐다고 또 ‘다시 감옥’으로 수감이라니.
“달랑 세 번 듣고, 불러 보라는 건 좀 무리지 않을까요? 딱 하루라도 시간을 주시면….”
“울어서 목이 잠긴 것도 아니고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지도 않았는데 못 할 건 뭐야?”
하여간.
“까짓거, 할 수 있어요.”
“망아지호, 응, 응헌해.”
“진짜, 그만 좀 놀려요.”
사람 센 척하게 만드는데 선수라니까.
* * *
김 실장은 구내식당에서 현승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저기, 금쪽아.”
돈까스를 자르지도 않고, 한입에 욱여넣고 있는 현승에게 말이다.
“금쪽이 아닌데.”
“그래, 은쪽아.”
“은쪽도 아닌데.”
“아, 동쪽이.”
“네, 왜 부르세요?”
정확한 애칭(?)을 부른 후에야 발언권이 생긴 김 실장은, 목소리를 착 내리깔며 물었다.
“동쪽아, 너 요즘 대체 무슨 일을 벌이고 다니는 거야?”
“누가 들으면 제가 은밀한 조직 생활이라도 하는 줄 알겠어요.”
그 말에 김 실장이 티슈로 제 입가를 닦아 내고는 따발총처럼 말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아니, 팬 미팅을 갑자기 한다고 하질 않나. 선물도, 굿즈도 직접 제작해 놓고 뭔지 말도 안 해 주고. 뿐이야? 제이블이랑 갑자기 콜라보로 앨범을 제작한다고 하더니, 갑자기 이젠 안지호 데리고 곡을 발매한다니까 하는 말이잖아.”
밥알을 야무지게 씹어 대던 현승은, 별안간 꿀꺽하고 삼켜 버리고는 일일이 받아쳤다.
“언제는 팬 서비스 할 생각 없냐면서요? 선물이나 굿즈는, 팬 미팅 날 되면 다 알게 될 거고, 제이블은 그냥 재밌을 것 같아서 해 본 거예요. 그리고 발매는 늘 있던 일인데 뭐가 문제예요?”
그 말에 김 실장은 말하려 입을 열었다가, 이내 꾹 닫아 버렸다. 사실, 현승의 말이 또 다 맞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현승이 잘못한 것도 아니고, 오히려 회사 입장에선 얼싸 떠안고 춤을 춰도 모자랄 일들이었다.
하여간.
나른하고, 태평해 보여서 걱정했는데, 가만 보면 성미도 급하고 실행력도 빠른 편이라.
되레 회사 측에서 현승의 속도를 못 맞추는 상황이 생길 때가 더 많았다.
“그래서 fallen leaves는 언제 발매되는데요?”
지금처럼.
“최대한 빨리 잡아 보고 연락해 준다고 했어. 네 팬미팅이랑 같이 홍보 자료 준비해서 뿌릴 거야. 같이 태우면 효과도 더 좋을….”
“그래서 언제요? 날씨 더 추워지면 안 되는데.”
“내가 밥 먹고 한 번 더 유통팀에 가 볼게.”
김 실장은 알겠다고 대답하는 현승을 바라보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가끔 저렇게 날카롭게 바라보며 물어 올 때면, 동쪽이가 아니라, 인생 2회차인 형처럼 보인다니까.
“그건 그렇고, 개인 앨범 최종 음원은 언제 입고 돼?”
“제이블이 끝나면 보내 준다더라고요.”
“근데 네 손으로 안 해도 되겠어?”
그 물음에 현승이 침음을 흘리기도 잠시.
“뭐, 제이블이잖아요.”
짤막이 답하고는 이내 티슈로 입가를 닦아 냈다.
그때.
식판 옆에 둔 현승의 휴대폰이 정신없이 울려 댔다.
지잉-!
지잉-!
지잉-!
대체 무슨 연락이 저렇게 연속적으로 오는 거지?
“누구야?”
김 실장은 아닌 척, 슬쩍 식판을 챙겨 들며 물었다.
“아, 이번 개인 앨범 피처링해 준 가수들이 시간별로 연습 영상 보내 주고 있거든요.”
“어?”
“안지호, 정아린, 김보미 이 셋 말이에요.”
“녹음도 끝났는데, 왜?”
“이번 팬미팅에서 개인 앨범 발표할 거라고 했잖아요.”
“나는 가수들이 직접 무대를 하는 줄은 몰랐지-!”
“뭘 그렇게 놀래요? 제가 직접 노래한다고 하면 아주 기절하시겠어요?”
“그거야말로 진짜 기절초풍할 일이기는 하지.”
“그럼 기절하세요.”
“엉…?”
김 실장은 제 눈을 깜빡거리다 말고, 방금 막 잡아 올린 활어마냥 펄쩍 뛰며 되물었다.
“그, 그게 무슨 말이야-?”
“말 그대로 제가 직접 노래하니까 기절초풍하시면 된다는 거죠.”
“쓰읍- 동쪽이 어린이, 어른한테 거짓말하면 못써요.”
“거짓말 아니고, 이번 앨범 타이틀곡은 저랑 제이블이 같이 보컬로 참여했거든요.”
그 말에 김 실장은 아주 걱정스러운 얼굴로 현승의 어깨를 매만지며 꼬치꼬치 캐물었다.
“제이블이 혹시 협박했어? 너 얼굴 다 팔 거라고? 그런 건, 하등 걱정할 필요가 없어. 우리 법무팀이 알아서….”
“협박 안 당했어요. 그런 거 당할 사람도 아니고.”
“그럼, 왜….”
현승이 식판을 들고 일어나며 답했다.
“거절할 수 없는 딜을 걸었죠.”
그러고는 이내 씩 웃어 보였다.
“허어….”
김 실장은 그런 현승의 얼굴을 보며 헛웃음을 터트렸다.
아무래도.
제 예상보다 훨씬 더 스케일이 커진 까닭이었다.
“은쪽아, 같이 가.”
“은쪽이 아니라고요.”
그래.
김 실장 눈에는 이번 팬미팅으로 인해 한바탕 세간이 떠들썩해질 게 분명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