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186)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186화(186/482)
김 실장은 급하게 넥타이를 매며 복도를 가로질렀다.
터벅, 터벅-.
한 걸음, 걸음마다 긴장감이 배가 되었다.
대체.
이번 긴급회의의 안건은 대체 무엇일까?
혹시 또 유니스 뮤직그룹에서 찾아온 건가?
그래.
보통 지금까지 자신이 임원 회의에 불려 갔던 건 현승과 관련된 일인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니까.
‘충분히 가망성 있어….’
이내 김 실장은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의문을 해소하지 못한 채, 대표실 앞에 다다랐다.
“큼, 흠.”
김 실장은 넥타이를 고쳐 매고는, 가볍게 문을 두들겼다.
똑, 똑, 똑-.
노크가 끝나기도 전에 벌컥 열린 문 너머로는, 대표 직속 라인의 김 비서가 서 있었다.
“들어오시죠.”
김 비서의 손짓을 따라 안으로 걸음을 옮기니 이미 회의실 곳곳을 채운 임원들이 보였다.
‘헉….’
급히 복귀한다고 했지만, 아무래도 늦은 모양이었다.
“김 실장.”
슬쩍 눈치를 살피며 서 있었더니, 최 이사가 자신을 불러 세웠다.
“이리 오게.”
지시가 떨어지기 무섭게, 옆자리를 꿰차고 앉았다.
임원 회의에 불려 올 때마다 느꼈지만, 확실히….
‘넥타이가 너무 갑갑해.’
단순 실장급 회의와는 흐르는 공기의 무게부터 달랐다.
하기야.
이 바닥에서 최소 15년 이상 넘게 구르고 구른 사람들뿐이니, 당연한 얘기이려나?
눈빛, 호흡, 가볍게 던지는 농담 한마디조차 무겁고, 엄숙하며, 압박감이 배어 있었다.
“주인공이 늦으면 쓰나.”
박 전무가 농담조로 던진 말조차 돌덩어리처럼 들려왔다.
“주, 주인공이요?”
김 실장이 화들짝 놀라며 되물었지만, 박 전무는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가볍게 낄낄 웃어 보일 뿐이었다.
‘으음….’
오늘따라 수많은 시선이 제 온몸에 다닥다닥 달라붙는 것처럼 느껴지는 건 기분 탓일까?
묘하게 넘실거리는 긴장 속에 김 실장은 지금 가시방석에 앉은 듯, 엉덩이가 쑤셔 왔다.
시선을 돌리니….
최 이사는 평상시와 같이 평온한 미소를 머금고 있을 뿐이었다.
톡, 톡-.
이내 최 이사는 별말 없이 제 무릎을 가볍게 두들겼다. 마치 아무 걱정하지 말라는 듯한 그의 손길에 김 실장은 금세 안주를 느꼈다.
어느덧.
이 넓은 회의실의 주인인 전남일 대표가 고급스러운 정장 코트를 펄럭이며 입장했다.
드르르륵-!
전 임원이 일어나 그를 향해 고개를 숙여 보였다.
“다들 모이셨나요?”
전남일은 상석에 서서 그런 임원들의 면면을 한번 슥 훑어보더니, 먼저 착석했다.
‘방금….’
대표의 시선이 제 얼굴 위에서 꽤 오랫동안 머무른 것 같은데….
‘이것도 기분 탓이겠지?’
이윽고.
전 인원이 다시 착석하자, 전남일은 깍지를 끼며 입을 열었다.
“하루라는 기한을 드렸음에도 아무런 잡음이 나오지 않았으니, 이견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겠죠?”
그의 물음에 박 전무와 최 이사는 조용히 입을 다문 채, 고개를 가볍게 끄덕거렸고.
다른 임원들은 난처한 얼굴로 서로 시선을 공유했다.
미묘한 정적이 흐르기도 잠시.
“네-.”
미리 합이라도 맞춘 양, 입을 모아 대답했다.
“이견 없습니다.”
지금 김 실장은 머리를 굴려 대기 바빴다.
‘무슨 안건이 오갔던 걸까?’
하나, 알 방도가 없으니 그저 입을 꾹 닫고 있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단순히 머릿수나 채우러 온 사람처럼 말이다.
“그럼, 조만간 전체 공지 해도 되겠죠?”
재차 확인하려 드는 대표의 물음에 임원들은 마지못해 뻣뻣한 고개를 끄덕거렸다.
“오케이, 좋습니다.”
전남일은 흡족하다는 양 주억거리고는, 이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럼, 다들 잘 숙지해서 잡음 안 나오게 해 주시고, 저는 중요한 미팅이 있어서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정말 장내를 벗어나 버렸다.
‘어라? 정말 나는 왜 부르신 거지?’
이 정도면 비서실 측에서 문자를 잘못 보내신 건 아닐까? 그래서 오늘따라 계속 기묘한 시선과 느낌을 받은 거고….
그래.
그렇다면 말이 된다.
“최 이사님.”
김 실장은 밀물처럼 장내를 빠져나가는 사람 중 최 이사의 옆으로 다가가 걸음을 맞추며 물었다.
“대표님께서 혹시 무슨 안건에 대한 이견을 물어보셨던 건지….”
다만, 최 이사는 여전히 싱긋 미소만 띤 채 별다른 말 없이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어 버릴 뿐이었다.
탁-!
김 실장은 닫힌 엘리베이터 문 앞에 혼자 덩그러니 서서 “으으.” 하는 신음을 냈다.
‘의문점만 생기고, 밥도 못 먹고-!’
한편.
엘리베이터 안은 어색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그때.
좀처럼 사옥에서 얼굴 보기가 어렵다는 권용진 상무가 엘리베이터 내 전광판에 시선을 고정한 채 입을 열었다.
“어차피 조그마한 잡음도 못 내게끔 목을 조여 오실 거면서, 그냥 저기 전광판에 공지를 띄우시지.”
그러고는 비아냥거리는 어투로 덧붙였다.
“뭘 또 그런 일개 직원 위촉업무 변경 건으로 바쁜 사람을 어제부터 오라 가라 하시는지….”
그 말에 최 이사가 한쪽 눈썹을 들썩이며 입을 열었다.
“권 상무님, 일개 직원이라니요?”
권용진의 입에서 나온 ‘일개 직원’이라 하면, 조금 전 홀로 엘리베이터 문턱을 넘지 못한 김우현 실장을 지칭하는 단어일 터였다.
하나.
최 이사에게 있어선 김우현이 단순 일개 직원이 아니지 않나?
아아.
이젠 실제로도 일개 직원이 아니다. 대표 입에서 김우현의 위촉업무를 변경하겠다는 말이 나왔지 않은가?
머지않아 그가 실장에서 본부장으로 직책이 변경되었다는 내용이 사내 전광판과 게시판을 도배할 테지.
그런데, 일개 직원이라니?
“제가 뭐 틀린 말이라도 했습니까?”
“아무리 그래도….”
최 이사가 권용진의 물음에 무어라 받아치려던 찰나였다.
“권 상무, 보는 눈도 많으니 새로 이동할 본부장에 대한 예우는 갖춰서 말하는 게 좋지 않겠나?”
박 전무가 특유의 괄괄한 목소리로 톡 쏘듯 말을 이었다.
“그리고 맨날 골프 접대 다닌다고 바쁜 건 아는데, 이럴 때라도 임원끼리 안부 묻고 살면 좋잖아?”
때마침 “띠링-!” 하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고.
“그리고.”
박 전무가 그의 가슴팍을 가볍게 밀치며 덧붙였다.
“도착했으니까 이만 내려.”
발언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엘리베이터 밖으로 힘없이 밀려난 권 상무의 얼굴은 수치심에 잔뜩 붉어진 채였다.
탁-!
이내 다시 닫힌 엘리베이터 안에는 박 전무와 최 이사만 남았다.
“…….”
적막이 흐르기도 잠시.
“감사합니다, 전무님.”
최 이사는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전했다. 만약 그가 나서지 않았다면, 실질적인 권한이나 힘을 다 떠나서, 보는 눈도 많은 와중에 이사인 자신이 상무에게 대드는 하극상이 연출될 뻔했다.
띠링-!
다시금 엘리베이터 문이 활짝 열렸고.
“감사는 무슨, 둘만 있을 때는 존댓말 하지 말라고. 징그러우니까.”
박 전무는 제대로 형식 갖춰 인사를 전하는 자신을 보며 소름 끼친다는 양 몸을 부르르 떨어 보이고는 제법 진지한 얼굴로 첨언했다.
“나는 예전부터 저 새끼가 유달리 마음에 안 들더라.”
아마….
절대 2팀의 편을 들어준 게 아니라는 말이 하고 싶은 거겠지.
하여간.
알 수가 없는 놈이다.
* * *
다음 날.
김 실장은 출근하자마자 동쪽이의 작업실을 찾았다.
“어제 잘 놀고 들어갔어?”
“그냥 밥만 먹고 갔죠.”
“진짜 맛있었는데, 아쉽다.”
현승은 진심으로 아쉬워하는 김 실장의 얼굴을 살피다, 입을 열었다.
“다시 먹으러 올 만한 일이 안 생긴 모양입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아니, 아니에요.”
“너까지 사람 궁금해서 미치게 만들어야겠어?”
현승은 자신을 째려보는 김 실장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건 그렇고.”
굳건하게 제 얘기만을 말할 뿐이었다.
“제가 처음에 매절로 판매했던 곡에 대해 여쭤볼 게 있는데.”
“그건, 왜?”
“그래도 제가 만든 곡인데, 어떻게 쓰이고 있나 싶기도 하고.”
이내 현승이 모니터 화면에 잘 정리된 음원 파일로 시선을 옮기며 덧붙였다.
“혹시나 A/S가 필요하면 좀 해 드리려 했죠.”
“갑자기 웬 사후 서비스? 안 어울리게 친절하네.”
현승이 “안 어울리면 됐어요.” 하고 퉁명스레 받아쳤다.
이제 정말 새해를 코앞에 두고 있지 않은가? 그런 의미로, 현승은 파일함에서 썩어 가는 음원 파일들을 하나하나 정리하기에 이르렀고.
그러던 중 초반 작업물에서 빈틈을 발견한 탓에, 매절한 곡들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삐졌냐?”
“아니요.”
“삐졌잖아.”
“아니라고요.”
김 실장이 현승의 눈치를 살피며, 겸연쩍은 투로 입을 열었다.
“아마 2곡은 다른 아티스트 수록곡에 샘플링으로 사용했고, 1곡은 이번에 사극 드라마 OST로 편곡해서 사용하는 것 같더라.”
현승이 머리를 긁적이며 기억을 더듬었다.
“음,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 곡 중에 사극 드라마 OST로 편곡할 만한 곡은 없던 것 같은데.”
“자세한 건 나도 잘 모르겠고, 작곡가 히든 알지? 히든이 그 드라마 OST 전반적인 제작을 다 도맡아서 한다고 하더라고.”
“히든이라면, 음주운전으로 전봇대 들이박고 자숙 기간 가졌던 작곡가 말씀하시는 거죠?”
“응, 뭐 그것도 다 오래전 이야기지. 지금은 기억하는 사람도 별로 없더라.”
거참, 불공평한 세상이다.
누구는 곡 좀 안 줬다고 있는 얘기, 없는 얘기 다 만들어서 사람 하나 병신 만들더니.
누구는 음주운전을 하고도, 사람을 친 게 아니라는 이유로 반년의 자숙 기간 만에 다시 작곡가로서 활동을 이어 나갔다.
‘운이 좋다고 해야 하나.’
여하튼, 히든이 자신의 곡을 맡아서 드라마 OST 프로듀서를 한다라….
그의 인성은 둘째 치고, 실력에서도 의문이 많았던 현승으로선 썩 달갑지 않은 이야기였다.
“그냥 제가 했으면 좋았을 텐데.”
현승이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린 말에, 김 실장이 즉각 반응하며 되물었다.
“하고 싶어? 그러면 한번 말해 볼까?”
“이미 히든이 하기로 최종 픽스된 상황 아니에요?”
“뭐, 말이야 한번 해 볼 수 있지.”
“그렇기야 하죠.”
현승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던 찰나였다.
띠링-!
자신에게 온 연락인 줄 알고 휴대폰을 집어 들었지만, 화면에는 아무런 알림도 뜨지 않은 채였고.
“헙.”
고개를 올려 보니, 김 실장이 휴대폰을 집어 든 채로 입을 틀어막고 있었다.
“무슨 일 있어요?”
이윽고.
손에 힘이 빠지며, 쥐고 있던 휴대폰이 바닥을 향해 추락했다.
콰앙-!
살짝 금이 간 액정 위로는 문자 창 하나가 떠오른 채였다.
「[Web발신] LS 엔터테인먼트 위촉업무변동 안내.
김우현 님, 1월 2일부로 위촉업무변동이 생겼음을 알려 드립니다.
◈ 매니지먼트 2팀 실장 -> 매니지먼트 총괄 본부장
※ 이른 시일 내로 HR실에 방문하시어, 새로운 아이디 카드와 명함을 받아 가시길 바랍니다.
※ 1월 2일, 변동된 직책에 맞는 계약서를 새롭게 작성할 예정이오니..(전체보기) 」
“김 실장님?”
현승이 혼이 나간 듯 서 있는 김 실장을 바라보다, 피식 웃어 버렸다.
아무래도.
조만간 비싼 식당 가실 일이 생긴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