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187)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187화(187/482)
드라마 ‘붉은 실’의 음악 감독을 맡게 된 안소정은 휴대폰을 붙잡은 채 끙끙 앓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왜 또 안 받는 거야….”
그녀는 답답하다는 듯 가슴팍을 두들겼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드라마 OST의 메인 테마곡을 작곡가 ‘히든’이 대부분 다 맡기로 한 상황이었는데….
이미 샘플링은 다 나와 있으니, 편곡만 보면 된다고 얼마 안 걸릴 거라 호언장담하던 그는, 현재 연락이 되지 않고 있었다.
[ 히든님, 이거 보시면 연락 좀 부탁드릴게요. 진행 상황이라도 확인 좀 부탁드릴게요. 제발… ]그녀는 울며 겨자 먹기로 그에게 문자를 발송했다. 사실 맘 같아선 당장 작곡가를 바꾸고 싶었지만….
이미 사전 제작 기간인 와중에 ‘히든’급 정도 되는 작곡가를 당장 무슨 수로 구해서 대처하겠는가?
“으-!”
안소정은 그래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밀려드는 스트레스로 폭삭 늙어가고 있었다.
“하아….”
한숨과 함께 고개를 내젓기도 잠시.
“어?”
서류로 난잡해진 테이블 위에 홀로 굴러다니는 담뱃갑이 그녀의 시선 안에 확 들어왔다.
정말.
어렵사리 끊었던 담배다.
꿀-꺽.
그러나, 지금 그녀는 스트레스를 줄여 줄 무언가가 간절히 필요한 상황이었다.
“하, 하나만….”
결국 그녀가 참지 못하고, 담배 한 개비를 막 꺼내 들던 찰나였다.
벌-컥.
제 보조를 맡고 있는, 조나래가 헐레벌떡 뛰어 들어왔다.
“감독님-!”
조나래의 순두부처럼 하얀 두 뺨이 빨갛게 달아오른 걸로 보아, 아주 다급히 뛰어온 모양이었다.
“허, 허억, 진짜, 헉, 대박 사건-!”
“숨 고르고 얘기해.”
자신이 물병 하나를 집어 건네자, 조나래는 단숨에 들이켜고는 “크으-.”하고 아저씨 같은 소리를 냈다.
가끔 보면.
아기 같은 얼굴과 달리, 아저씨 같을 때가 많은 녀석이다.
“으어, 감사합니다. 감독님 덕분에 살았어요.”
“자, 이제 말해 봐.”
“네! 근데 제 얘기 듣고 진짜 놀라시면 안 돼요!”
그런 조나래의 얼굴 위로는 “저 지금 너무 놀라고 들떴어요.”라고 적혀 있는 듯 보였다.
참….
쟤도 포커페이스가 정말 안 되는구나.
“나 이미 심장이 차갑게 굳어서, 웬만한 걸로는 잘 놀라지도 않는 거 알잖아.”
조나래는 긴박감이라도 조성하고 싶은지, 곧장 얘기하지 않고 마른 입술을 달싹거리며 뜸을 들였다.
대체.
무슨 얘기를 하고 싶어서 저러는 걸까?
“방금 다른 제작진한테 전달받고 왔는데요.”
“응? 갑자기 LS 엔터?”
“네, LS 엔터에서 우리 드라마 OST 제작을 맡아서 진행하면 안 되냐고 먼저 연락이 왔대요!”
“그래? LS 엔터야, 실력 좋은 전속 작곡가 많은 곳으로 유명하니까 땡큐이긴 한데.”
안소정은 신나서 떠드는 조나래에게 미안할 만큼, 아주 차분한 어투로 말을 이었다.
“알다시피 이미 우린 히든이랑 제작하기로 했잖아.”
“그렇기는 하지만….”
“서브 테마곡 정도야 협업해 볼 수는 있겠다.”
“그렇지만….”
“아무튼 LS 엔터에서 먼저 연락이 오다니, 신기한 일이긴 하네.”
조나래가 잔뜩 풀이 죽은 목소리로 중얼거리기도 잠시.
“아니, 그게….”
별안간 고개를 번쩍 들며 장내가 떠나가라 소리를 질렀다.
“LS 엔터 전속 작곡가인 엣치스가 직접 OST를 맡아서 작업하고 싶다고 했다니까요!”
아아.
맞다, 얘 생긴 거랑 달리 성량도 컸었지.
“귀 떨어지겠다.”
“안 놀라 우세요? 무려 HS가 OST를 전담하겠다는데?”
자신이 짤막하게 “응”하고 대답하자, 조나래는 세상 의문을 모두 끌어안은 듯한 얼굴로 펄쩍 뛰어댔다.
“아니, 왜요?”
“분명 네가 잘못 전해 듣고 온 정보일 테니까?”
“진짜예요! 그래서 LS 엔터 관계자한테 안 감독님 연락처 알려주라고 했어요!”
“알겠어, 알겠어. HS가 황송하게도 우리 드라마 메인 테마곡을 다 맡아서 진행해 주겠다고 하셨다는 거지?”
그 물음에 조나래는 이제야 제 말을 믿어주는 거냐며 고개를 힘차게 끄덕거렸다.
“네! 그렇다니까요!”
이윽고.
“나 지금 스트레스받아서 끊었던 담배도 피우려던 참이거든, 너까지 헛소리해서 보태지 말고 좀 가줄래.”
안소정은 귀찮게 하지 말라며 손을 휙휙 내저었다.
“지금은 담배가 아니라, 축배를 들 때라니까요!”
결국.
조나래는 안소정의 우악스러운 손에 의해, 밖으로 쫓겨나고야 말았다.
“진짠데에….”
지금, 이 순간.
조나래는 정말 너무 억울하고 답답할 따름이었다.
* * *
1월 2일, 새해 첫날이 하루 지난 어느 날.
원래 같으면….
정말 아무 날도 아니거나, 나이가 또 한 살 먹었음에 기분이 몹시 구렸을 날이다.
하나.
오늘 김 실장은 적어도 LS 엔터테인먼트에서만큼은 가장 기분이 좋은 사나이였다.
“와, 새해부터 경사가 생겼네요! 축하드립니다-!”
그래, 단순히 직위 따위가 오른 게 아니라.
“그럼, 이제 김 본부장님이라고 불러야 하는 거죠?”
실장에서 본부장으로 직책이 변동된 거니까.
“김 본부장이라… 아직 부르기 좀 어색하지만, 축하하네.”
크진 않지만 개인 집무실까지 생겼다. 무엇보다 훌쩍 오른 연봉에 기분이 하늘을 찌르듯 치솟았다.
“다들 고마워, 감사합니다.”
많은 사람의 축하 속에 정신없는 오전 시간을 보낸 뒤, 김 본부장은 현승의 작업실을 찾았다.
아마.
녀석이라면 사내 게시판은커녕, 엘리베이터 전광판도 안 보는 편이니, 아직 모를지도 모른다.
더군다나.
맡아보고 싶다던, 드라마 OST 건도 자신이 잘 전달했으니 딱 기다려보라는 말도 전해줘야 하기도 하고.
똑, 똑, 똑-!
오늘은 문을 두들기는 손아귀에도 힘이 가득했다.
“실장님, 오셨어요.”
역시나 현승은 자신이 본부장이 된 사실을 전혀 모르는 듯, 평소와 같이 맞이했다.
하물며.
등을 돌려 하던 작업을 마저 이어 나갔다. 헤드셋까지 뒤집어쓰는 걸로 보아….
‘방해하지 말라는 거겠지.’
정말이지.
세상에 이렇게나 무심할 수가.
탁, 타탁, 타다다닥-.
현승의 손이 움직일 때마다 섹션 위로 빠르게 채워져 나가는 코드.
그저 놀랍고 경이롭다고만 생각한 저 뒷모습이 어째선지 얄미웠다.
‘너무해.’
제 손에 들린 아이스 아메리카노 벤티 사이즈가 오늘따라 유달리 무겁게 느껴지는 걸로 보아….
가깝다고 생각하는 사이인 만큼 조금 섭섭함이 드나 보다.
톡톡-.
원래 같으면 그냥 커피를 두고 조용히 나갔을 텐데, 현승의 어깨를 톡톡 두들겼다.
“왜요?”
현승이 고개만 돌려, 무심한 얼굴로 바라본다.
“일전에 얘기했던 드라마 ost건 얘기해 놨어.”
“드라마 OST요?”
“응, HS가 직접 맡고 싶다고 전달해놨으니, 안 하고는 못 배기겠지.”
“그렇게 말하면 어떡해요.”
“왜?”
“제가 그깟 드라마 OST 못 맡아서 안달 난 사람 같잖아요.”
“뭘, 또 그렇게까지….”
“아무튼 알겠으니까, 이제 그만 나가주시겠어요?”
휙휙 손을 내젓는 현승을 보며 김우현은 새로 개시한 정장을 툭 털며, 폼을 잡았다.
“나 오늘 뭐 달라진 거 없어?”
현승은 그 모습에 당황스럽다는 양 눈썹을 들썩였다. 여동생에게도 몇 번 받았던 질문인데….
음악을 제외하고는, 무신경하고 눈썰미나 미적 감각도 없는 현승으로선 받을 때마다 난처한 질문이다.
“새로 이발하셨나?”
“땡.”
“면도가 잘 됐나?”
“땡.”
“어디 아프신가?”
“땡, 땡, 땡!”
결국 김우현은 눈을 가로로 쭉 찢으며 퉁명스럽게 말을 이었다.
“넌 나한테 관심이 없어도, 너무 없는 것 같아.”
“오늘따라 왜 이러세요?”
“네가 오늘만 이랬던 건 아니잖아.”
“아니, 제가 뭘 어쨌길래요?”
“맨날 난 안중에도 없고, 커피만 반기잖아.”
제 손에 들린 커피를 툭 하고 올려놓으며 물었다.
“그리고 너 내가 본부장으로 올라간 것도 모르지?”
“알았는데요?”
“알고 있었는데 축하한다는 말 한마디를 안 해 준 거야?”
“어차피 저 말고도 축하 많이 받으셨을 거잖아요?”
김 실장은 충격에 물든 얼굴로 따지듯 되물었다.
“뭐? 너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로봇 같을 수가 있어?”
“로봇이라뇨? 실장님 몸이 더 로봇 같아요, 깡통 로봇.”
“뭐라고? 너 지금 나한테 깡통 로봇이라고 한 거야?”
“네, 했어요. 실장님이 저한테 먼저 로봇이라고 하셨잖아요.”
“민현승! 나 이제 실장 아니라고! 본부장이라고!”
현승은 별안간 목울대에 핏대를 세우며, 고래고래 소리치는 김 실장, 아니 김 본부장이 이해가 가질 않았다.
대체.
‘왜 화를 내는 거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양 고개를 내젓던 찰나.
끼익-.
들려오는 소리에 김 실장 너머로 있는 문 쪽을 바라보니.
“아, 하하하하… 안녕하세요오.”
어색하게 서 있던 정아린과 눈이 딱 마주쳤다.
“뭐하냐?”
정아린은 현승과 김 본부장을 번갈아 쳐다보며 어색하게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김 실장님, 본부장 되신 거 축하드리려고 왔는데 두 분이 사랑싸움 중이셔서, 그냥 가려다가….”
“사랑싸움은 무슨, 이 로봇 같은 애가 사람 서운하게 말하잖아.”
“로봇 같은 애? 아니, 실장님이 예민한 거면서 왜 제 탓을 해요?”
“아무리 봐도 사랑싸움인 것 같은데….”
그 말에 둘은 서로를 째려보면서 동시에 “아니라니까!”하고 소리쳤다. 이후 씩씩거리는 숨소리마저 어찌나 합이 잘 맞는지….
‘둘이 합창하는 줄 알았네.’
별안간 정아린은 현승과 제이블에 대한 열애 찌라시가 떠올랐다.
그래.
‘난 작곡가님이 누굴 좋아하시고, 누굴 만나던 다 응원할 거야.’
오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가고 있을 따름이었다.
* * *
안지호는 요즘 들어오는 스케줄은 뭐가 되었건, 자신이 할 수 있는 거라면 닥치는 대로 다 해나갔다.
덕분에.
입에 풀칠은 하지 않지만, 지금껏 쌓여온 사내와 개개인의 부채를 해결하기에는 조금 역부족이었다.
무엇보다.
올해는 꼭 작은 사옥이라도 가겠노라고 다짐했으니, 더욱 열심히 해 봐야겠지.
‘이건 기회야.’
안지호는 짧은 웹드라마에 조연으로 출연했었는데, 그게 관계자들 눈에 들었는지 이번엔 정말 제대로 된 지상파 드라마에 남자주인공으로 발탁되었다.
21부작인 만큼, 회차당 출연료를 계산한다면 모든 부채는 털어낼 수 있을 터였다.
“좋았어!”
안지호는 힘찬 걸음을 옮겨, 사전 미팅이 약속된 SCS 방송국을 찾았다.
“감독님이 금방 오신다고 했는데, 차가 좀 막히시나 봐요.”
“괜찮습니다.”
“뭐 좋아하실지 몰라서 커피랑 차 둘 다 가져왔어요.”
“감사합니다.”
보조 PD로 보이는 남성은 넉살 좋게 말을 걸어왔다.
“아, 맞다. 지호 씨는 HS랑 좀 연이 있죠?”
“작곡가 말씀하시는 거죠? 있긴 한데, 왜요?”
안지호가 경계 어린 눈으로 물었다. 설마 자신을 캐스팅한 이유가 HS를 통해 OST라도 한 번 받아볼 요량이라고 한다면, 당장 안 한다고 할 생각이었다.
하나.
뒤이어 남성의 입에서 나온 말은 예상과는 전혀 다른 얘기였다.
“이번에 저희 OST 제작을 원래 작곡가 히든이 맡아서 프로젝트식으로 작업하기로 했는데, 갑자기 HS 씨가 자신이 하고 싶다고 먼저 연락이 왔다더라고요.”
“예? HS 님이 먼저 작업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고요?”
“네, 그래서 음악 감독님이 고민 중이라는데, 뭐 결국 HS를 선택하지 않겠어요? 이제 드라마 음악도 대세를 따라가야죠.”
작곡가님이 동요도 만드시더니, 이젠 사극 드라마 OST도 만드실 생각이신 건가….
‘근데 먼저 하고 싶다고 하실 분이 아닌데.’
안지호가 의아하다는 양 고개를 갸웃거리던 그때.
짝-!
PD는 무언가 떠올랐는지, 제 두 손을 부딪치며 말했다.
“가만 생각해 보니까, 지호 씨 캐스팅 결정 난 날에 HS가 연락이 왔네. 두 분이 연이 있긴 있나 봐요.”
그 말에 안지호는 벙찐 표정으로 눈만 깜빡거렸고.
이내 PD는 전화를 받으며 장내를 나가버렸다.
“잠시만요. 네, 감독님! 네, 지금 지호씨 와 계시고….”
안지호는 일순간 감동에 젖은 얼굴로 두 입을 틀어막은 채 고개를 떨궜다.
‘서, 설마 작곡가님이 힘을 실어 주시려고….’
아무래도.
이쪽도 현승에 대한 오해에 빠진 모양이었다.